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어장은 4개월간 진행되는 어장입니다. ◈ 참치 인터넷 어장 - 상황극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릅니다. ◈ 만나면 인사 합시다. AT는 사과문 필수 작성부터 시작합니다. ◈ 삼진아웃제를 채택하며, 싸움, AT, 수위 문제 등 모든 문제를 통틀어서 3번 문제가 제기되면 어장을 닫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감정 상하는 일이 있다면 제때제때 침착하게 얘기해서 풀도록 합시다. ◈ 본 어장은 픽션이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필두로 약물, 폭력 등의 비도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어장은 공식 수위 기준이 아닌 17금을 표방하며, 만 17세 이상의 참여를 권장하는 바입니다. ◈ 절대 혼자 있으려 하지 마.
위키: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Seasons%20of%20Dimgray 웹박수: https://forms.gle/GL2PVPrsYV2f4xXZA 시트: >1596778092> 임시어장: >1596774077> 이전 어장: >1596799093> 통칭 '작은 루'는 선대 겨울의 원로 보드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존재로, 현 시즌스 킹덤 사람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오르내리는 도시 전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은 루는 새하얀 여우, 정확히는 북극여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보드카의 교육 덕분인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알려져 있다. 또한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해 현재 원로와 지금은 사라진 4명의 선지자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과이며, 사과 맛 사탕 하나만 있다면 작은 루를 무릎 위에 올릴 수 있어 영웅과 구스타보도 주머니에 사탕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녔다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는 점이 와전되어 '살려 데려갈 수 없다면 가죽, 그도 아니라면 꼬리털이라도 손에 넣기만 하면 무너져가는 여러 조직을 부흥시킬 수 있는 신묘한 영수靈獸'로도 전해진다.
그가 팔을 휘적휘적 휘저었고 그것을 신호로 아편 담뱃대가 그의 손에 잡혔습니다. 그래, 이럴 때만 능력을 쓰는 게지. 마오는 히죽 웃으며 옆에서 잠든 사람을 손가락으로 장난치듯 톡톡, 가볍게 두드렸어. 오늘은 이 사람하고 자는구나? "오늘 재워준다 했으니까아~"집은 뒀다 뭐하게? "으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환청에 미간을 좁힌 채 목 안에서 으르렁 거리던 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거의 헐벗은 상태였기에 하나, 하나, 능력으로 옷을 띄워 다시 걸쳤습니다. 아아~ 이제야 좀 마오 같네~ 붉은 털을 걸친 고양이야~ 마오는 눈을 감고 가르랑거렸어. 애옹.
"이제~ 집에 가야지이~"
오늘 밤만 재워준 거니까~ 외출한 고양이는 다시 구역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붉은 꽃!! 내내내내내내 꽃!!!! 자신이 키우는 양귀비를 떠올 마오가 히죽 웃었어. 아편을 피우며, 비틀비틀 꿈결을 걷던 그가 문득,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시비가 붙은 걸까. 마오의 눈동자가 가늘어졌고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 <clr red black black>짜증나!!!!!!!!</clr>
고양이는 사냥 놀이를 할 때, 흥분하곤 하는데 마오라고 다를 바 없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양아치였던 시신을 발로 툭 쳤습니다. 아, 오늘도 갈증이 해갈되었어. 마오가 사냥을 잘했어. 굿 보이 마오. 야옹. 그 때가 생각나네 "그 땐 그 사람들이 나쁜 거야~"맞아 나쁜 거야 "죽여버리자고 했었잖아아~"맞아 "그래, 그러자 했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아편을 여즉 피웠습니다. 아편 향에 머릿속이 아찔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야. 그렇지?
약간의 감탄을 담은 말이다. 의원 일을 하다 보면 환자뿐만이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 역시 많이 만나기 마련이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분명 기본 중에 기본이나... 그를 지키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에 비추면 당신은 좋은 보호자에 속한다 할 수 있겠다. 물심양면으로 환자의 뜻을 따라주려 하므로.
“어머나... 역시,”
순간 그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목소리가 끊긴 것도 그와 거의 동시의 일이다. 예상외인 당신의 모습에 놀란 것 같기도, 혹은 다른 요인에 의해 당황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찰나의 움직임 외에 드러나는 것이 없으므로 동요했다는 사실 외 다른 사념을 읽어내리기는 힘들다.
아, 나의 자매야. 물론 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며 생김새고 그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지마는... “...후후,”
여인은 나즉이 웃음을 흘린다. 출처 모를 그리움를 담고서.
“소인도 그 고충을 알지요... 소인 역시 어릴 적 잘 조절을 하지 못해 고초를 겪었답니다?”
사뭇 장난스러운 어조 뒤로 살랑거리는 무언가가 모습을 비춘다. 흑색의...귀와 꼬리다. 그것들은 곧 금빛 잔상만을 남기고 신루와 같이 사라진다. 마치 세상에 존재조차 않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듯하지만, 이대로 꺼지긴 못내 아쉽다는 듯 온 힘을 쥐어짜 작열하는 백열등 아래의 마작판. 남성 하나가 재도 채 털지 못하고 장초 하나 문 채로 입술을 달싹였다.
"이봐,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재가 허벅지로 떨어지려는 것을 다리 쭉 벌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구고, 패 검지와 중지로 슥 내보낸 남성이 혀를 찼다.
"고리대금업자 왕 씨." "아, 그 양반. 요즘 마작판 안 오던데, 왜. 죽기라도 했대?" "그래. 끔찍하게 죽었다더군." "그 양반이 얌전히 당해줄 사람이 아닌데?"
남성은 붉은 화패 한번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양반 따까리 있잖나, 호사가 천 씨." "그래." "그 녀석이 수소문해서 범인 찾아보려 했건만, 망령 보는 놈이라 건드리면 안 된다하이?" "에이, 언제 적 망령인가." "왜, 중앙 섹터 그 추방자도 망령 보는 놈인데. 아무튼 고약한 놈이라더구만. 그것보다, 이번에 만난 녀석은 누구야?" "고양이 같은 남자 있었지, 뭐. 유령처럼 사라졌지만." "……망령 아니야?" "에이, 말도! 판에나 집중해."
중간에 이야기 먼저 꺼낸 남성이 뒤엎었기 때문인지, 마작판은 그야말로 개판이 난 하루겠다.
《마오에 대한 작은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은 소문의 주체가 마오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서머 아일랜드에도 망령을 보는 기이한 놈이 있다더군. 망령에게 홀려 사람을 도륙하고 다닌다나 봐.》
작은 털뭉치와 시선이 마주치고, 이가라시는 털뭉치가 제 손에 들려있는 키링에 관심을 가지며 앞발로 건드리려고 하는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다가 키링을 쥔 손을 위아래-혹은 좌우로 천천히 흔들어 털뭉치의 움직임과 반대로 움직인다. 각련을 물고 있는 바람에 외눈을 찌푸리곤 있으나 키링을 흔드는 행동만은 제법 규칙적이었다.
여우를 보고 있던 시선이 웃음소리에 무뚝뚝하게 움직인다. 엘을 바라보는 시선과 얼굴은 여전히 음울하고 침울하다.
"그 털뭉치랑 게임을?"
그러고보면 제대로 저 여자의 표정을 살펴본 적 없다.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각련 연기를 뱉으며 이가라시는 구부리고 있던 상체를 일으키고 여우와 놀아주는 것처럼 움직였던 키링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저런 걸 보면 확실히 살아있는 사람은 맞네. 직접 입밖으로 내면 상대로 하여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멈춘 뒤 이가라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릇 작은 동물이나 아이를 보면 아무리 방어기제가 높은 사람이라도 조금이나마 풀어지기 마련이라고들 하던가. 그 말대로 이가라시는 표정의 변화도 없었으나 분명 엘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우를 가만히 응시하는 건 전해지는 그 말은 진실일지도 몰랐다. 아까 하던 걸 보면 저 털뭉치가 게임을 할 줄 알고 의견을 피력한다는 게 맞긴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순순히 부탁받은 걸 해주면 또 아까처럼 관심이 많다느니 같은 소리를 듣진 않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이가라시는 성큼 걸음을 옮겼다.
스프링 가든의 카페 안, 정장을 입은 남성 둘의 대화는 조용한 카페 속에서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물기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남성 하나는 아메리카노에 시선을 두고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이야기? 자네가 커피를 망친단 소리?" "이래서 고리타분한 커피 중독자는 짜증이 나. 그거 말고." "뭐." "저번에 DTD의 오너가 쓰러졌다더군. 그래서 원로가 DTD에 개입해서 영업을 중단했다는데?" "아, 혹시 저번에 카지노 출입이 안 됐던 게 그것 때문인가?" "이것 참……."
좋은 이야기구만.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남성이 가늘게 웃었다.
"그래서, 병세가 있나? 아프다던가? 겨울 섹터의 대표처럼 시체로 발견되면 더욱 무섭겠구만. 그렇지?" "그것보다 더 중한 일이 있지. 원로가 '작은 루'를 구해서 바쳤다는데?" "작은 루를 가지고도 요절하면, 다음 대표가 작은 루의 주인이 되겠군." "오호, 돈 냄새가 나. 그것도 거금의. 지금 총애 받는 곳이 어디더라?"
라크리모사의 성기사는 골목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며 기도를 했다. 토막 난 시체는 일부가 없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를 면밀히 훑던 다른 성기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 선배. 무슨, 일입니까?" "이 시체, 자세히 봐봐." "저는 못 봅니다." "그래서는 이 도시에서 도태되는데. 시체에 대한 내성을 좀 기르지 그래?" "……아니, 저는 뇌물수수 때문에 온 건데 무슨 살인이 당연한 도시야, 여긴... 그래서, 대체 뭐가." "너, 네바다 주 경찰이었잖아. 뭐 기억나는 거 없어?"
성기사 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어, 똑같이 없네.
"여기에도, 도미닉 매디슨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봐, '뉴욕의 아이 컬렉터'도 왔는데 그 사람이라고 안 왔을 것 같아?" "젠장. 마주치기 껄끄러운데……." "꼬우면 먼저 죽여야지, 어쩌나?" "이 도시는 미친 사람투성이군요. 죽인다뇨!" "그러니 뇌물 좀 그만 받지 그랬어."
그것보다 간도 크지.
"어떻게 라크리모사의 활동 구역에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일리야에 대한 작은 헛소문이 퍼집니다. 몇 사람들만 일리야가 소문의 주체라 착각합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누군가 여기에서도 '악식'을 행한다던데?》
망령여단에 들어간 이후 일리야는 칸다타 자매의 변덕스러움괴 짖궃음을 핑계삼아 긴 외출을 자제하였다. 그러니, 오늘처럼 가벼운 옷차림으로 스프링 가든에 얼굴을 내비친건 최근 들어선 꽤나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어- 어텀 카니발은 그런 곳이니까 어쩔 수 없지. 고리타분하고, 점잔을 잔뜩 떨고. 재즈 시대. 혹은 광란의 20년대를 연상시키게 하는 풍경과는 다르게 어텀 카니발이 어찌나 재미없는지! (물론, 일리야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어텀 카니발에 거주한 것이다만) 일리야는 마음 속으로 투덜거리며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였다. 바질. 이 도시에서 밖의 세상과 거래하는 몇 안 되는 조직. 그런 바질이 표면적으로는 소속된 조직부터가 실존하는지 불분명한 사람을 손님으로 받아줄 지 도저히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일리야의 표정은 걱정 탓으로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어, 대량 매입을 하고자 온 손님이 아니여도 괜찮을련지..."
어찌되었든, 필요한 것은 빠르게 해결하는게 좋다. 일리야는 작다고, 크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키를 가진 인영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티켓이라면 당연히 들고 왔답니다? 그리고, 티켓 대신 사용할 수 있을법 한 재미있는 정보 또한."
매캐하고 독한 연기가 그득한 방 안에 특이하게도 달달한 연기가 섞인다. 원형 테이블 위, 중앙에 잔뜩 쌓여있는 티켓의 양은 현재 게임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반증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껌뻑이고 있는 불빛 아래에서 제 앞에 놓인 패를 바라보는 하나 뿐인 녹안이 뿌옇게 흐리다. 이가라시는 제 앞에 놓여있는 패 하나를 원형 테이블 쪽으로 던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패를 버리고, 다시 가져오는 반복적인 행위에도 불빛에 의해 음울하고 침울한 이가라시의 낯에 한층 더 그늘이 드리워졌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형씨?" "네가 이긴다면-"
이가라시는 물고 있던 각련을 바닥으로 떨궈내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의 말을 받았다. 도박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이 도시에서 살다보면 즐기지 않던 것에도 손을 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가라시가 마작에 손을 대고 더 나아가 도박을 하는 이유는 그거였다. 도무지 시간은 가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을 계속해서 받는 것도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변명하자면 이가라시는 도박에 진심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즐기는 수준이라는 점일까.
그런 이가라시가 이런 도박 마작판에서, 저만한 돈을 걸면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이상 패를 버리지 않으며 중앙에 쌓여있는 티켓의 양도 늘지 않을 때 입꼬리를 실룩이며 치켜올리며 냉큼 자신의 패를 내보이는 남자에게 맞춰서 이가라시또한 제 패를 내보였다. 결과는 이가라시의 패.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는지 남자는 안도의 미소를 한껏 지었다.
"하- 하하하!! 이겼어! 내가 이겼다! 약속 지켜 형씨!" "..음."
의자가 뒤로 쓰러질 정도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문으로 뛰듯 걸어가던 남자를 이가라시는 붙잡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다말고 남자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가득 쌓여있는 티켓을 허겁지겁 집어들어서 주머니를 포함해서 쑤셔넣을 수 있는 공간에 쑤셔넣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눈살이 찌푸려질만큼 추한 태도에 이가라시가 각련 케이스에서 새 각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너한테는 돈이 더 중요한 모양이야."
뭐, 됐나. 이가라시는 말버릇처럼 독특한 억양의 추임새를 흘리며 각련 끝에 불붙힌다. 곧 방 안에 진하고 단 향기가 퍼지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쑤셔넣을 만큼 티켓을 쑤셔넣은 남자가 다시 허둥지둥 문으로 뛰듯이 걸어가다말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 것은.
"얼마나 해먹은 건지 모르겠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목숨보다 돈을 더 챙기는 거 보면 대충 알 것도 같다."
자리에서 이가라시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다말고 툭- 무언가에 걸리자 이가라시는 걸리는 것을 신발 끝으로 밀어냈고 문 근처에서 들린 둔탁한 소리에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사기를 치는 놈이나, 그런 걸 알면서도 도박을 못끊는 놈이나 똑같긴 해. 내 눈에는. 그래도 어쩌겠어. 의뢰를 받았으니 해야지."
안그래? 하며 이가라시는 남자의 뒤편으로 걸음을 옮겨서 다가갔다. 숨넘어가는 소리와 일정한 리듬으로 들리던 둔탁한 소리가 빨라졌다.
《이가라시에 대한 소문이 퍼집니다. 주체는 당신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지 않지만, 당신의 귀에도 어느 정도 들릴 파급력입니다. 이 소문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당신이 깨닫습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서머 아일랜드의 도박판에서 '바깥 것들이 성물을 탐내려 들었다지'. 그래서 누군가 사슬로 심판했다 했던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야. 앞으로도 쥐새끼 여럿 제 명에 못 살고 죽겠구만.》 《얘, 너는 나와 면식이 있으니, 내가 관심을 갖는 것 정도는 알겠구나. 그렇지?》
바질, 도시 밖을 도시 안으로 가져오는 조직. 사무실에 들어오면 꼬마 아이 하나만 있었을까. 마젠타는 고개를 들며 걱정하는 손님을 올려다보며 눈만 깜빡이다, 괜찮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인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작은 거래라도 받아주고, 쌓이다 보면 언젠간 큰 거래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으니. 그러면서 멋진 당신을 위아래로 살피니, 와인이나 보석 같은 사치품을 원하는 것이 아닌지 멋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정보라."
미롭단 듯이 말하며 눈을 살짝 크게 떠낸다. 가끔은, 그런 정보가 물건값보다 더 돈이 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듣기 전까지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걸. 마젠타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인 곳을 향해 앉으라는 듯 고개를 까닥여 보인다.
본디 의사에게 휴식이란 없는 개념에 가까운 법이다. 이리 작으면서도 붐비는 곳이라면 더욱. 그러니 금일처럼 시간이 나는 것이 외려 별난 축에 속한다. 느긋한 발걸음이 어두운 골목 사이를 소리 없이 누빈다. 한밤의 거리는 스산하기 그지없으나 그것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 여인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 아,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군. 여인은 자못 즐거운 기색이다. 그야, 간만의 휴식을 누가 달가워 않겠냐마는.
“...선생님!”
그러므로 그 한가로운 시간이 깨져나간 순간, 여인의 얼굴이 굳은 것은 마땅한 수순이다.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았으나 보이는 것이 없다. 시선을 내리자 그제야 작은 머리통이 보인다. 그는 허리를 숙여 아이와 눈을 마주한다. 미소를 잃은 입술이 움직이며 소리를 만든다.
“당신이 나를 불렀나요?”
흘러나온 것은 제법 온후하다. 잠시 겁먹은 기색이던 아이는 침을 꿀꺽 삼킨다. 이 사람이...
“그, 으... 네! 선생님이 여래 맞으시죠? 약사여래?”
주저를 싣고 있던 목소리는 점차 간절함을 더해간다. 아, 여인은 작게 소리 내며 굽힌 허리를 바로 한다. 이어질 이야기를 안다. 질리도록 마주한 부류기에. 돌연 모든 것이 성가셔진다.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자, 잠시만요, 선생님! 저희...저희 언니가, 언니를...!”
여인은 우뚝 움직임을 멈춘다. 그래? 작게 중얼거린다. 몸을 빙글 돌려 아이를 마주한다.
“그래요, 그렇군요... ”
무심한 음성이다.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띤 채다.
“대가는?”
아이의 얼굴에 일순 당황이 서린다. 그곳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한 모양이지. 여인의 미소는 짙어진다.
“어머나, 설마 그것도 없이 부탁을 청하러 온 것인가요? 풍문이 그러던가요, 내가 자애로운 이라고?”
하하! 날카로운 웃음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아뇨, 아니죠. 나에게서 자비를 구걸하면 안 되죠. 난 한낱 인간이지 부처가 아닌 것을요... 자, 다시 묻겠어요. 진실로 간절하다면, 이번에는 대답을 잘 골라야 할 거예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죠? 질문이 떨어진다. 머뭇거리던 아이는 무언가를 입에 담는다. 여인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좋아요, 마음에 드네요. 상냥한 손길이 아이의 머리를 도닥인다.
“뭐하나요? 길을 안내해야죠, 앞장서세요.”
“지, 지금요?”
“그럼, 당연하죠. 약조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당신도 신속한 해결을 바라 내게 온 게 아니었나요?”
“그건, 맞지만...”
“자아, 그렇다면 말을 더 얹지 말고 안내하세요. 당신이 찾아온 이가 무능한 자는 아니니.”
어두운 골목 구석에서 누군가 아스라이 연기 뱉는다. 모든 것은 대가가 있어야 하는 법.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언정, 혹은 목숨일지언정.
"결국 여래의 이름 달고 부처는 될 수 없는가."
……혹은 부처가 되었을 때 이 도시에서 버틸 수 없음을 깨달은 자의 발버둥인가. 작은 소문이 돌겠구나.
"구룡성채의 그 고아 자매." "그 자매가 왜? 기어이 팔려갔다던?" "아니, 하나 죽을 듯싶었잖아. 멀쩡하던데." "에이, 뭐, 약사여래라도 거쳤든? 그 애들이 돈이 어딨다고." "나야 모르지. 그런데, 약사여래가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걸."
왜? 습기요 푹푹 찌는 더위에 부채질하던 여성이 눈 둥글둥글 떴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약사여래가 했다고 확신을 한담?
"무엇이든 낫게 해준다며." "그건 서머 아일랜드 사람들이 다 알아, 요 사람아." "그런데, 동생쪽이 입 꾹다물다 얘기하더라." "응? 뭐야, 뭐."
─.
《약사여래, 밍메이에 대한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주체임을 압니다. 당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보다 명확한 소문이 섹터 npc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여래는 신의神醫니, 그 경지가 인간을 뛰어넘었다지.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필히 가져가야만 한다더군. 진귀한 것이 아니야. 무엇이라도 진심을 다해, 가장 간절하게 품던 것을 공양해야만 해. 알겠어?》
코냑은 창을 다룰 줄 안다. 원로들은 모두 냉병기 하나씩을 다룰 줄 안다고 저번에 말했듯이, 코냑이 창을 드는 순간 누구 하나 죽는 건 각오해야 하고, 제 아내 발치에 쌓인 시체도 코냑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코냑이 원로 중에서 얌전한 편인 것 같아도 한번 화가 나면 본인의 싹바가지를 원효대사 해골 물그릇으로 써먹을 놈이다...
2. "아엔." "예, 따거." "네 손으로 놈들의 죄를 일깨우게 돕거라." "존명!"
마오타이는 본디 호위를 맡았으나 '존재'에게 명을 직접 하달 받을 때마다 맨손으로 나섰다. 비룡회 시절 마오타이의 별명은 '사람 잡는 백정'이었다.
3. "명백한 상하관계라면 언제부터 네게 발언권이 있었는지 궁금하구나." "왜, 내가 두렵니? 너를 짓밟고 올라탈까 본능에 각인되었더니? 내가 천박히도 보였더라면 유감스럽구나."
위스키는 원로에 추진된 이후 구스타보가 사라지자, 몇 번이고 그 자리를 위협 받았다. 명분을 뛰어넘고 이권을 노리는 어텀 카니발의 사람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고자 했으며, 끝내 그 자리를 온전히 인정받아 현재의 자리에 우뚝 섰으니 '존경' 받아야 마땅하지만.
실은 어텀 카니발의 타 조직들이 발치에 깔린 시체를 보고 두려움에 떨어 경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4. 작은 루, 리큐르는 사랑스럽지만 원로임을 잊지 말것. 두번 말한다. 리큐르가 '도시에 바깥의 죄악이 물들기 시작할 때 선출된' 원로임을 잊지 말것.
5. Q는 망령과 접촉하는 능력이 있으며, 홀려서 성물에 손을 대었노라 서술했었지.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망령이 종용했을까?
작은 루가 키링을 쫓고, 이가라시가 키링을 흔드는 동안, 하얀 털 사이 묻힌 작은 종이 열심히 울려댔다. 티링티링, 티링티링, 종소리는 여우의 흥분을 반영하듯, 요란히도 울리다, 자그마한 앞발이 다시 바닥을 딛자 조용해졌다. 하얀 여우는 담배연기가 재차 내려오기 전에, 통통, 걸어서 엘의 곁으로 돌아갔고, 엘을 보채어 그 말을 하게 했다. 놀아달란 말을.
"네, 이래보여도 잘 한답니다."
바깥이었다면, 코웃음도 안 나올 제안이었다. 세상에, 말도 못 하는 여우와 무슨 게임인가. 하지만 이곳은 킹덤, 없는 것도 생겨나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나는 곳이다. 그것을 반영하듯, 이가라시를 빤히 바라보던 작은 루였고, 제안을 수락하는 말에, 기쁜 듯 폴짝 뛰었다. 갸르랑거리는 소리도 냈다. 마냥 기뻐하는 작은 루를 보며, 엘의 웃음소리가 다시 작게 흘렀다.
"고마워요. 이가라시 씨."
엘은 자리에 앉는 이가라시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발치의 여우를 안아들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조금 기울이면 어깨가 닿지 않을까, 싶은 거리만이 사이에 남는다. 여우는 자연스럽게 엘의 무릎을 딛고 서서, 두 앞발로 버튼을 누를 준비 만만이었다. 엘의 흰 손이 작은 루의 머리를 두어번 쓸어주고, 기기 아래 홈에 코인, 카지노 칩을 투입한다. 딸그랑, 딸강! 경쾌한 동전 소리 뒤로 게임기기의 화면은 플레이어 캐릭터를 고르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런 게임은, 좀 할 줄 아시나요? 실력이 있으시면, 봐주시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그 편이 이 아이도, 즐거울테니까요."
엘의 말을 반증하듯, 하얗고 복실한 꼬리가 이가라시의 팔을 탁탁, 두드렸다. 엘은 여우의 의향을 다 아는 듯, 자연스럽게 스틱을 움직여, 여우가 원하는 캐릭터를 고르도록 해주고, 이가라시의 선택을 기다린다. 서로 맞서 싸울 캐릭터들이 정해지면, 화면은 자연스레 대전 화면으로 넘어가며 1라운드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8 <밍메이> 좋은 벗. 부끄러운 듯 리큐르는 고개를 살짝 숙입니다. 수줍게 입술을 우물거리던 리큐르는 눈가가 움찔거리는 것을 다행히 못 본듯싶습니다. 아니면 당신을 배려하기 위해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눈을 살짝 들어 올린 리큐르는 퐁 튀어나온 자신의 귀를 손으로 괜히 덮어 가리듯이 했습니다. 작은 여우의 귀가 눌리다가 다시금 폭, 손을 비집고 튀어나옵니다.
