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눈을 보고 공포를 느낀다. 저런 표정까지 짓는다고 빈센트의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의미로 공포감이 들었을 뿐이다.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로 간절한 것인가, 그렇게나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은 것인가. 봤다가는 뇌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그 수많은 경고를 무시한 채? 어쩌면 빈센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띠지는 괜찮겠지, 속지는 괜찮겠지, 목차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읽어버리고, 그로 인해 빈센트까ㅣ지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남이 그 꼴 나는 건 보더라도 자기가 그 꼴 나는 건 싫지 않습니까. 그럼 안 보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빈센트는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엄금할지 궁금하긴 했다. 궁금만 했지만. 어쨌든, 지금 빈센트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단순히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 같은 부모들 잔소리가 아닙니다. 진짜로, 죽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정리한다. 일단 노끈으로 책을 전부 꽉 묶어서, "실수로라도" 정리 과정에서 읽을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수백 권의 책을 동시에 들어도, 그러다가 쏟아져도, 책이 저절로 펼쳐져 읽게 되는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정리하다가 펼쳐진 걸 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빈센트의 눈 앞에, 정말로 짙고 검은 선글라스가 생겨난다.
"...용접용으로도 쓸 수 있을 수준의 보호 고글입니다. 이렇게 되면 책의 형체만 보이고 활자는 보이지 않아서, 내용을 읽을 수 없겠죠."
오버스러운 표정에 대응하는 오버스러운 대책. 빈센트는 천연덕스럽게 여선에게 손바닥을 보인 채 묻는다.
이면도서관에 들어서자 주변을 한 번 돌아보다가 빈센트 쪽을 보며 말한다. 강산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탐사를 시작해볼까요...어디부터 살펴보죠?"
얼핏 평소처럼 활기찬 모습이지만... 이면도서관을 한 번 다녀온 후부터, 어쩐지 그 게이트에 혼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 시작한 강산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타이밍 좋게 빈센트가 해당 게이트를 살펴보고자 한다기에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었지. 빈센트가 이를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니 책을 못 읽는 건 좋은데... 어둡다. 빈센트는 어둠 속에서 손을 저어가면서 움직이다가, 쌓여있던 책더미에 발이 걸리더니 꼴사납게 넘어진다. 쿠당탕! 우르르, 퍽! 빈센트는 책 속에 파묻혀버리고, 겨우겨우 일어난 빈센트는 고글을 낀 것을 확인한 후 눈을 뜨더니 경악한다. 노끈에 매인 책들은 잘 있었지만, 아직 끈을 못 맨 책들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다.
"이런 젠장! 여선 씨, 이쪽 보지 마세요! 뇌 터지기 싫으면!"
빈센트는 책을 황급히 닫는다. 다행히도 책등이 위를 향하고 있어서 빈센트가 내용을 읽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읽었다면, 활자 하나라도 봤다면... 정신에 어떤 재해가 왔을지. 빈센트는 노끈으로 펼쳐진 책들을 전부 다 꽁꽁 묶고 나서, 고글을 벗어던진다.
빈센트는 너무나도 지식을 크게 추구한 이들의 말로를 생각하면서, 강산의 말에 공감한다. 정신질환을 질환이라 규명하기 전 전근대 시대에는, 광인들을 신의 영지를 하사받은 이들로 여겼다. 그 미친 행동은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옳은 행동이었거나, 아니면 신의 지각의 극히 일부를 받아들인 결과 그걸 처리하느라고 인간의 하찮은 지적 활동에 쓸 심력 따위는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 그리고 여기서는... 재수가 없으면 그것을 실증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사실, 기준점이 없으니 어디부터 시작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책들을 바라본다. 일단 책들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부터 시작할까.
"일단 책장을 탐사해보죠. 여기가 도서관을 자칭하는 게이트니만큼, 중요한 건 이런 책들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2 //2
"글이나 글자를 보고 그 음대로 소리 내어 말로써 나타내다. 아니면 글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알다. 그런 뜻이 있죠. 솔직히 말해 책에 있는 내용들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의 문법은커녕, 알아볼 수 있는 철자로 쓰여졌을지부터 의문이지만, 굳이 그걸 알아보려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죠."
겨우겨우 상황을 정리한 빈센트는, 그거로 되냐는 여선의 말에 한번 시도해보기로 한다. 빈센트는 눈을 감고, 책을 못 읽는 자신을 상상한다. 책을 펼치면 활자들이 전부 흩어지고, 해체되고, 끝내는 책이 검게 물들어서 지식의 한 조각이라도 찾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차단한다. 그걸 생각하면서 손가락을 튕기고 눈을 뜨자... 빈센트의 눈 앞에 있는 책들이 모두 검게 물들어서, 그걸 묶은 노끈만 겨우 보였다.
"...훨씬 낫군요."
빈센트는 다시 정리를 시작하고, 여선에게 묻는다.
"그러고보니, 여선 씨는 호기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여기서 찾고 싶은 지식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동의합니다. 평균 레벨이 108이라. 눈을 의심했습니다. 여기에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UHN이 조급해져서 벌써부터 날 솎아내려는 건가 했죠."
빈센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톤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꽤나 떨렸다. 이 미친놈들이 드디어 빈센트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본심을 숨기지도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빈센트가 그래도 개인의 목숨이 직접적으로 걸린 상황에서는 자제심의 ㅈ자라도 가질 수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빈센트는 책장을 살펴보면서, 강산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읽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강조를 해대니 모를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빈센트는 뭔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제목이 같은 책들 여러권이 책장에 꽂혀 있었고, 그 책들의 집합이 일렁이고 있었다. 빈센트는 그 책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책은... 표지에 무언가 적혀 있었다. 아니, 표지라기에는 너무 제목이 길었고(설령 빈센트가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가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가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뭔가... 이상할 정도로... 길었다. 빈센트는 자신이 읽은 게 내용 같은 표지이기를 바라며, 마도로 울창한 나뭇잎을 만들어 그것을 가려버리고, 강산에게 답한다.
