아쉽다는 듯 혀를 가볍게 찬 그가 자신의 맥주캔을 살짝 치웠습니다. 그리고 말해보라는 듯 고갯짓을 살짝 까딱였습니다.
' 둘 다 나에겐 가치가 있지. 하나는 내 절반의 역린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영원히 자유를 얻는 것인데 내가 둘 다 싫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 ' 그럼에도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내가 영원한 자유를 얻는 편이 좋겠지. 역린을 네가 평생 취하지 못할 터인데 굳이 조바심을 가져서 뭐하겠나. '
夏사감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두 손가락을 다시 접었습니다. 그리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습니다.
정말, 정말로 여기에 만화같은 연출이 허용됐더라면 아마도 니오는 머리 옆에 연한 분홍색의 하트 몇 개를 풍선처럼 터트리고 퐁- 하는 효과음과 함께 눈에 하트를 띄워놨을 것이다. 앞으로도 조심하라는 말에 '그럴게요호...' 하고 말 끝을 얼버무리고 살짝 공기를 섞고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정신을 차렸었는데 다시 조금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전부터 그런 감은 있었지만 역시 스타일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니오는 자신이 의외로 키가 크다던가 스타일이 좋다던가 아니면 그냥 분위기 자체가 '잘생겼다' 라는 것에 약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은근슬쩍 피해다녔던 사람인데도 이렇게 반응이 나와버린 것을 보면, 그게 맞는 듯 했다.
" 응. 그치만 언니야, 오늘 잘생겼어. "
한 번더 신발코로 땅을 콕콕 찍는다던가 괜히 치마 끝자락을 만지작거리거나 손장난을 치면서 몸을 배배꼬던 니오는 또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뒤에서 비추는 것도 꽤나 괜찮은 기분이었다. 기숙사를 옮기고 나서도 싸움은 잦았고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항상 사납게 으르렁 거리기만 했으나 오늘은 뭔가가 달랐다. 아마도 오랜만에 사복을 입고 외출까지 했으니 기분전환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좋은 일.. 은 딱히 없는데. 그냥, 그렇게 느껴서. 에헤, 언니야 오늘 잘생겨서.. "
잘생겼어- 라는 말을 벌써 몇 번째 했는지 모르겠다만 그것 말고는 별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말로써 표현하기보다는 항상 뒤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라고 여지껏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조금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머리에 손이 얹어지자 니오는 눈을 감았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에헤,' 하고 웃음을 지어냈다. 어쩌면 이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오늘은 좋은 구경을 했으니까.
" 응 언니야. 니오도 오랜만에 나오는거니까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어. 사실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나올만한 이유도 없었거든. 그런데 그냥 오랜만에 나가보고 싶어서. 맨날 교복만 입으니까 질리기도 하고. 최근에는 사복 입을 일도 거의 없었고. "
더군다나 니오는 본가에 돌아갈 일이 많지 않다보니 집에서나 입는 그 무녀복같은 옷도 입을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머리아픈 일들이 더러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분전환이 필요했기에 억지로 나왔는지도 모른다. 다정하게 팔짱을 껴주고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니오는 또 금세 얼굴을 붉히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몇 번인가 더 몸을 배배 꼬았다. 옷이 달라지면 분위기가 달라지는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니오는 팔짱낀 팔을 제 몸으로 조금더 꼭 끌어안았다.
아까는 제가 아쉬운 소리 내니 이번은 하 사감 내었다. 죽이지 못 하는 것이 그렇게도 아쉽나. 피식 웃고 말한다.
"인간들, 은 몰라도 나 하나 쯤은 흥미를 가져볼 만도 하지 않소? 내 당신과 역린으로 무엇 하려 이리도 끈질기게 구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물론 이 역시 묻는다고 선뜻 대답해 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가 맥주캔을 치우자 이번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손 뻗었다. 이잉 하는 소리도 다시 냈다. 저도 새로 주지 않으면 마시던 거라도 가져갈 테요 하고 피력하듯. 술을 보채는 와중에도 들을 건 다 들어서 열심히 떠들기도 했다.
"흐흠- 그런가. 확실한 죽음이라. 그것도 꽤 구미가 당기는구먼."
저를 보는 하 사감 마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 따라하듯 고개 갸웃 기울이고 킥킥 웃었다. 죽는 것 따위- 라고 하듯 제 붉은 눈은 평온하기만 하다. 오히려 의문에 답 들으니 시원해 보였을까. 그런가. 그렇다면. 잠시 혼잣말 주워넘기다 아. 하고 다른 것 물었다.
"허면 내가 하 사감 된 후에는 어찌 되는 건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하지 않았나. 역린으로는 죽을 수 있는 거요?"
미치는 거야 둘째 치고 죽지 않게 된다면 그야말로 영구히 역린 쥐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을. 마치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하는 듯 하여 그것 물어보고 자세 꼼지락 움직인다. 조금 더 기대기 편하게. 움직이는 김에 가슴팍이니 허리니 만지작댄 건 안 비밀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 들었는지 무심코 말했다.
"평생 인간을 이해하지 못 할 거라면서. 어째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게요? 말은 그래도. 실은 이해해보려 하고 싶은 것 같잖아."
어째서 당신은. 아니 어째서 당신들은. 정말 당연하게도 이 모습이 사감 노릇 하기에 적합하여 그럴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넘겨짚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온화 그리 묻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감히 그의 내심 파헤쳐보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