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방의 부려지산(鳧麗之山)에도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농질(蠪蛭)이라는 짐승이 있었는데, 사람을 잡아먹는 여우와 유사한 짐승이었다. 단, 이 짐승은 청구지산의 여우보다 훨씬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꼬리뿐 아니라 머리도 아홉 개에다가 호랑이의 발톱을 갖고 있다. 이 짐승 역시 아기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어찌어찌 잘 넘어갔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서 구태여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어떻게 봐도 옳은 선택이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거기까지는 내가 말한 사이는 아닌데' 라고 말한 것에서 조금 의외였다면 의외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입가에 화색이 돌려고 하던 차에 자신이 말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고 돌았던 화색은 금세 굳어져버렸다.
영화나 드라마에는 그런 모습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에게 차가 다가오는데 주인공을 그 차를 피하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만 본다. 너무 무섭고 긴장하고 놀라버리면 몸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포식자 앞에 놓인 피식자도 마찬가지다. 포식자의 바라보는 눈빛과 그 저주파로 그르렁대는 소리를 들으면 오금이 저려 몸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니오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고개를 숙이지도 발을 떼거나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이 눈가에 맺힐 뿐이었다.
" 어,언니야. 니,니오는 절대 벗어나려고 새,새,생각한 적 어,없어. 지,진짜야..! "
사랑스럽다는 뜻을 한껏 담은 눈동자를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심연처럼 시커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두려움을 자아냈다. 거기까지 참았을 때 니오는 이전에 그랬던 것 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미소를 짓고 눈물을 흘린다. 이 모순된 표정을 지어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몇 명 없을것이다. 허용할 수 있는 선에서 답을 들려달라는 말에 니오는 느리게 숨을 가다듬었다.
" 아, 에, 그게, 그러니까. 니,니오는 어,어,언니야한테서.. 가,감히 떨어지겠다는 생각을 해,해본 적도 없어.. "
이 말은 진짜다. 이전에 기숙사에서 한 번 난장판이 일어났을 때 그 때 니오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만큼 나는 감히 이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잘못해서, 만에 하나라도 이 사람의 눈에 어긋난다면, 내가 거리를 두려고 한다거나 '이제 이런건 그만하자. 아는 척 하지 말아줘' 하고 말한다면 그 때는,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죽는다.
" 언니야. 나 니,니오야. 언니가 예,예뻐해주던 니오야. 응? 언니야. "
제대로된 변명을 한다거나 말을 주워담기전도 전에 제대로된 생각에 미치지 못해 정에 호소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조금은 어색한 차렷자세로 어색한 미소와 어색한 눈물. 그런 이상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아하하' 하고 웃을 뿐이었다. 허용할 수 있는 선에서 답을 들려주어라. 어떻게든 이야기하는 수 밖에는 없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무서워졌을 뿐이다.
" 그,그러니까. 괜히 어,언니야까지 나서면.. 그,그러면... 언니야가, 니오가 다치는걸 보,볼테니까. 그리고 언니야도 다,다,다칠 수 도 있잖아. 그러니까 니오가, 알아서 하려고 했,했어. 언니야는 소중하니까... "
여학생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가현은 정말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너무나도 다정하고 친근한 손길이었지만 그 속에 품은 의미가 마냥 좋은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학생의 표정을 바라보는 가현의 시선은 마냥 차가웠으나, 그 속에는 흥미가 담겨 있었다. 모순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불쾌한 모순. 그리고 짜릿한 모순. 지금의 모순은 후자의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딱 좋은 점이었다. 그 점이 가현의 가학심을 더더욱 자극하는 듯 싶었다. 제 넘쳐흐르는 사랑을 이 여학생이 온전히 받기에는 아직 버거운 걸까?
"나도 지금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기는 싫은데~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 니오가 자꾸 내가 의심할 이야기들만 하잖아."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나는 확실한 답을 원해. 그리고 그 답은 무조건 내가 원하는 답이어야만 하지. 그 의미를 속에 품고서 가현은 언제 그렇게 살벌하게 굴었냐는 양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충분히 원하는 답을 들었음에도- 어느 한 곳이 어정쩡하면 가현은 여지 없이 제 속내를 드러내보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 집착과 뒤틀린 애정은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응. 알고 있어. 내가 예뻐해주고,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니오인데- 왜 자꾸 내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가끔 꺼내는건지 모르겠어. 그 것들은 내가 해석하는 그런 뜻이 아니지. 그렇지?"
이래저래 고장난듯한 모습을 보면서도 가현은 아랑곳않고 여학생을 품에 안았다. 자신이 상대의 그런 모습으로 마음이 약해질 사람이었다면 이 관계는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은 자신의 사람에게 아낌 없는 애정을. 자신이 지금껏 배워온 그 애정을 쏟아부을 뿐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 없었다. 포용. 애정. 사랑. 자비. 그 모든 것은 한 군데 얽혀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였으며, 자신은 선역이 아니다.
이윽고 가현은 여학생의 말을 일단 들어주었다. 의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흑룡의 독기가 품은 포용은, 정말로 제 선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금새 부정적인 감정을 덮어버리기 마련이었다. 또한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가현은 이 아이가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적당히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해 준다면 언제든 내 잘못이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줄 수 있었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하지만 우리 니오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구나~? 니오가 다치는걸 보는 건 슬프지만, 내가 보고잇지 않은 장소에서. 내 시선을 벗어나서 내가 보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다치는건 더 슬퍼."
몇 번 씩이나 자기 자신을 강조하는 억양을 집어넣으며 가현은 그 뜻을 적극 강조했다. 결국 속에 담은 뜻은 내 시선을 벗어나지 말라는 부류의 것이었음에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포용심으로 포장하고 그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다치는건 아무렇지도 않아. 내 것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나는 괜찮으니까?"
물론 자신이 완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여지는 일은 절대 상정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허나 자신의 것이라면 신 다음으로 애지중지 하는 게 가현이었으니 마냥 빈말은 아니었다. 제 소유의 것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그냥 평범한 어중이 떠중이들이 아니다. 오로지 그 존재들에 대해 진정한 사랑과 포용을 담고 있는 자신만이. 오직 자신 하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 니오가 전부 알아서 하려고 하지 마. 알았지? 아까도 이야기했잖아~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 이 언니한테 '제일 먼저' 말해달라고."
>>553 아늬 일체화되다니... 초 대형 팝콘인가 (?) 하 우리 임가현 마냥 좋게 봐줘서 고맙고.. 으아악 일퀘라니 잊고있었다 :0!!
하지만 오늘은 톡이 좀 덜 오니까 널널하게 일퀘 밀고 진단 맛보고 할 수 있지 ^-^ 해석은 자유라니 분명히 뭔가 연관점이 있을 거란 말이야?? 당어왕 쪽은 감이 잘 안오는데 챕터는 뭔가 쎄하게 감이 와.. 저 가식적인 미소라는 키워드랑 운명에 대항해서라는 키워드가 연관이 있을거라고 본다 지금까지 온화 행적이랑 독백을 대조해보면 흐르는 강물처럼 이 부분이 제일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 그럴 자신이 있겠니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챈다면
이 대목도 뭔가 찌릿찌릿하게 시그널을 보내고 있음이야 ^-^..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사람 안 잡는 온화지만 유독 자기 자신한테는 뭔가 가혹한 느낌이기도 했고.. 하 오늘도 열린결말로 인한 적폐해석 한가득 뚝딱 완.식. 이게 미식이지 뭐냐며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