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곰곰히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곱씹는다. 신에게 있어서 신성이란 힘의 원천임과 동시에, 존재의 근원과도 같은 것. 특히나 본래 강하기 때문에 신의 영역에 오른 것이 아닌. 무언가의 믿음과 개념이 실체화한 존재신이라면, 더더욱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직 역할이 확정되지 않은 배우에게, '네게 역할 같은건 없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까...."
이 아이는 '겨울의 왕' 이라는 역할을 맡을 예정인 주역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고독하고, 끝내 죽어야만 하는 비극의 시나리오. 그것을 어른이 옆에서 '너에게 그런 역할 같은건 없다' 라고 부정함으로써. 아이가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이 극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아이가 되도록....
".......누군가는 신성 모독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로군요."
신의 파편에게 신앙을 부정해 인간으로 격하시킨다. 겨울의 왕의 배역을 맡아야 하는 아이에게, 그 역할을 맡지 못하도록 빼앗는다. 어느 의미론 이 아이의 신격을 모독하는, 그런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그럼에도 저는. 그리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고독과 비극을 짊어져야 된다는 사상은 싫습니다. 도라 어르신. 이 아이가 그 길을 스스로 택한 것이라면 몰라도. 눈 앞에서 평온하게 잠든 아이를 그저 그런 존재다, 라고 태연하게 납득할 정도로 영리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것이 신의 숙명이라고 해도. 나는 어르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저는 어르신에게 동의합니다. 그 방법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도울 수 있는게 있다면 돕겠습니다."
나는 드래곤의 피를 이었다는 것만으로 고뇌하던 소녀를 알고 있다. 그녀에게 살아가는 방식만은 본인이 정할 수 있다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태어난 운명이다' 라는건 납득할 수 없어.
“ ‘ 코브닌노스 ’를 짓이겨서 낼 수 있는 즙은 점성이 있고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으니 바르는 연고로 사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약초입니다- ‘ 예녹소흐 ’는 피부에 시원한 느낌을 주기에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 있으나, 코브닌노스처럼 즙을 낼 수 없음으로 연고의 형태로는 적합하지 않은거에요- 그러므로 잘게 잘라내 코브닌노스의 즙과 섞을 수 있습니다- ”
# .. ..... . ...ㅠㅠ 코브닌노스를 짓이겨서 즙을 내고 + 예녹소흐를 잘라 코브닌노스의 즙과 혼합한다 최종 답 변으로 하겠 습 니다.. ..... . ....
>>657 어...뭔가 저때문에 턴 낭비하신 것 같아서 미안해진... 그럼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힌트로 예녹소흐는 독초 아닌 거 맞는지(중독 B->A는 예녹소흐 자체의 독성이 아니라 유렐의 독성이 증폭됐기 때문인게 맞는지) 물어보시거나 아니면 그냥 조합 ㄱㄱ하시거나?? 해야하려나요??
쯧... 혀를 찬다. 그가 얼굴을 밀며 웃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여과 없이 나타낸다. 필요 선이고 필요 악이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내 입에서 나온 방법이 상인으로써의 방법이더라도 행동은 사람으로써 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상인도 사람인데 그리고 난 아직 상인이 아니고 헌터인디 거참..
"내는 사람인지라 사람다운 행동거지를 하고 싶을 뿐인디 고게 악의 씨앗이가? 참말로... 그리고 옛날에 만났다고 해도 내는 여 안 먹었을기다. 커다란 거 먹어서 탈나는 거 보단 남 먹는 거 옆에서 한입씩 얻어 먹는게 제일 좋지."
소망을 잔뜩 담은 말.
대학원생을 발견한 듯한 프로페서는 이제 신경 끄자. 그가 제시한 방법을 생각하자. 넷 다 악이라고 그는 말하지만 토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똥 묻는 건 변함없지만 그나마 덜 묻은 깨끗한 쪽은 남겨두고 싶다.
" 단순히 왕의 자리를 내려놓는단 개념이어선 안돼. 아이의 신앙을 부정하고, 이 아이를 단순한 인간의 아이로 격하시켜야만 한다. " " 그를 통해서 신앙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일깨워야만 한다. 단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가 되어야만 하지. 그리고... "
천천히, 그 눈길이 아이의 볼길을 쓰다듬습니다. 부드러운 손짓에 거부하듯, 아이의 토라진 울음이 들려옵니다. 도라는 그 토라진 울음에 웃음을 짓습니다.
" 그 신앙을 깎아내리기 위해선, 누군가는 기꺼이 죽음을 맞아야 하지. "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 이야기까지 꺼냈을 때. 시윤은 그가 하려는 일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더 멀리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죽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신성을 대가로 아이에게 삶을 선물하려 하는 것입니다.
[ 영감. ]
아쥬르는 굳은 표정으로 도라를 바라봅니다.
[ 영감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이야. 영감이 죽으면 이 곳에... 온기의 봄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 " 그렇군. " [ 그렇군이 아니잖아!! 이 영감아!!! ]
순식간에 악귀처럼 거대한 불꽃이 되어 피어오른 아쥬르는 도라를 집어삼킬 듯 분노를 토해냅니다.
[ 인간의 삶이라 해봐야 찰나의 시간에 지나지 않아. 그 찰나의 시간을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신 주제에 노망이라도 난 거야!??? ]
그 분노에도 도라는 별 대답을 이어가지 않습니다. 짐짓 평온하게 아쥬르의 대답을 들으면서 그는 아이의 볼깨를 쓰다듬으며 미소짓습니다.
" ... 괜찮네. 내가 아니라도 봄이라는 존재는 분명 다가오는 존재라네. 혹독한 겨울이 오고 나면, 잎사귀게 고개를 내밀듯. "
시윤은 문득 도라의 표정을 바라봅니다. 그 표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니,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 결국 봄이 올테니 말일세. 하지만, 만약에 아주 잘 풀려 이 아이가 겨울 왕관을 계승한다 하더라도 말일세. "
" 이 아이는 봄이라는 것을 볼 수 없지 않은가. "
고신古神. 단순히 오랜 시간 살아왔다는 것으로는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울 삶.
" 그리고 난... " " 난 이만 죽음을 맞고 싶네. 매 겨울의 죽음을 내 두 손으로 알리고 싶지 않네. " " 단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죽음을 맞는 왕의 사형수가 되고싶지 않네. " " 그들은 언제나 나를 두려워했다네. 왜? 내가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봄이 온다는 이야기니까. 그들의 운명이 내 손으로 끝내야만 한단 것을 알리러 가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
아이를 바라봅니다. 작습니다. 겨우 숨을 뱉어내고 그 작은 운명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아이입니다. 만약 계승자가 된다면 왕의 자리에 올라 결국 죽음을 맞겠고, 아니라면 왕이 오르는 순간 이 야이의 운명은 끝이 납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삶. 당연한 죽음에도 덤덤히 왕관을 써야만 하는 존재.
신神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
천천히 아이는 눈을 뜹니다. 그 눈이 도라를 담습니다. 거대한 덩치, 흰 수염과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눈, 겨울의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손, 숨결에 닿음에 따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존재. 아이는 방긋 웃습니다. 도라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죽고, 이 아이에게 운명을 선택할 권한을 줄 걸세. "
아이의 손길이 도라의 볼에 닿습니다. 겨울을 닮은, 차가운 손길에 도라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의 손을 가볍게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