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어장은 4개월간 진행되는 어장입니다. ◈ 참치 인터넷 어장 - 상황극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릅니다. ◈ 만나면 인사 합시다. AT는 사과문 필수 작성부터 시작합니다. ◈ 삼진아웃제를 채택하며, 싸움, AT, 수위 문제 등 모든 문제를 통틀어서 3번 문제가 제기되면 어장을 닫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감정 상하는 일이 있다면 제때제때 침착하게 얘기해서 풀도록 합시다. ◈ 본 어장은 픽션이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필두로 약물, 폭력 등의 비도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어장은 공식 수위 기준이 아닌 17금을 표방하며, 만 17세 이상의 참여를 권장하는 바입니다. ◈ 절대 혼자 있으려 하지 마.
위키: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Seasons%20of%20Dimgray 웹박수: https://forms.gle/GL2PVPrsYV2f4xXZA 시트: >1596778092> 임시어장: >1596774077> 이전 어장: >1596799093> 통칭 '작은 루'는 선대 겨울의 원로 보드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존재로, 현 시즌스 킹덤 사람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오르내리는 도시 전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은 루는 새하얀 여우, 정확히는 북극여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보드카의 교육 덕분인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알려져 있다. 또한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해 현재 원로와 지금은 사라진 4명의 선지자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과이며, 사과 맛 사탕 하나만 있다면 작은 루를 무릎 위에 올릴 수 있어 영웅과 구스타보도 주머니에 사탕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녔다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는 점이 와전되어 '살려 데려갈 수 없다면 가죽, 그도 아니라면 꼬리털이라도 손에 넣기만 하면 무너져가는 여러 조직을 부흥시킬 수 있는 신묘한 영수靈獸'로도 전해진다.
작은 루가 키링을 쫓고, 이가라시가 키링을 흔드는 동안, 하얀 털 사이 묻힌 작은 종이 열심히 울려댔다. 티링티링, 티링티링, 종소리는 여우의 흥분을 반영하듯, 요란히도 울리다, 자그마한 앞발이 다시 바닥을 딛자 조용해졌다. 하얀 여우는 담배연기가 재차 내려오기 전에, 통통, 걸어서 엘의 곁으로 돌아갔고, 엘을 보채어 그 말을 하게 했다. 놀아달란 말을.
"네, 이래보여도 잘 한답니다."
바깥이었다면, 코웃음도 안 나올 제안이었다. 세상에, 말도 못 하는 여우와 무슨 게임인가. 하지만 이곳은 킹덤, 없는 것도 생겨나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나는 곳이다. 그것을 반영하듯, 이가라시를 빤히 바라보던 작은 루였고, 제안을 수락하는 말에, 기쁜 듯 폴짝 뛰었다. 갸르랑거리는 소리도 냈다. 마냥 기뻐하는 작은 루를 보며, 엘의 웃음소리가 다시 작게 흘렀다.
"고마워요. 이가라시 씨."
엘은 자리에 앉는 이가라시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발치의 여우를 안아들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조금 기울이면 어깨가 닿지 않을까, 싶은 거리만이 사이에 남는다. 여우는 자연스럽게 엘의 무릎을 딛고 서서, 두 앞발로 버튼을 누를 준비 만만이었다. 엘의 흰 손이 작은 루의 머리를 두어번 쓸어주고, 기기 아래 홈에 코인, 카지노 칩을 투입한다. 딸그랑, 딸강! 경쾌한 동전 소리 뒤로 게임기기의 화면은 플레이어 캐릭터를 고르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런 게임은, 좀 할 줄 아시나요? 실력이 있으시면, 봐주시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그 편이 이 아이도, 즐거울테니까요."
엘의 말을 반증하듯, 하얗고 복실한 꼬리가 이가라시의 팔을 탁탁, 두드렸다. 엘은 여우의 의향을 다 아는 듯, 자연스럽게 스틱을 움직여, 여우가 원하는 캐릭터를 고르도록 해주고, 이가라시의 선택을 기다린다. 서로 맞서 싸울 캐릭터들이 정해지면, 화면은 자연스레 대전 화면으로 넘어가며 1라운드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8 <밍메이> 좋은 벗. 부끄러운 듯 리큐르는 고개를 살짝 숙입니다. 수줍게 입술을 우물거리던 리큐르는 눈가가 움찔거리는 것을 다행히 못 본듯싶습니다. 아니면 당신을 배려하기 위해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눈을 살짝 들어 올린 리큐르는 퐁 튀어나온 자신의 귀를 손으로 괜히 덮어 가리듯이 했습니다. 작은 여우의 귀가 눌리다가 다시금 폭, 손을 비집고 튀어나옵니다.
