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꽤나 떠들썩하게 지냈다지만 이야기가 퍼질 정도였나? 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색으로 잠시 돌이켜 보니……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자기가 틀리게 말했다는 걸 깨닫자 기운차게 흔들거리던 손의 움직임이 뚝 멎는다.
"으악, 내가 잘못 알았었네! 이번에는 꼭 잘 기억해 둘게."
본인 역시도 늘 왜곡 당하거나 '그게 뭔데?' 취급을 받곤 하니 이 부분은 잘못했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너구리 같은 동물은 안 대서 다행이지……. 너구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늑대나 여우보다는 둥실둥실해서 확연하게 다르니 말이다. 아참, 그건 그렇고 우연히 꿀잼 상황극에 말려들게 되어─엄밀히 따지면 본인이 뛰어든 거다─ 원래 목적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급한 일은 아니니 곧장 제 볼일 보러 쌩하니 가 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전에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치 단호한 답변에 그는 일순 말문을 잃었다. '그렇지만 난 사람이 아니라서 예외……'라는 변명이 소심하게 뒤따르는 듯하다 이내 사그라졌다. 영업정신이 무척이나 굳세서 저도 모르게 고분고분해질 뻔했다! 여태 몰라보았던 사에의 기개에 감탄하기도 잠시, 그는 금세 평소의 당당한 염치를 되찾았다. 뭐가 자랑인지 어깨 으쓱하며 얄밉게 뺀들거리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자존심 챙기는 신은 아니라서 말이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말씀! '없어 보여!'라 말하는 듯한 눈빛은 낯짝으로 이미 다 튕겨내었다. 있어 보이기 위해 신경썼다면 툭하면 초롱초롱한 눈빛 쏘아대며 가련한 척을 했겠나. 자기가 불쌍한 체하는 것은 습관성에 가까울 지경이면서 사에의 간절한 눈빛에는 그다지 적극적인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영예에는 통 관심이 없는데다 오히려 책임지기 싫어 피하고 싶어하는 성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 너 대단한 사람이었어?" 지금도 어째 수석 무용수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고. 기세를 되찾고 나서는 아예 사에가 본인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다. 반짝 빛나던 표정이 지역 뒷담화로 끝나버리자 그는 기어이 빙글빙글 괘씸하게도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여긴 대도시에 비하면 시골이니까."
타지 사람이 남의 동네 불평을 하고 있으니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 들었더라면 불쾌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줄곧 놀거리 없는 지방에 살았던지라…… 이런저런 시설의 측면으로는 여기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열심히 영업을 슈슉 피해 대던 그가 문득 싱글거리길 멈추었다.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여상하게 말한다. "어디 나가는 거 아니고, 그냥 동아리로만 하는 거라면 생각해 볼게." 번복하는 짓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소원 들어주는 신이시다. 사에의 말대로 영입 시도 정도야 얼토당토않은 억지 부탁도 아니었고, 이쪽에서 먼저 소원 들어 주겠다고 장담했으니 어느 정도는 응해도 되겠다 생각은 하는데. 사실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근데 나 등교만 하지 수업도 잘 안 듣거든. 들어와 봤자 유령 부원 될 것 같은데?"
