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력은 유년기에 열명 중 한명 정도로 발현. 실험 시설에서는 연고 없는 어린애들을 데려와서 비능력자를 능력자로 발현시킨다거나 약한 능력을 가진 것을 증폭 시킨다거나 하는 일을 했다, 라는 설정으로 생각하고 있어. 연이는 유년시절 비능력자였다가 실험으로 인해 능력자가 되었고 성공작이라 불렸으나 실험으로 고통받다가 탈출했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도현이랑 연이는 나잇대도 비슷한데 시설에서 안면이 있다거나 아니면 깊게 의지하면서 지냈다거나 하는 서사가 좋아 아니면 초면으로 쌓아가는게 좋아?
좋아! 그럼 같은 나잇대에다가 성공작으로 묶여서 같이 생활을 했고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냈다 정도면 좋겠다! 연이는 약도 마취제도 통하지 않는 몸이다보니 능력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많이 겪었을 테니까, 정신적으로도 많이 불안정했을거야. 그렇다면 연이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겠는 걸? 고아원에서 같이 오게 된 동생과 시설 내에서 떨어져 있었고 이내 혼자서는 탈출했지만 동생은 구해내지 못했다거나. 나중에 동생은 죽은 것으로 알고 있고. 도현이가 연이 탈출하는데 도움을 줬을지도 모르겠는데?
앗 도현이도 동생이 있다는 설정인데 ... 도현이는 여동생 하나가 있었고 둘 다 시설에 있었지만 현재 활동하는건 도현이 뿐이야! 여동생이 어디 갔는지는 절대 말해주지 않고 말이야.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서 많은 아이들이 탈출을 시도할때 도현이가 관심을 끄는 사이에 탈출할 수 있었고 그 댓가로 도현이는 엄청나게 비윤리적인 실험도 강행 당했다, 라는 이야기?
앗 통했다...! ㅋㅋㅋ 연이 동생은 남동생이야. 연이와 같은 비능력자였지만 지금은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 그렇다면 도현이의 약점은 여동생이구나!(궁예) 어디에선가 연이 동생이랑 도현이 동생이랑 같이 잘 지내고 있으면 좋을텐데(눈물)
헉.... 도현이가 시선을 끌어줬던 거구나(오열) 그 때 탈출한 아이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만든 단체가 트루스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 고통받았을 도현이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ㅠㅠㅠㅠㅠ 아마 연이는 탈출 과정에서 동생을 챙기다가 동생이 크게 상처를 입고 탈출에 실패하는 것을 눈앞에서 본 상태로 헤어져 버려서 동생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 같고.....
어릴적 적합성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끌려가듯이 향한 정부의 비밀 연구소에서 다른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이능력 발현에 대한 수많은 실험을 받았다. 실험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아이들은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실험을 받아야 했다. 결국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때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고 많은 아이들이 그때 연구소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 테러집단의 수장으로 짐작되는 자의 정보가 들어왔다. "
그가 예전 생각을 하면서 넓은 사무실로 들어서자 누군가 서류 봉투를 하나 던져주며 말했다. 이 넓은 공간을 혼자서 쓸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지닌 사람. 도현은 그 사람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말없이 봉투를 풀어본다. 1급 기밀이라고 적혀있는 표지를 넘기자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예전 연구소에 있을때 같이 지냈던 여자아이.
" 알아보니 예전 연구소에서 연구 대상이었던적이 있다고 하더군. 근데 이 정보가 워낙 불분명한 정보라서 말이야. 그니까 자네가 가서 알아봐줘야겠어. "
사내가 뭐라뭐라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롯이 서류에 붙어있는 사진 한장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 알았다고 짤막하게 대답한 그는 곧장 사무실을 나와서 적혀있던 주소로 향했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하늘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그에게 이 정도 거리는 그렇게 멀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금방 도착한 도현은 주소에 적힌 집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여기서 그녀를 만났을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 안녕. "
네가 알고 있는 나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폭동이 있던 그 날 그녀를 마지막으로 봤을때도 이렇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사실 익숙했다. 텔레비전이나 영상매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그 얼굴이 아닌가. 하지만 직접 대면한 그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덜그럭거리는 것 같았다. 반가움과 불안감이 뒤섞인 탓이다.
"........도현 오빠."
그의 인사는 마치 마지막 날의 인사 같았다. 도망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그를 두고 연은 남동생을 찾아 그 지옥같은 곳을 떠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남동생과는 헤어지고, 자신만 덩그러니 살아남았지만..........
