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짖은 거였는데도 아저씨는 오히려 길을 가로막고 섰어요! 이래서야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나갈 수가 없게 됩니다. 물론 교실에는 앞문과 뒷문이 있어서 문이 두개 있긴 하지만요...... 아저씨가 막고 선채로 버티려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복도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무사히 나오고 나면 흘겨봅니다. ‘장난치면 도망갈 거라니까요.’ 말로 하지 않아도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한 번 더 장난치기만 하면 정말 도망가버리겠단 뜻으로 쳐다본 거였어요.
“.........그런 건 라인으로 보내도 됩니다.”
꼭 교실까지 와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절 찾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소란스럽게 찾지만 않는다면 교실로 찾아왔어도 이렇게 얼굴 붉힐 일은 없었을 겁니다. 바보냐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참고, 휴대폰은 장식이냐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아저씨가 시들거려서 입을 꾹 물었어요. 소리내지 않았습니다. 한껏 장난칠 기세로 눈 반짝이다가 이렇게 순식간에 풀 죽어버리면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심지어 그게 공부 때문이라면, 아저씨는 원래 공부할 필요가 없었는걸요. 심지어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일본어로 공부하는 겁니다. 제 탓이라는 생각도 들어버려서 더욱 말할 수 없어졌습니다.
“웬일로 허락을 받아요?”
한가하고 말고요.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이니 당연히 한가합니다. 짧게 고개를 끄덕거려서 답하고는 불쑥 가까워진 아저씨를 쳐다봐요. ‘볼 한 번만’ 의 뜻이 설마 아저씨의 볼을 꼬집어달란 뜻은 아닐 겁니다. 제 볼을 이야기하는 걸텐데, 허락을 구하는게 의외라서 깜빡거리고 있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봤어요. 남들이 볼 수도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 싫은걸요. 아저씨야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조그만 시절부터 하던 장난에 불과하겠지만, 이제 저는 그런 장난을 칠 나이도 받을 나이도 아닙니다! 다 커서는, 남들 보이는데서 그런 장난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어요.
누군가를 꾸준히 놀려먹었다는 경력은 곧 마지막 경고 정도는 알아들을 눈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도 용케 감으로 눈치는 챘다. 그는 말 잘 듣는 개처럼 열렬하게 하네에게 시선을 꽂아대다 흘겨보는 눈길이 닿자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직접 얼굴 보고 말하는 게 더 좋더라. 영감님이라서 그런가 봐."
정말로 그런 편이기도 하고, 어차피 가까운데 여러 번 문자로 말 전하는 것보단 만나서 빨리 해결하는 게 더 간편하다 생각하기도 했고. 공부 얘기 하면서 시무룩해졌던 것도 잠깐이다. 그는 금세 다시 쌩쌩해져서는 어른답게 굴었다. "참, 타카나시 선배님은 성적이 어떻게 되시나?" …어른답게 성적 얘기를 했다는 뜻이다. 물론 본인부터 겨우 낙제점을 면한 처지인데다 따분한 소리 싫어하는 성격이니 흔히 묻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을 테다. 하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도 덩달아 좋아서 펄쩍 뛰었다.
"그럼 나랑 어디 좀 가자! 뭐더라, 이번에 광장에서 뭘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평소처럼 마음대로 장난 안 쳤냐면, 놀러가자고 말할 거라 잘 보여야 해서다! 너무 까불어서 하네가 안 놀아주기라도 한다면 그냥 심심하고 쓸쓸한 아저씨밖에 못 되니까……. 아무튼, 뭘 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자세히 찾아보기엔 귀찮았던지라 정확히 어떤 행사인지까지는 안 알아봤다. 그래도 가면 뭐라도 있겠지. 무엇이라 할 만한 것 없더라도 적당히 노닥거릴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응, 어린애 아니고 완전 어른스러운 선배님이라면 같이 가 줄 거지?"
손 붙잡은 김에 또 있는 힘껏 초롱초롱 간절한 표정이다. 벌써부터 시동이 걸려서 그러는 와중에도 이미 발은 종종대며 나가는 길로 가려 하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전달이 잘 됐는가는 알 수 없지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걸 보면 계속 흘겨볼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고나니 장난치면 도망간다는 말만 지키려 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했던 말이 하나 더 있었단게 떠올라요. 학교에서 모른 척 하지 않겠다면서, 인사하겠다고도 말했어요. 인사한다면야 아저씨에게는 허리라던지 고개 숙여서 인사하는게 맞는데, 학교에서는 제가 선배이니 이상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럼... 안녕, 하세요.”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손 인사를 하려했지만, 제 손짓이 어색해서 이상해진 것 같아요. 아저씨한테 잡히지 않은 쪽의 손을 들어올려서 흔들다가, 인삿말이 뚝 끊길 뻔해 어색함이 추가됩니다... 더 민망해지기 전에 손을 내렸어요.
“그냥 비 씨라서 그런 것 같은데요.”
영감님이라서가 아닐 거란 생각을 해요. 아저씨와 제 나이가 바뀌더라도, 전 아저씨처럼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직접 얼굴 보고 말하는 게 싫지는 않지만 표정 관리하기가 힘드니까요... 어려진 아저씨는 더 방방 뛰어다녔으면 뛰어다녔을 것 같고요. “영감 후배님보단 높을 겁니다. ......많이 높지는 않지만.” 이과 과목이 언제나 큰 문제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저씨보다 성적이 낮진 않을 거라고 믿어요. 전 그래도, 평소에도 공부를 하기는 하는걸요!
“.........코코로오카시 마츠리요?”
입을 꾹 다물면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으니까 요즈음 광장에서 무얼하는지 모를 리가 없고, 받아버린 화과자들이 있어서 더욱 모를 수가 없어요. 보낸 사람이 전혀 짐작가지 않아버리면 잘못 보낸게 아닐까 매일같이 고민중이기도 합니다. 제가 받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걸요...... 그러니까 받아버린 마음들이 상냥하고 기뻐서, 마츠리만 생각해도 덩달아 부끄러워지고 말아요. 생각이 더뎌져서, 버릇마냥 틱틱대는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몇 번 끄덕거립니다. 아저씨와 발을 맞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