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아저씨는 17년 동안 변함없었지만, 저한테 17년은 긴 시간입니다. 많이 바뀌었습니다. 키가 높아지고, 입게 되는 옷이 커지는 것 뿐이 아니예요.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던 것들은 부끄럽기만 하고, 잘만 말하던 것들은 입 밖으로 내기 서툴러하기도 합니다. 17년 동안 바뀌지 않은 아저씨를 아는 게, 17년 동안 휙휙 바뀌어버린 저를 아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요, 전 아저씨의 그 많고 많은 시간 중 고작 17년동안 봐온 겁니다. 그러니 저야말로 모르는게 많이 있을 거예요.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요.”
라인이 문제가 아니라, 답이 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걸 콕 집습니다. 라인 이야기만 했더니 라인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까요. 꼭을 답을 주려고 하신다면야 머릿속으로 하는 것보다는 라인이 나을지도 몰라요......... “네, 아저씨 덕분에 쓰러질래야 못 쓰러지겠네요.” 정신이 어디로 쏙 빠져나가 도망간 것 같습니다. 아저씨니까 얌전히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이렇게 걱정했더라면 들어올렸을 때 발버둥쳤을 거예요. 신의 눈에는 인간이 인형처럼 연약하게만 보이기라도 하는 것 같은데다가, 어릴 적부터 보셨으니,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과한 걱정도 어찌저찌 받아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인적이 드물어서 다행이에요...............
“절대 걱정 안 해줄 겁니다. 쓸데없이 앓지 마세요.”
걱정 안 할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걱정 해준다면 앓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말을 하셔서, 걱정할 일 없다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이미 제 소매는 수건도 아니면서 수건이 되어버렸으니 아저씨에게로 살짝 뻗습니다. 손을 소매 안쪽으로 숨기듯이 쥐고 살짝, 아저씨한테 아직도 남아있는 물방울을 닦으려고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저씨한테 똑같이 장난치지 말고, 바로 등불을 띄울 걸 그랬나봐요. 예쁘게 등불 띄운 풍경까지 보고, 소원도 빌어보면서 놀았는데 그 날 감기에 들면 안 되잖아요. 키즈나히메님한테 아저씨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빌 걸 그랬나봅니다. 아니면, 아저씨한테 행복을 빌었으니까 그 소원을 이용해볼까 해요. 들렸는 지는 모르겠으니 들렸다는 가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감기에 걸리고서 행복할 리는 없을테니 이 소원은 근무태만하지 말아달라고 말해볼까 싶어요. 우선은 아저씨도 소원을 다 빌었는지 확인해야하니, 눈을 뜨고서 아저씨를 돌아봅니다.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했어요. 소원이 들렸나봐요! “들렸어요?” 직감과 예상보다는 확인이 확실하니 물어봅니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무사히 전해진 것 같아요!
“그—그런 적 없습니다!”
예쁜 짓만 골라한 적 없습니다! 애초에 예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말도 안 되잖아요. 무슨 예쁜 짓을 골라했다는 건지, 얼토당토 않아서 더듬어버리기까지 했어요. 당황해버린게 티납니다. 민망함에 얼굴에서 열감이 느껴져요. 거기다 이건 또 무슨 일이예요, 왜 꾸욱 누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잡아먹어 버리고 싶다는 말도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는 거냐고요. 농담이라면 다행이지만 진담이라면......... “사람, 잡아먹을 수 있어요?” 조금 겁이 날 지도 모릅니다.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믿고 싶은건지, 아저씨를 바라봅니다. 아저씨가 제 머리를 다 누르시고 나면 고개만 들어올리면 아저씨를 볼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단순히 토끼를 신으로 섬긴다는 부분에서 흥미가 동해 방문하는 이들도 몇몇 있긴 했다. 세상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그중 정말 다양한 신이 존재하는게 일본이니까. 오죽하면 특정 아이돌의 신사까지 있을까,
"져도 이겨도 즐거운 놀이라... 제게도 형제자매가 있었더라면 분명 그렇게 하고 싶었을 거랍니다."