그 날 이후 도현과 자신은 정 반대의 길을 걸었다. 양지에서 히어로로 활약하는 그와 달리 자신은 음지에서 숨어 지냈어야만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은 도현이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매일같이 갈기갈기 찢어졌던 그 때에 비하면 배고픔과 힘듦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행복했다. 단지 그것이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일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입을 달싹거리다 나온 말은 조금은 차가운 말이었다.
"날....... 왜 찾아 온 거야?"
만약 도현이 히어로만 아니었다면 더 반가웠을 것이었다. 지난번 트루스의 전투 요원들이 연구소를 침입하려던 과정에서 그가 나타나 그들을 해친 것이 이주 전의 일이었다.
자신은 인간의 불로불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제 몸을 바쳐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성공작이었다. 정부가 자신을 원할 이유를 찾자면 트루스의 간부라는 것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도현이 자신을 데려가려고 힘을 쓴다면,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빠, 옛날부터 자주 들었던 호칭인데도 지금 들려온 호칭은 나름 느낌이 새로웠다. 길을 가다보면 자신을 알아본 어린 소녀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유독 지금 들린 이 호칭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눈 앞에 있는 연이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연구소에서 탈출했지만 정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까지도 숨어살고 있는 연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뉴스에서 떠들썩하지. 트루스라는 테러집단 말이야. "
이능력을 가진 것은 히어로들뿐인줄 알았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이능력을 사용하는 범죄 집단이 시민들에게 알려졌고 이들은 자신들을 트루스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막기 위해선 히어로들이 무조건 필요했기에 최근 히어로들의 사상율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 정부의 연구소를 침입한 그들을 도현이 단신으로 막아낸 사건도 있었다.
"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침입을 막다보니 몇몇의 얼굴을 볼 수 있었거든. 그런데 다들 나랑 구면이더라? "
예전 연구소에서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 자라서 만든 단체라는 것을 도현에게는 철저히 숨기고 있었지만 결국 알아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부를 배신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금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일부러 그와 가장 친했던 여자아이를 만나러 가게 하는 것으로.
" 그래서 깨달았지. 너도 어딘가에 살아있겠구나. 그 뒤부턴 어렵지 않았어. 내가 도움을 바라면 도와주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아무리 흔적을 지우고 지워도 완벽할 수는 없거든. "
목적은 분명 그게 아니었지만 도현은 아직 그녀가 수장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척 말했다.
" 그러니까 들어가서 얘기하고 싶은데 ... 괜찮을까? "
이미 훌쩍 커버렸지만 그 특유의 미소만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신도 잘 알기에 그는 웃으며 연을 바라보았다.
정보가 없었더라면, 그 때 마주친게 예전 연구소에서 알았던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도현이 지금 연을 찾아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는 곳은 언제나 감시의 중심이 되는 것이 분명한데 그날 연구소에서 탈출했던 아이들 중에 한 명, 그것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던 연을 찾아올리가 없었을테니까. 연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집 안은 딱 필요한 가구만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 간만에 만났는데 너무 긴장하고 있는거 아니야? "
테이블에 마주 앉은 도현과 연은 그 분위기부터 달랐다. 한쪽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였고 한쪽은 계속 긴장하고 있다. 마치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마냥. 허나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연의 소식을 들었을때 꽤나 기뻐한 도현에게는 이 만남이 이런 분위기가 되는 것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테이블 위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잠깐 내 손을 잡아볼래? "
강력한 염력 능력자인 그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야지만 가능했고, 어릴때 연과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고 싶을때엔 항상 손을 달라고 부탁했었다. 지금도 그녀가 이런 행동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연이 순순히 잡아줄지는 도현도 알 수 없었다.
옛 친구들을 보고 생각 났다니. 연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도현은 자신을 늘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신이 늘 도현을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것은 자신을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역시 가장 친한 사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찾아오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예를 들면... 정부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거나. 트루스 관련이든 내 능력 관련이든.
"간만이라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지."
방금 보다는 태연을 가장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위축되어 있고 살짝 떨림이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도현과 다르게 자신의 힘은 이용당할 가치만 충분할 뿐이다.
"........."
테이블 위에 올라온 손. 도현이 자신을 잡아가야고 생각했다면 이미 충분히 끝내고 남을 시간이었고, 연은 손을 잡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 감시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을 피해 무언가를 전달하겠다는 신호.