"밍메이도 그랬어?"
리큐르가 눈을 온전히 들었을 때, 흑색의 귀와 꼬리가 아스라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보곤 입을 자그맣게 벌립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물론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절하지 못하는 건 조금 심했지만요, 리큐르.
"언젠가는 밍메이처럼 멋지게 조절할 수 있겠지?"
조심조심, 수줍게 얘기하는 목소리를 뒤로 곤돌라가 잠시 멈추더니 문이 열립니다. 차가운 한기가 스미는 것을 보니 윈터 어드벤처에 도달했단 것이 실감이 납니다. 리큐르는 슥슥 눈을 굴리다 다시금 비니를 꾹 눌러쓰려 했습니다. 아무래도, 확연한 특징을 가진 마오타이와 코냑을 제외하면 나머지 원로가 어떤 이종족인지 정체가 밝혀진 적이 없다 보니 숨기려 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리큐르를 잘 따라와야 해. 여기는 눈보라가 치면, 앞이 새하얘져서 안 보일 때가 있거든."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해. 하다가도 우물대다 손을 쭉 뻗습니다. 아니면 잡아도 좋아! 같은 뜻이군요. 가는 방향은.
……사신의 눈?
> [잡는다 - 잡고 장소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 [잡지 않는다 - 잡지 않고 장소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제 말을 빌어, 보통이라면 여우가 게임을 한다는 건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점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전혀 변함이 없었으나, 이곳- 시즌스 킹덤이라는 거대한 수용소라는 도시에선 그것또한 가능하다는 것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가라시가 선택한 것은 제 혼잣말에 대답하는 엘과 제 말에 폴짝 뛰어보이는 여우를 번갈아가며 한번씩 바라보다가 의자에 앉는다는 선택지였다.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여우랑 같이 게임을 하게 될 줄이야. 헛웃음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이가라시가 케이스 속 새 각련을 꺼내 입에 물고 여즉 타들어가고 있는 피다만 각련은 엄지와 검지로 뭉개듯 구겨끈 뒤 케이스와 함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고맙다는 말을 했으니 나중을 위해 빚으로 달아둬야겠군."
새 각련에 불 붙히지 않은 채, 이가라시는 엘의 말에 표정 변화는 커녕, 억양의 변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중얼거릴 뿐이다. 여름의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가게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했을 적에도 이토록 가깝지는 않았을텐데. 이가라시는 잠시 엘과의 거리가 신경쓰이는지 안대로 가려져 있는 방향으로 조금 얼굴을 움직이다 다시 게임 화면으로 옮겨졌다. 해봤냐고? 이가라시가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전혀 할 줄 모르는데."
할 줄 모른다는 것치고 이가라시의 스틱을 잡는 방식이나 최대한 편하게 의자에서 자리를 잡는 게 꽤 익숙해보였을지도 모른다. 캐릭터를 고르고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화면을 잠시 응시하던 이가라시가 스틱을 움직였고 화면 속 이가라시 캐릭터는 여우의 캐릭터에게 뛰어 다가가서 때리기 시작한다.
일리야는 마젠타가 지금 지어 보이는 그 웃음의 의미를 자신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였다. 실로 익숙한 미소였다. 우물쭈물하는 손님을 가게로 손쉽게 끌고 오기 위해 안도감을 주려는 표정. 일리야로써는 그런 태도가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기에- 굳어있던 얼굴을 풀고 평소와 같이 약간의 미소를 띠며 능청스럽게 말을 붙였다.
“아- 솔직히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랍니다? 이 도시에서는 손님을 가려 받는 곳도 있으니 말이에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일리야는 마젠타가 권유하는 대로 소파에 앉는다. 스프링 가든. 도미닉 매디슨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라스베이거스의 정취를 빼다 박은 구역. 그런 곳에 일리야는 달랑 하나의 칩과 단 두 번의 배팅 기회만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려 하였으며- 아직은 테이블 앞에 칩조차 꺼낼 타이밍이 아니었다.
"구매하고자 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이 리스트에 있는 품목부터 가격을 여쭈어보고 싶답니다. 별거 아닌 물건들이니, 티켓으로 말이에요."
일리야는 재킷의 안주머니에 꽃아두었던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 마젠타에게 내밀었다. 펼쳐진 페이지에 정돈된 필체로 적혀 있는 물건들은 화장품으로, 밖에서라면 길거리에 있는 아무 드러그 스토어에 들어가 마음 편히 집어올 수 있을법한 수수한 제품들만이 적혀있을 뿐이다. 바질에서 물건을 들여오기 위한 각고에 수고비를 왕창 붙인다고 해도 얼마나 될까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을 사는데 구미가 당길 법한 '정보'따윈 필요하지 않으리라.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본론은 그 뒤에 있다는 것을 쉬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변명해 보자면, 시즌스 킹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쓰던 제품만 쓰고 싶은지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슬슬 두려운 나이거든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것은 그렇게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덧붙이며 그저 후후하는 웃음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몇살이야?" "고등학교는 졸업했습니다." "이제 성인이야?" "..생일이 빨라서 아직이네요." "넌 거기서 오래 일하면 안되겠다." "무슨 뜻입니까 그거." "너같은 애가 그런 곳에서 일하다가 볼 최악의 루트가 몇개 있거든. 똑같은 놈이 되던가, 실컷 이용당하다가 신원미상자로 영안실에 있던가. 그것도 아니면 사람 죽이고 감옥에 가던가."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과 중얼거리는 말의 차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본 인상은 그랬다.
"꼬마야. 내 충고하는데 거기가 그냥 경호업체라고 생각 안하는 게 좋을거야. 건전하고 건실하게 벌어먹고 사는 게 제일 최고고. 네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건실하진 못한 것 같은데요."
퉁명스레 대꾸한다. 그 말에 잠시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에 피곤함과 함께 그때는 알지 못하던 것이 가라앉아 있던 것도 같다.
"..비오네. 앉아 있다가 비 좀 그치면 가. 단거 좋아해? 애들은 단거 좋아하던데."
채 끄지 못한 담배에서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좋아해요."
단거.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와 차가운 내부에 퍼지는 온기와 뒤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을 보며 부러 반박자 느즈막히 단어를 덧붙혀보던 기억.
. . .
서머 아일랜드에 있다보면 이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날씨에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도통 익숙해지지 못하는 건 역시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아직 '녹아들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투둑, 재가 바닥에 떨어지고 이가라시는 조금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서 숨죽인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이런 날씨는 꼭 옛 기억이 떠올라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재 떨어진 각련을 다시 물며 이가라시가 연기를 뱉었다. 시즌스 킹덤이라는 이 도시로 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았던 것. 하지만 그 때처럼 온전히 똑같은 것은 아닌 것.
각련을 태워내며 술기운에 뜨뜻해진 제 얼굴에 손을 대고 쓸어내다가 이가라시는 문득 시선을 떨어트렸다. 금방이라도 쏟아낼 듯한 시커먼 하늘 아래,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이 도시는 언제나 그렇지. 언제 죽어나자빠질지 모르는 곳. 살기 위해서는 빼앗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빠른 곳. 굳이 참견하고픈 생각이 없기에 이가라시는 각련을 물웅덩이로 던지며 걸음을 옮기려했다.
뛰어나온 사람이 갓 청년이 되었을까 싶을 만큼 앳된 얼굴이 아니었다면 이가라시는 늘 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테다.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의 최저점에 도달한 얼굴. 불안과 공포를 담고 일그러진 얼굴.
"너."
이가라시는 급히 앞을 지나치려는 상대를 붙잡기 위해 불쑥 말을 붙혔다.
"단거 좋아하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에 이가라시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지. 이것도.
"..비 올 것 같은데 좀 있다가 가지. 쫒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뭔데? 아저씨 나 알아?" "몰라. 그래도 상관은 없잖나. 여름인데."
하아-. 정말 끝내주네. 어둑어둑한 밖을 바라보며 일리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TV의 수신료 따윈 사치스럽기에, 일기예보 따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상공에 잔뜩 모여 있었다. 어텀 카니발에는 머지않아 세찬 비가 내릴 것이다... 현관 앞에서 당장이라도 외출을 포기할지 고민을 하던 일리야는 금세 검은색 장우산을 집어들고 문 밖으로 나선다. 집에 틀어박혀 있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우울함뿐이기에.
그것은 비가 오는 날이면 우울에 사로잡혔다. 언제부터였는지, 무엇 때문인지 다 알면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우울감. 시즌스 킹덤에 다다르면 벗어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감정은, 오히려 뜻밖의 만남으로 인해 더욱 날카롭게 일리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과거를 파헤쳐지는 일 따윈 질색일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일리야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걸음마저 멈추고 들고 있던 우산을 펼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왼쪽 어깨에 파고드는듯한 통증이 일었다. 장우산은 반쯤 펼쳐지다가 바닥에 볼품없이 나동그라졌다.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반사적으로 일리야의 손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코트 안에 숨겨져있던 총, 그 총구가, 머지않아 습격자가 있는 방향을 향한다.
"식인귀자식. 완전 미친놈!"
습격자는 어디에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아니, 어쩌면 일리야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습격자는 사람에게 총을 쏜 주제에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주도권을 뺏어올 수 있다. 생각을 끝낸 일리야는 습격을 당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차분한 어조로 말할 뿐이다.
시즌스 킹덤에서 누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조금 다르다. 습격자는 단 한 번의 찬스로 상대의 목숨을 끊지 못했다. 피를 흘리는 자 또한 당장은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기묘한 대치만이 이어진다... 가을답지 않은 고상스럽지 못한 소란에 길을 걷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일리야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키고 한 걸음 내딛는다.
"오, 오지마!!" "하아... 딱 한 번만 말씀드릴게요. 제 이름은 도미닉 매디슨이 아니라 일리야 스타니슬라보비치 보그다노프랍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일리야는 습격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부터 이어질 두 사람의 싸움은 어텀 카니발에서 볼 수 있는 근사한 신사들의 전투와는 거리가 먼, 뒷골목의 추잡한 개싸움에 불과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둘 중 하나는 사람이 아닌 것을 향해 총을 겨눌 깡은 있었으나 그것을 죽이기에는 심약한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이미 사람을 여럿 죽인적 있었으나 우아함이라고는 갖추지 못한 자였기에.
한 명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하여 바닥에 물이 고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구경꾼들의 비싼 코트가 더럽혀졌을 터이니. 이미 무기라고 부를 것은 싸움 중에 발에 걷어차여서 손 닿지 않는 거리로 날아간 오래다. 일리야는 느긋하게 상체만을 숙여 습격자에게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잘 들어. 너같은 머저리와는 달리 나는 시즌스 킹덤에서 할 일이 있단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못 알아 들었나 보네. 한숨과 함께 일리야는 발 뒤꿈치에 힘을 준다... 구두의 굽에 손바닥이 사정없이 짓이겨지자 '머저리'는 대답 대신 고통에 찬 비명만을 낼 뿐이다. 눈앞의 멍청이가 지르는 소리도, 빗물 때문에 엉망이 되기 시작한 화장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차분했던 목소리가 시끄러운 소리에 맞춰서 점차 커져간다.
잠깐 동안 분노가, 일었다.
"이 어텀 카니발에서 난 쥐새끼처럼 숨을 죽이고 살았어. 라크리모사에게 이단으로 낙인찍힐법한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려고 말이야. 왜냐고? 난 반드시 그녀를 만나- "
일리야의 노성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스키퍼인가. 소란을 피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갈라진 인파 사이에서 나타난, 검은 신사 한 명을 바라보다 일리야는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왼쪽 어깨에는 탄환이 박혀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으며, 길거리에 나동그라진 우산은 이미 망가졌고, 쓸데없는 일로 사람들의 이목을 잔뜩 끌었다.
문이 벌컥 열리기가 무섭게 마오타이는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집무실 책상에 아무렇게나 기대 풀어헤친 셔츠의 단추를 주섬주섬 걸치는 코냑과, 그 위에 앉아 치맛단을 정돈하는 위스키 때문이었다.
"내가 뭐,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 "눈치가 있는데 쓸 생각은 안 하시나 봐요." "일터에서 그럴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위스키는 고개를 돌렸다. 코냑이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며 혀를 찼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뭔데요." "현실에 생긴 다른 작은 루에 대해서 소문이 나돌길래." "……그건 저도 알아요. 물갈이의 때를 기다릴 뿐이지." "아니, 그거 말고." "예?"
마오타이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쉰다.
"비가 오는 날 DTD 바깥에 나가서 신나게 뛰놀던 애가 갈색 여우가 되어 돌아왔단 소문 말입세." "그런 쓸데없는 걸 알려주려고 지금 온 거예요?" "그 조그마한 녀석을 구경하려고 매출이 늘었다던데." "진짜로, 그런 사소한 소문을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물론이지."
위스키가 이마를 팍 쳤다.
"마오타이, 코냑을 괴롭힐 때면 제발 난 빼주지 않으련?" "어림도 없지. 부부는 운명 공동체란 말이 있지 않나."
그리고 너도 내게 숨기는 게 있잖아.
"그럼 좋은 시간 마저 보내게. 식었으면 유감이고." "젠장, 저 늙은이가!"
이미 마오타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엘과 에얼, 작은 루를 향한 직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스프링 섹터의 소문이 귀에 들어옵니다. 긍정적인 소문입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그 신묘한 흰 여우가 비 오는 날 하도 뛰놀아서 진흙 범벅이 되었다지? 그런데도 DTD가 그리 깔끔하니, 이곳에선 안심하고 투숙할 수 있겠어……. 아무렴, '안심하고' 투숙한단 말입세.》
비정하다 못해 잔혹한 사회에 대뜸 던져지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비참한 일이지만 시즌스 킹덤이라면 궤를 달리한다. 아직 이해하기엔 버거운 어른이라는 삶의 무게를 진 청년이 시선을 굴렸다.
"그 사람 때문에 그래? 아까 너 구해줬다던 그 사람." "아, 몰라."
청년은 말차 맛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쥔 채, 차마 포장을 까지 못하고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쫓기던 것을 구해주던 이상한 사람. 분명 사람을 처리해 줄 때는 이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이 초콜릿을 보니까 그렇지 않단 생각이 들까. 그것만큼 큰 무례가 없는데.
"뭐야, 무슨 생각 하냐? 녀석이 빠져가지곤." "……비룡회에 들어가면, 이곳에서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들었어." "뭐? 하하, 인석아! 네가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거긴 날고 긴다는 녀석들만 가! 우리 같은 범재는 아무것도 못해."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작열하는 태양을 보며 초콜릿을 쥔 손을 주머니에 팍 쑤셔 넣는다.
"좋아하는데."
단 거.
"나도 남에게 줄 수 있겠지." "이래서 어린 것들이란……. 포부만 크다니까. 그래, 그래. 네가 정 비룡회에 들어가고 싶다면 지금 일부터 잘 해내자고."
《이가라시를 향한 간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비 오는 날, 위험에 처한 자를 구해주는 영웅에 대한 소문입니다. 조금 부풀려진 감이 없잖아 있으나 잘 짚어보면 당신 얘기입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왜, 비 오는 날 조직 도륙하는 살인마 말고 조직의 막내를 비호하는 영웅이 있다더군. 이곳이 비정한 곳이긴 해도 그런 존재라면 '따거'라 불릴 법 하지? 암. 그렇고 말고.》
소문이 퍼졌다. 라스베이거스의 살인마가 나타났다, 살인마가 사람을 습격했다, 별거 아닌 이 도시의 흔한 사람이겠지만 살인마가 날뛰었다, 스키퍼가 죄인으로 규정하고 라크리모사가 살인마를 이단으로 규정할 것이다. 광소를 뱉으며 사람을 죽이려 드니 구금할 것이다, 추방할 것이다…….
"헛소리지요."
누군가 장갑을 낀 손을 곱게 모으더니만 깍지를 끼고, 그 위에 턱을 괸다. 다른 존재도 비슷하게 턱을 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죄인이었으면 이미 매달았을 겁니다." "그렇지요. 더군다나 그것이 무슨 삶을 살았든 지금 얌전히 있는데 저희가 왜 이단으로 몬답니까?" "이단이라. 예하의 성미 감히 추측하건대 하잘것없는 것은 신경 쓰지 아니하는데, 그 단어를 직접 언급하면 뭔가 있긴 한가 봅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한낱 미천한 신의 사자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이번 일은 저희가 나설 정도는 아니니, 예하께 전적으로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턱을 괸 존재가 가늘게 웃었다. '예하'라 불린 존재는 나긋하게 입을 벌렸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물러나시지요." "내일도 살아있는 하루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쪽도요."
존재가 나가자 라크리모사의 수장, 통칭 예하가 깍지를 끼던 손을 풀고 자세를 고친다. 한 손으로 뺨을 짚으며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신께서 내버려 두라 명하셨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재미난 일이나 좀 벌일까."
소문은 너무나도 쉬이 퍼지는 것이고, 양념을 치는 것은 단추로 수프를 만드는 것만큼 과장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퍼지면..
"괜히 이단으로 몰리기 싫은 사람과 이단 찍는 사람의 만남이라, 재밌겠네."
《일리야를 향한 직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비 오는 날 벌어진 나쁜 평판이 순식간에 뒤집힙니다. 어텀 카니발의 npc가 당신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사실 그 라스베이거스의 살인마가 습격을 받았다더군. 알고 보니 이 도시에 살인마가 애타게 찾던 여자가 있다나 봐. 그 여자를 이곳에서 만나기 위해 필사적인데 우리가 시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해. 안타깝지 않은가……?》 《안녕, 재즈와 차가운 위스키 말고 경전과 따뜻하게 데운 술은 어때요.》
'분명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었는데.' '그 수녀를 왜 믿었을까. 차라리 죽여줘.' '아파.아파.아파.아파.'
혈흔으로 세겨진 기억들이 이 성당아래의 숨겨진 공간에서 자신들이 일을 위해 도달하지 않았다면 잠들어 있었다. 티아는 여기서 죽어간 아이들이 바깥을 얼마나 동경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가고 싶다고 했던 그 갈망속에서 머리 속에 잠궈두었던 과거의 편린을 떠올렸던게 사색의 원인이었다.
'만약 내가 날개가 있었다면 내 꿈을 향해서 날아갈 수 있었을까.'
티아가 바라본 것은 리사였지만, 지금의 리사는 아니였다. 그건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살아있었던 날의 기억. '리사'는 결국 바깥에서 지은 죄의 연좌로 자신의 꿈을 관두었다. 마치 새장에 들어간 새처럼 구슬피 우는 듯한 그 표정이 티아는 아직도 기억속에서 아른거렸다.
'내 몫만큼 언니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내 꿈이었어.'
그녀의 마지막 말. 티아는 거짓말처럼 그 유언을 듣고나서 한번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끝에 도달한 것이 또 한번 이 지옥같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있던 나날과는 달리 죽어서 모순되게도 살아있는 삶을 다시 살아야하는 저주가 마치 족쇄처럼 걸려있다. 그렇기에 티아는 세상에 먹칠을 하고싶었다.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세상이라면 엉망이 되는 것을 그녀는 살아있는 이유로서 정했다.
"뭘 그렇게 사색하는거야. 나는 애초에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시끄러워."
사색을 끊어버리듯 리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독박이자 스스로에게 향하는 채찍이었다.
"자 그럼 피날레를 해보자. 언니." "간자에게 믿음이란 처음에는 존재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믿음조차 더럽혀 이 피로 가득찬 욕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나는 후자에 걸래." "그런가."
눈알이 까뒤집힌지 오래인 피투성이의 수녀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끌며 자매는 성당의 옥상으로 향했다.
"이윽고 간자는 역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간자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을 몰랐을까요? 돌고돌아 원한은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움을 선혈로 만들어 자신의 미를 만들려고 했던 대가는 똑같이 돌아옵니다."
질질끌고온 수녀를 그대로 성당의 거대한 십자가에 거꾸로 못으로 사지를 매달아 버렸다. 마치 수녀가 그렇게 설파했던 거짓된 교리를 비꼬는 듯한 저주받은 행위. 칸다타 자매에게 있어서 그것은 조롱과 동시에 수많이 죽어간 원혼들의 요구였다.
"남에게 흘린 만큼 스스로도 흘리는 법이야. 할망구. 애원하고 빌때는 재밌었는데 이젠 기절해서 재미없어." "리사. 무음만큼 가장 좋은 음악은 없어. 비명을 음악으로 취급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모독이야." "아, 그런 설정이었지."
거꾸로 매달린 몸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을 기다리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나며 번개가 내려쳤다. 마치 신조차 보기 역겨워 벌로 마무했다는 듯이.
누군가 중얼거린다. 반박하는 이 하나 없다. 비가 쏟아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일 수도, 단순히 거대한 빗소리에 목소리가 묻혔기 누구도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 장대비가 온갖 사물을 두드려 대며 만든 소란스러운 잡음이 여름을 뒤덮고 있다.
이런 날은 사람 하나 죽어도 모르겠어. 하나뿐이야? 여럿 죽어도 알기 힘들 것이 분명하구만. 비명도 흔적도 무엇 하나 남기기 힘들게 하늘이 지워버릴 테니 말이야. 하하, 들어보니 자네 말이 맞네! 좌우지간 흉흉한 소리는 이제 그만하자고. 기껏 좋은 술을 준비해 왔더니만 술맛 떨어지게 생겼어...
잔을 맞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마저도 곧 빗소리에 파묻힌다. 그런 날이다. 장마로 온 세상이 먹먹한 소리에 잠기며... 신음도 비명도 모든 것이 감춰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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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말은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이군요.”
희고 고운 손이 누군가의 머리칼을 잡아챈다. 강제로 얼굴이 들어 올려졌으므로 악에 받친 답이라도 돌아올 법하지만, 사위는 고요하다. 사내의 입에 재갈이 물려있는 탓이다.
“누군가를 살(殺)하려 한다면 당할 각오 역시 있었어야지요. 묫자리를 두 개 파놓았어야지요. 설마하니 그 정도 결의조차 없었다 말하렵니까, 그런 일을 하며?”
정성 어린 조언이라도 건네듯 사려 깊으며 나긋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입가의 미소는 화기로우며 부드럽다. 지나가며 설핏 본다면 자애롭기가 선녀와 같다 할지도 모를 모습이다. 손에 잡은 것이 타인의 머리채만 아니었더라면, 앞에 자리한 것이 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로 곤죽이 된 사내만 아니었더라면...
성당의 전소라. 성스러운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음을 어찌 알지 못하였을까, 누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도 알고 있었나?" "무엇을 말입니까?" "그 수녀에 대해."
라크리모사의 이단 심문관도 알 수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수녀의 불타버린 시체 밑으로 드러난 유골들의 위치가 우연일까.
"……망령을 보는 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어."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더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는 없지. 영매, 혹은 그에 준하거나 망령 그 자체일 가능성이 커."
부디 이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그 수녀의 뒷배가 사실은…….
"말도 안 돼!" "아니, 말이 될 수도 있어."
라크리모사가 몰랐잖아.
《칸다타 자매를 향한 간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은 이 으스스하고 두려운 소문의 진원지를 찾고자 합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이번에 불이 난 성당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그리도 많이 발견되었다지. 이걸 망령을 보는 자가 아니면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래도 이단을 심판하는 영매의 재림인가 싶어. 망령의 뜻을 듣는 영매가 이번엔 휘둘리지 아니할 터야. 그렇지?》 《그 수녀의 뒷배가 라크리모사라는 소문이 있어. 아니겠지만. 라크리모사의 평판이 약간 하락합니다. 라크리모사가 침묵합니다.》
코냑은 신문을 읽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신문을 한번 가까이 들여다 보기도 하고, 멀리 떼어놓으며 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제 몫의 시리얼에 우유를 붓던 리큐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코냑 님, 벌써 노안 왔어요?" "아니에요, 리큐르." "그거 마오타이가 자주 보여주는 행동인데, 노안이면 그렇게 된댔어요."
코냑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양반은 곧 아흔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자신은 아직 젊은데. 젊…… 코냑은 잠시 괴리감을 느꼈다. 원로이기 이전에 이종족으로 변화하며 비상식적으로 수명이 늘어버렸지만 아직 인간일 때를 기억하니까.
"우린 아직 젊은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리큐르." "리큐르 아직 일흔을 못 넘겨서 코냑 님 말을 이해 못 해." "하아……." "그래서, 뭐 읽었길래 노안이 온 거예요?" "작은 루로 인한 매출 상승에 대한 신문 기사가 떴네요. 거기다 온갖 애정을 다 받고 있으니, 여타 조직에게 각별히 주의하라는 메시지도 담겨있고……."
시리얼을 크게 한입 먹던 리큐르가 그대로 입에 있던 내용물을 우수수 쏟았다.