"적어도 우리 세계에서 온 건 아니길 바랄 뿐이죠. 젠장, 설마 표지가 뜯겨나가서 그냥 바라만 봐도 읽게 되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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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그마저도 엔진오일 너무 넣어서 시동불량 나서 철물점 가서 수리 -> 수리 하고 가서 예초 절반은 했나싶을때 우천으로 공침 -> 밥먹으니 이시간
"듣다 보면 여선 씨는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도 책을 읽을 이유를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불로 태워도, 발로 밟아도, 막 던져도 터지지 않는 지뢰다. 하지만 그런 지뢰가 진정으로 위험한 이유는, 그저 펼쳐서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뇌를 터뜨려버리는(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건, 아니면 심각한 정신붕괴의 은유건) 괴물 같은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밭처럼 깔려있으니... 저런 농담을 들으면 유류고에서 불장난을 하고 싶어하고, 탄약고에서 슬레지해머로 대전차지뢰를 내리쳐보고 싶어서 안달난 인간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여기 있는 지식들은, 대부분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일 겁니다. 그건 보증하죠."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가 터지겠나.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다가, 알고 싶은 거 있냐는 말에 짧게, 매우 짧게 답한다.
"음~ 틀린 말은 아니네용..." 비유가 딱 맞긴 하다. 지뢰밭을 파서 지뢰를 발견하고 내가 찾았다! 라고 할 수 있어보이는 타입이라고! 그렇지만 다행히도 분별력이나 판단력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걸요~" 실제로 읽느냐. 라는 건 아니라고 하여도. 그 감정을 속일수는 없다.. 없나...? 빈센트의 답을 들은 뒤에..
"베로니카라는 분의 지식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은 제로는 아니긴 한데요.." 마도 쪽과 관련된 지식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았다는 걸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당연해서였을까요. 어쨌든 책 정리를 적절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면.. 쪽도 상당히 흥미로운 기분일지도 모르는 상황이겠지요.
강산의 표정이 굳어있다... 빈센트는 강산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건 몇번 본 적이 없다. 특히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센트는 강산도 나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다른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이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상기하면서, 찾아가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강산 씨 말이 맞기를 바랍니다. 책을 펼친 것도 아니고, 그냥 바라만 봤다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지식이 머리에 터질 정도로 들어와서 회복할 수 없는 영원한 광인으로 굴러떨어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사서를 보러 가죠."
그렇게 말하고, 빈센트는 앞장서서 나아간다. 아까 전처럼 보는 것만으로 '읽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를 책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빈센트는 최대한 앞만 보고 나아가서, 책상 몇 개가 있는 곳으로 금방 나온다. 그리고 그곳에는... 쓸데없이 웅장한 괘종시계가 하나 서 있었다. 빈센트가 듣기로는 저게 사서라고 하기에, 빈센트는 손을 흔든다.
"어, 안녕하십니까?"
뎅, 뎅, 뎅-
빈센트는 저 괘종시계들이 종소리로 대화한다는 정보를 떠올렸지만, 당장 무슨 뜻인지는 떠오르지 않아 강산에게 조심스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여기는, 사람의 자제력을 시험하는 곳이라면... 정말로 쉬우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곳이리라. 딱히 지식에 관심도 없고 호기심이란 것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안 읽는다"는 그저 행동을 안 하면 그만인 이 게이트는 너무나도 쉬울 것이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을 어떻게 안 하란 말인가? 차라리 그런 말장난이 더 힘들겠지. 하지만 너무나도 간절해서 무언가의 지식을 바라거나, 너무나도 호기심이 강한 이들이라면, "절대 열지 말라"는 말을 해놓고 이 세상의 온갖 지식들이 다 있다는 전제를 달아둔 이곳은 지적 고문이나 다름없겠지. 빈센트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만큼은 그나마 전자인 게 다행이었다.
책을 이리저리 정리해가던 빈센트는, 여선의 영 의문스런 말투에 긍정한다.
"아마 베로니카 개인에 대한 평론처럼 자세한 책은 없을 겁니다. 다만 그 친구를 구원할 방법에 대한 실마리는 있을지도 모르죠. 그녀의 저주를 해주하는 방법이라던지, 그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자세한 법적 자문이라던지. 물론..."
빈센트는 이곳의 그 어떤 지식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그의 평생에 그렇게 되긴 할까? 레벨 108이면 준영웅도 아니고 영웅들이 나와야 할 곳이고, 빈센트는 최근 자신의 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절대 그들의 수준에 다다를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을 노리면 안 된다. 특히 거기에 가족이 걸려 있다면.
간만에게 새로운 이용객, 이면의 세계임을 유의하라. 빈센트는 강산 뒤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는다. 아무래도 강산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니, 강산마저도 빈센트의 환각이 아닌 이상... 빈센트가 미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빈센트는 이면이라는 말에,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왠지 끔찍한 의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손가락을 두둑두둑 푼다. 그리고, 강산이 대화를 끝나면, 곧이어 질문했을 것이다.
"혹시 '이면'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 말 그대로입니다. 세상의 '다른 면'이지요. 완벽한 이해를 원하신다면, 애석하게도 짧은 시간 내에, 귀하의 정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부하만을 가해서, 전달드리는 것은 어려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군요. 음.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뭐긴 뭐야. 더럽게 위험하다는 뜻이지! 빈센트는 한숨을 쉬고, 강산을 돌아본다.
"아무래도 이 세계가 우리를 받아들여서 그렇지... 위험해지려면 얼마든지 위험해질 수 있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