시간이 많이 지나서 둘 다 키도 많이 컸고 덩치도 예전과 달라졌지만 도현의 시선에서 연의 얼굴만큼은 예전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의 대답이 시원찮은 것을 알아챘지만 도현은 내색하지 않은채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대화는 어디선가 다 듣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연이 손끝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을때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내용만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들이 눈치챘어.
연이 연구소에서 탈출한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그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날 탈출한 아이들 중에서는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당시 연구에 핵심적으로 관여하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다. 최근 몇년간 사고로 죽었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아 더더욱.
"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인걸. " - 내가 도와줄께.
겉으론 평범하게 일상 대화를 나누는 것 같으면서도 진짜 할 얘기는 손끝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비록 상대방의 말을 듣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할 말을 다 전달한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다시 테이블 아래로 향한 뒤에 얘기했다.
" 사는 곳을 알았으니 자주 찾아와야겠네. "
유명인사라 연이 좀 귀찮을 것 같긴 했지만, 정부의 의도를 알아챈 이상 도현에게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긴 했다.
도현은 들어오면서부터 한 얘기는 트루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옛날의 구면이라는 그 말. 지금이 감시당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통틀었을 때 내가 이전 연구소에서 탈출했다는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닿은 손끝으로 인해 머리속에 전해온 말. 무엇을 눈치챘다는 걸까. 내가 트루스라는 걸?
"잘..... 지내진 못해. 오빠도 알잖아. 다시 그곳으로 끌려가게 될까봐..... 무서워서. 계속 숨어 지내고 있는데......."
자신이 가진 두려움은 그것 뿐이라는 듯, 너를 만나서 긴장하고 있는 것은 단지 그것이라는 듯이 꾸며낸다.
도와준다는 말, 믿어도 되는 걸까. 지금껏 지냈던 시간 동안 믿는다는 것에 너무 많은 배신을 받아버렸다. 그래서 덜컥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겁이 나기도 했다.
"사실 도망친 이후로 그 때는 잊고 살았어. 계속 혼자서 떠돌아다니면서...... 그 당시에 알았던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오빠가 처음이라..... 그래서 사실 지금도 힘들어."
거짓말이었다. 한 순간도 그 때를 잊은 적이 없었다. 곱씹고 곱씹으며 마음 속 상처가 아물지 못하도록 제 마음을 할퀴었다. 트루스에 가입하고 그곳에 내 전부를 걸기로 마음 먹은 것도 그 때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연은 도현의 손이 멀어지자 양 손으로 팔을 감쌌다. 전혀 춥지 않은데도. 마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것처럼. 그것은 자신이 트루스와 관계 없다는 표명과 더불어 방문을 에둘러 거절한 것에 가까웠다.
연구소는 그를 공개하는 것을 꺼렸지만 결국 정부 산하의 조직인만큼 정부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치안 공백이 생겨 범죄율은 조금씩 상승중이었고 그에 따라 여론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연구소의 성과인 이능력자들을 필두로 하여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도현의 존재는 범죄자들에겐 악몽이나 마찬가지였고 시민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웅이었다.
" 연예인 보는 느낌인걸까? "
연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간에 도현은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를 대하는듯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연의 손끝으로는 정보를 전해주기 힘들었는데, 지금도 자신이 감시 당하는 것을 알고 있는 처지에서 그렇게 길게 손을 접촉하고 있으면 수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좋지 않은 기억이긴 하지. "
한창 즐겁게 뛰어놀아야할 나이의 아이들이 연구소에서 그런 끔찍한 실험들을 당했으니 트라우마가 남는 것도 당연했다. 도현 본인도 그 때의 경험으로 결코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다곤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연이의 반응도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그 때 연구소에 같이 있던 아이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감정이다.
" 강요하는건 아니야. 네가 힘들다면 나는 충분히 배려해줄 수 있으니까. "
자신과 적대하는 집단의 수장일수도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예전의 감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도현은 그녀에게 연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옆에 있는게 그 어느 순간보다 안전하니 도현은 연을 자신과 가까이 두고 싶어했다.
" 그래도 만약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전화번호는 여기 두고 갈테니까 말이야. "
그녀의 반응을 보고서도 강제로 무언가를 하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자신의 명함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평소 그의 일처리를 아는 다른 동료들이었다면 이런 모습에 경악을 했겠지만 말이다.