형제자매 사이간의 우애가 돈독한건 의외로 찾아보기 어려운 케이스라지만, 만약 자신에게도 그런 이가 존재한다면 지극정성으로 살필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혼자인게 마냥 불만인 것은 아니지만... 괴롭힘이 심한 신 아래에서 오롯이 그 장난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덕분에 무슨 일이던 달관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지만 사회에선 그런 행동을 그리 좋게만 보진 않았으니 말이다.
"저한테... 말인가요? 아, 감사합니다..."
인형을 든 그의 손이 자신에게 내밀어지자 미묘한 표정이 어느덧 살짝 놀란듯한 형태로 바뀌었다. 하기사, 그럴 목적이 아니었다면 괜히 어떤게 좋을지 자신에게 물어볼 리도 없었거니와 자신을 특정할 이유도 없었을테지만. 얼결에 받아든 인형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얼굴에 가져다대고선 냄새를 맡아보았다. 과연, 천과 솜의 포근함과 어우러진 바깥의 향기일까.
"기도로 삼기에... 별 문제는 없겠지만요?"
여느 기도들보다야 소박한 편이니 신들이래도 못들어줄 것이야 없겠지만, 무언가를 원해서 그에 도달하도록 하려는 행동을 보아서도 충분히 들어줄법하지 않을까?
"오..."
아무렴 연속으로 따낼 수 있을까, 그에게도 확신은 없기야 했겠지만 다시금 방아쇠를 당긴 결과는 생각 외였을지도 모른다. 다시금 깔끔하게 맞아떨어져 넘어간 여우인형에 방금 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움츠러들다가도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을까? 못따도 못따는대로 즐거운 일이었겠다만,
케이의 말이 떨어질 때쯤 미야나기 또한 신사 한 켠에 종이가 묶여 잔뜩 너울대는 나무를 동시에 발견했다. 하지만 내심 막대가 든 상자와 서랍을 기대했었는지 아쉬운 듯 한 풀 죽은 얼굴이다. 이거 완전 낭만 없잖아. 무녀님도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나중에 아사쿠사에서 제대로 된 뽑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신사에도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었으니 절쯤이야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총총 오리처럼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미야나기는 자동판매기 앞에 다가가 섰다.
“신년도 아니고 벌써 여름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어요. 선배도 동전 드려요?”
소매 깊은 곳에서 동전을 짤랑짤랑 꺼내 든 그녀가 살풋 미소 지었다. 투입구에 동전을 굴려 넣자 금속이 맞부딪혀 날카로운 소리가 짧게 떨어졌다.
“종이를 묶어 두는 건 흉을 묶어 두는 거래요. 다들 이곳에 남겨 두고 싶었던 흉이 많았나 봐요.”
이내 미야나기가 제비를 한 장 뽑아 펼쳤다. 길이든 흉이든 어느 쪽이 나와도 사실 상관없을 테다. 길이 나오면 단순히 기분이 좋고, 흉이 나오면 또 나무에 종이를 묶는 일을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니까 사람이 뭐든 어릴 때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는 거다······.
으악 항상 이해해주는 케이주 진짜 사랑하고... 완전 천사가 따로 없구...(?) 바쁘기도 햇지만 코로나 길어서 까먹고 잇엇는데 어차피 ip 막혀서 못 왓을 것 같애... 당연함 캔드민한테 메일 안 보냄 나 진짜 바보다 ჱ̒ ー̀֊ー́ ) 아무튼 답레랑 같이 갱신하께 다들 월요일 잘 보내고 있길 바랄게 〰️
분명 질문에도 잘 맞아떨어졌고, 거짓 역시 섞이지 않았음에도 올바른 대답은 아니다. 미야나기 또한 그 사실을 알았지만 부연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만은 나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대신에 오랜만에 뱉어 보는 다정한 단어에 그녀는 조금 웃었던 것 같다. 빈에서의 기억은 언제나 황금빛이다. 냉큼 손에 들린 쪽지를 펼친 미야나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천천히 소리내어 읽었다.
“······들판 보면 패랭이꽃 피어있으니 기다리는 가을이 다가오는구나? 중길이네요.”