"아, 더러워." "아니, 리큐르랑 똑같은 복제품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털뭉치가 내 친구의 곁을 뺏었다 그거잖아요?" "리큐르, 왜 귀엽고 사랑스럽다에 힘을 주나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털뭉치는 리큐르로 족해!!! 리큐르는 대표 친구를 만나러 갈래!!"
《DTD의 호평일색 신문기사가 나돕니다.》 《본디 DTD는 대표 조직으로 당연한 호평을 받고 있었으나, 당연한 말을 넘어서 세계관 내부에서 '엘과 에얼'이라는 인물 자체가 봄 섹터 사람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봄의 왕'은 괜히 얻는 것이 아니며 써먹을 대로 써먹을 수 있다. 이 설정을 잘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빗소리가 쏟아진다. 장마와도 같은 곳, 신음도, 비명도 묻혀 죽은 자의 시체를 느릿하게 내려다본다. 누군가 턱을 느릿하게 쓸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작게 웃었다.
"여래라 불리지 않는 걸 좋아하는 연유가 예에 있구나."
곤죽이 된 것. 사내의 시체에 속삭여본다. 그래서, 묏자리 두 개 파지 아니한 연유 무엇이더니. 자만하였더니, 다섯의 섹터 중 잔악하기로는 둘째가는 것이 서러운 섹터에서.
"그리하였다더군, 그리하였다더군……. 여우신이 노하시었다더군."
그러니 응당한 대가를 보여주었어야지. 흥미 없는 것. 분홍색 눈이 휘었다.
《밍메이를 향한 간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은 주체가 밍메이임을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라는 사실은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봐, 그 이야기 들었어? 살수 하나가 곤죽이 되어 죽었다더군. 그런데 그 광경을 본 사람이 있다나 봐. '감히 여우신의 진노를 사지 말 것'이라던데, 자네 아는 바 있나? 여우신이라니, 나 참. 기이한 도시임은 틀림이 없어.》
불 붙은 담에서 불 붙이지 않은 담배로, 그저 피울 만큼 피웠으니, 새로이 담배를 무는 이가라시의 행동을, 까만 콩알 같은 눈이 빤히 바라본다. 꼬리를 낮게 살랑이며, 담배에 불 붙이지 않고 그저 물고만 있는 모습을, 까만 눈동자가 깜빡이며 응시한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휙 고개 돌려 게임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엘이 말했다.
"얼마든 달아두셔도 좋지만, 그 빚을 이유로, 산책을 방해하지만 말아주세요."
감사를 빚으로 달아두겠다는 말을, 평소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받아넘겼다. 앞서 두 번이나 그랬던 전적을, 은근히 언급하듯이, 말하고 무릎 위 여우를 대신해 스틱을 움직여준다. 캐릭터 선택이 끝나고 라운드로 화면이 넘어갈 적, 이 게임을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이가라시의 말엔, 작게 웃었다. 웃기만 하고 말은 없었다. 곧바로 게임이 시작되기도 했고.
신식보다는 고전에 가까운 그 대전 격투 게임은, 나름대로 깊이도 있고, 기술도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잔뜩 들뜬 털뭉치, 작은 루는 이가라시의 캐릭터가 접근하자 열심히 버튼을 누르며 대응했다. 스틱 조종은 엘이 하고 있었는데, 마치 여우의 의도를 다 알듯, 적절하게 움직여주어 나름대로 볼 만한 접전이 이루어진다. 서로의 캐릭터 체력이 비슷비슷하게 떨어져가고, 아마 서로 한 방만 남긴 시점에서, 여우는 기술을 쓸 것처럼 버튼을 차례로 연타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엘이 스틱을 움직여, 주었어야 했지만.
"흐, 이칫!"
돌연 그 타이밍에 재채기를 해버려, 기술을 쓰기는 커녕 작은 루의 캐릭터는 이가라시의 캐릭터에게 막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단숨에 승패가 갈린 화면을 보며, 작은 루의 조막만한 주둥이가 떡 벌어졌다. 그리고 화면을 한 번, 엘을 한 번 돌아보며 이게 뭐냐고 항의하는 듯이 움직였다. 그런 여우를 보며, 엘이 태연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만, 꼬리가 너무 간지러웠어요. 게임 내내, 살랑이고 있었는걸요?"
게임에 몰두한 작은 루가 바짝 세운 꼬리가 엘의 코를 간지럽혀서, 라는게 재채기의 이유 같았다. 하지만 요 작은 여우는 진 것이 분했는지 엘의 무릎 위에서 폴딱폴딱, 뛰어대는 것도 모자라 조그만 뒷발로 엘을 팍, 걷어차며 뛰어내려 저 멀리로 우다다 달려가버린다. 그 반동인지, 엘의 상체가 기우뚱, 이가라시 쪽으로 흔들린다. 피하지 않는다면 체구에 비해 가벼운 압박감이 그의 팔에 잠시 느껴졌을 것이고, 피했어도 엘 혼자 기기를 짚어 몸을 지탱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엘은 웃고 있었다.
"아하하, 하하, 어쩜..."
웃음 뒤에 따라붙은 말은, 혼잣말, 아니, 숨을 내뱉는 듯 해, 이가라시에게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딱히 들으라 한 말도 아니었으니, 아무렇지 않게, 자세를 추스른 엘이 이가라시에게 시선을 주었다. 곱게 휜 눈매 속 눈동자에 유난히 푸른 빛이 짙었다.
"부탁은 한 판이었으니, 이제 홀로 느긋히 즐기시길 바라요. 이가라시 씨. 빚은, 어느 때에든 편히, 요구하러 오셔도 된답니다."
용건이 끝났으니 더는 볼일 없다는 것인지, 엘의 말투는 자리를 파하는 그것이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스윽, 일어서는 것도 그렇다. 엘은 고개를 돌려, 여우가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거나, 더 말을 걸지 않는다면, 저 푸른 실루엣은 고개 스윽, 숙인 뒤에 멀어질 것 같았다.
엘의 말에 이가라시가 담담한 목소리로 지지 않고 대꾸하면서도 게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번이나 마주쳤던 이유도 순전히 우연이지 않나. 잠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입밖으로 내지 않은 이유는 크게 없었다. 예의바른 태도와 어투를 사용하는 것과 생각을 입밖에 내지 않는 건 같은 맥락이라는 게 이유라면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마주친 두번도 홀로 휘적휘적 유령마냥 떠돌아다니기도 했지. 이가라시는 자신의 캐릭터가 여우가 조종하는 캐릭터에게 기술을 맞자 물고 있던 각련을 고쳐물며 스틱과 버튼을 움직였다. 서로의 캐릭터가 서로를 때리며 접전하자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하나 뿐인 안개 낀 녹색 눈동자가 슬며시 찌푸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상대인 이 조그만 털뭉치는 인외의 종족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면 스틱을 조종하는 엘의 분신이던가. 온갖 것들이 일어나기 일쑤인 시즌스 킹덤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엘의 실수-그걸 실수라고 할 수 있다면-에 기술을 쓰지 못한 캐릭터가 빈틈을 크게 보이자마자 스틱을 잡은 이가라시의 손이 움직이고 빠르게 버튼 두개를 동시에 연타했다. 이가라시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면서 상대 캐릭터가 쓰지 못한 필살기 기술을 선보였고 접점의 끝을 보였다. YOU WIN 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큼지막하게 떠오르고 이가라시는 스틱을 쥔 손을 떼고 흘끗 여우의 모습을 바라봤다.
곧 하나 뿐인 녹색 눈동자는 격투 게임의 화면을 바라봤지만 그또한 잠깐이었다. 여우의 행동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엘의 상체가 제쪽으로 기울어지는 걸 봤는지 이가라시가 짧게 눈가를 찌푸리며 엘의 상체가 자신에게 닿기 전 어깨에 살짝 붕대로 감아둔 손을 올렸다가 떼어냈을 것이다.
"잠깐만."
여우의 뒤를 쫒으려는 듯 일어서는 엘을 향해 이가라시는 여즉 물고 있는 각련 끝에 불 붙히며 청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이거, 그 쬐끄만 털뭉치가 관심을 가졌던 거. 난 필요없으니까 가지든. 아니면 버리든지 해."
달큰한 각련 연기가 게임 센터에 퍼지고 주머니에서 꺼낸 키링을 대전 게임 버튼 위에 올려놓은 뒤, 이가라시가 껑충한 몸을 일으켜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가라시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엘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예정에 없던 만남의 자리는 그 끝에도 예고가 없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우연이란 흥미로우며 성가시노라, 엘은 생각한다.
인사와 함께, 일어섰던 엘은 부름에 멈춰 이가라시를 보았다. 먼저 일어선 탓에, 푸른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 이가라시의 손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주머니를 뒤지고, 키링을 꺼내놓는 것을 눈으로 쫓는다. 그리고 일어난 그를 따라 시선이 올라갔다. 한결같은 미소가 선선히 말했다.
"그럼, 이가라시 씨가 주는 것이라, 하지요."
덩그러니 놓인 키링, 그것을 엘이 갖지도, 버리지도 않고, 작은 루에게 주겠노라 했다. 그가 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엘은, 하얀 손을 뻗어 키링을 챙겼다. 앞서가는 이가라시를 붙잡는 일은 없었다. 한 손에 고이, 키링을 들고 섰던 엘을 움직인 건, 재차 들린 목소리 때문이었다.
"네, 이전날, 인사는 미리 드렸답니다. 잠시나마, 감사했으니."
담담히 말하는 엘은, 아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단지 조용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뜰 뿐이었다.
그 뒤, 엘에게서 다른 말은 없었으니, 그대로 대화는 마무리 되지 않았을까. 다만 이가라시가 나갈 적, 로비 한켠에서, 아장대며 손님들의 귀여움을 받는 하얀 여우가 보였을 것이다. 여우는 자그마한 몸으로 한껏 제 예쁨을 자랑하다가, 돌연 이가라시의 앞으로 달려나와, 그의 앞에서 꼬리 두어번 살랑이고, 귀를 쫑긋쫑긋 하고, 그를 지나쳐 다시 달려간다. 토독토독, 앙증맞은 발바닥 소리와 티링티링, 방울소리 연달아 울린 끝에는 작은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돌아보지 않아도, 여우가 누구에게로 갔을지는 눈에 선했을까.
그래도 혹시, 소리에 이끌려 돌아보았다면, 희고 복실한 털뭉치를 안고 바라보며 무구한 함박웃음을 지은 엘이 있었겠지만.
스카우트는 사신의 눈에서 거주하던 선지자 중 하나가 직접 설립한 이후, 50년 전 대전쟁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며, 그 이후에도 혼란의 시기를 위해 직접 움직이던 역사가 깊고 영광스러운 조직입니다. 스카우트Scout는, 실제로도 시즌스 킹덤의 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즌스 킹덤, 나아가 정부의 동향을 예측하고 파악하는 등, 섹터의 위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때로는 시즌스 킹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예측하곤 합니다. 여러 섹터에서 움직여야 하는 영향 때문인지 원로 조직 중에서도 대표 조직과 가장 허물없이 지내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도시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면 활동하지 않는 원로 조직의 특성상 주요 업무는 없다시피 하지만 대외적인 업무는 농땡이... 입니다. 첩보라기엔 리큐르가 혼자 다 해내고 있어 잘 하면 녹을 받아먹을 수 있는 개꿀 날먹 조직이란 평가가 있습니다.
《Winter Adventure》 - 대표 조직 《Whiteout》
화이트아웃은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도시의 정의를 바로 세운다'라는 3가지 규칙을 기반으로, 원로 '리큐르'가 선발한 조직으로, 현재까지 바깥 정부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일을 맡는 명실상부한 윈터 어드벤처의 왕입니다.
이들은 타 조직과 달리 시즌스 킹덤의 대전쟁 이전부터 살아오던 '일반인 단체'로 시작하였으며, 대전쟁 이후 이종족의 자유를 외치다 탄압되어 들어온 바깥 사람들과 융합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화이트아웃은 전 섹터를 돌며 전면적인 전투와 바깥 정부의 스파이 색출 등, 전체적인 시즌스 킹덤의 동향을 주시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비상시에 활동하는 원로 조직'과는 명확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군대와도 같은 상하관계가 존재하되, 그 선이 임무가 아니라면 굉장히 옅다는 점입니다. 윈터 어드벤처의 자유로운 특성상 기인된 점도 있으나 본디 일반인 단체로 시작했던 점의 연장선입니다.
현 조직의 수장은 코드네임 '스프리츠'로, '필중'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람을 아끼고 있으며, 원로 '리큐르'와 허물없는 사이로 추정됩니다.
해당 조직은 어텀 카니발의 대표 조직 라크리모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비밀결사로 이어진 연이 있노라, 라크리모사의 '예하'는 둘러대곤 합니다.
모든 면접은 회색 구역에 걸쳐있는, 한때 서커스나 소규모 공연을 진행했을 작은 극장 건물 내부에서 진행됩니다. 당신이 극장 내부로 들어서며 무대로 올라왔을 적, 어두침침하던 무대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그 정면으로 제각기 구조물이나 관객석에 자리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거대한 공 위에는 연두색 머리를 가진 엘프 남성이 당신이 아닌 손에 쥔 꽃 한 송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중그네 위엔 옥색 머리를 가진, 전통적인 차림의 남성이 아슬아슬하게 서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관객석에는 얼굴을 베일로 가린 평범한 여성이 얌전히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무대 앞까지 쪼르르 다가와서, 당신을 쳐다보는, 산발이 된 흰 머리에 점퍼 차림의 사람이 입을 벌립니다.
"오늘도 멋진 신입이 들어왔어. 안녕?"
그러자 꽃에 집중하던 남성이 고개를 듭니다.
"아, 왔군요. 적당히 뭐, 재주라도 볼까요?" "역시 아둔한 것이로고. 그렇게 대충 할 거면 왜 왔나?" >"당신이 옳다구나 설치는 꼴은 못 봐서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이 두 사람의 눈이 살벌하게 맞더니만, 여성이 얌전히 모았던 손을 들어 앞에 놓인 목제 판 태블릿을 건드리자 삽시간에 싸움도, 소란도 조용해집니다. 아마 당신에 대한 인적사항이 적혀있겠지요.
"저 두 머저리의 이야기는 신경 쓸 필요 없단다. 그래, 자기 소개를 들어볼까. 내가 이 도시에 왜 왔는지, 어떤 존재인지..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네 존재를 증명해보렴."
그 남자는 방독면을 쓴 고개를 숙이는 듯 하다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숨소리만이 선명하게 침묵 사이를 가로지르며 어두운 그림자에 시선마저 삼켜질 쯤 낮고 이질적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지옥에 있어야 할 것은 악마인 모양이라. 다만 악마라도 필요로 해 준다면 역병을 몰고 찾아오겠다 생각했을 뿐이야. 백명이 돌을 던지더라도 한명이 구하고자 한다면 그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도 생각했을 뿐이지."
군화발소리가 선명하게 울린다. 그것이 몰고 오는것이 비단 승리와 진보만이 아님에도 있어야 할 곳이라는 듯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진실을 파고드는 것이 펜 뿐이 아니듯, 그의 나이프가 파고들 자리에는 선명한 악의가 진실되게 자리했으니 이를 거둬내는 것은 적을 마주한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그는 군인과 다르지 않은 심장을 가진 채 왜곡되어버린 거짓을 갈랐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런 그가 할수있는 것 또한 우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
"나는 죽음을 몰고 다니는 의사다. 환자가 있는곳에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도리, 삶의 쓰임을 다하기 위해 불명예를 무릅쓰고 찾아왔다. 목표는 가장 적은 죽음을 만드는 것, 오직 그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맹세하며 걸었던 인생이니 남은 삶 역시 그것으로 쓰이다 죽겠어."
설령 그것이 역병을 부른다는 오명으로 남더라도, 의사는 여전히 꽃 향기를 맡으며 죽음을 목도한다. 수 년간 그러했듯이 사람 살리는 칼로 살갗을 가르고 피를 흘리기 위해 그는 지옥으로 들어섰다. 백명의 악인이라도 한 명의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환자이기 때문이었다.
위스키는 무감한 눈으로 브라운관 너머의 뉴스를 보았다. 최근 라스베이거스 살인마를 모방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며, 라스베이거스 살인마와의 연결점은 찾을 수 없다고. 아무래도 근래 흉흉한 일이 한번 있었다 보니, 이번의 일과 덧붙여지면 사람들의 입소문이 다시 불이 붙지 않을까 싶다. 이번 일은 좀 가혹하지 않나? 브라운관에서 시선을 떼자 가면 쓴 누군가 얌전히 지팡이에 손을 모은 채로 화면을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네 소문으로도 이미 생겨난 의심을 지울 수는 없나 보구나." "내려진 시련이지요." "시련이라."
내게 숨기는 것이 있는 건 아니고? 위스키의 덤덤한 읊조림에도 가면은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요, 제가 어찌 원로를 능멸하겠습니까."
위스키는 시선을 떼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믿어줘야지. 그나마 가진 신뢰를 깨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거니와, 자신이 아는 라크리모사의 '예하'는 여타 다른 대표 조직의 사람들처럼 모험을 하거나, 규칙을 바꾸려 들거나, 사고를 치지 않는 녀석이니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위스키 님께서는."
예하가 입을 떼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살인마가 싫지는 않으신가 봅니다." "어찌 그리 단언하니?" "제 좁은 식견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어떠한 누명이라도 씌워서 내쫓았을 테니까요." "……글쎄다." "솔직하지 못하시긴." "그런 말은 내 남편에게나 듣고 싶지 네겐 듣고 싶지 않단다." "뭐, 알겠습니다."
신께서 정하실 일이니. 예하는 지팡이를 매만지며, 화면이 돌아가 바깥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라스베이거스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돈다. 가면 속 입술이 부드럽게 휘었다.
재밌네, 재밌어……. 저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라스베이거스 살인마, 도미닉 매디슨에 대한 '바깥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어텀 카니발에도 여러 범죄자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나올 일은 아니라는 의견과, 그래도 이 도심에서 모방 범죄가 일어나니 어떻게든 해야 하지 않겠느냔 의견이 서로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라크리모사는 당신에게 '현재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설정을 잘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현재'는 호의적입니다.》
과거를 인정하는 태도가 선선하다. 드러냄에 거리낌 없다. 당신의 수줍은 말에 여인은 잠시 망설인다. 쉽고 달곰한 답을 줄지, 혹은 조금 쓴 말을 할지 고민되어서다.
“간솔히 말씀드리자면, 장담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
짧은 고민 끝에 고른 것은 쓴 말이다. 여인은 손돌라에서 내리기 직전, 허리를 숙여 당신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당신의 귓가에 겨우 들릴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인다.
“이 말을 한 것을 제 자매가 알면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후후, 작은 웃음소리가 끼어든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매가 무어라 할지 선하다. 분명 그런 부끄러운 사실을 왜 남에게 떠벌리고 다니냐 한 소리 하겠지... 하지만 이런 이에게 이야기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면, 분명 잘한 일이라며 수긍하고 말 테다.
"...자매가 꼭 그리 조절을 잘하지 못했답니다, 리큐르처럼요.”
말을 마친 여인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허리를 바로 하고, 곤돌라 바깥으로 발을 내디딘다. 당신과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댈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비밀이라 하듯.
서늘한 한기가 스며든다. 여름에 사는 이에게 겨울은 익숙지 않다. 두텁게 껴입는다고 껴입었음에도 피부가 시리다. 왼팔을 문지르던 여인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신을 바라본다. 알아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려다, 손이 내밀어지자 움직임을 멈춘다.
향하려는 곳은 사신의 눈이 있는 방향...혹은 사신의 눈.
출입이 금지된 곳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당신이 원로인데 그런 사항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진다. 그보다는 사신의 눈과 엮인 낭설이 신경 쓰이는 탓이다. 그런 헛소문을 믿냐 묻는다면... 글쎄, 여인은 미신을 제법 믿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점을 칠 일도 없었겠지.
아지랑이 꽃이 만발한 곳이 있다. 꽃대는 노란색이요, 꽃은 초록색과 하늘색, 심지는 분홍색이거니와, 하늘은 연보라색인 기이한 공간. 미지의 존재가 기거하는 공간은 늘 그렇듯 이지러져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곤 했다. 미지의 존재는 이런 공간을 영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 또한 살아가는 것은 일반 킹덤의 시민과 같은데 왜 이런 것이 생겨났는지는 모른다. 그래, 이 도시 사람들의 의중을 알기 어렵듯이. 혹은 의중을 알면서도 외면하듯이.
"……그래서."
미지의 존재는 고개를 돌렸다. 목을 매달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전 겨울의 원로, 보드카가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기 위해 직접 메르헨의 중심에 발을 들일 줄은 몰랐는데.
"당신이 여기 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선사해 준 작은 루까지 남에게 줘놓고, 염치도 없지." "……작은 루가 선택한 거였어." "그 선택 때문에 당신이 초래한 결과는 생각하지도 않나 봐." "…왜 그러는 거야." "뭐가." "유달리 봄의 왕에게만 박한 거. 루시드 드림에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미지의 존재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이제 보드카를 보고 싶지도 않단 듯.
"박한 게 아니라, 난 자비를 준 거야, 루." "……무의식을 들여다볼까 겁이 나는 거야?" "아니."
꽃이 전부 타들어가고 하늘이 붉어졌다. 미지의 존재가 상냥하게 속삭였다.
"내가 그 존재를 겹쳐봐서 그래. 봄의 왕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리가 없는데도, 그 존재가 나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자칫 내 이해를 억지로 들이밀까 봐. 나는 배려하고 있는 거야. 다가오지 말라고. 상처 입지 말라고."
당신도 알잖아. 아니, 당신이 먼저 말했잖아.
"넌 미쳤어. 라고. 미친 사람이 다가가서 뭘 하겠어." "……나는, 그게." "선택과 간원은 다른 법이지. 이해해. 그러니 나가주지 않으련."
축객령을 거부할 권한은 없는 거 알고 있지?
《미지의 존재가 엘과 에얼을 주시합니다.》 《…루시드 드림에 출입하지 않는 것을 권장했습니다만, 가끔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맛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습니까?》
값을 지불할 수 있을 능력만 된다면 그 사람이 다른 구역의 사람이든, 제 철천지 원수든 상관없는 것이었을까. 돈을 준다는데 거절하면서 사람 가려 받는다니, 돈을 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생각하며 마젠타는 당신 바로 앞 소파에 앉으며 제 다리를 꼰다. 그리고서 수첩의 내용을 확인하니, 단정한 필체로 적힌 물건들은 흔하디흔한 것들이었을까.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마젠타는 당신을 살피듯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한다.
"이거랑 이거는 지금 당장 드릴 수 있어요. 나머지는 글쎄. 삼일 정도면 될 것 같고. 가격은.. 다 해도 삼백 티켓도 안 되겠네요."
수첩에 있는 리스트 중 물품 몇 개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이며 말한 마젠타는 당신의 변명과 웃음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다. 고작 이것들 가지고 정보 이야기를 꺼냈을 건 아니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부터 그 웃음까지 다 수상쩍은 것일까.
"아직 젊어 보이는데, 뭐... 그렇다면야. 그래서 이것으로 끝은 아닐텐데. 다음으론 뭘 원하시나요?"
그 녀석의 냄새가 나는데. 언제라도 리큐르에게 상냥하던 마오타이지만 오늘은 그러하지 못했다. 자신이 직접 뽑은 검이 반 죽여놓은 눈엣가시가 겨울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리라.
"사, 살려." "대체 왜 그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무슨 의도지?" "살려─"
피가 튀었다. 마오타이는 대낮, 여름 섹터 한복판에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한 자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엇하고 있나?"
살아남은 자들이 명줄 오래 붙드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 생각하는데.
좌중이 흩어진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오늘도 비정한 도시에서 아무런 쓸모 없던 별 하나가 진다.
《카타스트로피를 향한 직접적인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심과 받아들임, 그 절반으로 극명히 나뉩니다.》 《이봐, 그 이야기 들었어? 죽어가는 여름 조직의 살수를 살리고 떠난 사람.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가 없어! 단순한 호의인가? 아니야, 이 도시에 새로운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녀석일지도 몰라. 암만 원로의 비호를 받는대도 지켜봐야 하지 않나?》
겨울이란 것은 시린 만큼 어두워서 누구든 고독하게 한다. 그 사무침이 가슴 속 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에, 긴 겨울을 홀로 견딤은 가혹하단것을 알고 있어서 더욱 고독을 선명하게 느끼는 탓이었다. 때문일까, 네온사인이 유난히 선명했다. 겨울속을 배경으로 그 거리는 너무나 선명해서 그 사이사이의 어둠조차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보였기에 지나칠 수 없이 쓰러져 있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고 말았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흉내내는가. 아니면 죽은 사람을 동경하는 건가."
