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텅 빈 눈동자로, 모든 것이 있는 벚꽃난성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이면도서관에서 본 끔찍한 광경, 그것도 그냥 끔찍한 것이 아니라 빈센트의 몸을 참칭한 이면 숭배자가 빈센트를 죽일 뻔했다가 베로니카의 사진을 봤다고 녹아내리는 꼬라지를 보면서, 빈센트의 뇌도 한 반쯤은 녹아내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빈센트는 엄청 대단한 일은 할 수 없었고... 가뭄으로 수원이 말라버려 쓸모가 없어진 물레방아를 마도로 물을 만들어내 돌리는 일이나 하고 있었다.
"..."
빈센트는 그 때, 베로니카의 사진을 떠올리면서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뇌를 움츠리며, 텅 빈 눈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너무 위험해보이는 인상인지라, 벚꽃난성의 주민들은 빈센트를 건드리지도 않고 있었다.
빈센트주 강산이가 빈센트한테 이 기술을 써도 괜찮을까요?? 눈에는 엄청 띄겠지만 빈센트 때문에 npc들 때문에 접근 안 하는 상황이니 괜찮을지도요...?
찬란한 반짝임(A) 그 역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단지 1세대 당시 한 사이비교의 교주가 만들어내어 사람들에게 퍼졌다 알려진 이 마도는 스스로 아우라를 만들어 주위로 방출해낸다. " 지치고 힘든 자들아 내 품으로 오라. 내가 너희의 안식이 될지니. " - ??? 시전자를 주위로 아군에게만 적용되는 의념의 파동을 빛의 형태로 발산한다. 발산된 의념의 파동은 아군의 정신력을 치유하며 F랭크 이하의 정신계 디버프를 상쇄한다. F랭크 이상일 경우 그 수치만큼 효과를 경감한다. 50의 망념을 추가로 지불하여 아군 하나의 D랭크 이하의 정신계 디버프를 제거할 수 있다. 이 효과는 전투 당 1회만 사용 가능하다.
한편 강산 또한 간만에 벚꽃난성을 다시 찾은 참이었다. 떠나온 지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거리를 거닐다보면 조금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고 느낀 차에...쑥덕이는 주민들의 소리가 들렸다.
"웬 물이래? 저 위쪽 샘은 다 마른 거 아니었어?" "외지에서 온 술사가 빈 물레방앗간에 틀어박혀서 술법으로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던데. 덕분에 당장 모가 말라 죽는 건 면하겠지만...헌데 그 술사님이....음,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으신 듯 하더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 말을 듣고는 물어물어 빈센트가 있는 위치를 찾아간 것이 지금이다. 외지에서 온 술사라면 강산과 같이 게이트 밖에서 온 각성자일 가능성이 높았으니 혹시나 해서 찾아가본 것이다.
이 게이트도 빈센트의 정신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빈센트가 워낙에 정신이 날아가서 못 듣는 것인지는 몰라도, 빈센트는 인기척은커녕 쥐들 찍소리 새들 짹소리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저 빈센트가 마도로 만들어낸 물이 물레방아라는 무생물과 부딪치고 떨어져 솨아솨아 합창하는 냇물과 하나가 되는 것만 들릴 뿐. 심지어는 술잔마저 그저 들고만 있을 뿐 마시지는 않았다.
"..."
빈센트 형님?
"..."
누군가 나를 부른다. 그런데 뭐? 뭔가 익숙하다. 그런데 뭐? 빈센트는 그 상태였다. 듣는다는 건 되었지만, 생각이 그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강산이 가까이 와서 자기를 밝혀도, 빈센트는 텅 빈 눈동자로, 산 사람이라기에는 영혼이 없고, 죽은 사람이라기에는 꼿꼿이 서 있는 그 괴상한 자세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빈센트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산의 표정에 불안함이 섞인다. 뭐지, 상태 이상인가...?
강산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한 번 둘러보고는, 빈센트의 심기를 너무 거스르지 않도록 적당히 다가간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그동안 특별반의 인원에게는 써 본 적 없던 마도를 한 번 써보기로 했다. 한 번 정도는 부작용 걱정 없이 응급처치용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찬란한 반짝임. 향릉서고를 통해 익힌, 아군의 정신력을 치유하는 마도였다. 빛의 파동이 주위로 퍼져나가며 주변의 그림자들을 잠시 흐리게 만든다.
