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 언덕에 위치한 신사로 향했다. 이번 의뢰는, 빈센트 같은 의념 각성자라면 으레 수주할법한 살인, 파괴, 전투 의뢰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 빈센트가 마을에서 주민들을 (그들의 표현을 빌려) 신묘한 요술로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벚꽃난성에서 관의 일을 맡아보던 관리가 듣고는, 마침 인력이 태부족하여 방치하고 있는 신사에 가서 깨끗이 청소해달라는 의뢰를 발주한 것이다.
"이런 의뢰부터 시작해서..."
...내 피로 물든 이미지도 조금씩 청소해가자. 빈센트는 그런 마음으로 신사에 섰다. 도리이 너머에 보이는 신사는... 수 년간 방치된 것치곤 상태가 괜찮았지만, 어디까지나 "수 년간 방치된 것치곤"이었다. 빈센트는 오늘도 청소할 것이 늘었다고 생각하면서, 옆을 바라본다.
"우리에게 이런 의뢰를 왜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목숨 걸 일은 없어서 좋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1 빈센트주라는 남자 선레 누가 쓰냐고 할때 이미 선레를 써버리는 남자
목숨 걸 일이야 당연히 없다. 헌터는 원래 일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지만, 그게 헌터가 직업 활동을 위해 영위하는 모든 활동(집에 들어가서 자기, 방청소하고, 먹고 자고 싸기, 그 외 기타등등)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니. 그리고, 이 신사에서는, 왠지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갑자기 신사가 폭삭 무너지거나 하지 않는다면요. 그리고..."
빈센트는 여선이 신사의 기둥을 톡 건드리는 것을 본다. 아마 별 일 없을 거다. 저 정도로 폭삭 무너질 곳이었으면 이미 무너졌을 테니.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까이 가서 기둥과 주춧돌을 살펴본다. 기둥은 좀이 약간 슬었고 주춧돌은 이끼가 덮였지만, 이 정도로 건물을 아예 무너뜨리기에 몇 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빈센트는 그걸 살펴보고 이야기한다.
"일단 전체적으로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재료나 공구가 뭘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3
"풀은 제 마도로 베어버리거나, 정 안 되면 땅을 한번 갈아엎은 다음에 다시 다지면 됩니다. 신사가 금방 쓰러질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으니, 먼지도 제 마도로 바람을 불어서 때울 수 있겠군요. 그런데... 성체는 확실히."
이건 종교 시설이다. 빈센트는 종교인들만큼 별 걸 다 따지는 사람도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따진다는 별것이 그들에게는 "별것"이 아님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빈센트는 물어보자는 여선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그것도 알아두기로 합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이한 기운이 느껴져, 빈센트는 전투 준비를 하고 뒤돌았다. 그리고...
"이게 뭐지?"
사모예드 수준으로 큰 여우가 앉은 채로, 입에 무언가를 문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 봐도 상당히 중요해보이는 위패며, 신줏단지며... 빈센트는 혹시 그런 상황인가 해서 여선에게 말한다.
빈센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여우를 바라본다. 여우는 사뿐사뿐 다가와 신사 앞에 위패를 내려두고, 신사 상태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신음소리를 내다가, 바로 돌아서 빈센트와 여선 쪽으로 쪼그려 앉았다. 빈센트는 여우의 표정을 읽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여우가 지금 신사의 상태에 상당히 불만이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풀이 잔득 자란 땅을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잔디밭이었는데, 잡초가 점령한 것으로 보였다. 빈센트는 특정한 식물만 자라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땅을 싹 다 갈아엎어야 할 것 같아서 손을 뻗어 마도를 시동했다. 빈센트. 너는 거대한 폭발로 건물 하나도 해먹으려면 해먹는 놈이다. 고작 이런 땅을 어찌 못할까.
"갈려라. 갈려라."
빈센트의 말에 잡초가 자란 풀밭이 이리저리 뒤집어지고, 잠들어 있던 땅이 강제로 햇빛을 보았다. 그리고 빈센트는 흙덩이를 마구마구 흔들어서 뿌리가 드러나게 하고, 잡초들을 갈퀴로 긁어서 옆으로 치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여우가 캥캥거리며 놀라긴 했지만 빈센트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신사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
"후. 됐고."
빈센트는 밭갈이가 끝나자,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그 땅에 자라나는 잔디를 상상했다. 그러자, 잔디들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빈센트는 여선 쪽을 바라보았다. 여선도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9
먼지를 닦는다기보다는, 뜯는 것에 더 가까운 느낌의 노동이었다. 어떤 먼지는 너무 두꺼워서, 순간 빈센트는 여선이 먼지가 아니라 나무판자를 통째로 뜯었나 의심할 정도였다. 어쨌든 일을 하고 있는데, 먼지들을 태운다는 말에, 여우 쪽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여우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빈센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분명 저 여우건 이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건 둘 중 하나는 화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진정하시죠."
그리고 빈센트는 자신이 그것을 말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수학여행을 하던 중에 몬스터를 만나서 화력을 퍼부었다가 기록적인 산불의 원인 제공을 한 이야기, 그냥 생각없이 마도 연습을 하다가 1ha 정도의 산을 태워먹은 이야기, 빈센트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말했다.
"다 아는 사람 이야기입니디만... 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 사고칠 생각 없었습니다. 힘드신 건 알겠지만, 차라리 물을 쏴서 불리는 것 같은 더 온건한 방법을 알아보죠. 어떠십니까?" //11
거짓말은 아니었다. 빈센트 역시 빈센트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빈센트의 이야기도 "아는 사람 이야기"라 할 수 있었겠지. 말하면 말할수록 빈센트는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미친 인간이었는가 통감하면서, 신사 옆에 놓여있던 양동이에 물의 마도로 물을 잔뜩 채워주었다. 그러고 나서, 빈센트는 아까 전에 마도로 갈아엎은 밭을 보았다. 잔디가 다시 자라난 건 좋은데... 너무 자라서 깨끗하게 잘라놔야 할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저는 이 잔디들을 보기 좋게 깎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손 씻는 물 나오는 샘도 좀 봐야 할 것 같고요. 저 물로 좀 먼지를 불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빈센트가 생각하기로, 목조 건물에 대책없이 물을 쐈다가 건조가 안 되면... 오히려 더 썩을 위험이 있었으니.
"쓰레기통이 있다면 거기에 버리는 게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세상은 아직 비닐 봉지 같은 게 없는 것 같군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