잠을 깨우기 위한 말 치고는 꽤나 심오했다. 어쩌면 단순한 화법 따위를 잊을 정도로 생각이 많아질 사건을 겪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생각이 많은 자는 겨울에 먹혀질 것을 모르는지, 구태어 그는 겨울에서 조차 죽음을 맞서려고 들었다. 혹은 그야말로 죽음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의사라고 해도 결국 피를 보는 일이라면 살리는 피와 죽이는 피의 다를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뒤집어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는 게 좋을텐데. 추운 날 죽으면 영혼은 따뜻하리라고 장담 못하니까."
일으켜세워 쓰러진 자를 보니, 검은 머리와 함께 여우같은 낯이 눈에 띄었다. 추위를 느끼지 않는 듯 보아 동상인 듯 싶었으나, 단순히 취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되었건 이런 얇은 옷으로 겨울 섹터에 오다니 대단한 용기였다. 혹은 객기였거나. 그는 별달리 신경쓰이지 않다는 듯이 그의 체온을 확인한 뒤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쓰러진 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몰랐지만 단순한, 자신에 대한 정보라던가 감각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그는 어느새 그를 업고서 걷고 있었다.
"제정신이든, 아니든, 다음부터 겨울 바닥에 쓰러져 있진 마라."
아무래도 의무감으로 인한 말이었지만, 걱정처럼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향하는 방향을 보아 여름 섹터로 가는 듯 했는데, 구태여 말하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것은 그가 온몸을 가리고 있고 체온이 낮은 편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돌아보지 않고, 돌아볼 기색도 없이 묵묵하게 걷는 그가 조금 기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겨울 바닥에 쓰러졌던 이 보다라면, 제법 평범해 보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으응...~"인기척이야 "뭐야아~" 방금전까지 있던 꽃밭은 어디갔어? 마오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천천히 두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판단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낯선 사람의 등에 업혀있다는 걸 이제 알았나본데?! 누구냐고 물어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거든~? 있잖아~ 너 누구야아..~?"
마오가 고개를 기울이듯 움직였어. 그는 늘어지게 하품했습니다. 너 죽었다고 믿는 게 아닐까 "나 살아 있거든~? 으응...~ 어디보자~"
손짓 하자, 당신이 그를 업고 걸어 온 방향에서 담뱃대 하나가 마오의 손에 잡혔다. 마오는 그걸 입에 물었고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어. 후욱, 흐리멍텅한 눈이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그는 상대가 일어난 걸 알면서도 그다지 내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동상 환자는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보낼 생각은 없던 것이고, 깨어난 그의 상태를 보더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는 전혀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 대신에 계속 걸었다. 묵묵히 걷다가 뒤에도 눈이 달렸는지 이렇게 대답했다.
"약으로 체온을 올리는건 일시적인 방법일 뿐, 장기적인 동상 방지에는 도움이 안 될 텐데."
스스로 걸어왔던 사실도 잊을 정도로 약에 취해있다는 사실에 그놈을 더 내려줄 이유가 사라졌다. 그저 무심히 나아가며 비치는 네온에 그의 회색 머리카락이 색색으로 변했다. 그것처럼 어쩐지 그는 무색무취하게 사라질 것 같았다.
"살았어도 산 것 같지 않으니, 죽여도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삶의 무게란 체중처럼 무거워서 가끔씩 버티기 힘들었으나, 결국 업힌 자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기도 해서 그다지 춥지 않다고 느끼고 마는 것이다. 삶이란 긴 겨울에, 그의 사명 따위를 버티게 하는것이 사소한 체온임을 아마 사람들은 알지 못하겠지.
"여름 섹터까지 가는 걸 봐야겠어."
그는 무겁지도 않은지 그놈을 업고 미동 없이 나아갔다. 겨울의 한기가 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업고 있어 체온이 높아졌나 하면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 듯 하고, 체력이 좋은가 하면 그의 몸은 지독히도 체온이 낮았다. 기이할 정도로 참견이 많고, 차가운 사람은 말수가 많은 주제에 대화는 통하지 않는 놈이었다.
"으~응~ 괜찮아아~"정말 괜찮지 "그렇다니까~"저 사람에게 뭔가 뜯어내게? "아~니~ 이것도 나쁘지 않아~"업혀서 가는 거 오랜만이네 계속 업어주잖아 마오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비뚝 기울였다가 이내 히죽 웃었다. 그의 흐리멍텅한 두 눈이 당신을 응시하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의 입에서 연기가 흩어졌어. 기분 좋아, 마오?야옹. 아편 같은 사람이네 "그러네~"
마오는 두 눈을 끔뻑이다가 여름이라는 말에 낮게 킬킬 웃었다. 뭐야아~ 알고 있어~ "뭐야~ 내가 여름 사람인 거 알고 있네~"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이상해~? 뭐가~?"옷을 그렇게 입고 있잖아 "아~ 그러네~"
>>257 <밍메이> 서투른 시절이 있으니, 이 시간도 언젠가는 흐르겠지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리큐르는 얌전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속닥속닥, 비밀을 얘기해준 당신 덕분일까요. 리큐르의 점퍼 뒷면이 살짝 붕 뜨다가, 살랑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랬구나……."
자매가 있었구나. 극복했냐고 물어보기엔 누군가의 과거는 함부로 묻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특히 이 도시에서는요. 거기다 비밀이라고 했으니,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좋은 친구, 비밀 친구.
……뭐, 각설하고.
그렇죠, 원로인데 어찌 사신의 눈에 출입하지 못하겠어요. 당신이 손을 잡았을 때, 리큐르는 상황과 맞지 않게 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저 인간의 손 닿는 것이 좋다는 듯.
"잠깐 눈을 감아주면 돼, 사신의 눈이니까, 감아버리면 되는 걸. 걱정 말아, 리큐르가 이끌어줄게."
그렇게 당신은 사신의 눈 안으로 들어섭니다. 헌티드 맨션은 공포감을 극대화 하기 위한 장소이니, 발소리와 소리는 음산하게 울립니다. 뚜벅, 뚜벅, 왼쪽으로 꺾는 듯한 느낌, 조심조심 오르막을 오르는 느낌, 오른쪽, 그리고 얼마나 더 꺾었을까요.
"이제 눈 떠도 돼."
당신이 마주한 것은 존재입니다. 존재는 배를 위로 하며 뒤집히듯 허공에 누워있습니다. 존재는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흙으로 빚은 듯 굴곡은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인위적입니다. 존재의 하반신은 없습니다. 대신 붉은 가지가 마치 오래 된 나무처럼 뻗어나왔고, 그 뻗어나옴의 길이가 넓은 방을 꽉 채울 정도입니다. 안드로이드라기엔 인간이고, 인간이라기엔 그 비현실성은 넘어설 수 없는 벽과도 같았습니다. 존재가 감긴 눈을 뜹니다. 마치 로봇처럼 인위적인 모양새로.
"작은 루…… 새로운 벗을 데리고 왔구나." "안녕, 미네르바." "나의 선택을 도와줄, 새로운 벗인 걸까……."
차디찬 허허벌판이 있었다. 윈터 아일랜드에는 유달리 개발이 덜 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호기심 많은 괴짜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자 있던 것을 없앤 결과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 장소엔 그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겨울은 그만큼 돌아버린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굳이 섹터 간의 살벌한 대화에 끼어들어 죽으러 갈 사람은 없었으니.
총성이 난사하듯 울리고, 제멋대로 쏘아낸 총알의 궤도가 제멋대로 휜다. 총알은 누군가를 맞추기 전까지는 공중을 그렇게 활보했다. 표적이 된 대상은 지팡이를 위로 올렸다 툭, 하고 땅에 댄다. 활보하던 총알이 일순 멈추나 싶더니 보이지 않는 두 힘이 마주하듯 그대로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금발의 여인 뒤로 나타났을 때, 총알이 표적이 있는 곳으로 다시 쐐기처럼 날아들었다.
"젠장."
여인이 중얼거리자 총알이 목전에서 허무하게 후두둑 떨어진다.
"역시 잔머리로는 못 이기겠군." "지혜라고 부르지요." "뭐라는 거야, 사이비 교주 새끼가." "그런 사이비랑 우호관계를 맺을 정도로 상황이 안타까운 것은 누구더라?"
여인이 욕을 지껄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서, 나를 왜 겨울까지 행차하게 만들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봄의 왕 때문에." "봄의 왕이 왜? 같은 왕끼리 뭐, 사고 칠 일은 없는데." "아니, 그게 아니야. 수상해."
하늘에 연기를 수놓는다.
"무엇이 수상합니까?" "내 원로를 어떻게 홀린 거지?" "음?" "작고 하얀 털뭉치도 그렇고, 우리 작고 귀여운 원로님이 허구한날 엘과 에얼은, 엘과 에얼은, 내 봄 친구는! 정말이지... 수상해,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홀렸나? 뭘로 홀렸지? 그 비법이 뭐지?" "……스프리츠." "뭐." "그깟 멍청한 얘기를 듣기 위해 내가 기도시간도 빼먹고 왔다는 점이 개탄스럽습니다."
다만 흥미롭긴 하군요. 가면 쓴 존재가 그 너머로 히죽 웃었다.
"신의 피조물을 가지고 있으니……." "미친 새끼." "마음껏 미쳤다 하십시오, 스프리츠. 그래봤자 신께서는 모두 포용하실 터이니."
《엘과 에얼에게 어텀 카니발의 왕 '클라레'와 윈터 어드벤처의 왕 '스프리츠'가 관심을 가집니다. 클라레의 경우에는 흥미, 스프리츠는 미약한 시기와 질투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망령 하나가 꺼지면 이번엔 다른 존재가 온다. 쉬고 싶은데 왜 쉬질 못하는가, 하물며 왜 왕도 아니고 같은 비룡회 내부 사람인가…….
"쉬고 싶구나." "이가라시 말입니다."
비연의 정중한 물음에 마오타이는 이마를 팍 쳤다. 들은 척도 안 하는 배은망덕한 녀석, 누가 저렇게 키웠지? 아, 내가 저렇게 키웠지.
"이가라시는 또 왜. 그 아이가 비룡회를 그만둔다니?" "아뇨, 그 아이를 정말……." "연모하는 것도 아니고, 후임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자식도 아니고, 대 미지의 존재니 뭐니 그런 걸로 키우는 것도 아니다." "누가 그런 걸 물어본답니까?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물론 자식 같은 건 이해합니다. 저도 가끔 보면 잘 키운 자식 같아서 뿌듯하지 뭡니까."
마오타이는 다시금 이마를 팍팍 쳤다. 이 염병할 것이 일부러 뜸을 들여 사람 놀리는 것이 느껴졌으니.
"그래서 뭐." "정말…… 마오와 같이 투입할 생각입니까?" "어쩔 수 없잖나. 곧 정부에서 크리처를 풀 것이라고 화이트아웃과 스카우트 쪽에서 정보를 입수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비연은 눈을 슬쩍 굴렸다.
"사실 두 사람의 합이 잘 맞을지 걱정입니다…." "전투에서는 합이 잘 맞을 걸." "어찌 그리 단언하십니까?"
마오타이는 턱을 괸다.
"내 옛 주인과 내가 함께 다녔을 때보다 나으면 그게 합이 잘 맞는 거지." "아."
《비룡회의 대주 비연이 이가라시에게 호의를 품습니다.》 《이가라시는 후속 이벤트에서 플레이어 '마오'와 함께 다닐 예정입니다. 굿럭!》
무릇 유명한 종합병원이라면 십이 넘는 층수와 수많은 병상과 병실과 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 종합병원-다루는 과목에 제한 없으니 그리 불러도 무방할 테다-인 약사여래의 병원은 비교적 소박하다. 작은 건물에 병상이나 병실 역시 많지 않다. 의사라곤 약사여래라 불리는 여인 혼자다. 그러나 약사여래의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마저 적지는 않다.
종일 붐비는 작은 병원은 빈말로도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 말하기 어렵다. 해야 할 업무는 과중하며, 돌봐야 할 환자는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주위를 배려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기꺼이 일을 하고자, 손을 보태고자 하는 이들은 넘쳐난다. 인력 부족이란 개념은 약사여래의 병원에서 존재치 않는다. 백인이 일의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성심을 바친다. 대관절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바라며?
선생님, 의원님.
저를, 제 자매를, 형제를, 부모를, 정인을, 사랑하는 이를...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 수많은 애원과 간청과 갈망이 뒤섞인 목소리들이 있다. 어리고 힘없고 비천하며 약하여 외면받은 이들. 그 누구도 손 내밀어주지 않던 자들. 다만 약사여래는, 그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 앞에 멈추어 섰다. 한낱 변덕으로부터 출발한 의미 없는 친절이라 하여도, 갈데없던 수많은 사람에게 있어 그건 분명 구원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였다.
소중한 이를 다시 품에 안겨주었을 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래는 그들을 바라봐주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던,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이곳에 그들의 존재를 증명해주었다. 흙먼지와 상처로 뒤덮인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들에게 있어 여인은 명백한 여래다. 그 등 뒤에 어떤 진실이 과거가 있더라도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불안정하기에 신의 존재에 매달리는 광신도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오늘도 병원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약사여래의 이름 아래 구름같이 모여든 이들을 품고.
유통 조직 바질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조직이 왜 중요한지 모르는 머저리도 많다. 가령 자신이 먹는 빵의 밀가루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오늘 손목에 찬 값진 시계가 누구를 통해 들어왔는지 깊게 신경 쓰지 않는 부류 말이다. 새삼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게 대다수다. 애초에 맞춤법 틀리는 사람도 허다한데 유통과정까지 머리에 담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그렇기 때문에 바질의 일원들이 '바깥'으로 나서는 특권이 왜 주어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비틀어 바질 자체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이봐, 꼬마야. 꽃을 파는 거니?" "네. 직접 접었어요!" "그렇다면 티켓을 그냥 주마. 대신 손님들에게 한 번씩 얘기해 주지 않을래?" "와아, 티켓이요? 좋아요! 뭘 얘기하면 될까요?" "네 삼촌이 바질에서 일하고, 바깥사람들과 여러 얘기를 한다고 자랑하면 된단다."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그게 정말이기 때문이지." "아뇨, 왜 마젠타를 괴롭혀요?" "응?"
자그마한 아이의 손가락은 반투명했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구나." "그러게나 말이다, 나쁜 사람이로구나."
어느새 아이의 뒤에서 나타난 존재가 분홍색 눈을 휘었다.
"내가 그깟 똘마니들과 얘기하라고 권한을 준 적은 없는데... 날 욕하는 것과도 같잖니."
잭. 존재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아이는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으며 동요를 불렀다. 뚝, 뚜둑,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뒤로 존재가 잭이라 불린 아이의 눈을 가려주듯 얼굴을 손으로 덮어 가리며 몸을 돌려주었다.
"여기도 나쁜 어른만 가득하니, 벗어나야겠구나. 그렇지?" "친구가 보고 싶어요. 엄마 아빠도요. 보고 가면 안 돼요?"
아가, 네 손을 보렴. 안타깝다는 듯 미지의 존재는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다. 목이 제멋대로 뒤틀린 시체의 몸 위에 종이로 접은 꽃이 얹히고, 두 존재는 사라졌다.
《마젠타를 향한 소문이 퍼지려다 저지 당했습니다. 코냑이 당신의 조직을 비호할 예정입니다.》 《우리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죠, 마젠타? 이제 저도 바깥에 조금씩 나올 수 있어요! 어서 보고 싶다. 오래오래 얘기하고 싶어요.》
카지노와 호텔로 이루어진, DTD의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넓은 방에, 휴식을 위한 가구 몇몇이, 벨벳 깔린 바닥 위에 배치된 공간. 드나들기 위한 입구도, 엿볼 수 있는 어떤 통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러 보이는' 그 방에, 한 명과 한 마리가 있었다.
"월요병은, 그러니까, 월요일만 되면 무기력해지는 증상이에요. 병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증후군에 가까워요. 그야, 월요일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검은 가죽이 덮인, 긴 소파에 누운 이는, 그런 얘기를 하며, 배 위의 하얀 털뭉치를 바라보았다. 하얀 옷 위에 납작 엎드려, 잔잔히 이어지는 쓰다듬을 받던 털뭉치, 작은 루가 시선을 느끼고 귀를 움직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푸른 눈이 곱게 휜다. 쓰다듬던 손이 잠시, 코끝을 톡톡, 건드려준다. 그리고 다시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여기에도 종종, 있는 모양이에요. 월요병을 앓는 사람이. 그야 사람 사는 곳이니, 그럴 만 하지만, 여긴 킹덤이지요. 없던 것도 생기고, 있던 것도 없어지는, 시즌스 킹덤. 정말로, 월요일에만 아픈 병이, 생겨났을 지도 모르는 곳이지요."
얘기 도중, 부스럭, 고개를 움직이자, 소파에서 검푸른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바닥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할 생각은 없다. 고개를 돌려, 판판히 막힌 벽을 잠시 응시하다가, 배 위에서 탁탁탁, 두드리는 신호에 시선 돌아온다. 저를 두고 어딜 보냐고, 턱 치켜들고 확실한 불만과 의견을 표하는 작은 여우의 행동에, 가벼운 웃음 흐드러진다.
"응, 알았어요. 한눈 안 팔게요. 작은 루가 여기 있는데, 눈 돌린 내가 잘못했네요."
그 말에 작은 루는 만족한 듯, 다시 턱 내리고 늘어졌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작은 이를 소중히 보듬어주며, 조곤히 중얼거린다.
"그래서 말이지요. 편지를 써볼까, 해요. 직접 전해도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손수 쓴 편지를, 그와 그녀와 또 다른 그 혹은 그녀에게.
"그 전에, 같이 간식 먹을까요? 작은 루. 오늘은 말린 사과를 준비했어요."
간식이란 단어에 하얀 귀, 하얀 꼬리 발딱 일어선다. 들썩들썩, 작은 몸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자, 품에 고이 안고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졌던 긴 머리, 하나로 슬그머니 모이고, 흰 옷자락 소리 없이 끌며 그 방을 '나갔다'.
이 후, 세 통의 편지가 DTD의 집무실로부터 발송되었다.
한 통은 코냑에게,
[안녕하신가요? 새삼스럽지만, 문득 생각이 나 몇 자 적어보네요. 제가 봄의 왕이라 하나, 타고나길 부족한 몸인지라, 신경쓰이게 하는 일이 잦겠지요. 이를 묵묵히 보아주시는, 코냑님의 노고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조만간, 함께 차를 마시는 자리를, 마련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생각 있으시면, 답을 돌려주셔요. 이만 줄일게요.]
또 한 통은 리큐르에게,
[친애하는 벗, 작은 루. 겨울은 많이 추울 텐데, 옷은 잘 입고 다니는 중일까요? 그런 벗에게, 주고 싶은 것을 하나, 준비해 두었답니다. 맛있는 과자도, 물론 늘 준비해두고 있지만요. 시간 날 적에, 한 번 들러주어요. 나는 늘 벗을 생각하고 있어요. 염려와 정을 담아. 봄의 벗으로부터.]
마지막 한 통은...
[안녕하신지요. 이리 서신을 띄운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한 번 뵐 수 있을까 함을 여쭙기 위함이어요. 보잘 것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대접을, 해드리고픈 마음이 들었거든요. 저 여기 들어온 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제대로 인사 드린 적도 없으니까요. 부담스러우시다면, 그 답을 답신으로 보내주시는 것으로 만족할게요. 부디.]
>>346 마오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에도 그는 묵묵히 걷고만 있었다. 미친 소리라며 무시하는 것인지, 안타까워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채로 마오를 업은 등은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다. 종종 잔잔한 바람이 냉기를 싣고 사부작거릴때면 그가 어째서 겨울의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눈과 가까운 색의 머리카락이 작게 흔들렸다. 방독면에 가려진 그의 모습조차 겨울을 연상케 하리란 상상을 가지게 할 만큼, 희미한 존재감이었다.
"약은 자주 하고있나? 중독되길 원하는 것인지, 중독으로 회피하는지. 그쪽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모르지만, 목적을 가지는게 좋을걸."
긴 침묵 끝에 돌아온 엉뚱한 답에는 '목적을 가지고 약을 하라'는 이상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이름과 마오가 느낀 의문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에 냉기 속에서 입김 하나 뿜지 않는 채 저벅저벅 걸었다. 겨울의 한산함에 선명하게 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고 그로인해 어디쯤 걸었는지 모르더라도 나아가고 있음은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입김이 나오지 않는채로 말소리를 냈다.
"치료는 의사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거니까. 길에서 자는 일은 재고해봐. 다음에도 본다면 귀찮더라도 같은 말을 하겠지."
그는 무심결에 '어린애 같군' 이란 생각으로 마오를 인식했다. 이렇게 업고 가는길도, 추위를 무릎쓰는 순간도, 어쩐지 옛 생각이 나게 하는 것들이라고도 생각했다. (그에게 더 이상 추위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가장 마오를 떠올리게 되는것이 습관적인 말들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으로 인한 것들이란 것과 마모된 감정에 흔적을 남기는 것 또한 사람임을 알아채게 된 것도 같았다. 마오가 형편좋게 (혹은 나름의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지) 업혀 있는 동안에도 계속 걷던 그는 나름대로의 불만 혹은 조언으로 말을 천천히 뱉으며 방독면 안쪽에서 울리는 낮은 소음을 냈다.
"여름섹터에선 어떻게 지내나? 처음 봤던 마오타이는 쉬운 상대가 아닌 듯 보였는데."
진 마오가 잘 적응하는지를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눈처럼 가벼운 무게로 찾아왔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종류였다. 그래서 겨울 섹터에서 지내는걸까. 그 자체가 눈처럼 일순 스쳐선 모를 사람이라서. 체온마저 가벼운지... 업고 있는 내내 그의 체온은 달궈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클라레는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텀 카니발 내부가 뒤숭숭하던 것이 계속 떠올라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다. 누군가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 사건을 모방하고 있었다. 목적도, 표적도 없다. 그저 보이면 죽이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도미닉 매디슨의 짓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시선이 점차 좋아지지 않는다. 좋지 않은 일이다. 이 도시에서 의심이 싹트면 애먼 사람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 사람이 사라져야만 직성이 풀리지 아니하던가.
기실 클라레도 한번 의심을 한 적이 있었기에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그야, 알고 있으니. 어찌 어텀 카니발의 왕이 제 섹터 사람들에 대한 것을 모를까. 클라레는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다 가면 속의 눈을 느릿하게 치켜떴다. 제단 위에 올려진, 루시드 드림의 부서진 말 머리를 마주해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미지의 존재의 시선이 아닌 인간의 시선으로 보기로 했다. 계속 되는 살인 사건의 의도가 보이는 듯싶으면서도 흐리다. 의심하지 말라. 그렇지만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 떠올리곤 슬쩍 가면 너머 입술을 휜다.
"직접 행하시던 분이 어째서 이 시련을 내버려 두실까……. 그래, 내가 어떻게 알겠나. 신의 의중을 인간이 어찌 알겠어. 단지 까마귀가 날아다니는구나…… 조금 많이 날겠어."
까마귀가.
"이 어찌 그립고도 그리운 소리일까."
《일리야의 행보를 모방하는 존재가 설치기 시작합니다. 이는 섹터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미지의 존재가 당신이 보일 행보에 대해 단 한번 묵인합니다. 어텀 카니발의 왕 '클라레'가 의구심을 품습니다. 구스타보는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나랑 같이 다니면 좀 시선이 나아질까요?》 《……내 이름이 뭐였는지 잘 기억하고 있지, Mx?》
종교란 공통된 분모의 결집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으로 미지로부터 오는 공포를 이겨내고 집단의 생존력을 올리는 원초적인 갈망을 충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원초적인 갈망을, 단순히 믿음이 아닌 초월적인 힘으로 직접 충족시키면 어떻게 될까. 신도란 본디 기적을 행함에서 확신을 얻고 맹종하는 법. 가장 절박한 순간에서 본 기적을 누가 믿고 따르지 않을까.
때문에 어텀 카니발의 왕은 심기가 불편했다. 이 도시에 뒤틀린 사람은 많고도 많다지만 이 존재는 조금 궤를 달리했다. 어린아이처럼 순박하고 제멋대로인 면이 돋보이는 뒤틀림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하늘에." "그래." "해가 두 개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위스키는 이번 재판에 쓰일 증거를 하나하나 읽어보다 고개를 돌렸다. 성물을 건드린 간 큰 녀석이 또 나타나 바쁜 찰나에 무슨 소리람.
"뜨겁겠지. 서머 아일랜드보다 더." "그렇다면 해 하나를 지워버리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까?"
위스키가 그제야 예하를 정확히 마주했다.
"안 돼." "이단입니다. 존재가 준 섭리를 거스르는 이단입니다……." "여름과의 동맹을 깰 셈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저는."
예하는 가면을 벗고 눈을 정확히 마주했다.
"신의 이름 앞에서라면 언제든 떳떳합니다. 죽을 자는 죽어야만 하고 산 자는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 도시의 순리입니다…." "그 말."