"밍메이도 그랬어?"
리큐르가 눈을 온전히 들었을 때, 흑색의 귀와 꼬리가 아스라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보곤 입을 자그맣게 벌립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물론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절하지 못하는 건 조금 심했지만요, 리큐르.
"언젠가는 밍메이처럼 멋지게 조절할 수 있겠지?"
조심조심, 수줍게 얘기하는 목소리를 뒤로 곤돌라가 잠시 멈추더니 문이 열립니다. 차가운 한기가 스미는 것을 보니 윈터 어드벤처에 도달했단 것이 실감이 납니다. 리큐르는 슥슥 눈을 굴리다 다시금 비니를 꾹 눌러쓰려 했습니다. 아무래도, 확연한 특징을 가진 마오타이와 코냑을 제외하면 나머지 원로가 어떤 이종족인지 정체가 밝혀진 적이 없다 보니 숨기려 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리큐르를 잘 따라와야 해. 여기는 눈보라가 치면, 앞이 새하얘져서 안 보일 때가 있거든."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해. 하다가도 우물대다 손을 쭉 뻗습니다. 아니면 잡아도 좋아! 같은 뜻이군요. 가는 방향은.
……사신의 눈?
> [잡는다 - 잡고 장소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 [잡지 않는다 - 잡지 않고 장소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제 말을 빌어, 보통이라면 여우가 게임을 한다는 건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점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전혀 변함이 없었으나, 이곳- 시즌스 킹덤이라는 거대한 수용소라는 도시에선 그것또한 가능하다는 것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가라시가 선택한 것은 제 혼잣말에 대답하는 엘과 제 말에 폴짝 뛰어보이는 여우를 번갈아가며 한번씩 바라보다가 의자에 앉는다는 선택지였다.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여우랑 같이 게임을 하게 될 줄이야. 헛웃음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이가라시가 케이스 속 새 각련을 꺼내 입에 물고 여즉 타들어가고 있는 피다만 각련은 엄지와 검지로 뭉개듯 구겨끈 뒤 케이스와 함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고맙다는 말을 했으니 나중을 위해 빚으로 달아둬야겠군."
새 각련에 불 붙히지 않은 채, 이가라시는 엘의 말에 표정 변화는 커녕, 억양의 변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중얼거릴 뿐이다. 여름의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가게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했을 적에도 이토록 가깝지는 않았을텐데. 이가라시는 잠시 엘과의 거리가 신경쓰이는지 안대로 가려져 있는 방향으로 조금 얼굴을 움직이다 다시 게임 화면으로 옮겨졌다. 해봤냐고? 이가라시가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전혀 할 줄 모르는데."
할 줄 모른다는 것치고 이가라시의 스틱을 잡는 방식이나 최대한 편하게 의자에서 자리를 잡는 게 꽤 익숙해보였을지도 모른다. 캐릭터를 고르고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화면을 잠시 응시하던 이가라시가 스틱을 움직였고 화면 속 이가라시 캐릭터는 여우의 캐릭터에게 뛰어 다가가서 때리기 시작한다.
일리야는 마젠타가 지금 지어 보이는 그 웃음의 의미를 자신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였다. 실로 익숙한 미소였다. 우물쭈물하는 손님을 가게로 손쉽게 끌고 오기 위해 안도감을 주려는 표정. 일리야로써는 그런 태도가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기에- 굳어있던 얼굴을 풀고 평소와 같이 약간의 미소를 띠며 능청스럽게 말을 붙였다.
“아- 솔직히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랍니다? 이 도시에서는 손님을 가려 받는 곳도 있으니 말이에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일리야는 마젠타가 권유하는 대로 소파에 앉는다. 스프링 가든. 도미닉 매디슨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라스베이거스의 정취를 빼다 박은 구역. 그런 곳에 일리야는 달랑 하나의 칩과 단 두 번의 배팅 기회만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려 하였으며- 아직은 테이블 앞에 칩조차 꺼낼 타이밍이 아니었다.
