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이런 사람이었지. 애초에 환생자라는 중대한 사실도 마구 말하는 사람이거늘. 특별반 특, 전혀 솔직할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한 부분에서 매우 솔직하다. 심지어 머리 좀 쓴다는 지휘관에 꽤나 좋은 집안의 도련님인 현준혁마저도 린의 생각에는 솔직했다. 일반적인 의미의 솔직함 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참거나 숨기지 못한다는 게 더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면 천천히 여유있을때 천천히 듣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언제든지 말하고 싶을때 말하세요."
역시 관심을 보이네 어쩔 수 없나. 묘하게 또 한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예감에 린은 살짝 뾰루퉁한 표정을 만들었다가 평소의 미소를 지었다.
"군중의 선동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먼저 제압해야죠. 혼란이 있는 지역에서는 먼저 질서를 잡는 것이 우선이에요. 이왕이면 혼란을 좀 더 방조하다가 그 사람을 제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에요. 과한 처사 아니라는 논란도 피하고 사람들의 적대감도 그 그룹으로 돌리고.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이후에 열심히 케어해서 교화까지 성공한다면 제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심어줄 수 있을거에요"
남이 수업듣고 있는데 옆에서 긴 최근 근황 이야기를 줄줄 떠들어대면, 솔직히 짜증나는 녀석이 아닌가. 적어도 그녀가 여유가 있을 때 천천히 말하는게 낫겠지. 나는 그렇게 내 쪽의 이야기에 관한 것을 정리하면서 적당히 근처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에게로 화제가 집중된 상대의 표정이 묘하게 뾰루퉁 해지는걸 본다.
"흠."
잠깐 턱을 괴곤 생각에 잠기듯 침묵했다가,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연다.
"일단 뭔가를 말 하기전에. 지금, 내가 잔소리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느 의미론 너무 솔직한 반응이었다.
여튼간 처음 만났을 때의 지적이 뇌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있는건지. 아니면 내 인상이 매우 고결한 인물상으로 남아있는건지. 어느쪽인지는 모르겠다마는.
"그리고 더욱 정확하게 대답하기전에. 교화랑 종교, 교주라는 얘기가 들리는데. 요컨데 그러한 입장에서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 맞나?"
여선이 대련이 막 끝난 곳에 톡 튀어나오듯 들어오려 합니다. 치료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대련을 분석하고 다각도로 보거나.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같은 걸 하려는 듯합니다. 다른 쪽의 정보를 로봇선생에게서 받은 다음 이쪽의 상황을 보려는 듯 다가오는데.. 시윤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엇. 시윤씨 하이에요~" 손을 들어 하이하이 합니다.
"대련이나 그런 거 했거나 하실 분을 찾아다니면서 분석이나 논리같은걸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예정된 게 시윤시윤인줄은 몰랐어요! 라고는 해도 여기서 제일 활발한 거 시윤이 들어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소정의 보상도 있다구요..는 농담이지만요" 무려 제가 산 긁는 복권 한장!(*당첨되긴 하겠지만 5등이라 본전치기다) 이라면서 팔락팔락 흔듭니다.
나는 완전히 박살나서 폐허가 된 대형 건물을 보곤 긴 숨을 내쉰다. 방금까지 봇선생과 펼쳤던 대련의 흔적이다. 도심의 필드에서 서로 저격전을 시행했다마는, 화력이 높았던 터라. 한발 한발 쏠 때 마다 건물이 튀어나가며 부서지곤 했다. 물론 명중한 신체 부위가 너덜너덜 해지는건 당연한 일이고.
그 끝에는 기어코 풀차징한 찰나의 생명을 때려박아 건물에서 엄폐중인 봇선생을, 건물 째로 날려버리는 걸로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시윤군. 해당 대련을 교보재로 사용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덜너덜해진 신체를 치료하러 가기전에 조금 피곤해서 쉬던 찰나 당연하게 봐줬다는듯 멀쩡하게 대기하고 있던 봇선생이 의향을 물어왔다.
"아, 예. 상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자, 얼마 뒤에 여선이 쪼르르 들어왔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친한 사인데 거절할 필욘 없지.
"간단한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괜찮아요?" 물어보네요. 그리고는 교보재로 써도 괜찮다는 것을 허락하자 감사합니다! 라고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한발한발이 화력이 높...았을 것 같다는 건 무너진 건물만 봐도 확실한 점이라서 그런가.. 시윤에게 질문이 있다는 듯 눈을 반짝거립니다.
"저격전이라고 봇선생님께 듣기는 했는데. 이런 고화력의 전장에서 은신과 회피 중에서 뭘 우선시했는지... 그 판단의 경위를 묻고 싶어요" 여선주가 질문 수준이 매우 낮은 것 같다.
"부상부위를 보면 맞은 게 대부분인 것 같네요." 가끔 고화력의 여파로 긁히거나. 반동격인 것도 보인다는 것도 덧붙이고는 너덜거리는 순서를 기억해두려는 듯 몇 번 눈을 깜박입니다. 방어력 없는 죽창대전이라는 말은 들었으면 키득거렸겠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방어력 대신 공격력.. 음 유리대포?" "방어력은 저도 영. 그렇죠?" 메딕쪽을 생각한 만큼 방어력이나 공격력..은 크게 생각해본 적 없었을 것이다. 물론 최소한은 있어야 하지만!