마오타이 앞에서도 해보지 그러니. 위스키는 끙 앓으며 제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래서, 본심이 뭐니." "……."
《이 새끼 재밌네….》 《어텀 카니발의 왕이 밍메이에게 지대한 흥미를 가집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아이는 아이로 맞설 것. 당신의 주변의 아이가 누가 있을까요?》
마오타이의 말에 비연이 검에 묻은 피를 훌훌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쓰러진 형제, 아니, 형제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배신자의 시체는 이제 다른 비룡회의 일원이 끌고 가 대충 떠돌이 개의 먹이로 줄 것이다.
"또 이가라시죠. 마오도 좀 예뻐해 주시면 안 될까요?" "연아, 지금 내 무릎에서 잠들은 모습이 보이지 않더냐?" "…으." "눈 봐라, 이거. 계속 그렇게 뜬다고 둥근 눈이 세모로 바뀌는 건 아닐 터인데?" "아니, 이 너머가 보여요?" "내가 널 본지가 올해로 50년인데 널 모를 것 같더냐?" "그래서 이가라시가 왜요?" "말 돌리니?" "아뇨, 궁금해서요. 진짜요."
마오타이는 눈을 굴렸다. 그러겠지, 뭐.
"이가라시가 요즘 일을 잘 해주었으니." "네에."
시체를 끌고 가기 위해 들어온 비룡회의 일원이 몰래 귀를 세웠다.
"좀 쉬게 해줄까 한다. 본디 쉴 때면 다같이 쉰다고…… 포상이지."
뭐라, 포상. 시체 질질 끌고 가느라 나머지 듣지 못했지만, 휴가...?
"이봐, 그 소식 들었어...?"
본디 소문이란.
"이가라시 덕분이야!" "이가라시 덕분이네!"
아주 사소한 말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이가라시를 중점으로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나돕니다. 이가라시의 귀에도 이 소문이…… 마오타이의 귀에……도?》 《그, 들었어? 오검 이가라시 있잖아. 응, 연검. 그분 덕분에 비룡회 전체가 휴가를 얻는다더라…? 뭐라도 선물해 드릴까? 나 1년 만의 휴가란 말이야... 은혜를 갚아야만 해…….》
눈앞의 자그마한 사장님께선 어찌나 당돌하고, 시원스러운지! 시즌스 킹덤에서 장사하려면 이 정도 깡은 있어야겠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일리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는 실례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순수한 감탄이라도 할지라도 마치 비웃는 것 같지 않은가?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그게 손해일지 아닐지까지 계산하지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어머... 그렇다면 값은 지금 치르도록 할게요. 한꺼번에 받는 편이 좋아서, 물건은 삼일 뒤에 다 같이 받아가도 괜찮겠죠?"
정확하게 300 티켓이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거스름돈을 돌려줘도, 돌려주지 않고 팁이라고 생각해도 일리야는 별 신경 쓰지 않으리라. 사치스러운 보석이나, 시즌스 킹덤에서 접하기 어려운 최상급 와인이라면 모를까... 암만 이곳이라도 해도 흔해 빠진 화장품 따위를 탐내 강도짓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티켓을 털어가는 쪽이 더 건실할 것이다. 그러니 물건은 한 번에. 그리고 물건보다는 그 뒤에 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
일리야는 테이블 위로 주사위를 굴릴 준비를 한다. 다만, 이 도박판 앞에 앉아있는 건 마젠타가 아니라-
분명 후회할 거야.
"이야기예요. 밖의 세상에 존재했던 한 단체에 대한 이야기."
과거의 망령에 불과할 뿐. 하지만 일리야가 쥐고 있던 첫 번째 주사위는 이미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그거 알아? 넌 진작에 사라졌어야 했어. 잘 가. 도미닉 매디슨.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TV에 방영된 프로그램, 신문 기사 등...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시즌스 킹덤레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거라면 얼마나 있던 상관없답니다? 하물며 인터넷 커뮤니티의 허무맹랑한 게시글마저도 말이죠."
그것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미소를 거두었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바질의 리더가 칩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매겨줄 지도 아직 모르지 않는가.
떼,,,잉 이게... 무슨…… 소리야…! 월요병은... 실존한다…! 월요병이 학회에 인정을 받고 공식 질병이 되어야 합법적인 이유로 병가를 낼 수 있단 말이다…!!
어딘가 벽을 넘는 듯한 목소리를 무시하면 작은 루가 엘을 향해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기울이다 불만을 표출했다. 말린 사과라는 말에 불만이 눈 녹듯이 사라졌지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당신의 품에 폭 파고들 때, 작게 꺙, 하는 소리가 났더라. [저의 왕, 하나뿐인 주인께. 편지를 받았을 적 기뻤습니다. 전혀 부정적인 의미로 신경 쓰이지 않고, 저의 주인께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명하시는 것은 따를 테니, 언제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일정을 알려주신다면 시간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왕께서 바라시는 대로.]
투박하고도 서투르지만, 순박하게나마 애정은 담겨있었다.
[안녕, 봄꽃 친구. 나는 따뜻하게 입고 있어. 껴입어도 많이 추워서 지금은 이불도 덮었는데, 많이 졸려……. 자면 일하다 또 늘어져 잔다고 우리 왕이 잔소리 할지도 몰라. 우리 왕 잔소리 대마왕이다? 만나면 귀를 막아버려도 돼! 과자도 좋지만, 나는 봄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여기는 너무 춥거든. 그러니까 꼭 갈게, 약속. 맞다! 많이 좋아해, 봄 친구야!
추신. 그 작은 털뭉치보다 내가 더 귀여운 거 맞지?]
제멋대로지만 여전히 애정 담겨 있었고.
당신을 향한 편지 하나가 홀연히 놓였으니.
[준비가 되면 코냑을 향해 편지를 전해주십시오. 당신을 만날 육신을 빌려두겠습니다.]
아.
《……미지의 존재가 엘/에얼과의 만남을 허용했습니다. 다음 일상은 중앙 섹터, 'Q'로 고정됩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한 번은 만나줘야지.》
아마도... 그자가 정신을 차리며 봤을 모습은, 순백의 의사가 생명을 구한 모습보다도 방독면을 쓴 과학자가 실험을 하는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피로 더럽혀진 채로 방독면을 벗지 않고 닦아내는 모습은 조금 기묘할 정도로 괴상해서 그의 이름에 악명이 붙을 것이라 필히 의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카타스트로피가 한 선택은 소문을 다루는 것이 아닌 소문을 이고 사는것이었다. 신념은 더럽혀지지만, 어떤 신념은 오물을 뒤짚어쓰고도 일어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빨리 가버리는 게 좋을걸."
치료를 마친 그는 뒷처리를 해줄 생각도 없는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카타스트로피가 돌아보더니 그 질문에 만큼은 답했다.
"어떤 거짓은 진실을 만들지. 그리고 나는 내가 믿어온 것을 빼앗길 생각이 없을 뿐... 하지만 그래, 궁금할만 하군. 내가 하려고 하는 건, 언젠가 거짓이 만든 진실을 삼키는 거야."
신념은 일종의 도박이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지하는 싸움이었다. 적어도 카타스트로피의 관점에서는 소문은 고요한 전쟁이었다. 어느쪽의 추가 기울지, 누구의 신념이 정상에 올라갈지. 단지 그가 바라는 소문은 다른 종류였다. 바깥까지 울려버릴 아주 큰 소음, 이윽고 귀기울이고 말 소리들. 그걸 위한 희생이었다. 악평들과 불화 같은 것은... 짐을 챙긴 그의 뒷모습만이 연기처럼 남았다 멀어졌다.
"으응~ 어려운 말은 몰라아~"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너도 이거 피우지 말라고 할 거야?"막는다면 공격하자. "그래~ 그래버리자~"그래, 그러자 익숙하잖아 히죽 웃으며 말하던 마오가 아주 잠깐, 정색했습니다. 그는 아편이 없는 삶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히죽 웃으면서 등에 고개를 부볐어. 번팅하는 거야? 야옹.
"작은 나비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는 걸~ 나비는 사라져버렸고~" 예뻤는데 그 나비! 노란나비, 흰 나비, 파란 나비 다양했지! 그렇지이이이이!!! 나는 손가락으로 등에 나비 그림을 그리듯이 손장난을 쳤어. 그런데 이 사람, 진짜 너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나 봐. 마오는 아주 좋은 잠자리를 얻었네에! 그렇네에! 저 사람에게 재워달라하자! "그러자~"그래버리자! 마오타이를 아는 사람이야! "마오타이~? 아아~ 그냥 좋은 사람인데에~ 내가 키우는 꽃들도 그냥 키우게 해준다구우~"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던 마오가 고개를 다시 등에 묻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어. 마오야, 말하자. 고양이 임시보호는 흔하잖아! 마오는 고양이야? 맞아. 야옹. 그는 키득키득 소리내어 웃었다.
"오늘 그냥 재워주면 안 돼~?"겨울에서 자보자! "겨울에서 자도 괜찮아아~ 날이 밝기 전에 갈 거야~"잠자리 제공!
1. 비 오는 날의 천박한 개싸움 이후 일리야는 한동안 앓아눕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어깨다. 습격자에게 당한 왼쪽 어깨가 문제였다. 일리야의 머릿속에는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 이죽거리며 말했던 의사를 당장이라도 찾아가 뺀질거리는 얼굴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단 생각만이 가득했으나,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는 열이 손가락을 까닥하는 사소한 움직임마저도 방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가을을 떠도는 소문은 여러 번 그 형태를 바꾸었다. 일리야를 광인이라 매도하던 시선이 그녀와의 세기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술렁임으로 바뀌다가, 연달아 일어나는 모방범의 살인에 다시 경멸과 경계의 형태로 돌변한다.
"그런 사사로운 건 문제가 되지 않아..."
광인이, 그리 중얼거린다.
"무엇을 바라는 건지가 더 중요하지."
쥐새끼처럼 숨죽이고 사는 건 이제 그만하라는 건지, 이 가을에서 나가라는 건지. 아니면, 처참하게 죽어줬으면 하는 건지. 모방자의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스스로의 미학은 전혀 보이질 않는, 그저 따라하기에 급급한 그 행동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
마침내 일리야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욕이다. 모방자가 어떤 의도를 가졌든 간에 이것은 그녀에 대한 모욕에 불과하다. 정답을 맞히려고 고민하는 건 단순한 시간 낭비일 뿐. 과거의 편린을 현실로 불러오기 위해 까마귀가 기나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왔으니,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아무 의미 없는 것에 가까울지어다.
2. 살이, 뼈가 처참하게 뭉개지고 으스러지는 소리만이 일리야의 귀에 들려온다. 미안, 대공은 오랜만이라 그래요. 용서해 주실래요? 따위의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서 일리야는 모방자를 향해 눈꼬리를 휘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맞다. 저는 오랜 시간동안 봄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설레었답니다? 혹시나 오래전 박해당해 뿔뿔이 흩어진 나의 동포가... 시즌스 킹덤에서 훌쩍 자라버린 꼬마 일류샤와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기적적인 만남이, 이 가을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럴리가 없었는데. 바보같이 말이죠."
한때 섬세한 예술품을 만들어내던 손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투박한 팔짓이 다시 눈앞의 사람을 향한다.
"그거 알아? 당신은 그 바보 같은 행동으로 내 동포들을, 나의 그녀를 모독했어... 그러니까, 이런 화풀이만으로도 비명을 내지르면 안 되지. 부디 그 입 좀 닥쳐주시겠어요?"
망치로 관자놀이를 직격당한 인영의 상체가 천천히 앞으로 기우는 것이 보였다. 어머, 아직 죽으면 곤란한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일리야는 새침한 표정으로 모방자의 볼을 쓸어내린다.
"자, 그럼 즐거운 산책 시간이랍니다!"
아무렴 어떤가. 시체를 모욕한다 할지어도 그 죗값을 다 받기엔 모자랄 텐데. 일리야는 며칠 전 불타버린 성당의 잔해에서 축 늘어지고 곤죽이 된 사람을 질질 끌면서 걸어 나왔다. 길거리까지 쭈욱 이어지는, 즐거운 퍼레이드 마치의 시작이다.
"아아... 오늘의 퍼레이드 마치를 구경하러 온 광신도분들! 반갑답니다. 제 뒤의 이 자는 라스베이거스 살인 사건을 모방하며 나의 어머니를, 나만의 안젤리카를 능멸했답니다? 신을 능멸하는 이단은 심문하고, 처벌한다. 그것이 라크리모사의 일 중 하나가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나를 이해할 수 있잖아. 그렇지 않아?"
성기사들이 나타나도 신에게 바치는 퍼레이드 마치는 계속되어야 한다. 일리야는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며 어쩌면 난감한 듯,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그것이 과장된 연기에 불과하다는 건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라크리모사의 성기사 따위에게, 신에 대한 간절한 신앙심을 바라는 것은... 안 되겠지요. 아아... 이를 어쩐담... 아, 그렇지."
퍼레이드 마치에도 하이라이트는 존재해야 하잖아?
"어텀 카니발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연쇄 살인을, 라크리모사는 지금까지 방조하였다. 구스타보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의무를 잊어버린 광신도들의 추악함을, 롬바르디께서 지켜보신다!"
─ 메르헨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들어가서 제정신으로 나온 사람은 없다는 사실은 섹터 전역에 퍼져있습니다.
당신은 메르헨에 직접 들어가 미지의 존재를 알현하고도 제정신으로 나온 자가 있다면 믿겠습니까? 아니, 제정신이 아닌가...? 아무튼 예하, 클라레가 그 부류에 속합니다.
1. 클라레의 나이는 올해 스물 둘으로, 지나치게 어립니다. 수장 자리에 앉은 것이 열 다섯 채 안 되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현재 직책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정부에서 이종족을 향한 탄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클라레는 시즌스 킹덤으로 이종족을 도피시키고자 하는, '구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겨울 섹터의 '화이트아웃'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2-1. 여기서 칸다타 자매의 독백에서 쓰인 '수녀'를 엮어보고자 했습니다. 수녀에게 아이들을 맡겼으나 수녀는 결국 인간이 못 되었다는 것으로 두려 했습니다.
3. 한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는 설정 - 이 당시 이전대의 라크리모사를 지탱하던 핵심인물이 모조리 죽었습니다. 예하는 이 사건을 이후로 큰 자괴감과 더불어 낮은 자존감,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며 생명에 대해 합리화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술한 2-1과 지금까지 묵인하며 나는 잘못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6에서 후술합니다. 3-1. 이 당시에 도피하다 메르헨에 도달하게 됐고, 미지의 존재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며 미지의 존재를 광적으로 믿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3-2. 클라레는 미지의 존재의 이면을 알고 있습니다. 미지의 존재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유대감 때문입니다.
4. 클라레의 이름은 '구스타보 롬바르디'에게 수여받은 것입니다. 왜요, '술 이름'잖아요?
5. 메르헨에서 만난 구스타보 롬바르디에 대해 큰 중압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6. 합리화는 좋지 않은 버릇을 넘어 큰 문제로 부각됩니다. 클라레는 전지적 타인의 시점에서 상황을 보며 합리화하기 때문에, 지금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6-1.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닙니다. 메르헨만이 현실입니다. 이 세계의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메르헨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는 관객이자 외부인이 되고자 합니다. 남은 매력적인 등장인물, 자신은 읽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현실을, '쿠데타로 모든 걸 한 번 잃고도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는 주제에 라크리모사의 예하라 불리는 위대한 존재'임을 직시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당신이 묻지 않는다면 여인은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제 이야기라면 모를까, 제 소중한 자매의 이야기를 함부로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허락도 받지 못했는데.
“부탁드리겠습니다, 리큐르.”
당신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여인은 눈을 감는다. 아니, 감았나? 평소에도 눈웃음치고 있는 터라 눈을 감고 있는지 아닌지 구분이 어렵다. 그러나 당신의 말을 굳이 어길 것 같지도 않으니... 아마 감은 것이 맞을 테지. 여인은 순순히 당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시야가 보이지 않고 소리는 스산하게 울리니 겁을 먹을 법도 한데, 태연자약한 태도를 고수한다.
마침내 당신의 허락이 떨어지면 여인은 고개를 든다. 그 앞의 존재를 말없이 살핀다. 기이한 존재로군. 그는 생각한다.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한다면 거짓이겠으나 대경하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당장 저 자신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며, 겨울 구역은 이종족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으니 예사 인간의 모습에서 조금 벗어난 이를 본다 하여 놀랄 것도 없다. 다만 걱정은 생긴다. 예컨대 개와 고양이의 구조가 약간 다르듯, 일반적인 인간과 이종족 역시 다르다. 신체 구조, 취약한 바이러스, 질병, 그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 등. 과연 통할까? 여인은 의문했다. 그러나 여인은 곧 생각을 갈무리한다. 리큐르, 당신이 존재를 생물이라 칭했으며 뇌와 신경계가 남아있다 확언했으니 그를 믿어볼 심산이다.
여인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다. 리큐르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슷하게 정중한 태도다.
“소인은 웨이 밍메이라 하옵니다. 능력이 대단치는 않은 의원이나...소인을 필요로 하는 분이 있다기에 찾아왔습니다.”
제 의견에 동조해 주는 당신의 반응은 꽤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마젠타는 값을 치르겠다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300티켓을 확인한다. 당연하게도 돌려주는 거스름돈은 없다. 당신이 숨기고 있던 것을 꺼내기 시작하면 마젠타는 턱을 괴며 흥미롭다는 눈으로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은 자주 있었고, 정보를 찾는 사람도 가끔 있었지만. 이야기를, 그것도 밖에 존재했던 단체에 관해서 알고 싶다는 사람은 처음이었을까. 당신의 말이 끝나면 한참 침묵이 이어진다. 어떻게 할까. 받을까. 말까. 일이 어렵고,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지만. 마젠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당신을 보다간 입가를 당기며 웃는다.
"값은 무엇으로 치를 거죠?"
그 의뢰를 받겠다는 말은 없고, 무엇으로 지불할 것이냐 먼저 물어보니. 마젠타의 구미를 당기게 할 것을 지불해야 할 것이었다.
>>501 에 마오타이가 안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이가라시겠지?🤔 이가라시도 제대로 된 계기가 없으면 애매하게 걸치고 있는 포지션을 유지할 것 같으니 걱정할 필요없을듯. 그으리고 이가라시랑 너무 대화하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요. 존재님....아니 이가라시가 싫어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전대인 존재를 대놓고 거부하진 않을테니까 선장의 일상이 풀리면 그때 보고싶은걸.
>>495 진 마오의 경계 어린 질문에 마땅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약을 막는다면 거짓이지만, 피우게 지켜만 보는 성미도 아니었다. 다만 권고의 특성에 가까운 것은 의욕적으로 말린다고 보기에도 애매해서 그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기에 답이 없더라도 그는 주의 깊게 듣고 있었을 것이다. 나비에 대한것을 곧바로 묻는것을 보면.
"나비가 여기까지 오던가? 별일이야. 그렇지만 시간은 지키는게 좋을텐데, 차라리 나비가 더 정확하겠어."
어린애 다루듯이 여기는지, 별로 악의나 의문 섞인 물음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다. 간지러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진 마오의 손가락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또한 마오타이를 경계하는 것과 별개로 진 마오의 답에는 그다지 날을 세우지 않았다. 단지, 진 마오를 다시 생각했을 뿐.
"그러냐. 너는 그렇게 아이 같은 사람은 아니었군. 그렇더라도... 겨울 바닥에 내려 줄 생각은 없어. 필요하다면 누구의 집이든 들어가서 내려줄거야."
찬 바람이 그의 체온은 서늘하게 했지만 떨지는 않았다. 다만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빨라졌다. 그의 체온은 여전히 낮았기에 이유를 따지자면 진 마오의 말 때문일 것이다. 겨울로 인해 어두운 거리를 지나면서도 긴박감 없이 무작정 걸었다.
"내 이름은 소문으로 들어. 나 역시 그럴톄니까."
후속 조치를 위해 진 마오의 말들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었기에, 이름은 언젠간 들을거란 생각이었다.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이지만 의무감에 가까웠기에...
소란은 지나치게 커졌다. 라스베이거스 모방 연쇄 살인사건을 쫓던 성기사들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모방범을 당사자가 잡아낼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테니. 더군다나 구스타보 롬바르디의 이름을 선언해버렸으니, 이 고리타분한 곳에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라크리모사의 시선은 점차 나빠져 대표 조직의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양지로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그 상황에서도 예하는 집무실이 아닌 기도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버림받은 걸까? 아니면 그들이 나를 메르헨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거야, 구스타보의 이름을 선언하잖아, 그때 느꼈어. 그래, 구스타보 님은 역시 나를 싫어하는 거야. 역시 내가 구스타보 님의 성미에 맞지 않아서 갈아치우려고그렇게나를메르헨에들이지못하게해서지옥구렁텅이에쑤셔박기위해서나는결국아무것도할수없는존재로구나그렇다고전부죽여버리면돌이킬수없겠지… 가면 너머로 무언가 후드득 쏟아졌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돌아가고 싶어……. 버거워요. 아이들을 내버려 두시라 해서 내버려 뒀더니 결국 제 자격이 없음을 마주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이겨낼 도리가 없어요……. 사랑으로 품고 싶은데 당신의 뜻을 어찌 전해야 할까요?"
어째서 내버려 두란 신탁을 주었는지 원망할 수 없다. 그분의 뜻이니. 그렇지만 달리 헤쳐나갈 지혜가 지금 상황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벌벌 떨며 기도하기만 벌써 5시간이 넘어간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왜 롬바르디의 이름을, 롬바르디가 지켜본다 했지? 확대해석하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그때 말씀하셨어. 이렇게 있으면 라크리모사를 이을 수 없을 거라고…… 항상 지켜볼. 아."
아.
"일리야 스타니슬라보비치 보그다노프."
존재께서 내버려 두거라 하신 이유가 있었어. 선지자, 선지자, 선지자야... 이단, 이단을 심문하는 걸 이해한다 했어. 알아, 그 사람도 이단은 싫은 걸 거야. 내게 경고했던 거야, 이단이 많고도 많다고. 그런 거겠지, 응, 그런 걸 거야.
망령여단에서 데려오자. 이단 심문관으로 추대하자. 성자요 성녀로 올려내자! 그렇게 목표를 도와주자!
"안돼, 자매에게 미움받을 거야."
하지만 그때 그 모습.
"…….망령여단도 사실 이 사실을 위해서 발돋움했던 건 아닐까? 이 도시의 이단은 전부."
그럴 거야.
돕자. 도우면 돼. 그것이 설령─
클라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기도실에 위스키가 들이닥쳤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더니, 클라레. 설명을 해야─"
분홍색 눈동자를 마주한 위스키는 입을 다물었다.
"로지." "……." "대답해야지." "……예." "사냥제 때 아이와 롬바르디의 전령을 만나게끔 해주지 않으련?" "어텀 카니발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얘.
"네 애비가 바깥에서 온 자에게 성물의 비밀을 얘기한 건 말이 되는 소리고?"
위스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아이를 이 아이를 통해 찢어버리지 않고 상냥히 이야기를 해줄 기회를 준다는 것에 감사히 여겼으면 한단다."
침묵.
"위스키 님." "……." "위스키 니임."
존재의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아직 화가 나시지 않은 것 같으니.
위스키는 이를 악물었다.
클라레, 내가 그렇게 막았더니만. 결국 너는 잠식됐구나.
《미지의 존재가 일리야의 행보를 묵인합니다. 두 번의 기회는 하기에 달렸습니다. 라크리모사가 모든 상황을 인정합니다. 명예는 떨어졌으나, 지금까지의 신뢰와 일리야의 공로를 인정하며 일리야를 높이 추대하고, 굽히는 모습과 함께 제약되었던 조약을 풀어주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추락하진 못했습니다.》 《일리야와 칸다타 자매. 후에 진행될 사냥제 이벤트의 파트너는 클라레로 고정됩니다.》 《Npc 클라레가 일리야에게 짙은 애정을 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카타스트로피주 웹박수 답변. 1. 진행에 좋지 않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애초에 일상 어장이거니와 카타스트로피가 바라는 것이니 내가 막을 권한은 없지. 다만, 그게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얘기하기엔 좀 애매하다. 관점 차이 때문이다.
이쪽 사람들은 바깥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품고 있고, 카타스트로피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바깥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포기한 사람도 많다. 저것들 설득하느니 죽고말지. 심정으로. 바깥의 일반 사람들은 이쪽의 얘기를 안 믿는다. 시즌스 킹덤은 전 국가에서 인권을 포기하겠다 선언한 사형수들 모아두는 장소니까.
2. 아무튼 이 조언을 삼아서 밀어붙여도 좋다는 뜻이다. 어차피 엔딩은 개인별로 알아서 하게끔 생각해두고 있고, 후일담에서 ~는 그렇게 ~를 위해 도시를 떠났으며 훗날 ~하였다... 같은 열린 결말도 권장하는 바니까. 각자의 이야기를 잘 끝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질문 넣어주면 열심히 답하겠다.