조금 웃음을 머금고 말을 꺼냈지만 속 마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히어로들은 단지 정부의 무력 수단일 뿐이었다. 치안 유지는 그저 곁다리일 뿐이고. 지금의 정부가 거의 독재 체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모든 이들이 알고 있고, 알면서 모른체 할 뿐이었다.
".........."
좋지 않은 기억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표현일지도 몰랐다. 그 날의 기억들은 끔찍했고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앞의 이 사람 덕분일까.
강요하는 건 아니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잡하가거나 하진 않을 모양인듯 하다. 그 날 이후 연구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트루스를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다시 잡혀들어간 이들도 꽤 있다고 들었었다.
테이블 위에 둔 명함을 보며 연은 바로 그 전화번호를 외웠다. 하지만 이 전화번호가 감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 번은 아무도 모르게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응...... 알겠어."
연은 자연스럽게 명함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나무 테이블이 울리는 소리가 두번 났을 것이었다. 이건 암호를 보내겠다는 신호였다. 연구소에서 둘만 나눈 비밀 암호. 배웅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연은 스스로 한쪽 어깨를 손으로 쓸더니 자연스럽게 두 손을 내려 깍지 껴 맞잡았다. 어깨를 손으로 쓸어내리는 것은 '몰래'라는 뜻, 손을 깍지 껴 맞잡는 것은 '만나자'라는 뜻이었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보면 타인들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갖고서 범죄자들을 벌하는 히어로들은 당연히 선망의 대상이고 실제로 어린 아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도 바로 히어로일 정도였다. 허나 히어로의 실상은 정부에 온갖 약점은 다 잡히고 일거수일투족은 다 감시 당하는 그저 지성을 가진 꼭두각시 인형뿐이 되지 않았다. 도현 정도 위치나 되어야 어느 정도의 개인 행동이 가능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 혹시 부족한게 있으면 말해. 내가 될 수 있는 한에서 다 도와줄테니까 말이야. "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했다. 연의 입장상 최소한의 것들만 두고 사는 것이겠지만 도현의 입장에선 부족한 부분이 몇개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부자 순위로는 세계 순위를 다투는 도현이 이 정도 가전들을 사주는 것은 일도 아니긴 했다. 받은 사람은 부담스러울지라도. 명함을 두어번 두드리는 손가락을 잠시 스쳐지나가듯 확인한 도현은 연의 몸짓을 살폈다.
"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서 다행이다. "
어깨를 쓸어내리고 손을 깍지 끼는 것을 본 나는 입술을 손으로 쓸어내고선 말했다. 입술을 손가락으로 한번 쓱 닦아내는듯한 제스처는 알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오래 있어봐야 의심만 늘어날테니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갑자기 허공에 손을 내밀고선 손가락을 한번 튕겼더니 파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쓸데없는 짓을 하네. "
어느새 설치해둔 장치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괴해버린 도현은 현관문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감시 받는 것을 싫어했으니 이번 행동도 그의 변덕 수준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어차피 다시 설치될 것이었고 이것은 그녀에게 장치의 여부를 확인시켜주려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현관으로 향해 신발을 신으며 그는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 그럼 다음에 또 봐. "
그렇게 연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집에서 나왔다. 일단 보고서는 트루스의 수장이라는 정보가 틀렸다고 보낼 예정이었다.
도현은 왜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일까. 조금 의문점이 든다. 연구소에서의 옛 정 때문인 걸까. 자신 또한 도현에게 많이 의지하고 그를 좋아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빛바랜 무언가일 뿐이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 속에서 그나마 빛이 나는 기억들이었는데도. 게다가 지금껏 찾아오지 않았으면서, 지금 찾아온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응.....”
다시 만나 다행이다, 라니. 자신은 여전히 모르겠다. 혼란스럽고. 어떻게 너를 대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다행인 점은 그가 여전히 자신에게 다정하다는 점과 지금 당장 나를 잡아갈 생각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옛날 서로 주고받았던 암호를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파직, 소리가 난 것에 연은 흠칫 몸을 떨었다. 역시 뭔가 설치되어 있던 것이구나. 최근의 자신의 행보를 떠올려도 따로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없었다. 만약 자신이 트루스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겠지. 아마 나를 의심하더라도 확실한 증거는 없는 모양이었다.
“응. 잘 가.”
연은 손을 흔들며 현관을 나가는 도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관문 앞에 서서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 벽에 기대 스르르 주저앉으며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신호를 보냈다.
