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그 때 강산과 본 것들은 그러려니 했다. 생긴게 워낙 개같아서 문제지 사실 냉정하게 무력만 따져보면 빈센트랑 강산이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못 잡을 것도 없는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선과 함께 갔을 때 빈센트를 죽일 뻔한 놈은 달랐다. 일단 강하기는 더럽게 강했고... 또한...
"이면숭배자가 제 모습을 취하고 있더군요. 제가 되었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라면서요."
빈센트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또 정신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진지하게 의념기를 쓸까 고민한다.
또 다른 자신을 상대한다... 그 가능성의 모습을 강산이 정확히 알 순 없었겠지만... 강산이 생각하기에, 그 동안 그 어떤 끔찍한 걸 봐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것처럼 보였던 빈센트가 이렇게 충격을 받을 정도라면,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일 게 분명했다. 강산이 보기에도 끔찍할 모습일 가능성이 클 터이니 강산은 굳이 억지로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방금 그걸 또 쓸 수는 있지만, 그건 제가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도라서 남용하기가 그렇긴 하네요. 기술은 아니고 제가 가진 아이템의 효과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이 방법이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응.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우리가 무사히 졸업하려면...특별반 혼자 힘만으로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테고. 그럴 때 우리 편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정말 괴로운 길이 될 것 같아서."
영월 습격 작전 때도 그러했다. 결국 특별반 혼자서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준혁은 북해 길드와 다른 길드들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었나.
"그리고, 단순히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어렵더라고. 강해져서 성과를 내면 되기야 되겠지만 그것도 항상 잘 풀리지만은 않으니까. 좋은 일이랑 나쁜 일은...항상 끼리끼리 어울려다니는 건 아니고 섞여서 뭉쳐다니기도 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강산의 미소가 희미해져 간다. 실제로 영월 습격 작전의 일로 강산을 구원자라 불렀던 사람들이 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떠한가. 주강산이, 그리고 특별반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 동안 강산이 외면해왔으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구원자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
"저는 연주를 해드리려고 한 것이지, 제 특기가 노래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하하. 가창 실력은 오마니에게 물려받지 못했지 말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군오."
악기의 상태를 점검하면서도 장난스레 답한다. 이상한 일이다. 강산이 알기로 그는 결코 자신의 특기가 노래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가야금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는 간혹 그가 병창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 '서계가혼'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뭔지.
".....그래요."
그러다가도 빈센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저 악기를 조율한다. 꽤 많은 곡을 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는, 어떤 곡이 좋을지 모르겠어서... 강산은 그냥 즉흥 연주를 하기로 했다. 손이 가는 대로. 빈센트에 대해서 느낀 대로. 그 결과가 괜찮을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강산도 모를 일이지만.
누군가를 진정시키기에는 다소 빠르다 싶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시작하는 곡이었다. 그러나 그 선율에는 어딘가 애절한 느낌을 주는 부분 또한 있었다. 빈센트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산이 느낀 빈센트가 그러했다. 제멋대로인 듯한 그이지만 그러다가도 뒤를 돌아보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너무 멀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빈센트의 죽어가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아왔다. 빈센트는 천천히 그의 연주를 듣는다. 다소 빠른 박자, 애절한 느낌, 그리고... 마치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엄습하는 두려움. 빈센트는 그의 연주를 음미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빈센트는 고개를 젓고, 강산에게 말한다.
"...그런데, 그 녀석이 저를 때려눕히고 나서 제 지갑을 뺏더군요. 제가 누군지 잘 알아야 더욱 끝내주는 고문을 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베로니카의 사진을 보더니... 그 녀석의 몸이 녹아내리지 뭡니까."
빈센트는 그 장면을 생각한다. 걸쭉한 액체가 되어버린 괴물, 그리고 그 사이에 잠겨가던 지갑과 베로니카의 사진. 빈센트는 벌벌 떤다.
"...제가 무슨 미친짓까지 벌일 수 있는 놈인지, 슬쩍 엿본 느낌이었죠... 그게, 제가 이면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면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라 하더군요."
잠시간의 연주가 끝나고 좀 더 상태가 나아진 듯한 빈센트가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자, 강산은 다시 그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 기묘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류라도 났던 걸까요?"
빈센트에게 말해본다. 그렇게 갑자기 녹아내려 붕괴했다니, 마치 기계가 갑자기 고장나거나, 혹은 게임의 버그로 그래픽이 뭉개진 것 같지 않은가.
"글쎄요. 제가 볼 때 지금의 빈센트 형님은...꼭 그렇지만도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 형님은 무사히 이면도서관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그리고...음, 아무튼 형님은 엄청은 아니지만 상당히 달라지셨어요. 어쩌면..."
위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강산은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차분히 이야기해본다. 그러다보니 문득 떠오른 추측이 하나.
"어쩌면 형님이 작년까지의 형님과 같지 않은 사람이 되신 까닭과, 그것이 오류를 일으킨 원인이 같았던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섣불리 말하기에는 무례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그런 식으로 조심스레 에둘러 말한다. 빈센트는 강산에게 그 자신의 과거를 간략히 말한 바 있다. 그렇기에 강산은, 굳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빈센트가 예전에 한 성깔 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빈센트가 면책 특권을 빼앗긴 이후 예전과 달리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있다. 어쩌면 그것은 빈센트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빈센트를 때로는 멈추고 뒤돌아보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베로니카이기 때문에, 빈센트가 만났다던 이면의 가능성을 멈춰세운 것 또한 베로니카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빈센트는 자신의 지갑에 들어있던 것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말한다. 카드, 신분증, 쪽지, 그 외 기타등등...
"이면의 존재에게 제 카드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진지하게 거기의 어디서 카드를 쓸 일이 있겠습니까. 신분증 역시 필요없죠. 쪽지, 관심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베로니카, 베로니카의 사진을 보고, 그 이면의 존재한테 몸을 빼앗겼던 빈센트가 완전히 무너진 걸지도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히다가, 머리가 다시 아파지는 걸 느낀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빈센트는 강산을 보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