메르헨의 깊숙한 곳에서, 미지의 존재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차가 새빨간 걸로 봐서 히비스커스인가 추측만 겨우 가능한 수준이었다. 여유롭게, 혹은 깊은 고심 때문에 마시지 않느니만도 못한 차를 음미하다 보니 누군가 중앙을 향해 거칠게 몸을 이끌었다.
"왔어?" "왔어, 라고 환영할 상황이 아닐 텐데."
노기 서린 목소리를 듣자하니 보드카가 오늘도 꾸짖겠구나. 미지의 존재는 찻잔을 내려두었다.
"그래, 루. 너도 소식을 들었구나." "어텀 카니발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잖아, 대체 왜 그랬어?"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그 얘기는 꺼내지 말자." "어떻게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겠어? 롬바르디 씨가 네게 실망이 크다고 하셨어." "루카스."
미지의 존재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지는 티 타임의 초대장이었다.
"걱정하지 마, 루카스. 네가 그토록 바라는 봄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내 말의 뜻은 그게 아니야, 제발 정신 좀 차려.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다간 큰일이 날 거라고!" "나는 언제나 제정신이었어."
미지의 존재가 고개를 돌리자 보드카는 움찔 떨었다.
"내가 롬바르디 씨를 감시하라는 명을 받고 시즌스 킹덤에 왔을 때도, 도시를 세울 때도, 4명의 선지자와 함께 새로운 낙원을 구상할 때도, 대전쟁 때 명령을 받아 내가 이 낙원을 유지하려 들자 네게 미쳤단 소리를 들었을……."
들었을……. 미지의 존재는 얼굴을 덮어 가렸다.
"……당신과 달리 봄의 왕은 나를 이해할 거라 믿어." 그리고 맞아, 미쳤네. 이건 내 기억이 아냐. 보드카는 씹어 뱉는 소리로 중얼대는 미지의 존재를 보며 결국 물러나기를 택했다.
조만간에. 망령이 되어야겠구나.
《이전 원로 '보드카'가 엘과 에얼을 주시합니다. 미지의 존재가 이해를 요구합니다, 미지의 존재가 엘과 에얼을 단 한 번 묵인합니다. '잠식'의 때는 오지 않을 겁니다.》 《양쪽에서 이해를 바랄 것 같으니, 잘 들어봅시다.》
비연은 최근 골이 아팠다. 비룡회 전체에 휴가가 주어진 건 좋은데, 요즘 제 주군이 너무 무른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충한 생각이지만 이렇게 좀 무르다 싶을 때면 갑작스럽게 사건을 크게 터뜨려버리니, 그 점이 여간 신경이 쓰여 휴가도 가시방석이요 시한폭탄을 목전에 둔 느낌이다.
"사냥제 때 날뛰지만 않으시면 되는데."
근 10년 만인가? 정부에서 약화된 크리처를 대규모로 푸는 날. 겸사겸사 시즌스 킹덤도 습격하는 날이니, 그때만큼은 여러 조직의 사람들이 킹덤 바깥 장미 정원까지 나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가라시, 마오를 붙인다고 했고. 그렇다면 주군을 붙잡을 것은 자신인데…….
"그냥 이가라시랑 날 붙이시지."
비연은 머리를 박박 헝클었다. 나도 5년 만에 친해지고 싶었는데. 마오는 친화성이 좋지만 이가라시는 고분고분 얌전하니 영 편히 대하기가 미안해진 탓이겠다. 비연은 대자로 뻗어 누우며 생각했다.
나도 스프리츠 그 미친년처럼 상하관계 까버리고 친구요 동생이요 하고 싶다.
"부러운 년. 맨날 자랑질이지."
나도 애들 귀여워할 줄 아는데.
"잠이나 자야지……."
《Npc 비연은 이가라시를 향해 큰 애정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표현할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추후 '사냥제' 이벤트에서 한 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616All the gold and the guns in the world
(lFemou02L.)
2023-04-27 (거의 끝나감) 02:44:11
이 나라에서는, 우선 우리는 돈을 가져야 해. 돈을 가지면, 힘을 얻지.
언젠가 도시 밖에서 들여왔던 영화의 대사를 떠올린다. 돈은 실제로 모든 걸 가능케 한다. 행복 또한 돈으로 살 수 있으니, 부유함은 곧 자유일까. 사람의 목숨조차 여기서는 돈으로 다룰 수 있었다. 마젠타는 제 손가락을 움직여 동전을 굴린다. 황금산의 정상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오는 이들을 보면 특권을 얻은 것 같은 느낌 또한 드니, 그런 그들과 같지 않음에 안도하게 된다.
어느 누구는 삶의 목표가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돈을 벌려 일을 하는가. 결국 그들도 아는 것이다. 삶의 목표가 사랑이든, 이루려는 꿈이든, 다른 뭐든지간에 그것이 자신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마젠타는 돈을 사랑했다. 팔을 뻗어서 움켜쥘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서도 채 팔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까지 얻으려 했다.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질 술이나 식재료들, 결국 돌덩이에 불과할 보석들을. 그것들을 가짐으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할 이들에게 팔아가면서. 세상과 흥정하고.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진정 원하는 것이 돈뿐일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 질문에 마젠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525 <밍메이> 조그마한 손이 당신의 손을 꼭 잡습니다. 자박자박 걷는 소리를 뒤로 드러난 존재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불쾌한 골짜기를 미묘하게 건드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이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온화함과 상냥함을 담고 있는 존재. 대체 저 존재는 무엇인지! 존재는 당신의 의문을 안다는 듯 평온한 미소를 짓습니다. 어쩌면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에, 당신을 믿을만한 사람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반가워, 시즌스 킹덤 바깥의 아이야…."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뒤로, 존재는 다시금 눈을 감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덤덤히, 아주 짧은 정적을 가지더니 입을 벌립니다.
"나는…… 미네르바. 시즌스 킹덤이 찬란할 적, 중간과 끝을 함께 한 존재. 나는 생명체로 보면 인간이고, 달리 보자면 기계같은 존재며, 작은 아이의 벗이자 형제, 자매, 남매일 테니…… 네가 걱정하는것이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퍽 의뭉스러운 말을 뒤로, 존재는 사근사근 묻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점차 물들어가며 고통스럽지. 네가… 내 고통을 멎게 할 수 있겠니?"
> [물론이에요] > [아니오, 자신이 없어요] > [기타 자유 - 위 선택지와 병행 가능]
코냑은 최근 바빴다. 정확히는 미지의 존재에게 알현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를 싸매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왜? 미지의 존재와? 하물며 지금 제 주인을 향한 소문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사냥제 탓이다.
─ 그 소문 들었나? 봄의 왕이 이번에 작은 루를 통해 섹터의 승리를 거머쥘 거라 하던데? ─ 기실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는 소문이 있어. 원하는 것은 뭐든 이뤄내는 능력 말이야. ─ 그렇다면 사실, 작은 루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 사실 봄의 왕이 미지의 존재는 아닐까?
미지의 존재 심기 건드리기 딱 좋은 소문에 코냑은 싸맨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어쩌지, 어떻게 수습하지. 내 왕이요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걱정이 태산인데.
"뭘 그리 고민하시오?" "미지의 존재께서 봄의 왕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면 어쩌죠……." "그럴 일은 없을 게요."
코냑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Q가 어느새 나타난 탓이었다.
"너." "위대하신 존재께서 허락하니 메르헨의 문을 열어둘 것이오."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코냑은 입속에서 거친 욕설을 씹어 삼켰다. 메르헨이면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하는데.
당했구나.
《엘과 에얼을 향한 헛소문이 나돕니다. 당연히 무시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이나, 당사자의 자존심을 긁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신경도 안 쓰지만! 코냑이 지나치게 걱정합니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사실 봄의 왕이 미지의 존재가 아니냐는 소리가 있어.》
대뜸 나타난 존재를 본 비연은 겁을 먹었는지 그 자리에 그대로 굳다가 황급히 뒷짐을 지고 섰다. tv에서는 구스타보 롬바르디가 어째서 시즌스 킹덤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바깥의 다큐멘터리가 송출되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포장을 까 반쯤 먹어치운 초콜릿 과자와 감자칩이 널려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가라시 앞을 막아설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야." "그때는 현재 주인의 명령이었으니……." "여전히 달고 짠 조합을 좋아하고." "이것은─!" "됐다, 됐어. 내가 언제까지 비룡회를 휘두를 것이라 생각하니. 아엔이 이제 비룡회의 수장이니 그 아이의 뜻을 따라야지."
존재는 반투명한 손으로 감자칩 하나를 날름 집어먹었다. 음, 되게 짜네. 이러면 건강 안 좋아진다니까.
"그, 그래서 무엇이 궁금하신지……." "마오타이가 키우는 고양이."
시즈닝이 묻은 손가락을 느릿하게 핥던 존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아이는 아예 무릎에 뉘여 잠들게 한다며?" "귀히 여기고 계시긴 합니다." "신기하네, 내 호위일 적엔 사람이라곤 정을 주지 않던 녀석인데." "……." "만나보고 싶은데─" "그것이..." "걱정 말거라. 내 또 이가라시처럼 속 긁을 것 같더니? 나도 배운 것이 있단다." "만난, 다면……?" "뭐겠어."
사냥제 때지.
비연은 다큐멘터리의 재현 장면에서 나오는 비명 소리가 자신의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완벽한 몰래 이가라시 만나기 계획이 산산조각 나겠구나!
《'여름의 존재'가 진 마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집니다. 추후 진행될 사냥제 이벤트에서 짧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얘. 고양이라며? 나는 고양이 참 좋아한단다. 제멋대로인 것이 꼭 나를 닮았거든.》
오늘도 DTD는 바쁘다. 카지노를 들락거리는 사람, 호텔의 시설을 이용하려 돌아다니는 사람, 그들 사이를 누비며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조직원들, 사람과 사람이 치이는 곳에선 언제나 소리가 생기고 일이 생긴다. 안 그래도 조직의 특성상 소란과 야단법석이 범람하는 이곳에서 최근 돋보적인 환호를 일으키는 존재가 있다.
바로 소문의 신묘한 영수, 작은 루 되시겠다.
매일 정성스러운 빗질로 보송보송 보들보들한 털과 꼬리를 살랑거리며, 앙증맞은 네 발로 오종쫑 걸을 때마다 목에 예쁘게 걸린 방울 소리 총총 울리며, 드넓은 카지노와 호텔을 마음대로 누비는 모습은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명물이 되어 있었다. 유명해졌으니 일부 극성 맞은 이들에게 시달리지 않을까 싶지만, 작은 루의 곁에는 항상 검푸른 머리카락이 함께 했다. 작은 루가 언제, 어디서, 무얼 하고 있든, 푸른 실루엣이 근처에 있곤 했다. 그저 있기만 하였으나, 거기 있음으로 하여금, 카지노와 호텔의 손님이 쉬이 손 대지 못 하게 하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개중에는, 좋지 못 한 생각을 하는 이가 꼭, 하나는 있었다.
"작은 루, 이리 와요. 간식 시간이랍니다."
오후가 한창 흐르는 무렵, 신나게 놀던 작은 루를 상냥한 목소리가 불러들인다. 목소리만큼이나 다정한 미소를 띈, 엘의 하얀 얼굴이 작은 루를 바라보고, 푸른 자켓 걸친 팔이 하얀 털뭉치를 소중히 안아올렸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귀한 것을 다루듯 품에 잘 안은 엘은 느릿한 걸음으로 카지노의 내부로 향했다.
그는 '봄'의 섹터에서 열 남짓한 조직원을 이끄는 보스였다. 인원수만 봐도 조잡한, 기껏해야 여기저기서 잡일을 하며 푼돈이나 버는, 일종의 심부름꾼 조직이었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조직의 보스가 지금 앉아있는 곳은, 딱 봐도 호화스러운, 호화라는 말 외에는 표현이 안 되는 그런 방 안이었다. 아마도 접대용인 듯, 방 한켠에 놓인 소파에 앉은 그는, 매우 좋은 장소임에도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야 이곳은,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아마.
"아아,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잠시, 일이 밀려온지라."
철컥,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반듯이 앉아있던 그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친절한데, 등에 식은 땀이 나는 것 같다. 아니다. 기분 탓이다. 침착하자. 작게 심호흡을 한 그는, 이윽고 맞은편에 혼자 앉는 엘을 보며, 어떻게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이 스프링 가든의 대표되시는 분이신데 그야 바쁠 만 하지요. 괜찮습니다."
"어머, 상냥하셔라. 그 이해에, 감사드려요."
후후, 하하하, 두 사람이 내는 웃음소리가, 둘 사이 거리에 흘렀다. 그리고 잠시 정적, 이었으나, 그에게는 그 잠시조차 버거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별 볼 일도 없는 저를 여기까지 직접 부르신 이유가..."
"아, 네,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그... 네, 아무래도 그렇...지요."
먼저 말을 꺼내놓고, 말끝을 흐린 그와 달리, 너무도 쉽게, 그게 궁금했냐 되묻는 말이, 보이지 않는 비수 같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도저히 눈을 볼 수 없어, 무릎에 걸친 손에 시선을 두고 있으니, 후후후! 웃는 소리 들린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그가 그만 시선을 올리고 말았다. 올린 끝에, 정확히 똑바로 마주친 푸른 눈동자는,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웃으며, 말한다.
"다 아시면서 물으시는 것은, 그다지 좋은 예의는 아니랍니다. '트러슈터'의 에이반 씨."
"흐읍...!"
이름을 불린 순간, 그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써 외면한 것이 바로 옆까지 와, 눈조차 깜빡이지 못 하게 하는 것 같다.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서서히, 그의 몸을 떨리게까지 만들었다.
"다, 알고 계시지요? 에이반 씨. 베스, 캐서린, 다빈, 일레이슨, 이 넷을, 차례 차례 보내어, 이곳에서 허락되지 않은 사기로 하여금, 한탕 하려 하셨지 않나요."
"그거, 그것이, 그게,"
"참, 가진 것 없고, 나약한 분들이시라. 제가 정말, 많이 선처를 해드렸는데."
"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 를,"
"은혜는 커녕 주제도 모르고 감히 제 귀한 벗을 취할 생각을 하시다니. 정녕 대가를 치르고 싶으신가 봅니다."
다닥다닥, 딱딱한 무언가가 자잘히 부딪히는 소리는, 채 다물어지지 못한 그의 턱에서 난다. 그는 지금,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중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변명은 고사하고 숨만 쉬는게 고작이었다. 새파랗게 질린 그의 얼굴에선, 식은땀도 안 난다. 무릎을 쥔 손은, 찬바람이라도 맞고 있는 듯이 떨려대, 무릎을 움켜쥐었으나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의 귀로 돌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저는, 미력하나마 '봄'의 대표된 몸. 어찌 함부로, 주민들을 해하겠나요. 해서 당신에게, 대가를 치를 일을, 하나 드릴까 하는데."
"하, 하겠습니다! 무조건, 뭐든 하겠습니다!"
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슨 일인지 듣기도 전에, 일단 하겠다며 외치는 그를 보고 하얀 얼굴이 빙긋이 미소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를 감싼 중압감 사라지며, 한결 편안해진다. 그런 그를 향해 엘의 기쁜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어머, 정말요? 무조건, 뭐든이라, 먼저 말씀하셨지요, 분명히."
"네, 네, 그렇습니다. 말씀 하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 순간의 그는 그저, 그렇게 말해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떤 사태를 불러올 지, 전혀 모른 채.
달칵.
'손님 접대'를 마친 엘이 카지노의 집무실로 돌아오자, 그 새를 못 참고 이리저리 뛰노는 작은 루를 발견했다. 저럴 줄 알고, 집무실은 항상 작은 루의 장난감이 여럿 있었다. 개중에는 모빌을 낮게 달고, 거기에 털뭉치 키링을 걸아, 작은 루가 얼마든지 건드리며 놀 수 있는 것도 있다. 지금도 신나게 모빌과 키링을 두드리던 작은 루가, 엘을 보자마자 달려와 발치를 요리조리 맴돌았다. 그 몸짓의 의미를 알고, 엘은 후후, 웃었다.
"저런, 작은 루, 좀 전에 간식 주었는데, 그걸론 부족했나요?"
묻자마자 얼른 대답하는 작은 루. 엘은 요 잔망스러운 털뭉치를 보며, 다시금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서랍에서 자그마한 사탕 캔을 꺼냈다.
"딱 하나만 더, 줄 거니까요. 알겠죠?"
주기 전, 작은 루에게 딱 하나만 더, 라는 다짐을 받고 사탕을 꺼낸다. 자리에 앉아 무릎 톡톡, 두드리니 하얀 털뭉치 폴짝, 올라오고, 손바닥에 사탕 올려주자, 조막만한 주둥이가 날름, 가져가 까득까득, 신나게 깨물어댄다.
사탕 하나로 행복한 작은 루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은, 잠깐, 책상 위의 서류에도 시선을 주었다. 정갈하게 작성된 계약서 속, '대리 참가' 라는 단어를 응시하다가, 다시 작은 루를 바라보았다. 함박 웃음 머금으면서.
건물 한편, 작은 대합실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이른 아침 갑자기 불려 온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로 쑥덕거린다. 무엇 때문에 부른 거래? 너는 짐작 가는 게 있어? 아니, 나도 모르겠는데...
“조용히 하세요, 여래님이 오셨어요!”
한 아이가 소리친다. 대합실에 순식간에 침묵이 찾아든다. 복도 멀리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그 뒤 어떤 사내 하나를 데리고. 성큼성큼 걸어온 여인은 방문 앞에서 멈추어 선다. 모인 이 하나하나와 눈 맞추듯, 시선이 천천히 좌중을 훑는다. 모두가 모인 것을 확인한 여인은 부드럽게 웃음 짓는다.
“다들 바쁜 와중에 모여주어 고마워요. 여러분의 일을 방해한 것은 아니면 좋겠네요.”
목소리는 조용하며 한없이 부드럽다. 그러나 그에는 모두가 귀 기울이게 하는 호소력이 깃들어있다. 고요한 가운데 여인의 말만이 공간을 채운다.
“이리 모이라 함은 다름이 아니라 새 인력을 소개하기 위해서랍니다. 자, 인사하세요. 이쪽은...”
“제 발로 찾아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군요. 마침 실험해보고 싶던 것이 생긴 참이었거든요...”
목소리가 제법 유쾌하다. 아니, 목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인은 실로 유쾌했다. 고맙다는 말 역시 진심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모습을 드러내 준 이에게 고맙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궁금하던 것이 생기던 차에 저를 쓰라며 와 준 실험체가 달갑지 않을 리 있는가?
세뇌의 기본은 정보의 차단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인의 능력으로 하기에 꼭 알맞은 일이다. 감각은 정보 습득의 원천이고 여인은 타인의 감각을 주무를 줄 아는 종자이므로.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만약 인간을 오감을 강제로 박탈한 채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망가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만약 그 상태로 한 가지 자극만을 주입한다면?
여인은 흥얼거리듯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인간은 감각을 빼앗기면 미친다지요. 네가 얼마나 튼튼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부디 오래 발버둥쳐주세요. 곧바로 무너지면 재미 없으니까...
불현듯 여인은 말을 하다 말고 멈춘다. 뒤편에 가만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본다. 무엇인가를 막 깨달은 모양으로.
“...아, 생각해 보니 아직 이름이 없군요, 그렇지요?”
여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진다. 휘어진 눈이 무척 천진하며 장난스럽다. 여인은 몹시도 가벼운 어조로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름을 주어도 괜찮겠지요?”
질문 형태를 띤 말이나 어투는 명령에 가깝다. 반박을 허하지 않겠다는 태도므로. 사내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저 결정을 받들겠다는 듯한 태도다.
“후후, 착하기도 하지. 그래요, 가만 보자...”
생각 속에 잠시 침묵하던 여인은 곧 입을 연다.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동작이 퍽 상냥하다. 누구나 애완동물을 다룰 때는 그러기 마련이다.
“궁비라(宮毘羅), 당신이 이제부터 궁비라라고 불릴 거랍니다. 이해하셨지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여인은 느른히 웃는다. 다시 시선을 좌중으로 돌린다.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듯 가볍게 박수 한 번을 친다. 경쾌한 소리에 사람들은 다시금 이목을 집중한다.
“좋아요, 그는 이곳에서 경비견으로 일을 할 거랍니다. 하지만 손이 부족하다면 힘쓰는 것처럼 잡다한 일을 맡겨도 좋아요.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게 와서 보고하세요, 따끔히 타이를 테니까요...”
여인은 눈을 휘어 웃는다.
“여래님, 요즈음 자주 웃으시네요?”
“어머, 그런가요? 흐음, 아마...재밌는 것을 하나 얻어서 그런가 보네요. 사나운 들개 한 마리를 들였는데 먹이를 좀 줬더니, 고분고분해지는 것이 귀엽지 뭐예요.”
“개요? 여래님이 그런 짐승에도 관심을 가지는 줄은 몰랐네요.”
“오, -가 옳게 본 게 맞답니다. 평소에는 이런 것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거든요...”
이번이 예외라면 예외지요.
누구도 찾지 않는 짐승 한 마리가 사라진 지 몇주일 후, 약사여래의 의원에는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얌전히 짐을 나르는 사내를 보며 여인은
“후후, 양순한 것이 참으로 귀엽지 않나요?”
“네? 아, 뭐... 온순하긴 온순하죠.”
마침 옆에 있던 이는 떨떠름히 답한다. 순하긴 하지만 사내의 모습이 통상적인 ‘귀엽다’라는 말의 뜻과는 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여인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저 작게 중얼거린다.
ㅎㅎ... 원래 이런 건 본인 입으로 말하면 가오 떨어진다지만, 조금 더 풀어보자면 밍메이 뿐만 아니라 밍메이의 의원도 약사여래로 불리고 궁비라는 그 모두를 경비하는 역을 맡게 되었으니까...잘 어울리는 이름을 받았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약차대장이 약사여래한테 감명받아 귀의한 것까지 더해지면...
>>695 일반 팝콘과 카라멜 팝콘과 치즈팝콘 중 무엇을 고르시겠어요~?(빨간휴지 파란휴지 풍)
사람이 썩어갈 때의 냄새가 모든 부패에 있어서 가장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고 했던가. 비린내와 시취가 뒤섞인 역겨운 악취가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가죽을 쓰고 그녀들은 사람들을 속여 죽이고 그것을 요리로서 섭취했다. 이번의 타겟은 그런 부류였다. 극상의 미식을 취급한다면서 이번의 사냥감이 된 자매는 그렇게 수많은 인간을 자기 뱃속에 채운지 오래였다. 의뢰자도 나에게 찾아왔을 때는 이미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이 없던 상태였다. 얼굴로 가자면 더 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평온한 죽음을 주기도 전에 곧 죽을 상이 보였으니까.
"반대의 입장이 되는건 이상한 기분이네."
그런데 하필이면 자매다. 의식하기는 싫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그 때의 광경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해자의 입장이지만.
"그때도 우리는 피해자는 아니였잖아."
리사가 마치 생각을 읽은 것마냥 받아챈다. 눈치가 빠르긴 했다. 눈치가 빠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있지만. '눈 앞의 리사'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자, 그럼 동족을 잡아 요리하는 푸줏간을 만든 바보같은 녀석들은 어떻게 대가를 치르는게 좋을까?"
리사가 질문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한 연기로 대답한다.
"당연하잖아 리사. 먹어서 빼앗기는 고통을 안겨줘야 하지않겠어? 당신들도 동의하셔야 할겁니다. 당신들은 너무 저지른게 많거든요. 물론 거부의사는-." "시끄러워! 우리의 만찬을 방해하러 온거잖아. 우릴 방해하지마!"
눈 앞의 자매중 어린쪽이 말을 마치기도 무섭게 권총을 격발해 내 정수리를 관통했다. 충격으로 뒤로 젖혀져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이내 자세를 마치 축처져있던 인형이 도로 작동하듯 역재생하며 자세를 되찾았고 탄알은 꿰뚫지 못하고 운동량을 잃어 바닥에 찌그러진 채로 떨어졌다.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한번 제가 죽어버렸네요."
아프지는 않았지만 집어삼킨 영혼중 하나가 빠져나간다는 감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일중 하나였다. 복수대행에 안전한 날 따위는 없었기에 집어삼켰던 영혼을 잃게 되는 것도 하루이틀일은 아니였다.
리사가 손도끼를 던져 식인 자매의 팔을 찍어버렸고 그대로, 붉은 빛 선혈이 튀며 바닥에 툭하고 두 팔이 떨어져 나뒹군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썩은 푸줏간에서 울려퍼졌다. 하나가 아니라 두개가. 한쪽은 그 광경을 보던 식인자매의 언니쪽. 그것은 통곡이었다. 한쪽은 말할 것도 없이 팔이 잘린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다.
