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은 꽤나 길고 더웠다. 낮에는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을 자다가 저녁에 슬그머니 일어나 활동을 하는 야행성의 생활을 지속하던 케이는 오늘은 오후부터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대부분의 것들을 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은행 업무라는 것은 직접 해야하는 일이었기에. 그리고 은행은 4시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않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햇볕이 따갑게 내려쬐는 오후에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은행에서 케이는 굉장히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본래 은행 업무라는 것이 꽤나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은행은 꽤나 조그마한 곳이었고 그랬기에 창구가 두 곳 밖에 없었는데 한 창구를 진상 손님이 소리를 지르면서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하나의 창구로만 은행 업무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케이의 차례는 점점 밀려나기만 했다.
평소 인내심이 긴 케이였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이 은행 직원에게서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도 더이상 더 기다리기 힘들어졌다. 결국 저 진상 손님과 자신이 시비가 되어 경찰을 부르게 되더라도 한 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ㅡ여차하면 신력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ㅡ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신도 자취를 하는 이상 금전관리는 알아서 해야 했다. 돈 쓸 일이 생겨 지갑을 뒤져 보던 그는 때마침 귀찮은 일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현금이 없네. 귀찮게. 필요하다면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정 급한 게 아니라면 되도록이면 인간 법으로 합법적인 돈을 쓰는 편이 더 낫기야 하니까……. 그는 겸허히 끔찍하도록 찜통 같은 공기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물론 나가서 5분만에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일 오전에 나올 걸 그랬다. 후회하면서도 꾸역꾸역 은행에 도착했을 때는, ATM이고 뭐고 그냥 에어컨 바람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원래 용건은 집어치우고 곧장 은행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그를 반겨주었다. 금방이라도 초주검이 될 것만 같았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러던 것도 잠시, 기쁘게 냉기를 만끽하던 그의 귓가에 불쾌한 소음이 내다 꽂혔다. 평소라면 달리 신경쓰지 않았겠으나……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짜증나게!
"더운데 열 내면 아저씨만 손해야. 거 진정하고 앉아서 심호흡이라도 합시다. "
다가가서 냅다 한 대 때리…지는 못하고, 그대로 그 진상을 번쩍 들어서 제 옆구리에 끼웠다. 마음 같아선 접어 버리고 싶지만 까딱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참아야지. 다 큰 어른이 소형견처럼 깜찍하게 들려 버리니 수치스러워서인지, 아니면 은행원을 상대로는 끝없이 샘솟던 용기가 힘에 밀리자 온데간데 없어진 건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빽빽 소리 지르며 시끄럽던 양반이 순식간에 과묵해졌다. 그는 그대로 그 진상을 들고 한구석에 있는 대기용 의자로 향했다. 억지로 붙잡고 눌러 놓으면 얌전해지리라는 생각이었다.
"실례 좀 할게."
마침 남은 자리가 별로 없어서 부득이하게 기존 방문객의 옆자리에 앉혀 둬야 할 것 같다. 그는 먼저 앉아 있던 손님에게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도 말투는 반말이었지만. 아무튼, 평소에 남의 눈치 보지 않는 그라고 해도 '소리 지르느라 땀 뻘뻘 흘려대는 시끄럽고 추잡한 아저씨'를 바로 옆에 앉히는 처사는 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Q. 여름 방학이라고 놀러 온 쌍둥이 동생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을 때 가장 어울리는 말은? A. 비명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쌍둥이 동생의 다리 깁스. 그 때, 머랭쿠키를 굽겠다 생크림을 만들고 있던 쥰은 휘핑기를 그대로 든 채 굳어버렸다. 크림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 챈 레이가 "왜 그러고 있어!! 바닥 닦아야지!" 하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계속 굳어있었을 예정이었다. 구기부에 들어가서 활동하는데, 다리를 다쳤다며 별 거 아니라는 동생에게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는 제 동생을 부축하며 거실로 데려왔었다. 역시, 동생인 척 하고 한 번 그 운동 동아리를 뒤엎어야.... 따위를 생각하던 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지금. 그는 혼자서 동생과 같이 먹을 음료를 테이크아웃 해야 했다.
밖으로 나온 쥰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더웠다. 매우. 띠링, 소리와 함께 쌍둥이 동생에게서 메일이 왔다. 고생한다 뭐 그런 말이겠지! 하며 기대한 그는 메일을 열고 잠깐 얼어붙었다.
「좋은 쌍둥이 형은 아픈 쌍둥이 동생을 위해 시럽을 세 번 추가한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사와줄 거라 믿어♪♪o(・x・o∪ ∪o・x・)o♪ 오늘 저녁은 시소잎을 넣은 고기 춘권이 좋겠어(*´∀`) 형을 생각하는 마음 알아주기 바라+゚*。:゚+(人*´∀`)+゚:。*゚+. -影」
"........ 죽일까."
집에 있는 게 환자가 아니라 웬수가 아닐까. 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카페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테이블에 누워있는 사야카를 발견했다.
"어...?"
같은 반 학생을 여기서 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뭐어, 그는 올 해 처음 보는 학생들이 많긴 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서도. 다가갈까, 어쩔까 따위를 고민하던 쥰이 슬그머니 사야카에게로 다가가서, 테이블에 손을 가볍게 통, 통 두드렸다.
"안녕, 키리나즈메씨."
빙긋 웃으며 쥰이 인사를 건넸다.
"덥지 않아? 방학인데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네. 여기 카페 자주 오는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