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틀린 말은 아니네용..." 비유가 딱 맞긴 하다. 지뢰밭을 파서 지뢰를 발견하고 내가 찾았다! 라고 할 수 있어보이는 타입이라고! 그렇지만 다행히도 분별력이나 판단력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걸요~" 실제로 읽느냐. 라는 건 아니라고 하여도. 그 감정을 속일수는 없다.. 없나...? 빈센트의 답을 들은 뒤에..
"베로니카라는 분의 지식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은 제로는 아니긴 한데요.." 마도 쪽과 관련된 지식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았다는 걸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당연해서였을까요. 어쨌든 책 정리를 적절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면.. 쪽도 상당히 흥미로운 기분일지도 모르는 상황이겠지요.
강산의 표정이 굳어있다... 빈센트는 강산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건 몇번 본 적이 없다. 특히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센트는 강산도 나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다른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이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상기하면서, 찾아가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강산 씨 말이 맞기를 바랍니다. 책을 펼친 것도 아니고, 그냥 바라만 봤다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지식이 머리에 터질 정도로 들어와서 회복할 수 없는 영원한 광인으로 굴러떨어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사서를 보러 가죠."
그렇게 말하고, 빈센트는 앞장서서 나아간다. 아까 전처럼 보는 것만으로 '읽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를 책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빈센트는 최대한 앞만 보고 나아가서, 책상 몇 개가 있는 곳으로 금방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는... 쓸데없이 웅장한 괘종시계가 하나 서 있었다. 빈센트가 듣기로는 저게 사서라고 하기에, 빈센트는 손을 흔든다.
"어, 안녕하십니까?"
뎅, 뎅, 뎅-
빈센트는 저 괘종시계들이 종소리로 대화한다는 정보를 떠올렸지만, 당장 무슨 뜻인지는 떠오르지 않아 강산에게 조심스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여기는, 사람의 자제력을 시험하는 곳이라면... 정말로 쉬우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곳이리라. 딱히 지식에 관심도 없고 호기심이란 것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안 읽는다"는 그저 행동을 안 하면 그만인 이 게이트는 너무나도 쉬울 것이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을 어떻게 안 하란 말인가? 차라리 그런 말장난이 더 힘들겠지. 하지만 너무나도 간절해서 무언가의 지식을 바라거나, 너무나도 호기심이 강한 이들이라면, "절대 열지 말라"는 말을 해놓고 이 세상의 온갖 지식들이 다 있다는 전제를 달아둔 이곳은 지적 고문이나 다름없겠지. 빈센트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만큼은 그나마 전자인 게 다행이었다.
책을 이리저리 정리해가던 빈센트는, 여선의 영 의문스런 말투에 긍정한다.
"아마 베로니카 개인에 대한 평론처럼 자세한 책은 없을 겁니다. 다만 그 친구를 구원할 방법에 대한 실마리는 있을지도 모르죠. 그녀의 저주를 해주하는 방법이라던지, 그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자세한 법적 자문이라던지. 물론..."
빈센트는 이곳의 그 어떤 지식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그의 평생에 그렇게 되긴 할까? 레벨 108이면 준영웅도 아니고 영웅들이 나와야 할 곳이고, 빈센트는 최근 자신의 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절대 그들의 수준에 다다를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을 노리면 안 된다. 특히 거기에 가족이 걸려 있다면.
간만에게 새로운 이용객, 이면의 세계임을 유의하라. 빈센트는 강산 뒤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는다. 아무래도 강산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니, 강산마저도 빈센트의 환각이 아닌 이상... 빈센트가 미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빈센트는 이면이라는 말에,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왠지 끔찍한 의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손가락을 두둑두둑 푼다. 그리고, 강산이 대화를 끝나면, 곧이어 질문했을 것이다.
"혹시 '이면'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 말 그대로입니다. 세상의 '다른 면'이지요. 완벽한 이해를 원하신다면, 애석하게도 짧은 시간 내에, 귀하의 정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부하만을 가해서, 전달드리는 것은 어려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군요. 음.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뭐긴 뭐야. 더럽게 위험하다는 뜻이지! 빈센트는 한숨을 쉬고, 강산을 돌아본다.
"아무래도 이 세계가 우리를 받아들여서 그렇지... 위험해지려면 얼마든지 위험해질 수 있는 느낌입니다."
빈센트는 노끈으로 꽉 묶은 후, 책을 하나하나 꽂아넣는다. 노끈으로 묶는 절차 때문에 상당히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실수로 책을 열어서 순식간에 인간세상 하직하는 일은 막을 수 있으니. 어디서나 배운 이야기가 "안전 제일"이었고, 빈센트는 거기에 동의했다. 어쩌면 여기서 베로니카를 구할 정보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모르지만... 고작 '그럴지도 모를' 일 때문에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다.
"후. 거의 다 끝났군요."
어느새 책을 거의 다 정리했고, 빈센트는 여선을 보면서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죠. 수고하셨습니다. 정리하시느라고. 그리고 참느라고." //19 막레 부탁드려요
"일단 더 둘러보는 게 좋겠군요. 여기 앉아있으면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일이 안 되겠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궤'종시계는 어느 순간 자신이 매달려있는 '궤'도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다가, 속도가 붙더니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리고 빈센트는... 이제는 미술관...으로 추정되는 곳 앞에 섰다. 정확히는 미술관이 아니라, 표지가 그림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책들이 박혀 있었다. 빈센트는 그림들을 슬쩍 훑어본다. 어떤 책은 정말로 평범하고 온화하고 목가적인 농장 풍경이었고, 어떤 것은 한 사람을 그려놓았다. 빈센트는 그걸 보다가, 어깨를 으쓱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미술관... 같은 책장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안으로 들어간다. 책들은 그냥 평범했다. 목가적인 농장 풍경이 표지 그림으로 되어있는 책은 <호밀밭의 아낙네들>이라는 글이 붙어있었고, 개 세 마리가 앉아있는 그림은 <케르베로스>라는 귀여운 개에 비해 참 무거운 단어가 붙어있었으며... 빈센트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여기는... 아마도... 별 일이 없는 걸까요?"
...빈센트 뒤의 소금 장수를 그려놓은 표지에서... 소금 장수가 소금에 절어 퉁퉁 부은 몸을 뻗어 빈센트를 조용히 습격하려고 하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