'입부'는 들어줄 수 있어도 출석태도는 보장 못하겠다. 하네를 위해 제대로 들어줄 용의가 있는 부탁도 이렇게 등교만 하고 농땡이 부리는 판인데 동아리는 더더욱 태만하지 않을까……. 괜히 물만 흐리고 바쁜 입시생들한테 방해나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 아저씨는 이런 소리 하고 나서는 우하하 시원하게 웃지를 않나. 수업도 안 듣는 불량학생이라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413 앗 기습 질문!!!! Σ(°ロ°) 어어... 완전 한결같이 평소처럼 우당탕탕 지낼 것 같...지만 너무 똑같으면 재미 없으니까 최근에는 급하게 성적관리 중이래~😊👍🏻 수업 빠지는 빈도도 좀 줄어들었고! 사유: 그동안 시험을 너무 마음 편히 조져버려서 낙제 위기에 처함
근데 평소에 공부를 하기 싫어해서 그렇지 재능충이라서 대충 해도 금방 성적 오를 것 같아... 재수없어...🤔
여전히 짙은 회색빛으로 흐린 날씨지만, 이제는 햇빛이 구름 사이로 잠시 잠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미유키는 네 부탁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우산을 나눠 쓰며 도란도란 걷는 동안, 너와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 기다리는 시간 또한 값지나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이마저도 언젠가 기억 속으로 묻히고 말 것인데. 가미즈나를 떠나지 않으면, 언젠가 또 우연히 널 만나게 될까. 생각이 길어지면 네가 계산하는 모습을 보고 떠나려던 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받으면,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해 미안해하고는 했던 것인데. 그 감사 인사를 두고서, 미유키는 차마 거부하지 못했을까. 네가 건넨 간식을 받아 들고는 환하게 웃으며, 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널 한참을 바라보다 조금씩 멀어져 갔을 것이다.
한순간 우위를 차지하나 했는데 당황하던 기색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평소의 모습이다. 이 신께서 하늘이 무너져도 가오는 챙겨 두는 성미일 거라 판단한 것이 그녀의 패인이다. 쳇! 미야나기는 혀를 짧게 차며 씨알도 안 먹힌 눈빛을 금방 거뒀다.
“혹시 옛 화족이라고 아세요? 대충 엇비슷해요.”
물론 이 설명은 정확하게 틀렸다. 작위는커녕 공가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더러, 화족 출신이라면 지금쯤 가미즈나가 아니라 가쿠슈인에 있었을 테니 그랬다. 단지 그 외의 단어로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 포장할 거리를 못 찾아 일단 지르고 봤다. 영끌 해서 있는 척해도 겨우 들어줄까 말까인데! 그러나 발레 티켓 끊어주며 구슬리기 작전은 이미 수포로 돌아간 듯했다. 아뿔싸, 미야나기가 뒤늦게 한 마디 덧붙여 궁시렁댔다. “······그래도 공연이 없지는 않을걸요?” 이곳에도 극장가가 있는 건 확인했으니 말이다. 신국립이나 도쿄 같은 대형 발레단은 안 오겠지만. 모든 부원이 마을을 떠날 계획은 아닌 걸로 추측건대 아마 민간 발레단 한둘 정도는 있지 않겠나 싶었다. 학생들이 시내에서 올리는 예무제도 공연이라면 또 공연이고. 아······ 미야나기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여름 축제만 끝나면 이 깜찍하고 고리타분한 동네도 한동안 안녕이다. 기다려라! 신칸센아.
“원칙상 중도 입부는 금지라니까요. 어렵게 손써서 데려오는 건데, 제대로 안 하면 광장에 매달리는 건 제 모가지예요.”
손날을 세우더니 자신의 목 부근을 사정없이 그은 미야나기가 말했다. 확실히 그저 이름 한 자 명단에 더 쓰는 일이라고 그 과정까지 쉽지만은 않을 거다. 무용부는 철저한 계급과 일정 하에 돌아가고 있으니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별 대단한 단체는 못 되긴 했어도, 미야나기는 나름 부장직과 프린시펄 지위를 걸고 영업하는 중이었다! 정말 딱하고 애처롭다. 그런다고 절대 안 구슬려질 텐데······. 그녀 역시 머잖아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지며 푸념했다.
“마음에 안 드시면 됐어요.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신이 들어주는 소원 같은 거 애초에 안 믿었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마나 아쉬웠던지 “하면 정말 잘할 텐데······.” 등의 혼잣말을 계속 중얼중얼 읊어댔다. 아니, 그런다고 안 구슬려진다니까. 해가 길어지니 미련도 참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