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를 쓰는듯 보였다. 그러니까, 자신은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상기시켜가며 다시금 신앙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건물 안의 불이 전부 꺼졌으며, 문이 걸어잠겨졌다. 한마디로 감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셧다운되었다. 처음에는 이번에도 MA님의 장난이겠구나 싶었는데, 느낌이 다르다. 이것 이상의 공포감을 주며 다가왔던 게 신이었는데. 그렇다면 신은 아니고.
"으음. 큰일이네~ 어쩌지~"
문에 가까이 귀를 들여다대면, 문 밖에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적어도 밖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가현은 짭 하고 입맛을 다신다. 인어 오빠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
"그으, 밖에 무슨 상황인지 알려주실 친절한 분 구해요~ 거기 당신이요, 당신~"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나긋한 목소리로 문 밖의 무언가에게 말을 걸어본다. 과연 대답이 돌아올까?
학당의 문이 잠긴지 1주일이 되었다. 외부와의 출입은 불가능해졌기에 평소라면 바깥에 나가있었을 시간이었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서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독서를 하고 있으니 건물의 불이 꺼졌다. 소등한다는 말도 없이 건물 전체의 불이 전부 다 꺼져버리자 그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 ... ? "
그리고 주변이 지나치게 조용한 것을 깨달았다. 기숙사는 원래 수많은 학생들이 살고 있으므로 약간의 소음이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이 건물에 자신 혼자만 있는듯이 고요했다. 천천히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열리지 않는 문에 그는 착잡한듯 이마를 짚었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러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그는 문에 귀를 가져다대고 귀를 기울였다.
그가 움직이자마자 문 바깥의 무언가는 급격히 조용해졌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는 것처럼. 갑자기 불이 꺼지고 문이 다 잠긴 상태가 되어버린건 방금까지 소리를 내던 저 존재가 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이 굳게 잠긴 상태라 나갈 도리는 없어보였고, 그는 결국 문에서 거리를 두고선 말했다.
학당의 문은 잠겨봤자 당장의 불편은 없었다. 특별히 외부에 나가야 할 용무도 없었고, 주기적으로 공급해야 할 물건 같은 것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다른데. 당장 방 밖으로 못 나가게 생긴 상황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잠겼다. 장치의 고장으로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문뿐만 아니라 나갈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잠겨 버린 상황은 이상했다. 학당의 문이 잠겨 버린 이 사태와 관련이 있는 걸까? 방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던 그는 결정을 내렸다. 뚫어야지. ……아무래도 그는 문 밖의 정체 모를 소리는 운 나쁘게도 듣지 못한 모양이다. 문을 부술 땐 도끼 같은 것이 제격이겠지만 평범한 학생의 방에 그런 물건이 있을 리 없다. 하다못해 단단한 둔기라도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쓸만한 물건을 찾지 못한 그는 결국, 심호흡을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 제 비리비리한 몸뚱이를 문에 부딪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단련을 더 할걸. 늦은 후회가 몰려오지만, 후회는 늘 때늦는 법이다.
도술을 날렸으나 보통의 문이었으면 간단하게 뚫렸을 것을 튕겨내버린다. 공간도 좁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반응할 새도 없었던 그는 빗겨나간 것에 대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허나 문이 열렸고 보인 복도는 어둠에 잠겨있어 한치 앞도 보기 힘들듯 했다.
" ... 기껏 문 열어놓고 안나가면 그것도 손해지. "
어둠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리는 것. 하지만 여기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간 언제 나갈 수 있게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문 밖의 어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온한 날이다. 문이 잠긴지 일주일 동안 잘도 살아왔다. 애초에 나가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성정이라 그런지 학당에서 불만의 원성을 듣지만 않으면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는 날이었다. 일기를 몇 번이고 읽다 덮기를 반복하는 것이 반복되던, 기실 속이 쓰린 나날이었다 할 수 있겠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쓸모 있어 보이는 아이가 생겼다. 혹시 모르지, 저 아이가 날 위해 그걸 가져다 줄 지. 아니더라도 썩은 것들은 쳐내야했으니, 죽이는 수밖에.
저 아이가 뜻하는 자는 누구인가, 궁기에게 과연 무얼 가져다 줄까, 죽이는 것은 누구인가. 썩은 것은 무엇인가. 행여나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 놀아나며 증오니 뭐니를 속에 담고 이 학당에 입학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을 거듭하며 깊은 의식 속으로 떨어지길 반복하니 쓸데없는 걱정과 그럴 리가 없는 맹랑한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어, 어느 날부터 수첩을 품 깊은 곳에 숨기고 읽지 않게 됐다.
하여, 오늘은 좀 쉬었다.
도술로 물을 끓여 미적지근한 차를 마시고, 몸을 잘 접어 웅크리고, 눈을 감은 채 고요함을 즐기며 깊어지던 생각을 멀리 치우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라도 머리가 복잡하여 산책이나 나갈까 했더니. 덜걱, 덜걱, 철컥.
"하."
우습구만. 이젠 문까지 잠갔다 그거지, 사각대는 소리를 듣다가도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이게 앞길을 막네. 목화 님 계시니까 폭력은 안 쓰려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