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쑨쉬항은 거리를 둔 채로 몸상태를 확인합니다. 분명 아까의 일격은 충분한 힘을 가한 공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리한 흔적이기도 합니다. 몸을 녹진히 녹여오는 듯한 망념의 느낌. 사실 감은 잡힙니다. 앞으로 잠시 후면 자신은 더이상 전투를 이어갈 수 없을 거라고요. 곧 그는 현실을 직시하듯, 주위를 둘러봅니다.
마치 평생의 적을 상대하듯 싸우는 녀석. 어쩐지 건들거리지만 밉지만은 않은 녀석. 무언가에 혼신으로, 싸우려 드는 녀석.
쑨쉬항은 주먹을 바라봅니다. 저립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어색한 것은 떨림입니다. 분명 죽일 각오로 휘두른 것임에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분명 피가 터지는 듯한 모양새가 있었음에도 다시금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왜 싸워야 하지? 왜 싸워야만 하지? 그냥, 그냥 도망치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이어지려할 때.
알렌은 검을 붙잡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떤 것만이 방법일지. 주위의 소리들도 들려오지 않고 동료들의 말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단지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기억입니다.
온 힘을 다해 베어냈을 때. 알렌이 느낀 것은 안도였습니다. 카티야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감정, 그리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은 채. 한 번은 해냈다는 감정. 그러나 그 감정이 바닥에 쳐박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떨어진 목을 붙잡고 다시금 맞춰내던 전쟁스피커의 모습이.
네. 아직도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떨치듯 알렌은 검을 붙잡습니다. 뜨겁게 검이 달아오릅니다.
툭, 걸음을 딛습니다.
이바노 크로보푸스코프 제 일형.
캉, 한 번의 공격이 막혔지만 튕겨낸 검의 궤도를 비틉니다. 캉, 캉,
촤학!!!
" 이런!!! "
희열에 찬 전쟁스피커의 웃음이 들리지만, 거기까지 신경이 닿지 않습니다. 기합소리와 함께 치솟은 검이 전쟁스피커의 팔을 향해 내려쳐집니다.
서걱. 푸화아아아악!!!!!!!!!
피가 터져나오고 곧 전쟁스피커가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콰직.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듯 도끼가 알렌을 쳐 밀어냅니다.
꿀꺽. 음료를 삼킴과 동시에 피가 멈추는 것을 보며 토고는 생각해봅니다. 이정도면 도기 목을 짤짤 흔들어서라도 한 몇개 받아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 농담과 달리 차가운 냉기가 도는 탄을, 고르돈의 탄실에 장전하고.
탕!!!
쏴냅니다. 한쪽 다리를 관통한 탄환은 그 부위를 중심으로 냉기를 퍼트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도영의 화살이 전쟁스피커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듭니다.
푸확!!!!!!!
" ... 하. "
그는.. 웃습니다. 고통이 느껴질 것이 분명함에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었을 피해를 몇 번이나 겪었음에도, 몇 번의 피해에는 마땅히 죽음을 맞았음에도.
"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
그는 광소를 터트립니다!
" 그래요. 이겁니다. 내가 기꺼이 바랐던, 내가 감히 원했던 전투! 목숨이 경각에 들고, 피가 말리는 전투가 이어지길 바랐던. 그, 그!! 그런 전쟁이 여기에 있습니다!!!!!! "
곧, 허공에 수 개의 총이 떠오릅니다.
" 선물입니다! 부디, 기뻐하시길!!!!!!!!! "
이제 곧 총구가 불을 뿜으며 총탄을 뱉어낼 겁니다.
준혁은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 순간에도 준혁의 머릿속에는 승리를 가늠해보지만.. 우습게도 패배 외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얼핏 팽팽해보이지만 전투가 조금씩 길어질수록, 아군은 지쳐가겠지만 전쟁스피커는 지치지 않고 전투를 이어갈테니까요.
체인저가 필요합니다. 이 판을 뒤집을 만한, 게임 체인저가.
토고의 화력은 강대하지만, 수에서는 부족한 면이 보입니다. 알렌은 분노에 휩쓸려 망념을 끌어쓰는 모습이 선명히 눈에 보입니다. 쑨쉬항은 점점, 공포에 빠져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도영은... 믿음직하지만, 이 판을 뒤엎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내게 조금만 능력이 있었더라면. 내게 조금만 더, 뛰어남이 있었더라면.
