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만쥬가 위치해 있다. 분명 오늘 룸메이트는 외출 하는 날이라 없고 그가 만쥬를 사온 기억도 없는데 테이블 위에 떡하니 만쥬가 놓여있다. 누군가 방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의심할 법도 했지만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있던 것처럼 만쥬를 손에 들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거 함부로 먹으면 안된다지만 원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그는 만쥬를 한입 베어문다.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만쥬를 하나 먹었을 때, 잠깐 스쳐지나갔던 그 광경들을 다시 떠올려보며 가현은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린다. 아아. 역시 당신이었나요. 당신의 장난이었나요. 그 누구보다도 존엄하며, 무엇보다도 장난을 좋아하는 신이시여. 한껏 황홀경에 잠겨있던 가현은 이윽고 기숙사를 나선다.
"오늘부터 만쥬만 먹어야겠는걸~"
이런 황홀함을 더 느낄수만 있다면, 영양 불균형으로 죽어버려도 여한이 없다. 눈에 띄는 만쥬란 만쥬는 다 집어먹을 생각인지 눈에 불을 켜고 만쥬를 찾는 가현. 이윽고 상자 하나를 더 찾아 제 방까지 소중하게 품은 채 돌아온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될까. 귀가 바뀔까? 아니라면- 다시 당신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 으음, 달달하고 맛있어.."
.... 물론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었던것 같다. 안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맛이었으니 환장할수밖에 없지. 다시 만쥬를 한 입 가득 베어물고, 입 안 가득 퍼지는 팥의 달달함을 한껏 느끼며 가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걸친다.
니오는 적당한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머리 위에 귀가 솟아있다던가 꼬리가 생겨있다던가 하는 것들은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마지막에는 그래도 제법 적응해서 약간의 즐거움도 있었다지만 또 그렇게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하필이면 또 개의 그것들이라 이제 진짜 광견이됐다는 이야기도 몇 번인가 들었던 기억도 남아있다.
" 그렇구나.. 그래도 원래대로 돌아왔잖아~ " " 그렇지. 이제 아무거나 주워먹으면 안되겠어. " " 응. 근데 니오, 뭐 먹고 있어? " " 어? 아, 이거. 누가 내 방 앞에 만쥬..를.. "
주말의 느즈막한 때. 본디 평소라면 다음날이 평일이기에 오후 늦은 시간까지 밖에 나와있는 일이 잘 없지만 내일은 휴일. 주말에 이어져있는 휴일이라 아직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또한 그런 학생들 중에 한명이었고 평소엔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편이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앉아 있었다.
" 그냥 방에 누워있을걸 그랬나. "
문득 창 밖으로 보이는 날씨가 좋아보여 먹을 것까지 챙겨들고서 당차게 나섰는데 공원에 도착해 벤치에 앉으니 나가보고 싶어졌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침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뭐든 보기만 해야하는건데 답지 않게 괜히 나섰다가 손해만 보고 있는 기분이라 그는 돌아갈까 말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저기서 익숙한 얼굴이 보여 그는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 와, 안녕하세요. "
심심했던 차에 잘됐다고 생각하며 그는 벤치에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여기로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미 여기로 올꺼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건 자신의 사교성을 너무 맹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불었다. 삭막하게도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저고리와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찰나보다 조금 긴 순간이었겠지만, 훤히 목덜미가 다 들어나는 한편 얼굴은 가려져 쉽사리 보기 힘들었을 터였다.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기자 그제야 훤해지는 얼굴이다. 푸른 성율의 눈동자가 잠시 윤하에게 머물었는데, 입꼬리가 살살 올라가는게 어째 득의만만한 아가씨의 그것이다. 아마 같은 학당 사람일 것이라는 성율의 예측이 들어맞았기 때문일거다.
"안녕하세요."
성율은 별 고민 없이 벤치에 앉았다. 하늘하늘 살포시 앉을 것 같은 인상과 달리 털썩 주저 앉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성율은 "아, 이건 선물."하며 품에서 뒤적거리며 꺼내놓은게 찹쌀떡 하나. 정말로 아무 준비 없이, 그리고 생각도 없이 꺼내놓은 티가 나는 품목 아닌가 싶다. 이게 그때 말하던 보답인가 싶은데, 성율 입장에서는 그냥 도움 준 사람 떡하나 더 준다는 마음이 더 컸다.
"선물 받은 언니가 한 박스나 보내줬어요. 친구랑 나눠먹으라는데, 언니가 날 너무 착하게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몰라. 그래도 그쪽은 줄게요."
사실상 같이 산거잖아요, 그죠? 라며 벤치에 등 기대고 힘 푸니, 허공을 보는 시선이 퍽 맹해보인다. 방금 한 말도 그렇고, 행동거지를 봐도 그렇고 생각보다 단순무식한 사람 아닐까 싶은데...
>>714 앗 그렇군요! 일단 서술을 넘기긴 했는데 교복 한번 스윽 보고 조금 심기불편한듯 입고리 비틀다, 금세 풀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막 너희가 정말로 싫어!!! 이런 뉘앙스는 아니고 어쩔 수 없잖아. 그냥 싫은 걸. 그래도 막 증오하진 않을테니까, 봐줘. 하는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