"구매하고자 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이 리스트에 있는 품목부터 가격을 여쭈어보고 싶답니다. 별거 아닌 물건들이니, 티켓으로 말이에요."
일리야는 재킷의 안주머니에 꽃아두었던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 마젠타에게 내밀었다. 펼쳐진 페이지에 정돈된 필체로 적혀 있는 물건들은 화장품으로, 밖에서라면 길거리에 있는 아무 드러그 스토어에 들어가 마음 편히 집어올 수 있을법한 수수한 제품들만이 적혀있을 뿐이다. 바질에서 물건을 들여오기 위한 각고에 수고비를 왕창 붙인다고 해도 얼마나 될까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을 사는데 구미가 당길 법한 '정보'따윈 필요하지 않으리라.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본론은 그 뒤에 있다는 것을 쉬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변명해 보자면, 시즌스 킹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쓰던 제품만 쓰고 싶은지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슬슬 두려운 나이거든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것은 그렇게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덧붙이며 그저 후후하는 웃음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몇살이야?" "고등학교는 졸업했습니다." "이제 성인이야?" "..생일이 빨라서 아직이네요." "넌 거기서 오래 일하면 안되겠다." "무슨 뜻입니까 그거." "너같은 애가 그런 곳에서 일하다가 볼 최악의 루트가 몇개 있거든. 똑같은 놈이 되던가, 실컷 이용당하다가 신원미상자로 영안실에 있던가. 그것도 아니면 사람 죽이고 감옥에 가던가."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과 중얼거리는 말의 차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본 인상은 그랬다.
"꼬마야. 내 충고하는데 거기가 그냥 경호업체라고 생각 안하는 게 좋을거야. 건전하고 건실하게 벌어먹고 사는 게 제일 최고고. 네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건실하진 못한 것 같은데요."
퉁명스레 대꾸한다. 그 말에 잠시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에 피곤함과 함께 그때는 알지 못하던 것이 가라앉아 있던 것도 같다.
"..비오네. 앉아 있다가 비 좀 그치면 가. 단거 좋아해? 애들은 단거 좋아하던데."
채 끄지 못한 담배에서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좋아해요."
단거.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와 차가운 내부에 퍼지는 온기와 뒤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을 보며 부러 반박자 느즈막히 단어를 덧붙혀보던 기억.
. . .
서머 아일랜드에 있다보면 이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날씨에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도통 익숙해지지 못하는 건 역시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아직 '녹아들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투둑, 재가 바닥에 떨어지고 이가라시는 조금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서 숨죽인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이런 날씨는 꼭 옛 기억이 떠올라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재 떨어진 각련을 다시 물며 이가라시가 연기를 뱉었다. 시즌스 킹덤이라는 이 도시로 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았던 것. 하지만 그 때처럼 온전히 똑같은 것은 아닌 것.
각련을 태워내며 술기운에 뜨뜻해진 제 얼굴에 손을 대고 쓸어내다가 이가라시는 문득 시선을 떨어트렸다. 금방이라도 쏟아낼 듯한 시커먼 하늘 아래,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이 도시는 언제나 그렇지. 언제 죽어나자빠질지 모르는 곳. 살기 위해서는 빼앗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빠른 곳. 굳이 참견하고픈 생각이 없기에 이가라시는 각련을 물웅덩이로 던지며 걸음을 옮기려했다.
뛰어나온 사람이 갓 청년이 되었을까 싶을 만큼 앳된 얼굴이 아니었다면 이가라시는 늘 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테다.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의 최저점에 도달한 얼굴. 불안과 공포를 담고 일그러진 얼굴.
"너."
이가라시는 급히 앞을 지나치려는 상대를 붙잡기 위해 불쑥 말을 붙혔다.
"단거 좋아하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에 이가라시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지. 이것도.
"..비 올 것 같은데 좀 있다가 가지. 쫒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뭔데? 아저씨 나 알아?" "몰라. 그래도 상관은 없잖나. 여름인데."
하아-. 정말 끝내주네. 어둑어둑한 밖을 바라보며 일리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TV의 수신료 따윈 사치스럽기에, 일기예보 따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상공에 잔뜩 모여 있었다. 어텀 카니발에는 머지않아 세찬 비가 내릴 것이다... 현관 앞에서 당장이라도 외출을 포기할지 고민을 하던 일리야는 금세 검은색 장우산을 집어들고 문 밖으로 나선다. 집에 틀어박혀 있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우울함뿐이기에.