찬란한 반짝임이 온다. 완전한 어둠에 덮였던 그의 생각에, 빛이 찾아와 비춘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있던 생각과 지각, 인지가 촘촘하게 모여 만든 실타래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빛에 드러난 그것들은 툴툴대며 생각을 시작해 스스로 빛을 낸다. 그리고, 반쯤 녹았던 빈센트의 뇌에서, 아직 녹지 않은 나머지 반쯤이 활동을 시작했다.
"...강산 씨?"
빈센트는 그제야 강산을 바라본다. 하지만 정신줄을 간신히 잡았을 뿐, 빈센트는 여전히 피폐해보였다.
"죄송합니다. 아마 인사를 하셨어도 제가 못 들었을 겁니다. 요즘... 좀 그렇거든요." //5
그러고보니 원래는 강산 혼자 이 짓거리를 벌일 생각이었기에, 여선의 역할을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서...여선의 말을 듣고 강산은 건조대에 방석들을 빨래집게로 고정시키며 잠깐 생각에 잠긴다.
"여선이 너는...혹시라도 내가 수련하다가 바람에 날린 물건을 맞고 부상을 입거나 망념이 너무 많이 쌓이면 날 데리고 나가주는 역할...이면 되려나...?"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은 해보지만 곧 어깨를 으쓱인다.
"모르겠다. 이게 그냥 우리 사적인 거 세탁하는 것도 아니고 시설이 개선되도록 거들어주는 거니까 괜찮을지도...? 어쨌든 이미 일은 벌였고. 일을 벌였으니 수습을 해야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장난스레 웃으며 바람 마도를 시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곧 강산과 여선이 있는 곳 주위에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옷자락이 가볍게 흔들리고, 의도한 대로 바람이 건조대를 훑고 지나간다. 강산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원하냐?"라며 웃는다. 그러다가도...
"이번 일은 내가 신경쓰여서 한 것도 있지만...생각해봤는데, 특별반을 모두가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예전엔 굳이 그러지 않았지만, 이제는 좋은 일 좀 더 많이 찾아서 해보려고 해."
강산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빈센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대화 중에 술을 마셔도 굳이 제지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길에 사 온 간식거리 몇 개를 그의 앞에 차려놓으며 계속 경청할 뿐이다. 각성자는 의념을 끌어올려 쓰는 동안 일반적인 술로는 크게 취하지 않는다지만. 안주 없이 술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 말이다.
"저번에 뵈었을 때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것 같진 않았는데...최근에 있었던 일이군요...?"
빈센트의 얼굴을 보며 되묻는다. 무슨 일인지 듣고 싶다는 제스처를 넌지시 취해보는 것이다.
빈센트는 그 때 강산과 본 것들은 그러려니 했다. 생긴게 워낙 개같아서 문제지 사실 냉정하게 무력만 따져보면 빈센트랑 강산이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못 잡을 것도 없는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선과 함께 갔을 때 빈센트를 죽일 뻔한 놈은 달랐다. 일단 강하기는 더럽게 강했고... 또한...
"이면숭배자가 제 모습을 취하고 있더군요. 제가 되었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라면서요."
빈센트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또 정신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진지하게 의념기를 쓸까 고민한다.
또 다른 자신을 상대한다... 그 가능성의 모습을 강산이 정확히 알 순 없었겠지만... 강산이 생각하기에, 그 동안 그 어떤 끔찍한 걸 봐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것처럼 보였던 빈센트가 이렇게 충격을 받을 정도라면,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일 게 분명했다. 강산이 보기에도 끔찍할 모습일 가능성이 클 터이니 강산은 굳이 억지로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방금 그걸 또 쓸 수는 있지만, 그건 제가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도라서 남용하기가 그렇긴 하네요. 기술은 아니고 제가 가진 아이템의 효과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이 방법이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응.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우리가 무사히 졸업하려면...특별반 혼자 힘만으로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테고. 그럴 때 우리 편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정말 괴로운 길이 될 것 같아서."