-파이, 파이, 여기 리코. 파이, 여기 리코야.
자신의 생각의 파장이 닿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곤 다행히 파이가 응답했다.
-리코. 무슨 일이야. 평소에는 연락 잘 안 하면서? 지난 번에 보낸 물품도 잘 마무리 됐었는데? -큰일이 났어.
파이는 트루스의 부수장이었다. 능력은 파동. 세상의 모든 파장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뇌파와 전파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멀리 있더라도 파이가 인지할 수 있다면 텔레파시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파이의 능력은 꽤나 유용한 것이 많아서 트루스가 이제껏 보안을 철저히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다 파이의 덕이었다.
-무슨 큰일인데? -언터쳐블이 나한테 접근했어. -뭐?
연은 파이에게 방금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정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재회에 대해서.
-그러니까 널 죽이거나 데려갈 것 같지는 않다는 거지? 잘 됐네. 아마 너를 주목하고 있을 테니 나도 별다른 일은 못 맡기겠고..... 그 동안 언터쳐블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좀 얻어 봐봐.
파이의 전언에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항의하자, 파이는 잡혀가게 되면 책임지고 구해주겠다면서 책임지지도 못할 소리를 했다. 아마 파이도 같은 연구소에 있었으니 나와 도현이 얼마나 친한 사이었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일이 얼마나 예외적인 일이었는지 알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연은 도현이 멀게만 느껴졌다. 만나지 못했던 긴 시간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가 있는 위치와 자신이 있는 위치의 차이 때문이기도 했다.
언터쳐블에게 접근하라는 파이는 어느새 그의 일정까지 조사해서는 심야 시간에 버려진 공원에 다녀오라는 말까지 했다. 그곳에서 얼쩡거리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연은 파이의 말이 어째 의심스러웠지만 파이의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파이는 이 트루스의 사람들을 모았고 크루의 한 명 한 명을 다 아끼고 신경써왔다.
“........”
그래서 도착한 조금 스산한 느낌의 공원. 관리가 된 지 꽤 오래된 곳인지 공원이라기 보다는 폐허에 가까워 가로등 조차 드믄드믄 꺼져 있었다. 이런 곳에 도현이 자주 온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은 흐릿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공원을 서성거렸다.
남들이 보기에 도현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유명하기론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데다 그 명성으로 엄청난 부를 쌓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사실은 하루종일 감시 받고 있고 정부가 원하는 일은 어떤 일이던 해야한다는 진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그런 삶을 매일 같이 영위한다는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므로, 가끔 혼자 있고 싶을때 가는 곳이 있었다.
" 그곳에 갑니다. "
자신을 항상 감시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툭 던지고서 그는 집에서 좀 떨어진 공원으로 향했다.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이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그곳 안쪽으로 그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저번에 호기롭게 진입을 시도한 이들이 모두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가 도착한 곳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듯한 공원이었다. 그리고 공원 입구에서 조금 멀어지자 거짓말처럼 따라오던 기척이 사라진다.
" ... 너가 여기엔 어쩐 일로 와있어? "
물론 모든 사람을 막는 것은 아닌데다 관리가 잘 되진 않았어도 공원은 공원인지라 돌아다니는 사람이 간혹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공원에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서 그가 마주친 사람은 좀 특별한 사람이었다. 도현은 연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하고선 넓은 영역에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겠지만 그 영역 안에서 도현이 원하는 일은 다 일어날 수 있었다. 사람을 간단히 비틀어 죽이는 것도.
" 그래도 우연이네. 이런데서 다 만나고. "
그는 슬쩍 웃으며 근처 벤치에 걸터 앉았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좋아했던 곳이었고 실제로 지금 공원엔 도현과 연 두 사람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연은 그곳으로 몸을 돌렸다. 보이는 것은 다행히 도현이었다. 연은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더 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 때 도현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느정도 느꼈으니까. 물론 해친다고 하도 자신은 원상복구 되버리고 말겠지만.
“오빠가 보고 싶어서.”
조금 장난스러운 어투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기에는 조금 힘이 빠진 투였지만. 아무래도 편하게 웃으면서 장난칠 정도의 에너지는 이미 고갈이 된 이후일지도 모른다. 몰래 만나기로 했잖아, 하고 입모양으로 도현에게 전한다. 가까이 다가와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려나.
“응. 정말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연은 도현을 따라 근처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한참을 멍하게 밤하늘만 바라보다가 연이 도현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