그것은 비가 오는 날이면 우울에 사로잡혔다. 언제부터였는지, 무엇 때문인지 다 알면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우울감. 시즌스 킹덤에 다다르면 벗어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감정은, 오히려 뜻밖의 만남으로 인해 더욱 날카롭게 일리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과거를 파헤쳐지는 일 따윈 질색일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일리야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걸음마저 멈추고 들고 있던 우산을 펼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왼쪽 어깨에 파고드는듯한 통증이 일었다. 장우산은 반쯤 펼쳐지다가 바닥에 볼품없이 나동그라졌다.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반사적으로 일리야의 손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코트 안에 숨겨져있던 총, 그 총구가, 머지않아 습격자가 있는 방향을 향한다.
"식인귀자식. 완전 미친놈!"
습격자는 어디에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아니, 어쩌면 일리야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습격자는 사람에게 총을 쏜 주제에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주도권을 뺏어올 수 있다. 생각을 끝낸 일리야는 습격을 당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차분한 어조로 말할 뿐이다.
시즌스 킹덤에서 누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조금 다르다. 습격자는 단 한 번의 찬스로 상대의 목숨을 끊지 못했다. 피를 흘리는 자 또한 당장은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기묘한 대치만이 이어진다... 가을답지 않은 고상스럽지 못한 소란에 길을 걷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일리야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키고 한 걸음 내딛는다.
"오, 오지마!!" "하아... 딱 한 번만 말씀드릴게요. 제 이름은 도미닉 매디슨이 아니라 일리야 스타니슬라보비치 보그다노프랍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일리야는 습격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부터 이어질 두 사람의 싸움은 어텀 카니발에서 볼 수 있는 근사한 신사들의 전투와는 거리가 먼, 뒷골목의 추잡한 개싸움에 불과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둘 중 하나는 사람이 아닌 것을 향해 총을 겨눌 깡은 있었으나 그것을 죽이기에는 심약한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이미 사람을 여럿 죽인적 있었으나 우아함이라고는 갖추지 못한 자였기에.
한 명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하여 바닥에 물이 고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구경꾼들의 비싼 코트가 더럽혀졌을 터이니. 이미 무기라고 부를 것은 싸움 중에 발에 걷어차여서 손 닿지 않는 거리로 날아간 오래다. 일리야는 느긋하게 상체만을 숙여 습격자에게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잘 들어. 너같은 머저리와는 달리 나는 시즌스 킹덤에서 할 일이 있단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못 알아 들었나 보네. 한숨과 함께 일리야는 발 뒤꿈치에 힘을 준다... 구두의 굽에 손바닥이 사정없이 짓이겨지자 '머저리'는 대답 대신 고통에 찬 비명만을 낼 뿐이다. 눈앞의 멍청이가 지르는 소리도, 빗물 때문에 엉망이 되기 시작한 화장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차분했던 목소리가 시끄러운 소리에 맞춰서 점차 커져간다.
잠깐 동안 분노가, 일었다.
"이 어텀 카니발에서 난 쥐새끼처럼 숨을 죽이고 살았어. 라크리모사에게 이단으로 낙인찍힐법한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려고 말이야. 왜냐고? 난 반드시 그녀를 만나- "
일리야의 노성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스키퍼인가. 소란을 피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갈라진 인파 사이에서 나타난, 검은 신사 한 명을 바라보다 일리야는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왼쪽 어깨에는 탄환이 박혀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으며, 길거리에 나동그라진 우산은 이미 망가졌고, 쓸데없는 일로 사람들의 이목을 잔뜩 끌었다.
문이 벌컥 열리기가 무섭게 마오타이는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집무실 책상에 아무렇게나 기대 풀어헤친 셔츠의 단추를 주섬주섬 걸치는 코냑과, 그 위에 앉아 치맛단을 정돈하는 위스키 때문이었다.
"내가 뭐,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 "눈치가 있는데 쓸 생각은 안 하시나 봐요." "일터에서 그럴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위스키는 고개를 돌렸다. 코냑이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며 혀를 찼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뭔데요." "현실에 생긴 다른 작은 루에 대해서 소문이 나돌길래." "……그건 저도 알아요. 물갈이의 때를 기다릴 뿐이지." "아니, 그거 말고." "예?"