"언니가 말했잖아. 거부의사는 없다고. 이 상황까지 왔는데. 너희 자매는 머리가 이상한거 아니야? 자매라는 단어에 먹칠을 하지않았으면 좋겠는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식인자매의 언니가 동생을 향해 달려가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지혈을 하려고했다. 꼴에 혈육이라는 건가. 그렇게 먹어치웠던 인간들에게 혈육애 대한 인간애는 있다는게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때 식인자매의 동생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그자리에서 무어라 중얼거린다.
리사가 잘안들린다는 듯 귀가를 가져다대는 시늉을 할 만큼 고통에 겨운 목소리라, 사실 크게 듣고싶지는 않았다. 남의 발버둥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것도 그저 그 순간일 뿐이다. 과정에 지나지않는다. 결과적으로 복수라는 일에 수단 방법 가리지않고 결과를 보는 것이 나는 우선이었으니까.
"나를.. 죽여도좋으니.. 언니는.." "아.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까.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나는 고민하는 흉내를 낸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런 행동은 조금이라도 인간성을 보고 고민하는 모습처럼 보였을까. 나는 말문을 연다.
"그런데 당신들이 요구할 입장이었던가요. 당신들의 호위가 싹다 죽고 당신들만 남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말이죠. 그런 말 아시나요? 주제를 알고 입을 떠들라. 라는 말 말이죠." "안돼 제발.. 언니는.." "리사." "응 티아 언니, 저쪽도 언니 동생 거리니까 햇갈릴려고 그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내가 하겠어." "에~. 언니가?"
직접 나서는건 리사의 일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이 일만큼은 내 손으로 끝내고 싶었다. 이 뒤집힌 느낌이 싫었으니까. 내손으로 빨리 끝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나는 소매에 숨겨둔 나이프를 들고는 그대로 식인자매의 언니에게로 향했다.
"안돼!" "아니야 너라도 살아야해."
정말 빌어먹을 자매애다. 바라는 대로는 절대로 해주지않겠다고 나는 마음을 먹고는 나이프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동생쪽이 억지로 일어나 나를 가로막았다.
"언니를 죽이려면 나부터 먼저 밟고 넘어가야할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나이프를 든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왜 나는 눈 앞에 살릴 가치도 없는 인간의 목을 그어버리지 못하는가.
"그거야 당연하잖아."
'눈앞의 리사'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알고있을텐데?"
무엇을. '눈앞의 리사'는 무엇을 알고있냐고 나에게 질문한 것인가.
"그것보다는."
'눈앞의 리사'의 영혼없는 눈동자가 나와 마주했다.
"지금 살려준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나'는 돌아오지 않는걸." "시끄러워."
시끄럽다. 당연히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시끄럽다. 시끄럽다. 네가 나이기에 알수 있기에 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시끄럽다. 시끄럽기에 알고있다. 알고있다. 아 그런거였다. 역시 '눈앞의 리사'는 나였다. 내가 나에게 스스로 걸어놓은 속박이니까. 그 날 잃어버린 내 여동생의 모습을 한 속박이니까. 속박이였으며 나에게의 채찍질이었다.
"그래 돌아오지 않지 알고있어. 그러니까-."
끝내버리자.
식인자매의 동생의 목에서 동맥을 향해 나는 그제서야 나이프를 슥하고 그어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언니쪽은 듣기조자도 싫은 오열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나에게 달려와 애원하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동생을 돌려달라고.
나는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그건 고통스러운 웃음이었다. 몇번이고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있기에 괴로운 웃음을. 나는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일 뿐이다.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도 돌이킬 수도 없다.
"그래. 그래야 언니지. 그래야 티아 칸다타지. 그래야 이 세상을 증오해서 세상의 끝을 원하는 망령이지."
리사의 모습을 한 미친 듯이 웃으며, 고통스럽게 웃는 나를 감상했다. 내가 나를 보고 나는 나를 보았다. 이것은 내가 얽메여 있는 저주였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내가 나에게 스스로 건 사슬이었다.
"그러니까 그 부탁은 처음부터 들어줄 수가 없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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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줏간 엽기 사체 사건.
어텀의 고기를 공급하던 푸줏간에서 수많은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부패하거나 유골만 남은 상태이며, 부패한 시신은 장기나 신체의 일부가 도려내진 정황이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이 푸줏간의 주인이던 자매와 접촉한 이후 실종된 자들 인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기괴한 엽기라고 할만한 사체는 그 자매의 시신이었다. 자매의 언니의 시신 복부 안에서 동생의 시신이 발견된 것 뿐만 아니라, 대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1. 사냥제 이벤트는 기본적으로 npc-캐릭터 페어, 캐릭터-캐릭터 페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캐-캐는 두 지문이 모두 올라오면 반응할 것이다. 2. 저번 이벤트처럼 느릿하게 진행할 예정. 3. 앞으로 해적의 일정이 좀... 불투명하다. 해적이 주야역전이 될 가능성 매우 높음. 4. 현재까지 확정된 페어 목록
라크리모사-망령여단(티아는 리사와 같이 다닌다 해서 일리야를 버려도 좋다...) 이가라시-마오 엘은 대리를 쓰기로 했고.(미지의 존재: ㅎㅇ) 밍메이-스프리츠
아무튼 그렇다.
확정이지만 '강제'가 아니다. 깨질 수도 있단 뜻이니 나는 이 캐랑 같이 다녀보고 싶어요! 하면 꼭 얘기하도록. 최선을 다해 맞춰주겠다.
어째서냐면 어장 외적, 해적선 시점에서는 '2인 1팀으로 캐릭터끼리 친해지게 만들고 슬슬 중반부 돌입해야지~' 같은 날짜적인 이유가 있고, 어장 내적, 시즌스 킹덤 시점에서는...
사냥을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불가능하거니와 사냥 당한 녀석을 보고 도망쳐서 보고해야 하는 녀석도 있어야 하니까... 물론 혼자 다니겠다고 말한다면 막지 않겠다. 나는 자유도를 보장하니까. 먼치킨물 애들처럼 날뛰어도 당위성만 있다면 ㅇㅋ 너는 지금부터 S급 헌터 캐다. 가 되는게 우리 어장이니 잘 기억해둬~
오랜 침묵. 그리고 돌아온 질문. 그것은 마음속으로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질문의 의도 따윈 알아맞히는 것에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일리야가 들고 있는 칩의 가격을 매겨야 할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기 그지없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지불할 대가가 과연 사장님의 마음에 들지... 전혀 자신 없답니다."
누가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던가. 안타깝게도 일리야에게는 귀금속과 같이 반짝이는 것도, 그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탐낼 귀중한 무언가 따윈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을에는,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될 물건이 하나 있죠. 하지만 어째서 그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되는가..."
이 칩마저도 귀중한 무언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그렇기에 도미닉은 바질의 사장님이 이런 사소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는데.라고, 비꼬는 투로 말한다. 묻는 것은 명백하다. 그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간절한가? 이렇게 쉽게 밖으로 세어나갔다간 죽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내야 할 정도로?
"어텀 카니발의 성물에 대한 이야기. 그게 제가 치를 값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얌전히 물러나야겠죠. 아하하!"
Q. 그래서 퇴사하고 뭔 일 하는데요? A. 원래는 좀 공부하려 했는데 갑작스럽게 친구 일자리 빵꾸가 크게 나서 페이 받는 조건으로 가게 돕기로 했다. 나도 짬이 개미만큼은 있거니와(근데 좀 긴장하고 덜걱거려서 오늘 허둥대긴 했다...) 걔는 나랑 같이 일한 경험이 있어서. 새 직원 들어올 때까지만 일손 도우면 현생도 좀 괜찮아질 것 같다. 대신 새 직원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때까진 주침야활이다... 운이 좋으면 이번달 내로 새 직원 뽑아서 난 자유롭게 다시 공부하고, 아니면 내가 그 새 직원이 되...는건 싫은데 으~ (찐친 바이브다. 진짜 싫은건 아니고 긍정과 부정 묘한 사이의 무언가다.)
미네르바의 말에 여인은 옷소매로 가만 입가를 가린다. 감정을 알기 쉬운 눈은 슬며시 내리깐 상태다. 잘못하면 그 성질대로 조소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니, 지금 근심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알고? 여인은 가벼운 미소만을 입에 머금은 채로 목소리를 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퍽 사근사근하며 예의 바른 태도로.
“소인 비록 환술을 다루기는 하나, 명민하지 못하여 관점에 따라 존재를 정의할 수 있다는 모호한 말씀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여전히 웃음 짓고 있는 눈매 사이로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과 진득이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다.
“소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지요, 과연 소인의 능력이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는가.”
말은 잠시 끊어진다. 여인은 천천히 이야기를 잇는다.
“리큐르는 당신이 뇌와 신경계가 존재하는 이라 하였습니다. 시도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마는... 리큐르의 말이 옳다면 불가한 일도 아닐 테고, 아니라면, 그 경우에는 확언해드리지 못하겠군요.”
결국은 해봐야 확실해진다는 말이다. 애초에 당신이 원하는 방식도 아직 알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가능성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니.
자신 없다고 하는 것치고는, 그 뒤에 숨기고 있는 것이 평범한 정보는 아니랄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마젠타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 제 한쪽 눈썹을 들어낸다. 어텀 카니발의 성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온 것인 것 마냥 자신 있어 보이는 당신의 태도를 보고 마젠타는 생각에 잠긴다. 이것이 돈이 될 정보라기엔 애매하다. 오히려 알게 되면 목숨이 위험할 것 같은 그런 정보에 가까울까. 원래라면 그런 것은 알기보다는 모르고 있음이 더 오래 사는 길인 것인데. 마젠타는 가늘게 뜬 눈으로 당신을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앓는 소리를 내다간, 쯧 혀를 차낸다.
"당신, 뭔가 마음에 안 드네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까. 아니. 최근에 겪은 일로 하여금 이 도시에 관한 것에 관심이 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위험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마젠타는 한숨을 내쉬면서 테이블을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다. '성물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고 당신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대답을 한다면 이쪽에서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어머,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그래도 괜찮겠죠?"
그렇기에 그것은 마젠타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다. 그 몸짓과, 혀를 차는 소리 따윈 자신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붙일 뿐이다.
"...오호라."
지극히 상식적인 범주의 반응과, 지극히 비상식적인 범주의 대답. 그래, 이게 시즌스 킹덤의 묘미지.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즐겁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리야는 겨우 꺼내둔 웃음을 다시 거두었다. 왜,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웃음 따윈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럼, 좀 더 자세하게 파고 들어가 볼까요? 저에게는 이야기보따리가 두 개 있답니다. '어째서 그 인형은 성물이라 불리는가?' 그리고 '성물에 손을 댄 자는 어떻게 되는가?'. 선금으로 첫 번째 보따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풀고, 부탁한 이야기를 받을 때 잔금으로 두 번째 보따리를 풀어드릴까 하는데... 어떠신가요? 아무래도 시간이 꽤 필요한 부탁이니까 말이죠."
양쪽 다에게 참으로 번거롭기 따로 없는 방법이다. 어째서 선불도, 후불도 아닌 기묘한 안을 제시하느냐... 그것은 이제 와서 단순한 허세라 취급받기는 죽어도 싫은 걸지도 모른다.
정말 질리는 타입의 상대다. 맞은편에 앉은 마젠타는 불쾌하다는 기색으로 손을 휘휘 내젓는다. 그리고 당신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관찰하듯 바라본다. 그런 정보를 값으로 치르겠다 할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당신도 꽤나 수완이 좋은 사람인 것 같을까. 번거롭지만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지 않으며 보험을 걸어두는 것도 그러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마젠타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죠."
마젠타는 등받이에 좀 더 몸을 묻는다.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선, 단조로운 어조로 말한다.
"어서 말해봐요. 첫 번째 이야기를 듣고, 당신 원하는 단체에 대해서 빠르게 알아볼 생각이니까."
조금 더 당당하게 나와도 괜찮았는데. 마젠타가 생각보다 쉬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일리야는 긴장이 탁 풀린 기분이었다. 그만큼의 관심이 있다는 걸까. 하지만 왜? 어째서? 따위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나갔으나, 뒤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칼날과도 같기에 그것은 입을 열었다.
"가을의 성물에 대한 표면상의 이야기는 이미 아시죠?"
일리야는 가을에 터를 잡고 성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이 마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써 내려간 동화와도 같단 생각을 했었다. 가족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세상의 모든 보금자리에서 거부당해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던 가여운 영혼과 그 영혼을 기리기 위한 물건이라니!
"가족과 떨어진 자그마한 영혼이 길을 떠돌아다니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는 어찌 보면 뻔한 일이지요. 행복하던 시절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그런 간절한 생각은 반드시 미련이 되기 마련이랍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일리야 스타니슬라보비치 보그다노프 또한 이곳에 있지 않은가.
"과거에 한 소녀가 가지고 있었던 인형의 실상은 부녀의 행복하던 시절에 대한 미련이 똘똘 뭉쳐 기이한 힘을 가지게 된, 저주 받은 물건일 뿐... '성물'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답니다."
기대치에 못 미쳤으려나. 첫번째 보따리를 풀어보인 일리야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마젠타의 행동을 관찰한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고 있는 것은 아니나, 성물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찾으려 하는 바보들이 있다는 것 까지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마젠타는 당신 하는 말에 침묵하며 아무 말이 없다. 가족과 떨어진, 자그마한 영혼. 당연하게도 잭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까.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 그에 피곤한 표정이 되며 마젠타는 제 관자놀이를 꾹 눌러 짚는다. 이어지는 설명을 듣던 마젠타는 어이없다는 듯 숨을 내뱉으며 당신에게 묻는다.
무엇을 생각하기에 그리 피곤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지. 마젠타의 말에 깔끔하게 절단되었던 잡생각은 마젠타의 얼굴 위로 떠오른 감정들로 잉해 다시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하지만, 친분을 만들려고 온 곳은 아니기에 그저 생각만 할 뿐이다.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것은 던져지는 질문에 뻔뻔스럽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글쎄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널리 세어 나가면 좋을 거 하나 없잖아요?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이 때로는 추악함을 감추기도 하는 것처럼, '성물'이라는 단어를 붙여 진실을 감춘다... 여긴 시즌스 킹덤이니까, 그런 철저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손을 대는 자들이 꾸준히 나오는 모양이지만 말이에요."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곳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는 법이다.
"어머, 말하면 믿어주실 건가요? 믿어주신다고 해도 말할 순 없지만... 귀중한 정보를 입수할 방법은 꼭꼭 숨겨두는 게 이 도시에선 현명한 행동이잖아요?"
일리야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이해해 주실 거죠? 라고 덧붙이지만, 단호한 거부의 표현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왜, 눈은 웃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왜 붙인 단어가 성물이냐 이거예요. 저주받은 것이고 하니, 차라리 비밀에 부치면 될 거 아니에요?"
숨길 수 있으면 충분히 숨길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것을 '성물'이라 단어 붙인 것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저주받은 것이라 하여도 신성시 다뤄야 할만 그런 이유가. 마젠타는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믿어 줄 것이냐는 당신의 말에 마젠타는 어깨만 으쓱인다. 사실 지금 당신이 털어놓는 그 정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진실이라면 어디까지 나한테 밝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거짓말 같지는 않고.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순순히 털어놓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니까. 당신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니 마젠타 한숨만 내쉰다.
"그래요... 뭐... 이해해요. 그래서 첫 번째 보따리의 이야기는 그게 전부인지?"
더 할 이야기가 없으면, 당신이 바라는 그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들을 생각으로 마젠타는 그리 묻는다.
>>780 <밍메이> 리큐르는 당신과 미네르바를 번갈아 쳐다보며 온전히 비니를 벗어 손에 꼭 쥐었습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행동인지. 아마 천진난만하게 미네르바에게 다가가 사탕 줄까? 하고 묻는 걸 보니 후자인 듯싶습니다. 미네르바는 평온한 표정 그대로 눈을 감았고, 리큐르는 거절의 의사를 알아듣곤 쫑쫑 구석 자리로 가서 환자가 나오길 대기하는 보호자처럼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습니다.
"관점은 누가 정하는 걸까,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늘 궁금했지… 하지만 이런 이야기로 끝없이 빙빙 돌아서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이 이야기는 더 꺼내지 않을게."
그리고 미네르바는 다시 눈을 뜹니다. 부자연스러운 모습.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빚어놓고, 그 이후에 완성하지 못한 것만 같은 외관, 그리고 언행.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저 평온하고 상냥한 저 존재에게 능력이 닿을까요?
"닿을 수 있단다."
대체 어떤 종족이길래? 미네르바는 잠시 리큐르를 향해 눈알을 굴립니다. "작은 루야, 그걸 잠시 가져와주지 않을래?" 리큐르는 머뭇거리다가, 잠시 당신을 한번, 그리고 미네르바를 불안한 눈치로 한번 쳐다보더니 결심한 듯 다녀오겠다며 어딘가로 쫑쫑 걸어갑니다. 이 건물 내부에서 아주 잠깐, 눈송이 흩날리는 바람이 살랑이며 불더니 리큐르의 존재가 훅 사라집니다. 저게 원로의 권한이군요.
"…밍메이, 라고 했지."
미네르바는 눈을 들어 당신을 정확히 마주합니다.
"나는 너무나도 오래 살았어. 나는 가장 첫 번째의 작은 루이자, 가장 오래된 작은 루니까."
?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나처럼 이렇게 오래 움직이지 못했단다. 이젠 마지막 작은 루를 보필하는 임무도 끝마쳤으니, 스스로 폐기할 때가 되었지……. 우리는 비록 누군가의 손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뇌가 있단다. 신경계가 있고, 심장도 있지. 나, 미네르바는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실패했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단다. 네 능력은 내게 닿을 거야. 내가 바라는 것은, 네 손을 더럽히는 일이란다… 네게 고될 수도, 쉬울 수도 있지."
70년 전, 무분별한 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방생된 화학 약품, 핵실험으로 누출된 방사능은 평범한 사람만이 아닌 동물, 혹은 식물에게도 피폭되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이 이종족과 초능력자, 그리고 존재해서는 안 될 생물인 크리처였다.
크리처는 공식적으로 멸종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고, 바깥을 습격했다. 지금은 과학의 발전으로 바깥은 크리처에게 이전처럼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만은 않으나, 한번 쑥대밭을 만들고 큰 피해를 남기는 것은 똑같았다. 그중 일부는 정부에서 70년 전의 실험을 무마하기 위해 선동하는 것에 가깝다. 직접 약화시킨 개체를 미리 방지책을 세운 뒤 도심에 풀어 넣고, 시즌스 킹덤의 기현상 탓이라며 떠넘기는 일.
그렇다면 진짜 시즌스 킹덤의 기현상 탓일까?
"아! 해바라기씨 발아했다!" "리큐르, 방금 욕 한 거니?" "리큐르 개빡치긴 했어도 욕은 안 해요!"
아니다. 이 비정한 도시라고 사정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 시즌만 되면 이쪽도 바쁘다. 실제로 크리처는 '공식적으로 멸종되지 않은 존재'이고, 덕분에 사형수를 시즌스 킹덤으로 이송하는, 현재는 폐쇄되고 사막화가 진행된 도로에도 크리처가 우글대며 때로는 시즌스 킹덤 내부로 들어와 난동을 피우니. 아마 대전쟁 이후 그나마 살아남은 개체끼리 모여 사막 깊은 곳에 굴을 파서 지내고, 번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개체의 군락이 어딘질 도저히 모르겠으니, 사냥에 나서는 수밖에. 위스키는 이번 사냥제 예산안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늘 궁금하단 말이지, 어째서 크리처가 정해진 시기마다 이렇게 날뛰는지……." "멀리 볼 것도 없네." "뭔가 알고 있구나?" "발정기라서."
위스키는 손을 들어 리큐르의 귀를 틀어막았다. 볼록 솟은 여우 귀를 가리자 리큐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스키가 한숨을 쉬었다. 비록 얼굴을 베일로 가렸지만, 그 너머로 짜게 식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오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인간도 본능을 위해 날뛰는데 뭐……." "더 얘기하면 돌로 만들 테니 그렇게 알아. 애 정서에 안 좋게!" "자, 자, 그만. 이번 사냥제는 그래도 흥미로운 일이 많겠어요. 변수도 많고."
코냑은 손아귀에 쥐인 편지를 읽어보다 시선을 흘끔 옮겼다.
"미지의 존재 님이 행차한다고 했죠?" "그러고 보니 리큐르는 아직 제대로 알현해 보지 못했겠군." "응."
재밌게 됐어.
"이번의 왕은 누가 될까요? 당연히 나의 왕의 소속과 바질이겠죠." "나의 검과 산군, 약사여래겠지." "망령여단과 라크리모사의 몫이란다." "카타스트로피가 해낼 건데요?"
마젠타의 계속되는 의문에 그렇게 대답하긴 하였지만 일리야라고 해서 굳이 '성물'이라는 단어를 쓰고 누구나 작정한다면 손을 댈 수 있는 곳에 그런 저주받은 물건을 올려두고, 극비리에 관리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성물인가, 왜 그런 곳에 두었나... 누가, 무슨 목적으로?
정말로 성물에 손을 대지 않는걸 원하는게 맞는가?
"아하하! 이야기 보따리가 자그만해서 죄송해요. 그치만, 이런 이야기는 짧고 핵심적인 이야기만 있을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니까요."
뭐. 그런 잡생각은 그것에게 더 중요하지 않았다. 일리야는 마젠타의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다음 대답을 준비한다...
"까마귀들."
나의, 이제는 흩어진 그리운 동포들이여.
"표면적으로는 종교 단체... 였지요. 뭐, 실상은 밖의 세상에서 일어난 각종 크고 작은 테러 혐의에 관련되어 있었고, 작전을 하달받은 미국의 특수 부대가 교주를 탕! 하고... 아시겠지요?"
도미닉 메디슨과, 밖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법한 이야기. 여전히 즐거운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지 않은 채, 그것은 말을 이어간다.
"제가 그 뉴스를 TV에서 본게... 아마 10살 쯤이였을거랍니다. 그러니 26년 전을 기점으로 거슬러가시면 편할거에요."
사소한 내용이라도 좋으니 관련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던 것이지만. 그 보따리가 이렇게 작을 줄이야. 그래도 당신의 말대로 핵심적인 부분은 다 들었으니 그걸로 된 것이었다. 마젠타는 당신이 이야기하는 단체와 그 단체에 행적을 가만히 듣다 어깨만 으쓱인다. 세상의 종말이니 뭐니, 떠들어대며 자기들만의 성전을 벌이다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고 들리는 것인데.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그것도 그렇게 테러를 저지르고 다니는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이 왜 원하는지 생각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한다.
"그렇게 뉴스에 나올 정도라면, 관련된 이야기가 넘쳐나겠군요."
테이블 톡톡 두드리다 소파에서 일어난다. 사실 여부 상관없이 이야깃거리가 될 거라면 상관없다 하였으니 잡히는 대로 끌어모으면 될 것이다. 브로커를 통해 전직 탐정이나 기자들을 고용해야 할까 고민하며 마젠타는 당신에게 다가온다.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뜬소문이든 다 모아보죠. 다만 당신이 원하는 이야기가 있을진 몰라요?"
사냥제의 시작은 언제나 즐겁지 않은 퍼레이드부터 시작됩니다. 사냥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퍼레이드 카에 앉혀, 매표소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생명의 위협.
방금 전에도 사냥제의 시작을 알리는 퍼레이드에서 저격 미수 사건이 벌어졌으니. 오늘은 특히 목숨 간수를 잘 해야 하는 날이겠거니 싶을 터입니다. 아니라고요? 당신, 제법 배짱있네요.
당신은 어떠한 이유로 사냥제에 참석했을까요.
시시콜콜한 대화나 하고 싶어서? 소원을 빌기 위해? 재밌어 보여서? 몸을 좀 풀고 싶어서? 윗선에서 까라고 해서?
어찌 되었든, 들어오는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장미 정원은 휴식하는 곳. 그리고 저 바깥 사막의 장미향이 느껴지는 부분까지는 우리의 사냥터.
그렇게 구분 되어 있으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정명하지 않게 사냥하십시오!
사냥제의 시작입니다. 시스템 설명
1. 지난 이벤트처럼 행동 레스를 작성해주면 된다. 뭐, Npc랑 엮인 애들은 말 건다로 시작하면 그게 제일 베스트. 2. 다이스는 실시간으로 깎는 거고, 목표치를 달성하면 잡을 수 있다. 그 이후엔 떡밥털이 해도 됨 ㅎ 3. 마오-이가라시는 이가라시주가 보이지 않는 듯싶으니 내가 잠시 이가라시가 되어 다이스를 돌려주겠다. 이가라시 캐조종 ㅈㅅ합니다.. 4. 기간은 넉넉히 2주. 26일 23시 59분에 종료. 정산은 다이스로. 5. 이거 좀 중요해서 얘기하는 건데.
