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벚꽃난성의 어딘가. 강산이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도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 뭔가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산책을 하는 것처럼 다소 여유로운 모습이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토고를 용케 발견하고는 "토고 형님!"하며 팔을 흔들며 반기는 것이다.
"혹시 바쁘십니까?"
다가간 것이 강산 쪽이든 토고 쪽이든 간에, 좀 가까워졌다 싶으면 이렇게 말을 걸 것이다.
토고는 느긋하게 지금이 아니라면 맛볼 수 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 이 평화가 깨지는 이유야 여럿 있으니 토고는 바깥보다 이곳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도성에서 쉬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요함을 방해하는 것은 어느 발소리. 그것도 바삐 움직이는 발소리.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는 이윽고 자신의 앞에서 멈춘다.
"어야, 니가."
토고는 자신을 부르는 이를 보고 니냐면서 반응한다. 그러나 몸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휴식을 취한다. 그래봐야 햇볕이 드는 바닥에 앉아 그것을 취할 뿐이지만.
"아...딱히 뭔 일 있어서 부른 건 아니고요. 있긴 한데 중요하거나 급한 일도 아닙니다."
반기는 것처럼 보였던 건 그냥 토고를 만난 게 반가워서 그런 것 뿐이긴 했다.
"혹시 최근에 이 게이트 안에서 뜬금없는 위치에 고문서나 고서적 더미가 버려져 있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신가 해서요. 얼마 전에 저랑 빈센트 형님이 도성 외곽의 물레방앗간에 웬 고서적 더미가 방치되어 있는 걸 발견했는데...알고 보니 그 사이에 저주술 주술서가 섞여있었거든요. 인근에 샘이 마르는 저주를 걸었던 흔적도 추가로 발견되었고요."
땀이 조금 이마로 손을 올렸다가 멈칫한다. 겉옷이 나름대로 한 교육시설의 설립을 기념하는 아이템인지라 그 옷자락으로 땀을 닦긴 그렇고 하니 대신 인벤토리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는다.
"어쩌면 잔당들이 버렸거나 숨겨두고 간 것일 수가 있다고 하니...혹시나 그런 게 또 남아있지는 않은지 걷기운동 좀 한다치고 한 번 순찰을 돌아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비각성자가 하기엔 고된 일이겠지만, 강산에게는 딱 이정도가 적당한 운동이지 않을까?
"아무튼...자연스럽지 않은 위치에 버려진 고문서 더미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다른 별 일은 없으셨습니까?"
"별 다른 일은 없데이. 걍 마카오에 있고.. 거 일 끝나면 또 개같이 구르고 구를 뿐이지."
토고는 일부러 앞에서 그가 한 말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별 일 없냐는 말에만 대답을 하며 힘 없이 "끌끌" 웃을 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힘이 없어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물어올지도 모른다. 토고는 그래서 아직 질문을 받지 않았지만, 답을 해준다.
"성장 욕구가 사라져서 기냥 말라 죽는 걸 기다리는 것 같데이. 이런 걸 번아웃이라 카지 않나? 크크... 너무 많은 일이 몰아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 생각하니까 의욕이 다 사라진다."
예전의 토고라면 하라면 할 수 있다는 식의, 그냥 순간의 게으름이나 딴청이었겠지만 지금은 산더미 같은 과제를 앞두고 현실을 도피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해야 할 건 많은데 힘은 없고 또, 그게 간단한 거라면 모를까 목숨까지 달리고 그마저도 부질없으니 기냥 매마르는 걸 기다리는 식물이 된 기분이다. 그래서 토고는 그를 보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