"오... 그렇네요. 저격을 하면 저격 위치가 어느정도 가늠이 잡힐 거라 생각해서 회피에 조금 생각이 기울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하긴. 상대에게 들켰다는 것은 수를 한 번 읽힌 거고.." 그러면서도 선제 공격권을 잡기 위해선 상대의 은신을 파훼해야하는 걸 보면 시윤씨 말대로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적절히 섞은 것 같다고 말을 하려 합니다.
"신체 부위에 빗기면 충격에 딸려나가느라 살점이 뜯기거나 뼈가 나가거나 그래. 다만 대부분은 엄폐로 그런걸 피하려고 노력하니까. 그 주변이 착탄하면서 터지는 파편에 충돌하는 타박상이 많지."
건강이 높은 사람이면 몰라도, 한발 한발 건강을 강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 맞으면 터져나가는 위력이다. 그러니까 직격하지 않도록 엄폐물을 끼고 포지션을 잡는거지만, 결국 서로 강렬한 일격을 쏘아내다보면 주변 지점의 파손으로 인한 부가 피해 정도는 감수해야 하기 마련이란 것이다.
"뭐 랜서는 보통 유리 대포야. 나는 좀 더 극단적이지만."
원래부터 랜서란 포지션은 뾰족한 창. 그러니까 화력에 일점 집중하는 케이스가 많다. 물론, 저격수란 포지션은 거기서도 더더욱 화력에 특화했다는 인상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 보통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우리 반 마츠시타 같은 암살자를 떠올려봐. 기습에 실패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정면 전투로 전환하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가장 좋은 방법은 물러나서 다시 기습 기회를 노리는거 아니겠어."
우리 같은 직종은 어디까지나 적을 절명 시키는데 특화되어 있다. 서로 합을 나누고 거기서 승부를 제압하기 위해 단련한 사람들이랑 맞붙으면, 기본적으론 지고 들어가는 싸움인 것이다.
"아예 힐링 쪽으로 빠진다고 해도 저를 노리는 것은 좀 피하거나.. 막을 방도는 있는 게 좋죠?" 본인이 다운되면 강제로 타임어택해야 하는 느낌이고? 같은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씩 웃으면서
"최고의 치유는 적을 없애버려서 할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같은 거라는 건 못하지만요" 당당하게 말하지만 농담인가보다. 못한다고 명백히 말하기도 했고. 랜스여선이는 없어! 그런거 무리야!
"그렇네요. 고지를 노리려고 하는데.. 상대도 비슷한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아니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 한 거려나.." 지도상의 한 지점을 가리키면 상대방이 높이 올라가는 시윤과 비슷하게 고지를 점하려는 것 같습니다. 혹은 약간 기계적인 도움을(드론이라던가) 받아 장소를 알아내려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같은 것을 지켜봅니다. 지금은 아직 발단 정도고. 본격적으로 격화되면 어떻게 되려나.
최고의 치유는 적을 없애버려서 할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라는 얘기를 듣자하니 언젠가쯤에 근접전에 대한 대응법을 물어보러 갔다가 들은 얘기가 떠오른다.
"총교관님 동기신 성녀님이, 실제로 그런 느낌으로 검술을 배워 앞으로 나가는 힐러가 되셨다더군."
솔직히 말해서 터무니 없는 짓이다. 이성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러나 신념이 확고하고 영웅의 자질이 있다면 그런 길을 걸어도 대성하는 걸지도 모르지. 나는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모니터를 본다. 서로 위치를 잡곤 미동도 없이 침묵하는 구간이 생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상대를 발견했을 때, 쾅 - !! 하는 격발음과 함께 사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로 한발을 쏠 때 마다 강렬한 파쇄음과 함께 건물이 작살나고. 위치가 노출된 만큼 곧바로 뛰쳐나가서는 자리를 잡아, 상대를 탐색하여 사격하는 반복이다.
"성녀님이라...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그야 다른 분야를 두 개를 잡겠다는 건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진짜 시작하는 건 웬만한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런 잡담과 함께 모니터를 보다보면 침묵과 미동이 깨지고 소리와 그 소리가 낳은 파편이 비산하는 광경이 보입니다. 그렇게 한발과 한발을 주거니 받거니 할 때...
"저쪽이 조금 계산한 느낌이네요." 중간에 쏘았을 때 무너지는 게 좀 연계되는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말대로 화력을 조정해서 엄폐하기엔 애매하지만 진로를 방해하는건 충분한 잔해들이 보입니다. 약간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그것을 눈치 못챌리는 없을 것 같아 오히려 이용했을수도 있을까?
"바쁜 건 다른 분들도 다 그런 것 같아요." 아닌가. 나만 너무 한가했던 건가! 같은 생각이 드는 듯 미약한 충격반응이 나오네요.
"그렇구나아.." 나중에 알 수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물론 호기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막 들이대거나 그런 건 매너가 아니잖아요!
위험을 감수한 덕에 상대의 위치에 초화력을 쏘아낼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난 지도를 봅니다.
"초화력의 적절한 투사를 위한 상대방의 몰아넣음을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계산과 계산이 부딪혔는데 좀 더 잔머리를 썼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요?" "봇선생님은 어때요?" [제가 보기엔...] 어쩐지 안경을 한번 스윽 올리는 듯한 말투가 들리는데...? 뭐지. 분석폭격이 이어질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