마오타이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쉰다.
"비가 오는 날 DTD 바깥에 나가서 신나게 뛰놀던 애가 갈색 여우가 되어 돌아왔단 소문 말입세." "그런 쓸데없는 걸 알려주려고 지금 온 거예요?" "그 조그마한 녀석을 구경하려고 매출이 늘었다던데." "진짜로, 그런 사소한 소문을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물론이지."
위스키가 이마를 팍 쳤다.
"마오타이, 코냑을 괴롭힐 때면 제발 난 빼주지 않으련?" "어림도 없지. 부부는 운명 공동체란 말이 있지 않나."
그리고 너도 내게 숨기는 게 있잖아.
"그럼 좋은 시간 마저 보내게. 식었으면 유감이고." "젠장, 저 늙은이가!"
이미 마오타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엘과 에얼, 작은 루를 향한 직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스프링 섹터의 소문이 귀에 들어옵니다. 긍정적인 소문입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그 신묘한 흰 여우가 비 오는 날 하도 뛰놀아서 진흙 범벅이 되었다지? 그런데도 DTD가 그리 깔끔하니, 이곳에선 안심하고 투숙할 수 있겠어……. 아무렴, '안심하고' 투숙한단 말입세.》
비정하다 못해 잔혹한 사회에 대뜸 던져지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비참한 일이지만 시즌스 킹덤이라면 궤를 달리한다. 아직 이해하기엔 버거운 어른이라는 삶의 무게를 진 청년이 시선을 굴렸다.
"그 사람 때문에 그래? 아까 너 구해줬다던 그 사람." "아, 몰라."
청년은 말차 맛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쥔 채, 차마 포장을 까지 못하고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쫓기던 것을 구해주던 이상한 사람. 분명 사람을 처리해 줄 때는 이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이 초콜릿을 보니까 그렇지 않단 생각이 들까. 그것만큼 큰 무례가 없는데.
"뭐야, 무슨 생각 하냐? 녀석이 빠져가지곤." "……비룡회에 들어가면, 이곳에서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들었어." "뭐? 하하, 인석아! 네가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거긴 날고 긴다는 녀석들만 가! 우리 같은 범재는 아무것도 못해."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작열하는 태양을 보며 초콜릿을 쥔 손을 주머니에 팍 쑤셔 넣는다.
"좋아하는데."
단 거.
"나도 남에게 줄 수 있겠지." "이래서 어린 것들이란……. 포부만 크다니까. 그래, 그래. 네가 정 비룡회에 들어가고 싶다면 지금 일부터 잘 해내자고."
《이가라시를 향한 간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비 오는 날, 위험에 처한 자를 구해주는 영웅에 대한 소문입니다. 조금 부풀려진 감이 없잖아 있으나 잘 짚어보면 당신 얘기입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왜, 비 오는 날 조직 도륙하는 살인마 말고 조직의 막내를 비호하는 영웅이 있다더군. 이곳이 비정한 곳이긴 해도 그런 존재라면 '따거'라 불릴 법 하지? 암. 그렇고 말고.》
소문이 퍼졌다. 라스베이거스의 살인마가 나타났다, 살인마가 사람을 습격했다, 별거 아닌 이 도시의 흔한 사람이겠지만 살인마가 날뛰었다, 스키퍼가 죄인으로 규정하고 라크리모사가 살인마를 이단으로 규정할 것이다. 광소를 뱉으며 사람을 죽이려 드니 구금할 것이다, 추방할 것이다…….
"헛소리지요."
누군가 장갑을 낀 손을 곱게 모으더니만 깍지를 끼고, 그 위에 턱을 괸다. 다른 존재도 비슷하게 턱을 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죄인이었으면 이미 매달았을 겁니다." "그렇지요. 더군다나 그것이 무슨 삶을 살았든 지금 얌전히 있는데 저희가 왜 이단으로 몬답니까?" "이단이라. 예하의 성미 감히 추측하건대 하잘것없는 것은 신경 쓰지 아니하는데, 그 단어를 직접 언급하면 뭔가 있긴 한가 봅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한낱 미천한 신의 사자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이번 일은 저희가 나설 정도는 아니니, 예하께 전적으로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턱을 괸 존재가 가늘게 웃었다. '예하'라 불린 존재는 나긋하게 입을 벌렸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물러나시지요." "내일도 살아있는 하루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쪽도요."