태호, 웨이, 명진. 지나가는 이름들에서 떠오르는 것은 뛰어났던 이들의 기억입니다. 그들만큼의 전투력이 있었더라면. 그들만큼의 재능이 있었더라면 달랐을까?
그런 생각.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사실을 말해봅시다. 언제나 준혁이 생각하던 위치는 뒤였습니다. 후방에서 고고히, 때론 치열하게 앞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앞에 나서지 않더라도 뒤를 지켜줄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뒤에서 앞에 선 이들을 위한 작전과 계획만을 세우면 충분했던 겁니다. 그러나 앞에 선 지금에 있어서 재능을 떠올릴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주머니를 뒤져 별의 기도를 꺼냅니다. 이런 것에 기대지 않고 당당히 해내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그러지 않는다면 지금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딴 생각은 사치가 될 뿐입니다.
빠득.
별의 기도가 산산히 부숴지며, 그 힘이 준혁의 의념을 자극합니다. 폭발적입니다. 그리고, 기묘한 감각입니다. 레벨이 증가할 때의 감각. 그 감각을 아주 빠르게 휘감는 것 같은 감각 말입니다. 그래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만한 힘이 온 몸에 느껴집니다.
핫,
준혁은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이 찰나에도 이만한 생각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하얀 도화지 한 장이 주어진 느낌입니다. 이것을 자유롭게 써내어도 좋다. 그 어떤 것을 완성하든 그것은 너의 선택이 될 것이다. 라고..
툭.
단 한 걸음을 내걷는 것 같지만 이미 수 미터의 거리를 움직인 채입니다. 전쟁스피커의 총탄들이 빠르게 날아듭니다.
... 지독히 느립니다.
비늘을 쥐고 날아드는 궤적을 향해 준혁은 창을 뻗어봅니다. 툭, 툭, 툭,
카가가가가가강!!!!!!!!!!!!!!
수십 발의 연발된 총탄을 쳐내면서 준혁이 느낀 것은 지독한 고양감입니다. 형, 재석이 보는 세계는. 아버지, 현중석이 본 세계는 이런 세계라니. 재능이란 것이 얼마나 치사하고 불편한 것인지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의 세계에서 벗어나십시오. 단순히 맞추고, 공격한다는 세계에서 벗어나십시오. 또한, 선의 세계에서도 벗어나야만 합니다. 방향을 가지고 공격하고 수단을 가져 방어하는 세계에서도 벗어나야만 합니다. 치고, 박는 세계를 넘고 잇고 닿는 세계에서 벗어나십시오. 모든 흐름을 잇고 닿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면의 세계에 눈이 닿으신 기분은 어떠십니까? 얼마나 전투가 갑갑한 굴레인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점과 면의 세계에서 벗어나 흐름을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경지. 이어 말하자면, 그것이 가능하기에 초인의 경지라 할 수 있는 곳.
지금, 현준혁의 레벨은. 50.
누구에게나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가디언 급'의 전력입니다!
수없이 날아드는 총탄을 모두 쳐내고 준혁은 창을 전쟁 스피커의 머리에 처박습니다. 그 표정이 바뀌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마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푸확!!!!
풍선을 터트린 듯, 피가 터져오릅니다.
지금까지의 움직임이 무의미할 정도로, 강력한 가속입니다! 그리고, 가디언이라는 존재의 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온 몸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습니다!!!
허나, 이 시간이 유지되는 것은 이제부터 단 4턴. 그 뒤면 현준혁은 잠시동안 전투에서 이탈해야만 합니다!
머리 없는 팔이 창을 붙잡고, 씩 웃습니다. 곧 그 머리가 천천히 재생되어갑니다.
" 아아, 그렇군요. 수를 숨기고 있었군요. 미안합니다. 그대는.. 나와 닮지 않았군요. "
곧 준혁은 가속으로 거리를 두면서 호흡을 골라봅니다. 이 모든 행동이 단 한 번의 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란 점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 나는, 지금, 너무나 즐겁습니다!!! "
광기에 번뜩이는 전쟁스피커가 웃음과 함께 손을 뻗습니다. 수많은 피가 흘러들며 그를 끌어안습니다.
쾅!!!!
거대한 한 자루의 도끼를 만들어 들어올린 전쟁스피커는, 무언가를 각오한 듯 눈빛을 바꿉니다. 마치 즐기는 듯한 모습이 천천히 지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