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이 조금 망설이다가 강산에게 아이슬란드의 재현형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자, 강산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심각한 표정을 지어 가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뭔가 이 휴식 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탓에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슬픈 이야기네...큰 결정을 했구나. 그래도 17살이면 엄청 어린 건 아니네."
성인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15세의 환생자와, 신의 아이였으나 인간이 된 17세 소녀라니, 강산이 듣기에 묘한 조합 같았다. 강산과 시윤의 딱 중간 나이라서 더 묘했다. 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여기엔 안 데려온 거로군. 혹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비밀로 하고자 한다면 지켜주도록 하지."
그래. 2교대보다야 24시간 텀을 두고 지옥 훈련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여기서도 좀 그거랑 그거는 다르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빈센트는 괜히 따졌다가 치료가 더욱 "고통스럽지만 효율적인" 방향으로 바뀔까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선이 음식 이야기를 하자, 로봇 교관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들 중에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요리 스승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어보다면 맛은 좋을 겁니다.]
빈센트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무거나 먹을 거라는 여선의 말과 조합해 이야기한다.
"수련이고 뭐고 잊고, 일단 치킨이나 먹죠. 여기 스승들이 튀겨주는 치킨은 얼마나 맛있을지."
"지금 제 몸 상태가 심각하긴 해도 거즈를 쑤셔넣을 정도로 찢어지거나 벌어진 상태는 없습니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끔찍한 소리를 하는 여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목숨을 끝장내진 못하더라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자에게는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을 다시금 떠올린다. 만약 따졌다가 여선이 빈센트의 몸에 이런저런 '실전적이고' '투박한' 처치를 했더라면 빈센트는 아마 로봇 스승이 생각지도 않은 정신력이 붕괴되는 경험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배달을 기다린다.
"아무튼, 아오, 더럽게 아프네. 로봇 스승님. 진통제 잘 쓰는 법은 없습니까?"
[마취의 발견은 어떤 바보라도 외과의사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윌리엄 스튜어트 할스테드]
"잠깐, 그건 바보들이나 마취를 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외과 수술의 난이도가 낮아져 좀 더 적극적으로 외과 수술을... 젠장. 아닙니다."
빈센트는 다시 살아나려는 고통에 진통 효과를 달라고 하려다가, 더 끔찍해질 것 같아서 관둔다.
"괜찮아요~ 없으면 만들면 되니까요" 메스면 덜 아프게 쨀 수 있을거에요~ 라는 말을 하면서 의료도구를 들어보이는 여선입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물론 진짜 전투에서는 메스만큼 깔끔하게 베어주지 않을 테니 더 아프겠지만 이건 덜하니까 오히려 좋아가 될 수 있을지도. 같은 말을 하는 표정이 평소처럼 웃고 있잖아?
"진통제... 정량보다 조금 더 넣으면 되지 않나요?" 정말 못 견디겠으면. 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건 모르죠?"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상처를 만들고 지혈하기에는 시킨 것들이 오고 있을 거니까 다시 인벤토리 안에 메스를 집어넣습니다.
"치킨치킨~" 치킨이 기대되나 봅니다. 5성급 호텔요리치킨! 같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만..
"저기, 로봇 교관님. 교보재는 그만두고 그냥 알아서 치료받으면 안 됩니까? 지금 여선 씨랑 같이 있다가는 없던 상처 두 개는 생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지만, 누구나 조건 없이 가르치는 AI 로봇들에게는, 여선이 그런 무시무시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가 가르침을 주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았기에 간단하게 각하되었다. 오히려 기껏 얻은 생생한 교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롭소 교관을 자극한 것인지, 로봇 교관은 빈센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간곡히 부탁합니다. 내 수련이 끝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당신의 고통은 허용 범위 내에서 통제될 것이고, 추가적인 부작용으로 인한 위험 역시 감수 가능한 수준입니다.]
"예. 예. 그러시겠죠."
...라고 말하는 사이, 왠 로봇이 빠르게 달려와 배달 음식을 꺼내고 갔다. 그리고 빈센트의 호주머니에 손을 콱 박아넣더니, 딱 배달음식 시킨 값만큼을 빼서 도망쳤다.
그 아이가 행복해지는 방향을 고르겠노라고 말하는 시윤을 보며 흐믓하게 웃는다. 그 모습은 강산이 보기에도 진심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워낙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잖나. 그럼 도와야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건 그만큼 심각한 일이란 것일 테니까.
"기사단의 흔적과 이야기인가...오, 재밌겠는데?! 마침 당장 크게 할 일도 없는데, 나도 따라갈까?"
시윤이 받았다는 부탁에 대해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앗참. 과제 해야지."
강산은 자신이 기대었던 나무에 손을 가져다댄다. 자신이 마도로 만들어냈던 나무였고, 이제 그 나무를 역분해로 치워야 했다. 별다른 방해가 없는 비전투 상황이고 자신이 걸었던 마도라서인지, 강산이 잠깐 집중해 마도를 역분해하자 나무는 곧 작아지는 듯 하더니 빛무리가 흩어지는 듯한 형상이 되어 사라진다.
//17번째. 원래 시윤이 왜 이런 곳에서 졸고 있었는지 물어보면 상황 설명하면서 치우려고 했던 거지만 안 물어보기에 강산이가 알아서 치우게 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