존재가 나가자 라크리모사의 수장, 통칭 예하가 깍지를 끼던 손을 풀고 자세를 고친다. 한 손으로 뺨을 짚으며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신께서 내버려 두라 명하셨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재미난 일이나 좀 벌일까."
소문은 너무나도 쉬이 퍼지는 것이고, 양념을 치는 것은 단추로 수프를 만드는 것만큼 과장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퍼지면..
"괜히 이단으로 몰리기 싫은 사람과 이단 찍는 사람의 만남이라, 재밌겠네."
《일리야를 향한 직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비 오는 날 벌어진 나쁜 평판이 순식간에 뒤집힙니다. 어텀 카니발의 npc가 당신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사실 그 라스베이거스의 살인마가 습격을 받았다더군. 알고 보니 이 도시에 살인마가 애타게 찾던 여자가 있다나 봐. 그 여자를 이곳에서 만나기 위해 필사적인데 우리가 시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해. 안타깝지 않은가……?》 《안녕, 재즈와 차가운 위스키 말고 경전과 따뜻하게 데운 술은 어때요.》
'분명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었는데.' '그 수녀를 왜 믿었을까. 차라리 죽여줘.' '아파.아파.아파.아파.'
혈흔으로 세겨진 기억들이 이 성당아래의 숨겨진 공간에서 자신들이 일을 위해 도달하지 않았다면 잠들어 있었다. 티아는 여기서 죽어간 아이들이 바깥을 얼마나 동경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가고 싶다고 했던 그 갈망속에서 머리 속에 잠궈두었던 과거의 편린을 떠올렸던게 사색의 원인이었다.
'만약 내가 날개가 있었다면 내 꿈을 향해서 날아갈 수 있었을까.'
티아가 바라본 것은 리사였지만, 지금의 리사는 아니였다. 그건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살아있었던 날의 기억. '리사'는 결국 바깥에서 지은 죄의 연좌로 자신의 꿈을 관두었다. 마치 새장에 들어간 새처럼 구슬피 우는 듯한 그 표정이 티아는 아직도 기억속에서 아른거렸다.
'내 몫만큼 언니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내 꿈이었어.'
그녀의 마지막 말. 티아는 거짓말처럼 그 유언을 듣고나서 한번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끝에 도달한 것이 또 한번 이 지옥같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있던 나날과는 달리 죽어서 모순되게도 살아있는 삶을 다시 살아야하는 저주가 마치 족쇄처럼 걸려있다. 그렇기에 티아는 세상에 먹칠을 하고싶었다.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세상이라면 엉망이 되는 것을 그녀는 살아있는 이유로서 정했다.
"뭘 그렇게 사색하는거야. 나는 애초에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시끄러워."
사색을 끊어버리듯 리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독박이자 스스로에게 향하는 채찍이었다.
"자 그럼 피날레를 해보자. 언니." "간자에게 믿음이란 처음에는 존재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믿음조차 더럽혀 이 피로 가득찬 욕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나는 후자에 걸래." "그런가."
눈알이 까뒤집힌지 오래인 피투성이의 수녀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끌며 자매는 성당의 옥상으로 향했다.
"이윽고 간자는 역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간자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을 몰랐을까요? 돌고돌아 원한은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움을 선혈로 만들어 자신의 미를 만들려고 했던 대가는 똑같이 돌아옵니다."
질질끌고온 수녀를 그대로 성당의 거대한 십자가에 거꾸로 못으로 사지를 매달아 버렸다. 마치 수녀가 그렇게 설파했던 거짓된 교리를 비꼬는 듯한 저주받은 행위. 칸다타 자매에게 있어서 그것은 조롱과 동시에 수많이 죽어간 원혼들의 요구였다.
"남에게 흘린 만큼 스스로도 흘리는 법이야. 할망구. 애원하고 빌때는 재밌었는데 이젠 기절해서 재미없어." "리사. 무음만큼 가장 좋은 음악은 없어. 비명을 음악으로 취급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모독이야." "아, 그런 설정이었지."
거꾸로 매달린 몸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을 기다리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나며 번개가 내려쳤다. 마치 신조차 보기 역겨워 벌로 마무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