대길 아니면 대흉이 나오길 바랐는데! 하지만 기껏 좋게 나온 운세를 나무에 묶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야나기는 종이를 꼬깃꼬깃 접어 남은 동전과 함께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빼꼼하니 길게 늘려 케이의 결과를 은근슬쩍 훔쳐봤다. “선배는 뭐 나왔어요? 앗, 말길이다!” 이로써 사이좋게 마음에 안 드는 운세만 골라잡은 셈이다. 종이······ 묶어 보고 싶었는데······.
왜 너만 아느냐고 발끈하긴 했지만 괜히 부려 보는 투정 같은 것이다. 그는 느리게 살아가는 존재이며 아직 무언가를 배워 가는 과정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어떤 친밀한 관계라 한들 사람은 본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라. 꽁꽁 숨겨둔 비밀은 비량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기만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이면이다. 그런 생각에 기세가 한풀 꺾이다가도, 순순히 인정할 그가 아니다! "그래도 치사하니까 앞으로는 알기 힘든 아저씨가 돼 주마. 내일부터는 아주 건실하게 굴어 버릴 테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승부욕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고 건실해지려면 술 끊고 점잖아지기부터 해야 할 텐데 본인만 손해 아닌가. 기도에 대답을 돌려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지적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앗, 그런가? …아니, '그런가?'가 아니라 맞는 말이다! 생각해 보니 기도에는 직접적인 응답이 돌아가는 경우가 드문 것이 당연했다. 답변해주면 그거 신탁이잖아! 워낙에 위엄 챙기지 않는 삶을 살았더니 신이면서도 이렇게 얼렁뚱땅이다.
"음, 이해했어. 그럼 되도록이면 수신만 받는 걸로. 그러니까 꼭 귀찮게 해 줘야 한다?"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사소한 이야기를 할 뿐인데도 나란히 걷던 걸음이 들썩들썩 가벼워진다. 그렇지만 지금껏 열심히 에너지를 남발해댄 덕인지 인간이 하지 않을 법한 괴상한 행동이 더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호들갑스레 간이 검진을 마친 그는, 수선 떠느라 구겨진 하네의 옷을 펴주려 하며 머쓱하게 시선을 피해 본다. 안 들겠다고 말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또 저질러 버렸다! 양심은 없어도 약속은 잘 지키는 신이라 한 번은 일부러라 해도 두 번이나 어기게 되니 조금 멋쩍어졌다.
얼핏 단호하게 들리는 말에 불만스러운 척 입을 삐죽 내밀다가도 물기를 닦아주는 손길에는 금세 헤픈 얼굴이 된다. 작정하고 본마음 숨기지 못하는 점만은 서로 꼭 같은 듯싶다. 얼굴을 톡톡 두드리는 옷자락이 떠날 무렵에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실은 겨울에 냉수로 씻어도 말짱하니 걱정 말려무나." 그리고는, 얼굴만 환히 웃기를 넘어 웃음소리까지 터뜨려가며 하네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들었으니 이러지 않겠어! 그게 예쁜 짓이 아니면 무어냐. 우리 꼬맹이, 이리도 마음씨가 고와서 어째."
기원은 마음으로 이룬다. 직전의 그 순간, 언어로만은 모두 표현하지 못할 마음이 보다 직접적으로 와닿은 것이다. 신으로서 짧지 않은 생을 살며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소원을 들어 본 경험은 많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소원의 대상이 되어 본 적만은 없어서, 그 짤막하고 꾸밈없는 소원이 닿았을 때의 기분은……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옳을지 스스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언젠가 이 모호한 감각을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을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눈 초롱초롱한 정도가 평소의 주책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수치를 측정한다면 이미 치사량을 훨씬 넘었을 거다. "아잇, 날 뭘로 보는 게야. 깜찍해서 깨물어주고 싶단 뜻이지!" ……밝히기 무엇한 역사가 꽤나 많았다지만 그래도 식인만큼은 안 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상대였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괜히 겁주거나 골려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네에게 경계를 사는 것만은 싫다. 못된 장난 풀어주자 올려다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량은 그 얼굴을 마주보며 쾌활히 미소지었다.
"소원은 들어주마. 우야, 그러니 너도 행복해지렴. 네가 행복해야 나 또한 기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