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제 마도로 베어버리거나, 정 안 되면 땅을 한번 갈아엎은 다음에 다시 다지면 됩니다. 신사가 금방 쓰러질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으니, 먼지도 제 마도로 바람을 불어서 때울 수 있겠군요. 그런데... 성체는 확실히."
이건 종교 시설이다. 빈센트는 종교인들만큼 별 걸 다 따지는 사람도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따진다는 별것이 그들에게는 "별것"이 아님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빈센트는 물어보자는 여선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그것도 알아두기로 합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이한 기운이 느껴져, 빈센트는 전투 준비를 하고 뒤돌았다. 그리고...
"이게 뭐지?"
사모예드 수준으로 큰 여우가 앉은 채로, 입에 무언가를 문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 봐도 상당히 중요해보이는 위패며, 신줏단지며... 빈센트는 혹시 그런 상황인가 해서 여선에게 말한다.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여우를 바라본다. 여우는 사뿐사뿐 다가와 신사 앞에 위패를 내려두고, 신사 상태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신음소리를 내다가, 바로 돌아서 빈센트와 여선 쪽으로 쪼그려 앉았다. 빈센트는 여우의 표정을 읽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여우가 지금 신사의 상태에 상당히 불만이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풀이 잔득 자란 땅을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잔디밭이었는데, 잡초가 점령한 것으로 보였다. 빈센트는 특정한 식물만 자라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땅을 싹 다 갈아엎어야 할 것 같아서 손을 뻗어 마도를 시동했다. 빈센트. 너는 거대한 폭발로 건물 하나도 해먹으려면 해먹는 놈이다. 고작 이런 땅을 어찌 못할까.
"갈려라. 갈려라."
빈센트의 말에 잡초가 자란 풀밭이 이리저리 뒤집어지고, 잠들어 있던 땅이 강제로 햇빛을 보았다. 그리고 빈센트는 흙덩이를 마구마구 흔들어서 뿌리가 드러나게 하고, 잡초들을 갈퀴로 긁어서 옆으로 치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여우가 캥캥거리며 놀라긴 했지만 빈센트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신사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
"후. 됐고."
빈센트는 밭갈이가 끝나자,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그 땅에 자라나는 잔디를 상상했다. 그러자, 잔디들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빈센트는 여선 쪽을 바라보았다. 여선도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9
먼지를 닦는다기보다는, 뜯는 것에 더 가까운 느낌의 노동이었다. 어떤 먼지는 너무 두꺼워서, 순간 빈센트는 여선이 먼지가 아니라 나무판자를 통째로 뜯었나 의심할 정도였다. 어쨌든 일을 하고 있는데, 먼지들을 태운다는 말에, 여우 쪽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여우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빈센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분명 저 여우건 이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건 둘 중 하나는 화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진정하시죠."
그리고 빈센트는 자신이 그것을 말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수학여행을 하던 중에 몬스터를 만나서 화력을 퍼부었다가 기록적인 산불의 원인 제공을 한 이야기, 그냥 생각없이 마도 연습을 하다가 1ha 정도의 산을 태워먹은 이야기, 빈센트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말했다.
"다 아는 사람 이야기입니디만... 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 사고칠 생각 없었습니다. 힘드신 건 알겠지만, 차라리 물을 쏴서 불리는 것 같은 더 온건한 방법을 알아보죠. 어떠십니까?" //11
거짓말은 아니었다. 빈센트 역시 빈센트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빈센트의 이야기도 "아는 사람 이야기"라 할 수 있었겠지. 말하면 말할수록 빈센트는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미친 인간이었는가 통감하면서, 신사 옆에 놓여있던 양동이에 물의 마도로 물을 잔뜩 채워주었다. 그러고 나서, 빈센트는 아까 전에 마도로 갈아엎은 밭을 보았다. 잔디가 다시 자라난 건 좋은데... 너무 자라서 깨끗하게 잘라놔야 할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저는 이 잔디들을 보기 좋게 깎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손 씻는 물 나오는 샘도 좀 봐야 할 것 같고요. 저 물로 좀 먼지를 불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빈센트가 생각하기로, 목조 건물에 대책없이 물을 쐈다가 건조가 안 되면... 오히려 더 썩을 위험이 있었으니.
"쓰레기통이 있다면 거기에 버리는 게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세상은 아직 비닐 봉지 같은 게 없는 것 같군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설의 다른 부분들을 본다. 빨간색 도리이는 먼지만 좀 불어줬더니 그새 제 색깔을 되찾았고, 손을 씻을 물이 나와야 할 샘물은... 그냥 물길을 가로막은 돌을 들고, 흙이 쌓인 부분을 좀 손으로 들어내주니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빈센트는 그 물에 고전압 전류를 쏴서 혹시 모를 잡균을 전부 튀겨버렸다.(실제로 효과 있는 방법) 이 세상에서 '신성'의 관점에서 깨끗한 물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빈센트는 지구 세계의 관점에서 "깨끗한"(세균수 기준치 이하) 물을 만들어서 이 신사에 봉헌해볼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여선이 곡소리를 내면, 빈센트는 그렇게 말했으리라.
"여기 있는 여우동자님이 만족하실 때까지요. 응?"
그리고, 불만이 있다는 듯 표정이 꿍하던 여우는, 여선과 빈센트의 노력으로 깨끗해진 신사를 보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위패와 신줏단지를 물고, 신사 안으로 들어가서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옆에 당당하게 앉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와서 기원을 하라는 듯 턱짓을 하는 것이었다.
죽기 싫어도 의사가 말한대로 먹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먹었을때 의사를 탓하면 곤란하니 처방전을 확실하게 쓰려 합니다.
"알겠슈..." 단약을 받아서 나가는 환자. 그리고는 잠깐 쉬는 시간이 있다가.. 환자가 한두명씩 계속 들어옵니다... 다리를 삔 사람이라던가. 낫에 베인 거라던가.. 같은 사람들을 계속 치료하는 여선과 불명입니다. 불명이 붕대를 건네주거나. 약재들을 분류하는 것도 있었을까요?
빈센트는 능청스레 이야기하면서, 기원을 무엇을 빌까 생각한다. 빈센트가 원하는 것? 음. 그냥 뭐...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제된 면책권도 복구되고, 평가도 정상궤도로 복구하고, 베로니카도... 베로니카도... 베로니카... 베로니카. 빈센트는 눈을 크게 뜨더니, 뭔가 할 말이 생겨서 신사 앞에 선다.
"중요한 사람의 신변을 위해 빌어야겠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양 손을 모아 합장한다. 그리고 여선이 옆에 서길 기다릴 것이다. //17
빈센트는 정말로 완벽하게 부서진 유하의 뿔을 보고 고개를 젓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꼴이 났으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기에 저걸 붙일 생각도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빈센트가 기억하는 평소의 유하가 맞다면, 그녀는 그 뿔을 붙이려고 본드라도 구할 사람이었는데도!) 어쨌든 빈센트는 유하에게 아주 큰 일이 있었음은 알 수 있었다. 그게 정신적으로 큰 일인지, 신체적으로 큰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하면서, 여우 가면을 쓴 여자와 유하가 말하는 것을 바라본다. 여우 여자는 유하의 이야기를 듣더니, 정답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 좀 위험한 이야기들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