하, 마젠타는 당신의 그런 반응에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트린다. 찾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봐달라고 할 것이지, 이미 와해되어 없어진지 오래인 종교 단체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미끼로 쓰려고 하는 것일까. 찾는 사람이 그 단체와 연관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을 당신을 바라보다 마젠타는 "뭐. 네 그래요. 해결."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러했지, 고객님의 사정에 깊게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서 마젠타는 품에서 핸드폰 같은 것을 꺼내어 문자를 보내는 듯하다가, 고갤 들어 당신을 보며 말한다.
많은 만큼 모으는 것에도 시간이 걸릴 거예요. 명함이나, 연락처를 두고 가면 준비되었을 때 연락할게요."
그러며 다시 문자 보내는 것에 집중하던 마젠타 아, 하며 덧붙여 말한다.
"성물이나, 다른 도시 전설에 관한 것이나. 뭐 알게 되는 게 있으면 그건 내가 티켓을 주고도 살 테니까. 뭐 듣게 되면 알려줘요."
사냥제는 이제 막 시작 한 것인데. 퍼레이드 중 있었던 저격 미수 사건에 그냥 뒤돌아 다시 도시 안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일까. 미지의 존재를 알현할 수 있음에 참가했던 것이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사냥용 총을 어깨에 맨 채 마젠타는 한숨을 내쉰다. 상대와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그 상대의 뒤통수를 노리던 자신이 크리처를 잘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경쟁자를 목표로 하는 놈들에게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더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던 마젠타는 아차 하며 눈만 굴려 코냑을 본다. 헛기침하고서 마젠타는 코냑을 보며 말한다.
"보잘것없는 사냥 실력이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코냑."
하며 허리 펴며 어깨에 맨 총을 앞으로 해 들지만, 마젠타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여전히 자신 없음이 옅게 묻어난다.
살 에는 듯한 시간, 언제 다 흘러가나 싶더니, 눈 깜빡 했을 뿐인데 사냥제의 날이 밝았다. 어느 섹터나 준비에 분주할 시간, 엘 역시 분주했다. 자신을 대신할 이들을 신경 쓰느라고, 가 아닌, 작고 귀여운 털뭉치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내느라 말이다.
"알겠지요? 작은 루. 절대, 저얼대, 마음대로 뛰쳐나가면 안 돼요. 한 번 그럴 때 마다, 하루씩 간식 압수니까요. 네?"
위험하니 두고 갈까도 싶었지만, 금방 돌아오지도 못할 텐데, 계속 혼자 두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 데려가는 대신, 절대 혼자 마음대로 뛰쳐나가지 말아달라, 당부에 당부를 하고, 거듭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다. 여차하면 제가 손 쓰면 될 것이나, 그랬다간 모처럼의 '축제'를 망칠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작은 루의 앞발로 약속하고 또 약속한 후에야, 품에 곱게 안아들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갔을 퍼레이드의 뒤를 따라 장미 정원으로 향했다.
한편, 엘의 대역으로 참가한 조직 '트러슈터' 보스, 에이반과 조직원, 필트는 퍼레이드 카에서부터 시작된 저격 미수에 이미 간이 콩알만하게 말라있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 안전한 '봄' 섹터 안에 숨고 싶지만, 직접 사인한 계약서와 그 순간의 경험이, 에이반을 그 자리에 붙들었다. 그런 짓 하지 말았더라면, 그가 지금 여기 있을 일도 없었건만, 모든 것은 스스로의 잘못이었다. 그러니 어쩔 도리 있을까. 한숨 푹 내쉬며, 무기로 챙긴 검 들고, 장미 정원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그 뒤를 어리버리해보이는 필트가 주저주저하며, 긴 봉 하나 들고 따랐다.
"언니~. 누군가가 우리가 퍼레이드에서 펼칠 쇼를 먼저 선수친 기분이 어때?" "사냥제라는건 사냥하는 자가 사냥당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니 저격미수같은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군중 속에서 또각또각 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이질적인 자매는 퍼레이드의 행렬로 여유롭게 걸어가 예정된 목표를 조금은 바꾸었다. 저격미수가 먼저 일어난 사실이 있다면 '그 여자'와의 만남에서 환영인사를 바꿀 필요가 있었으니까.
"환영 인사 어떻게 바꿀까?"
리사가 묶은 옆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더니 그런 질문을 티아에게 해왔다. 당초 기획은 군중 속에서 퍼레이드로 난입해 총구를 겨눈다는 순전히 양아치스러운 이야기였지만 그걸 대놓고 한다는 시점에서 이 자매가 얼마나 오만하거나, 여유로운 정신나감을 알 수 있었다. 망령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그만이라는 것 처럼.
"그 저격 미수를 선수친 사람의 목을 따다가 선물로 바치는건 어때?" "기각. 두 번 요란스러워. 요란스러운건 한 번이면 충분해." "칫. 퍼레이드의 개막으로서는 더 요란스러워도 괜찮잖아." "군세를 쓸모없는 곳에 펼칠 수는 없어. 원로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티아의 기각과 정론적인 말에, 리사는 뿌뿌거리는 소리를 일부러내고 토라진 모습을 보였다. 자문자답.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 하는 것을 자매라는 형태로 구현한 연극. 티아는 대화와 머리 속의 구상안을 결론짓고는 대답했다.
"망령은 망령답게, 안개 속에서 유유히 드러내 공포를 자극하는 것 처럼. 앨런 포나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마냥." "시시해~" "나는 똑같은 방식의 재연은 사절이야." "흥."
그런 만담같은 대화가 끝나자 이윽고 자매는 찾고자 하던 퍼레이드 카의 근처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제 퍼레이드의 열기와는 다르게 차갑기 그지없는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그녀들은 이동하는 차량의 앞길을 막았다.
"마탄의 사수"
리사가 낭독하듯 그 제목을 부르자,
"7발의 마탄이 있었다. 6발은 사수의 것 1발은 악마의 것. 6발은 과녁에 명중하나 마지막 1발은 나의 뜻대로 날아가니. 유혹에 약한 사수여. 마탄을 장전하라. 우리 곧, 지옥에서 재회하리라."
티아는 치마자락을 들어올려 고개를 숙이고 가로막은 차량에 타고있는 자에게 유령이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가로막은 차량에 타고있었던 것은 가을의 원로였다.
작은 루는 앞발로 약속하고, 결의를 다진 듯 입을 벌려 꺙, 소리를 냈습니다. 얌-전하게 있을게! 그런 의미였던 듯싶습니다. 그리고 휙, 하고 무언가를 손 위에 얹어주니, 이럴 수가, 꼬리까지 걸었군요! 우리 작은 루가 어쩜 이리도 대견한지! 아니, 이게 아니죠……. 당신의 품에 익숙하게 안겨서 장미 정원에 도달했을 때, 사막으로 출발할 채비를 마친 리큐르와 작은 루의 시선이 공교롭게도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너! 거기 리큐르 자리야!" "꺙!" "무슨 소리야! 네가 찜한 자리가 아니라니까!" "꺄앙!" "너 말 다했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앗 어앗 이이이이거 놓아 리큐르 지금 중요한 기싸움하고 있는데에에-"
질질 끌려가는군요, 리큐르는 복제품에게 패배했습니다…… 아마 오늘 미지의 존재와의 알현이 있겠지요. 당신은 잠시 기다리면 되는 일일 터입니다. 네, 다과를 준비해달라 하는 건 어떨까요?
한편, 에이반과 필트의 운명은 안타깝게도 장미 정원에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겠군요. 그르릉, 익숙하지 않은 울림소리와 함께 풀숲을 바스락대는 소리가 납니다.
판정을 역임하겠습니까? >>839 <마오>
사냥합시다, 사냥! 야생의 고양이에게 있어선 가장 행복한 일이지요. 쥐새끼들이 많고, 그 쥐를 전부 잡을 수 있는 날. 마음에 안 드는 새도 물어 죽일 수 있는 날. 붉은 꽃과는 한결 다른 계열의, 마음엔 별로 들지 않는 붉은 장미 피어있는 곳에서 사막으로 나왔을 때, 날씨는 어찌나 나른하고 따스한지. 야옹, 많이 사냥하면 이번에도 고롱고롱 잘했다를 해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골골골, 야옹야옹, 잘 했다 우리 마오.
아, 마오타이 냄새. 마오타이랑 비슷한 사람이 당신의 곁에 섭니다. 질끈 올려 묶은 하얀색 머리, 온화한 갈색 눈. 이가라시는 어디 갔을까요? 원래 마오타이가 머리를 빗겨주면서 했던 말은 분명 '이가라시랑 같이 가게 될 거야.'였는데……. 마오타이와 닮은, 그렇지만 마오타이보다는 조금 더 무서운 것 같은 사람이 뒷짐을 지며 생긋 미소 짓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인생의 계획은 늘 수정하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지요. 당신의 환영 인사는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지, 그리고 그로 인한 반향은 어떻게 될 것인지. 어느 쪽이든 상관할 필요는 없죠. 망령에게 현존하는 것을 들이밀어도 그게 무슨 상관이 있더랍니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차를 막아섰을 때. 제법 많은 사냥제의 참가자들이 나서지 않고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당신들이 누구를 막았는지 알고 있기에 더 나설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
당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위스키는 모자에 달린 베일 너머의 눈을 뜨지 않고 가만히 손을 모은 자세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선이 느껴집니다. 분명하게 당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사수는 모든 일이 있음에도 자비를 구가하여 격려를 받고 행복해지고 말지."
이 도시에서 구가하여 행복해질 생각이 없음은 위스키도 알고 있습니다만. 무례하니, 망발이라니 하는 소란 속에서 위스키가 일어섭니다.
"6발은 크리처에게 쏘는 것으로 하자꾸나. 합류하렴. 내가 적적하니 혼자 있어서 말이야."
> [합류한다 - npc와의 사냥제+일상 병행(캐릭터 반응 O)] > [합류하지 않는다 - 사냥제만 진행(캐릭터에게 반응 X)] > [기타 자유]
일리야는 벌써 몇 번째일지 셀 수 없는 한숨을 내쉬며 예하라고 불리는 존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미 정원에 들어온 이후부터 심기가 불편하다는걸 숨길 수 없는 모양인지,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인지. 노골적인 움직임을 시간으로 따진다면 아마 1시간도 넘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룰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질문 하나만 드리지요."
언제까지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순 없다. 일리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코트 안을 뒤적거렸다. 평소대로라면 자그마한 총이 손에 쥐어져 나올 것이 분명했으너... 그것이 꺼낸건 녹슨것이 분명한, 투박한 망치 하나일 뿐이다.
"1. 크리처들의 대가리를 깬다. 2. 목숨 간수를 잘 한다. 3. 싫은 사람도 기회를 봐서 대가리를 깬다. 제가 이해한게 맞나요? 예하."
하, 하고 웃음이 터지자 일리야는 눈을 감는다. 눈앞의 작은 사장님은 이상한 점을 단번에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을 찾아달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보단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을 하는 쪽이 더 나을 터이지 않은가. 나름대로는 최선의 선택이다...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그것은 마음속으로 두어 번 되뇌면서 다시 마젠타를 바라본다.
"알겠어요. 명함을... 만들 정도로 근사한 곳에 속해있진 않은지라, 연락처를 드리죠."
하나의 도시괴담 같은 조직에 속한 일리야에게 명함을 만들 필요성 따윈 없었기에, 가져온 수첩 한 편에 숫자 몇개를 빠르게 휘갈겨내린다. 곧 자그마한 종이 하나가 찢겨 마젠타에게 내밀어진다.
"좋아요. 더 알아내고도 제 목이 멀쩡히 붙어있다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싱글싱글 웃고 있지만 농담이라곤 할 수 없는 대답을 건네며 일리야는 손을 흔든다. 더 이상 볼 일은 없다는 듯, 천천히 떠나는 그림자 뒤로는 단지 "그럼 나중에 다시..." 같은 인사말만이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 뿐이다.
"무례는 당신들 발밑에 시체의 수를 생각하고 반문하지 그래? 격이란건 사람을 죽인 손으로 쌓아올릴 수 있던거였나?"
리사가 조롱하듯 주변 군중의 비난을 그리 비꼬고 윈체스터의 샷건, M1887을 겨누고 위협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는건 자신의 자유라는 듯이.
"동생의 무례는 부디 애교로 봐주시길.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말이죠."
티아는 자신의 드러나기 쉬운 복수대행이 세상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가을에서 사람을 지독할 정도로 엉망으로 만든것도 수년째. 그것을 방관이나 감추고 있을 만한 사람은 원로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단지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저희는 악마도 아니고 그저 과거의 망령이라는 사실이 이야기를 다르게하겠죠. 이번 사냥은 원로이신 당신의 총구가 되어 드리죠. 적적하지는 않을 겁니다. 마지막 탄환이 어디로 향하는 지가 궁금해지실테니까요."
미네르바의 말에 여인은 침묵한다. 당신 말마따나 그런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방식이든 끝을 맺기 위해 찾아온 지금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별로 아니다. 시간이 많아 한가한 때라면 모르겠다만.
닿을 수 있다, 그렇게 확언하는 미네르바를 여인은 가만 바라본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으니 시선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만, 고개는 똑바로 당신을 향한다. 시선은 잠시 사라지는 리큐르의 자취를 쫓지만 이내 당신에게로 돌아온다.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당신이 어떤 이였는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였다거나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그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알 바도 아니다. 다만 그가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제가 그것을 이뤄줄 힘이 있는가다. 그 두 가지에 대한 답을 얻은 여인은 나직이 웃는다. 재미있는 소릴 들었단 태도다.
"고될 것 하나 없지요. 자비라 칭해주실 이유도 없습니다. 소인이 이곳을 온 것은 오로지, 리큐르의 청대로 당신이 원하시는 바를 이뤄드리기 위해서였으니..."
자비라니! 애초 그는 자비를 베풀러 온 것이 아니다. 여래처럼 굴려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약간의 흥미와 원로에게 빚을 지워 두면 편할 것이라는 이기심이 그를 움직였다. 리큐르와의 거래를 통해 생긴 의무가 그를 이끌었다. 자비심같이 고귀한 뜻이 아니라... 여인은 정중히 고개를 조아린다.
얌전히 있어달라는 당부에, 꼬리까지 주며, 엘의 말에 반응해주는 작은 루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런 작은 루에게, 새로이 준비한 리본 목걸이를 메어주었다. 엘의 것과 같은, 푸른 은방울꽃 장식 달린 것이다. 채비를 마치고, 장미 정원에 가니 때마침이랄지, 리큐르가 있었다. 엘보다 품에 안긴 작은 루와, 말로 기싸움을 하는 모습은 어느 쪽도 귀여워, 그만 후후, 웃어버렸다. 그리고 멀어지는 리큐르를 향해 한 손을 흔들었다.
"부디, 몸 조심해요. 잘 다녀와요. 작은 루."
그렇게 멀어지는 작은 루에게 말하곤, 품에 안긴 작은 루에게도 말한다.
"둘이 사이 좋은 건 좋지만, 너무 심한 말은 하지 말아요. 다음에 또 그러면, 잘 때 토닥토닥 안 해줄 거에요?"
무슨 위협이나 될까, 싶은 말이지만, 웃는 얼굴로 하니 반쯤 농담인 듯 하다. 잠시간의 인사와 배웅을 하고, 엘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적당히 볕이 들고, 먼지가 과히 날리지 않을 곳, 그리고 장미가 가장 곱게 보이는 자리를 찾아, 그 자리에 티 테이블을 준비해달라 했다.
"2인석, 이면 되겠지요. 네, 그리 준비를."
자리가 준비되면, 먼저 앉아 무릎에 작은 루를 앉히고, 잠시 정원의 풍경을 감상한다.
엘의 대리로 정원에 들어간 에이반과 필트, 조금 이동하기 무섭게 근처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둘의 몸이 바짝 굳었다. 그래도 순순히 죽지는 않을 것인지 각자의 무기를 꽉 쥐며, 소리가 들린 방향을 주시했다.
한숨 쉬면 빨리 늙는대! 그렇지만 이 정도면 노화세포도 내 마음을 알고 눈치껏 안 와주겠지. 아니라고? 미지의 존재님께 부탁드려 봅시다…. 원로들처럼 늙지 않게 만들어 줄지 어떻게 압니까. 예하는 당신이 한숨을 쉬든, 말든 가면 너머로도 진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긴 합니다.
첫째.
"어떤 질문이라도 다 좋습니다."
예하는 당신에게 친절하다…….
"대답해드릴 질문이 이렇게나 많다니…!"
둘째. 당신이 투박한 망치를 꺼내자 가지런히 모았던 손을 들어 입가가 있을 부분을 가리는 걸 보니 탄성을 참는 것 같다…….
"첫째, 크리처를 잡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둘째, 목숨은 제가 구해드리고, 셋째…… 옳은 말입니다. 예. 잘 이해하셨습니다…!"
셋째. 이거 이 새끼 지금 데뷔 첫 대형콘 1열 앉은 사람처럼 당신을 대한다……. 아니, 왜 이러냐고요? 분명 당신을 싫어하는 것 같고 찍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인간의 오해란 깊은 법이지요.
"혹시 그때 곤혹스럽게 만들어서 제 머리를 깨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그게."
가면의 뺨 부분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요.
"그때는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도 신탁 때문에……. 그렇지만 당신이 잡는 모습을 보니까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도 대단하시고……."
조롱에 당장이라도 사람들은 총을 꺼낼 것 같으면서도, 막상 움직일 수 없는지 눈치만 보기 시작합니다. 리사가 겨눈 총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기류가 심상찮았기 때문도 있겠지요. 가령 여유로운 듯한 위스키의 기백이 수백 마리 뱀이 기어오르듯 살벌했다던가.
"물론 그래야지. 이 정도야 애교라는 건 알고 있단다."
만약 애교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대응했을지도 알고 있으리라 믿고 있지. 그런 의미가 담긴 고상한 뜻을 전한 위스키는, 장미 정원까지 동행이라도 하자는 듯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습니다.
"악마라면 이리 대하지도 않았을 테지. 그래, 이번 사냥제가 어떻게 흐를지……."
마지막 탄환이 어딜 향하든, 일단은 참겠지만. 적어도 원로를 향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위스키와 동행한 당신은 장미 정원에 도달합니다. 장미 내음 가득한 곳. 이 장소에서 사냥을 할지, 잠시 대화를 할지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 [사냥 개시] > [대화] >>855 <마오>
마오타이? 아니면 마오타이가 아닌 사람? 어찌 되었든 마오타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되는 일입니다. 네 이름은 지금부터 춘ㅅ…… 아니, 마오타이여! 당신은 그저 마오타이로 정한 사람이, 과연 어떤 존재일지는.
"착하기도 하지. 아주 착한 고양이구나."
이리 경계심도 없고 말이야. 소매가 길어 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은 당신에게 가자는 듯 손짓합니다. 장미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사막 초입을 향해 걸으며, 존재가 묻습니다.
"그래, 네 이름이 진 마오였지? 나는 마오타이의- 아주 오랜 친구란다."
납치할 때 아저씨는 엄마 아빠 친구야, 수법이 그렇게 고전적인데 이 존재도 그렇군요…….
"그래서, 사냥을 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놀고 싶으니?"
존재는 당신에게 상냥하게 묻습니다. 사냥이라면 크리처겠지만, 놀고 싶다면.
> [난 사냥이 좋아!] > [난 놀래- 놀고 싶어!] >>855 <유라>
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냥 변덕 삼아 참가한 사람도 여기 많을 테고, 그렇지만 팀을 짜고 움직이자니 내키는 사람은 없고. 그 심정 잘 이해합니다. 문제라면 당신이 지금 여인에게 다가갔을 때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단 점이고, 여인은 당신을 보며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단 점이군요. 이제 보니 새로운 초커도 한 듯싶습니다. 정확히는 목줄에 가까운 무언가를.
"……그 데이트가 빈말이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너, 네 마음대로 사는구나. 그런 시선으로 여인이 비웃듯 당신을 쳐다봅니다만, 그래서 저 여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뭐 어쩌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내리 꽂힐 적, 여인은 고개를 픽 돌리고는 중얼댑니다.
"…사람들 시선은 신경 안 써? 딱 봐도 죄인 취급인데."
그런 취향은 아닐 거고. 여인이 거만하게 제 팔짱을 끼더니 한숨을 푹 쉽니다. 마지 못내 수락하듯이.
복슬복슬한 작은 루가 이겼습니다. 애초에 은방울꽃 장식 달고 있는 것부터 이겨버렸는걸요. 너는 여우가 아니라 민들레 솜털이야! 심한 말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작은 루는 의기양양하게 품에서 꼬리를 펼쳤습니다. 내가 이겼지롱! 물론 리큐르는 멀어지는 당신을 향해 열심히 소매를 파닥거리며 "제일 큰 크리처를 바칠게!!" 외쳤습니다. 굿 럭, 인간 루.
"!"
작은 루는 조그마한 입을 떡 벌립니다. 토닥토닥은 절대 못 뺏긴다는 듯 작은 루가 꺙, 작게 울며 몸을 살갑게 비비적댑니다. 예쁜 꺙만 하겠다는 듯.
테이블. 준비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군요. 이종족도 아닙니다. 잘 차려입었지만 새까맣게 물든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테이블과 차, 다과를 준비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장소는 유달리 조용하군요. 다른 곳에서도 시선이 오갈 법도 싶은데 어째 그런 기색도 없습니다. 아뇨, 시선이 오가지만 당신에게 함부로 말 붙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향해 위태로이 걸어왔기 때문에.
감히.
목숨 날아가는 것이 두려워 중앙 섹터에 몸을 의탁하는 시즌스 킹덤의 대역죄인, Q의 등장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날섭니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건지, 저 녀석은…….
"……DTD의 오너 되시온지요."
> [그렇습니다.] > [아닌데요?] > [기타 자유] 순순히 죽고 싶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두 사람을 향해 나타난 것은 크리처입니다. 작은 짐승의 형상을 가졌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해적의 판정은 다음 턴, 엘 사이드 행동과 다이스를 합산하여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런 지금의 상황에 다른 이도 아닌 원로와 같은 팀이라는 것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으나,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냥한 그런 당신의 웃음은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이라. 완연히 긴장을 풀어내며 마젠타 또한 코냑을 올려다보며 웃어 보인다. 그래 코냑님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뒤로 물러난 이들 보다 앞으로 나선 제가 더 나을 것이다. 한층 밝아진 얼굴로 마젠타는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이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피다가 코냑에게 묻는다.
두 사람 분의, 티 테이블을 부탁한 엘은, 잠자코 서서 그 준비하는 이를 보았다. 마치 그림자가 옷 입으면 저럴까, 싶은 이가 움직이는 것을, 아무런 말 하지 않고 보기만 한다. 조금 지나, 앉을 수 있게 되면, 살짝 고개를 기울여주는 예는 갖추었다.
아양 떨듯, 몸 부비는 작은 루와, 함께 마련된 자리에 앉아있으니, 그저 이 정원을 보러 유희를 나온 것만 같다. 아직은 정원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적막한 긴장 흐르는, 아름다운 장미 정원 바라보며, 무릎 위 보들한 털뭉치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니,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이 있었다. 킹덤의 안내자, 대역죄인, 중앙의 거주민, 제대로 본 적 없는, 베일 덮은 얼굴에 힐끗 시선 한 번 주고,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예, 보시다시피, 제가 DTD의 오너, 엘이랍니다."
대답과 함께 싱긋 웃는 얼굴은, 인위적이지 않아 오히려 이질적이다. 여전히 앉은 채, 고개를 들고 있던 엘은, 빈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자리가 있으니, 앉으시렵니까?"
주변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란 듯, 신경쓸 가치 없단 듯, 평온히 말하고 작은 루를 토닥인다.
> [그렇습니다.]
부스럭거린 수풀 너머에서 비교적 작은 크리처가 튀어나오자 에이반과 필트는 움찔했다. 그래도 생각한 것 만큼 크지는 않아서 어쩌면 잡을 만 할 지도 생각했으나 그래도 긴장이 풀린 건 아니라, 크리처에게 당하기 전에 에이반과 필트 모두 움직였다.
"저...게 크리처? 그검까? 보스?" "그게 아니면 뭐겠냐. 젠장. 일단 덤벼!"
그 말 떨어지기 무섭게 필트가 들고 있던 봉을 크게 휘둘러 크리처의 위로 내리친다. 자세히 보니 봉의 재질은 쇳덩어리 그 자체이고 두께도 한 줌 정도로 제법 되었다, 필트는 그 봉을 자유롭게 움직여 선공을 취하려 했고, 뒤이어 에이반이 검을 뽑아들었다. 겉보기엔 일반적인 검으로 보였으나 에이반이 뽑아 앞으로 내지르자 날이 쭉 길어지며 크리처의 몸통을 찌르기 위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