영월 습격 작전 때도 그러했다. 결국 특별반 혼자서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준혁은 북해 길드와 다른 길드들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었나.
"그리고, 단순히 강해지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어렵더라고. 강해져서 성과를 내면 되기야 되겠지만 그것도 항상 잘 풀리지만은 않으니까. 좋은 일이랑 나쁜 일은...항상 끼리끼리 어울려다니는 건 아니고 섞여서 뭉쳐다니기도 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강산의 미소가 희미해져 간다. 실제로 영월 습격 작전의 일로 강산을 구원자라 불렀던 사람들이 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떠한가. 주강산이, 그리고 특별반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 동안 강산이 외면해왔으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구원자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
"저는 연주를 해드리려고 한 것이지, 제 특기가 노래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하하. 가창 실력은 오마니에게 물려받지 못했지 말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군오."
악기의 상태를 점검하면서도 장난스레 답한다. 이상한 일이다. 강산이 알기로 그는 결코 자신의 특기가 노래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가야금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는 간혹 그가 병창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 '서계가혼'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뭔지.
".....그래요."
그러다가도 빈센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저 악기를 조율한다. 꽤 많은 곡을 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는, 어떤 곡이 좋을지 모르겠어서... 강산은 그냥 즉흥 연주를 하기로 했다. 손이 가는 대로. 빈센트에 대해서 느낀 대로. 그 결과가 괜찮을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강산도 모를 일이지만.
누군가를 진정시키기에는 다소 빠르다 싶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시작하는 곡이었다. 그러나 그 선율에는 어딘가 애절한 느낌을 주는 부분 또한 있었다. 빈센트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산이 느낀 빈센트가 그러했다. 제멋대로인 듯한 그이지만 그러다가도 뒤를 돌아보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너무 멀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빈센트의 죽어가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아왔다. 빈센트는 천천히 그의 연주를 듣는다. 다소 빠른 박자, 애절한 느낌, 그리고... 마치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엄습하는 두려움. 빈센트는 그의 연주를 음미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빈센트는 고개를 젓고, 강산에게 말한다.
"...그런데, 그 녀석이 저를 때려눕히고 나서 제 지갑을 뺏더군요. 제가 누군지 잘 알아야 더욱 끝내주는 고문을 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베로니카의 사진을 보더니... 그 녀석의 몸이 녹아내리지 뭡니까."
빈센트는 그 장면을 생각한다. 걸쭉한 액체가 되어버린 괴물, 그리고 그 사이에 잠겨가던 지갑과 베로니카의 사진. 빈센트는 벌벌 떤다.
"...제가 무슨 미친짓까지 벌일 수 있는 놈인지, 슬쩍 엿본 느낌이었죠... 그게, 제가 이면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면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라 하더군요."
잠시간의 연주가 끝나고 좀 더 상태가 나아진 듯한 빈센트가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자, 강산은 다시 그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 기묘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류라도 났던 걸까요?"
빈센트에게 말해본다. 그렇게 갑자기 녹아내려 붕괴했다니, 마치 기계가 갑자기 고장나거나, 혹은 게임의 버그로 그래픽이 뭉개진 것 같지 않은가.
"글쎄요. 제가 볼 때 지금의 빈센트 형님은...꼭 그렇지만도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 형님은 무사히 이면도서관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그리고...음, 아무튼 형님은 엄청은 아니지만 상당히 달라지셨어요. 어쩌면..."
위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강산은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차분히 이야기해본다. 그러다보니 문득 떠오른 추측이 하나.
"어쩌면 형님이 작년까지의 형님과 같지 않은 사람이 되신 까닭과, 그것이 오류를 일으킨 원인이 같았던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섣불리 말하기에는 무례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그런 식으로 조심스레 에둘러 말한다. 빈센트는 강산에게 그 자신의 과거를 간략히 말한 바 있다. 그렇기에 강산은, 굳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빈센트가 예전에 한 성깔 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빈센트가 면책 특권을 빼앗긴 이후 예전과 달리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있다. 어쩌면 그것은 빈센트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빈센트를 때로는 멈추고 뒤돌아보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베로니카이기 때문에, 빈센트가 만났다던 이면의 가능성을 멈춰세운 것 또한 베로니카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