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떨어지는 소리, 근방에서 느껴지는 예기.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회는 공격이 닿았더라면 단명했겠거니 깨달을 수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이라는 사실이 피부에 극명하게, 따끔하게 다가온다. 미쳤구나. 정녕 난세요 전란의 혈운 드리웠다 해도 어찌 정신을 놓고 학생을 공격하고, 그걸 사감이란 것들은 방관해.
"……."
기시감. 기억이 떠오른다. 그 느낌이, 순간이…… 아회 주변 눈치를 보듯 슬쩍 고개 돌리다 그대로 치켜 올린다. 안타깝다는 듯 혀 기묘하게 찬다. 말 안 듣는 짐승 때려 교육시키는 건 옛적 악습으로 끝내야 하거늘…….
"그걸 학생한테 시켜……."
아회 그대로 부적 태운다. 일단 가둬보실까. 얼음으로 된 창살로 주위를 에워싸면 더 좋겠다.
칼을 놓아버렸으니 피를 볼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마냥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가는 걸까? 점차 부적 뭉치가 얇아지기 시작한다. 부적을 전부 써버리기 전에 끝내거나. 아니면 추가로 육탄전을 벌인다거나. 그도 아니면 부적 리필을 핑계삼아 그 분께서 명하신 물건을 찾으러 갈 수도 있겠다.
"일부라.."
하 사감이... 음. 하 사감이었던 것이 꺼내는 이야기는 퍽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검을 보고 자신의 일부라 칭하지 않나. 원초부터 인간들에게 공포스러운 존재였다고 하질 않나. 생각해보면 참 재밌지. 원초부터 공포스러웠던 존재여야 하는 것은 오직 그 분 뿐이어야 하는 것을. 가현은 입꼬리를 슥 올린다. 음. 슬슬 심기가 조금 건드려지는데. 제대로 진압해볼까. 사감의 눈으로 부적을 날려, 폭발을 일으켜버리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하 사감에게 발길질을 할 적까지만 해도 온화 정신 온전했다. 사방에 피 널려있으나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손에 검 쥔 순간. 코등이의 늑대 얼굴 딱딱대는 것 본 순간. 눈 앞이 아찔해졌다. 동시에 그 때까지 무시할 수 있었던 피의 내음이 콧속에 박혀들었다.
아지랑이마냥 아른거리는 살육의 전경. 밤의 하늘. 그 가운데 휘영청 떠오른- 잊을 수 없는 그 맛 온화 고개 툭 떨어졌다. 안경이 찰랑이며 내려졌다. 서서히 어깨 들썩이고 킬킬대는 웃음소리 흘렀다.
"...이를 어쩌나. 싫소만?"
돌려달라 으르렁거리는 하 사감의 말에 대꾸하는 온화 목소리 평온했으나 어딘가 불온하다. 숙인 고개를 난잡한 머리칼이 가려 표정 보이지 않으나 기이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그 사이 송곳니가 선명하다. 하 사감이 발톱을 휘둘렀으나 그것 보지도 않고 흐늘거리며 피했다. 피하기만 했을 뿐일까. 겁도 없이 하 사감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검 아래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가차없이 하 사감의 전면으로 휘두른다.
원래로 되돌리지 못하는 당신을 적대할 수밖에 없음과,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에 연은 더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몇 방울의 눈물은 넘쳐흐르며, 물줄기가 된다.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자신이 다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인데. 연은 제 절망적인 마음을 번개로 다시 당신을 내리치려 한다.
떨어뜨린 검을 적룡의 소녀가 가져가자 자신의 일부라며 소리치는 사감을 보며 그는 검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봐선 잘 모르겠으나 저 사감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별로 좋지 않은게 아닌가 싶었지만 여러 곳을 신경 쓰기엔 눈 앞의 사감이 너무 부담스러웠기에 다시 신경을 집중하며 말했다.
" 인간을 죽이려면 죽임 당하는 것도 생각하셨어야지요. "
공포스러운 존재라 한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인간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꿈틀은 지렁이와 다르게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을 정도라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부적을 던졌다. 아까처럼 대기를 찢어서 열상을 유도한다.
바로 눈 앞에서 하 사감이 베였다. 그 사이로 푸른 피 흐른다. 벌어진 살갗마냥 벌이진 입술 사이로 히- 가는 환히 새었다.
검의 날이 살갗 베는 감촉은 한 번 알게 되면 다신 잊을 수 없다. 딱딱한 나무토막 치는 것, 다 죽어가는 요괴 목 찌르는 것, 그 까짓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살아 숨 쉬는, 맥이 뛰고 피가 도는 것을 베어야만 비로소 숨이 트인다. 이미 알아버린 것 돌이킬 수 없어.
온화 제 손에 들린 검 떨기 시작하자 나긋하게 토닥였다. 쉬이. 착하지. 네 바라는 것 들어줄 테니 채근하지 말렴. 네 바라는 대로 내 움직여줄 테니 자, 역린이면 역린답게-
"아, 어딜 가시어요? 저와 놀아주셔야지요."
사근사근 읊조린 것과 달리 땅을 거칠게 박차며 하 사감의 뒤를 쫓는다. 누군가를 향해 달려드는 하 사감의 뒤로 바짝 접근해 등 뒤에서부터 검을 찔러넣는다. 급박한 움직임에 흘러내렸던 머리카락 일순 걷히며, 환히 웃고 있는 온화 얼굴 드러났다.
그의 외침에 윤하는 작게 중얼거리고서는 사감이었던 것을 노려보았다. 인간의 본성을 짓누르는 것은 압도적인 강함뿐이다. 그것에 조금의 틈이라도 보인다면 그 본성은 스멀스멀 고개를 다시금 들 것이니. 인간의 시대가 온 것을 원망하라며 그는 부적을 다시 손에 쥐었다. 허나 상대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본 그는 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부적을 던졌다.
" 이번에 다치는건 좀 더 아플 것 같습니다? "
부적은 땅바닥에 꽂혀 사각형의 바위기둥을 만들어내려 했다. 뚫릴 것 같긴 하지만 그 사이에 사선에서 피하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