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말고도 도토리를 좋아하는 동물이 누가 있나 생각해보았는데, 캐릭터이기는 해도 한껏 모아둔 도토리를 하나씩 톡톡 흘리고 다니던 토토로가 생각났어요. 토토로도 신이랑 비슷한 존재 같으니까요, 다람쥐보다는 토토로한테 물어보는게 더 빠를지도 모릅니다. 다람쥐가 하는 말을 배우는 것보다 신에게 소원을 비는게 빠를 것 같으니까요.
‘작게 그려주세요...’
눈을 꼭 감고 있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제게 페이스페인팅을 그려주는 학생이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들릴 일 없는 소원이지만 계속 생각했습니다. 혹은 별로 안 부끄럽다고 자기암시를 하기도 했고, 얼마나 더 그려야 끝나는 건지 의문을 갖기도 했고, 물감이 차갑다는 생각도 한 것 같습니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물감이 차갑게 느껴진 것만 아니라면 좋겠어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금방 페이스페인팅이 끝나서 다행이었습니다. 얼굴에 그리는 건 도화지에 그리는 것보다야는 훨씬 작으니까 생각한 만큼보다 시간이 덜 걸리는 모양이에요. 완성 되었다거나, 예쁘게 잘 그렸다는 말에는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 숙여서 인사했어요. 직접 확인하고 잘 그렸다는 칭찬을 하기에는, 직접 확인을 하는게 부끄러우니까 무리입니다.........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건 어릴 때나 했던 것 같은걸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열심히 그려준 이에게 실례이니까 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리지 못해요. 만졌다가 번지기라도 할까봐 손을 올리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선배님이 페이스페인팅에 만족스러운 반응이라 마음의 준비를 한 보람이 있어요. 도토리 그림도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고, 이름 장난 센스도 뿌듯해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가 재미없었다는 생각은 안 할 것 같으니까요. 그러다 선배님의 갑작스런 물음에 멈칫거립니다. 부끄러워하는 티는 안 낸 것 같은데, 눈치채신걸까요?
“......부끄럽다고 한 적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부끄러워하는 티가 났다고 생각하면, 그게 또 부끄러움의 이유가 되고 맙니다. 일단은 부정해보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귀가 뜨거운 것 같아요. 얼굴마저 뜨거워지면 안 됩니다......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에 치아키는 일부러 뻔뻔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손을 올려 자신의 뺨에 그려져있을 도토리 그림을 살며시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보다가 혹시나 물감이 덜 말라서 번지지 않을까 싶어 치아키는 다급하게 손을 아래로 내리고 방금 그림과 맞닿은 검지 손가락을 바라봤다. 다행히 물감이 묻어나오진 않았으니 번지진 않았으리라. 그는 그렇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한편 부끄럽다고 한 적 없다고 제 물음을 부정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쿡쿡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애써 웃음을 참으려는 목소리. 허나 그럼에도 흘러나오는 작은 웃음소리. 결국 치아키는 어떻게든 웃음을 잠재우면서 하네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아까전에 크기를 조절하려고 한 것도 그렇고,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부끄러워하는 것이 느껴지는걸. 생각해보면 후배 양은 말이지. 뭔가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래도 사실은 그런 것 같은 모습을 은근히 보였단 말이야. 그리고 묘하게 부정하는 듯 하면서도 그런 거 아니라고 한 것도 그렇고."
지금껏 그녀와 만나면서 봤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치아키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오른손을 턱에 괴면서 으음. 소리를 내던 그는 이내 장난스럽게 피식 웃으면서 두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무렴 어때. 후배 양이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오케이인거 아니겠어? 자. 자. 또 다른데로 가봅시다. 아. 그러고 보니 후배 양은 타로카드라던가 관심 있니? 관심 있으면 근처에 있는데 한 번 보러 가볼래? 연애운이라던가, 성적운이라던가, 장래의 꿈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다 볼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뭐, 나는 굳이 말하면 믿진 않지만... 그래도 재미로 볼만하잖아?"
이어 치아키는 잠시 뜸을 들이는 듯 하다가 기어이 마지막에 한마디를 살며시 덧붙였다.
"혹은 혹시 알아? 너나 나나... 정말로 하늘이 미래를 점지해줄지."
그녀는 물론이고 자신 역시 신과 인간에게서 태어난 이였다. 어쨌건 신의 핏줄을 절반이라고 해도 타고난 이였으니 정말로 신이 미래를 점지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서 그는 장난스럽게 제안했다. 물론 내키지 않는다면 갈 생각이 없었다.
바람도 한 점 일지 않았는데 손가락에 매달린 펜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상냥하고 알기 쉬운 신탁을 내려 주기 위한 움직임은 아니었을 것이다⋯. 펜은 손 아래서 미친 듯이 날뛰며, 오십음도의 가타가나 글자를 하나하나씩 가리키기 시작했다. 오, 로, 카⋯. 키구치 요이카는 검은 점이 찍히는 글자를 순서대로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그리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문장을 입으로 천천히 암송했다.
“어, 리, 석, 은, 것⋯.”
요이카는 잠깐 당황해서 침을 삼키더니, 메시지가 저절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티 나게 손뼉을 흔들었다. 펜촉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부자연스럽게 종이를 짚었다.
「어 리 석 은 것 감 히 카 모 아 시 야 마 의 신 목 에 게 그 따 위 질 문 을 신 벌 이 두 렵 지 않 으 냐」
“⋯와아, 정말 신기하다.” 요이카는 최대한 국어책 읽기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노에 찬 펜은 오십음도가 쓰인 탄자쿠를 쾅쾅 내려찍듯 거칠게 약동했다.
「미 천 한 인 간 아 대 죄 의 운 명 을 면 하 고 싶 다 면 스 스 로 한 맹 약 을 지 킬 지 어 다 또 한 그 메 뉴 는 햄 버 그 스 테 이 크 로 정 해 져 있 다 왜 냐 하 면 지 금 신 목 이 그 것 을 먹 고 싶 어 하 기 에」
“⋯조용!” 보다 못한 요이카가 그대로 실을 잡아뜯어 버렸다. 실은 오래된 것처럼 삭아 있어서, 힘을 주지 않고도 쉽게 뜯겨나갔다. 펜이 책상 위에 나동그라졌다. “코다⋯. 아니⋯. 귀신이 좀⋯. 성질이 나쁜 귀신이 걸린 모양이네⋯. 이건 자주 안 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당신?”
요이카는 잡동사니가 널부러진 책상 위를 쳐다보다가, 비어 있는 탄자쿠 하나를 집어들고 무언가 복잡한 도상(圖像)을 그리더니 차곡차곡 접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서 그것을 봉하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밀었다.
“햄버그 스테이크래. 그리고⋯. 오늘 밤엔 이걸 베개 밑에 넣고 자.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열어 보지 말고, 지체 없이 물에 녹여 버려. 무엇보다, 방금 여기서 보고 들은 건 모두 잊고.” 그러고는 잠깐을 고민하다가 애써 덧붙였다. “⋯이런 설정의 가게로 갈 거니까, 알겠지? 꼭 시킨 대로 해야 해.”
키구치 요이카: 010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situplay>1596751110>307에 나와 있어요.
029 단 것을 잘 먹나요? 못 먹는 건 아닌데 딱히 환장하는 것도 아니에요!
128 캐릭터의 집 냉장고에 대해 묘사해주세요 가미즈미로 갔던 수학여행에서 떠 온 성스러운 물 1통, 그 외에도 생수가 몇 통 있습니다. 가스레인지를 쓰지 않고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완제품류가 주된 구성이고, 그 외에는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휑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