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단호한 목소리로, 여선의 행동을 제지한다. 빈센트는 원래 비유법을 좋아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기겁할 법한 비유를 쓰는 것도 좋아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열면 미쳐버린다"는 말 대신 "이 책을 열고 나면 총살을 구걸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쓰는 식으로. 하지만 진짜로 그런 말을 썼다가 여선이 혹시라도 열어버릴까봐, 빈센트는 마도로 여선의 책을 수십중으로, 칼을 쓰지 않는 이상 풀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듭을 지어버린다.
"어쩌면 자살도 개인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만, 이런 끔찍한 방식의 자살은 저조차도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군요."
그렇게 말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괘종시계가 나타났다. 뎅, 뎅, 뎅.... 글자로 풀면 똑같은 '뎅'이지만, 빈센트는 그 소리를 듣고 사전에 알아둔 음향별 의미표를 머릿속에서 떠올린다. 그 내용은 대충...
"괘종시계가 하는 말이... 펼치면... 머리... 터진다... 라는군요."
그리고 여선을 본다.
"진짜로 머리가 폭발하는 중대한 외상에 의한 사망이건, 아니면 정신이 그렇게 표현해야 할 정도로 붕괴하는 거건, 어쨌든 둘 다 원하지 않으시겠죠." //3
빈센트는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눈을 보고 공포를 느낀다. 저런 표정까지 짓는다고 빈센트의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의미로 공포감이 들었을 뿐이다.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로 간절한 것인가, 그렇게나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은 것인가. 봤다가는 뇌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그 수많은 경고를 무시한 채? 어쩌면 빈센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띠지는 괜찮겠지, 속지는 괜찮겠지, 목차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읽어버리고, 그로 인해 빈센트까ㅣ지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남이 그 꼴 나는 건 보더라도 자기가 그 꼴 나는 건 싫지 않습니까. 그럼 안 보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빈센트는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엄금할지 궁금하긴 했다. 궁금만 했지만. 어쨌든, 지금 빈센트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단순히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 같은 부모들 잔소리가 아닙니다. 진짜로, 죽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정리한다. 일단 노끈으로 책을 전부 꽉 묶어서, "실수로라도" 정리 과정에서 읽을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수백 권의 책을 동시에 들어도, 그러다가 쏟아져도, 책이 저절로 펼쳐져 읽게 되는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정리하다가 펼쳐진 걸 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빈센트의 눈 앞에, 정말로 짙고 검은 선글라스가 생겨난다.
"...용접용으로도 쓸 수 있을 수준의 보호 고글입니다. 이렇게 되면 책의 형체만 보이고 활자는 보이지 않아서, 내용을 읽을 수 없겠죠."
오버스러운 표정에 대응하는 오버스러운 대책. 빈센트는 천연덕스럽게 여선에게 손바닥을 보인 채 묻는다.
이면도서관에 들어서자 주변을 한 번 돌아보다가 빈센트 쪽을 보며 말한다. 강산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탐사를 시작해볼까요...어디부터 살펴보죠?"
얼핏 평소처럼 활기찬 모습이지만... 이면도서관을 한 번 다녀온 후부터, 어쩐지 그 게이트에 혼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 시작한 강산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타이밍 좋게 빈센트가 해당 게이트를 살펴보고자 한다기에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었지. 빈센트가 이를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니 책을 못 읽는 건 좋은데... 어둡다. 빈센트는 어둠 속에서 손을 저어가면서 움직이다가, 쌓여있던 책더미에 발이 걸리더니 꼴사납게 넘어진다. 쿠당탕! 우르르, 퍽! 빈센트는 책 속에 파묻혀버리고, 겨우겨우 일어난 빈센트는 고글을 낀 것을 확인한 후 눈을 뜨더니 경악한다. 노끈에 매인 책들은 잘 있었지만, 아직 끈을 못 맨 책들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다.
"이런 젠장! 여선 씨, 이쪽 보지 마세요! 뇌 터지기 싫으면!"
빈센트는 책을 황급히 닫는다. 다행히도 책등이 위를 향하고 있어서 빈센트가 내용을 읽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읽었다면, 활자 하나라도 봤다면... 정신에 어떤 재해가 왔을지. 빈센트는 노끈으로 펼쳐진 책들을 전부 다 꽁꽁 묶고 나서, 고글을 벗어던진다.
빈센트는 너무나도 지식을 크게 추구한 이들의 말로를 생각하면서, 강산의 말에 공감한다. 정신질환을 질환이라 규명하기 전 전근대 시대에는, 광인들을 신의 영지를 하사받은 이들로 여겼다. 그 미친 행동은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옳은 행동이었거나, 아니면 신의 지각의 극히 일부를 받아들인 결과 그걸 처리하느라고 인간의 하찮은 지적 활동에 쓸 심력 따위는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 그리고 여기서는... 재수가 없으면 그것을 실증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사실, 기준점이 없으니 어디부터 시작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책들을 바라본다. 일단 책들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부터 시작할까.
"일단 책장을 탐사해보죠. 여기가 도서관을 자칭하는 게이트니만큼, 중요한 건 이런 책들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2 //2
"글이나 글자를 보고 그 음대로 소리 내어 말로써 나타내다. 아니면 글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알다. 그런 뜻이 있죠. 솔직히 말해 책에 있는 내용들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의 문법은커녕, 알아볼 수 있는 철자로 쓰여졌을지부터 의문이지만, 굳이 그걸 알아보려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죠."
겨우겨우 상황을 정리한 빈센트는, 그거로 되냐는 여선의 말에 한번 시도해보기로 한다. 빈센트는 눈을 감고, 책을 못 읽는 자신을 상상한다. 책을 펼치면 활자들이 전부 흩어지고, 해체되고, 끝내는 책이 검게 물들어서 지식의 한 조각이라도 찾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차단한다. 그걸 생각하면서 손가락을 튕기고 눈을 뜨자... 빈센트의 눈 앞에 있는 책들이 모두 검게 물들어서, 그걸 묶은 노끈만 겨우 보였다.
"...훨씬 낫군요."
빈센트는 다시 정리를 시작하고, 여선에게 묻는다.
"그러고보니, 여선 씨는 호기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여기서 찾고 싶은 지식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동의합니다. 평균 레벨이 108이라. 눈을 의심했습니다. 여기에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UHN이 조급해져서 벌써부터 날 솎아내려는 건가 했죠."
빈센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톤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꽤나 떨렸다. 이 미친놈들이 드디어 빈센트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본심을 숨기지도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빈센트가 그래도 개인의 목숨이 직접적으로 걸린 상황에서는 자제심의 ㅈ자라도 가질 수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빈센트는 책장을 살펴보면서, 강산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읽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강조를 해대니 모를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빈센트는 뭔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제목이 같은 책들 여러권이 책장에 꽂혀 있었고, 그 책들의 집합이 일렁이고 있었다. 빈센트는 그 책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책은... 표지에 무언가 적혀 있었다. 아니, 표지라기에는 너무 제목이 길었고(설령 빈센트가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가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가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뭔가... 이상할 정도로... 길었다. 빈센트는 자신이 읽은 게 내용 같은 표지이기를 바라며, 마도로 울창한 나뭇잎을 만들어 그것을 가려버리고, 강산에게 답한다.
"적어도 우리 세계에서 온 건 아니길 바랄 뿐이죠. 젠장, 설마 표지가 뜯겨나가서 그냥 바라만 봐도 읽게 되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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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그마저도 엔진오일 너무 넣어서 시동불량 나서 철물점 가서 수리 -> 수리 하고 가서 예초 절반은 했나싶을때 우천으로 공침 -> 밥먹으니 이시간
"듣다 보면 여선 씨는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도 책을 읽을 이유를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불로 태워도, 발로 밟아도, 막 던져도 터지지 않는 지뢰다. 하지만 그런 지뢰가 진정으로 위험한 이유는, 그저 펼쳐서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뇌를 터뜨려버리는(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건, 아니면 심각한 정신붕괴의 은유건) 괴물 같은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밭처럼 깔려있으니... 저런 농담을 들으면 유류고에서 불장난을 하고 싶어하고, 탄약고에서 슬레지해머로 대전차지뢰를 내리쳐보고 싶어서 안달난 인간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여기 있는 지식들은, 대부분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일 겁니다. 그건 보증하죠."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가 터지겠나.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다가, 알고 싶은 거 있냐는 말에 짧게, 매우 짧게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