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어장은 4개월간 진행되는 어장입니다. ◈ 참치 인터넷 어장 - 상황극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릅니다. ◈ 만나면 인사 합시다. AT는 사과문 필수 작성부터 시작합니다. ◈ 삼진아웃제를 채택하며, 싸움, AT, 수위 문제 등 모든 문제를 통틀어서 3번 문제가 제기되면 어장을 닫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감정 상하는 일이 있다면 제때제때 침착하게 얘기해서 풀도록 합시다. ◈ 본 어장은 픽션이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필두로 약물, 폭력 등의 비도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어장은 공식 수위 기준이 아닌 17금을 표방하며, 만 17세 이상의 참여를 권장하는 바입니다. ◈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돼.
위키: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Seasons%20of%20Dimgray 웹박수: https://forms.gle/GL2PVPrsYV2f4xXZA 임시어장: >1596774077> 내가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이 회색으로 물든 하늘이었다.
겨울의 길가는 꽤 추워서, 에레는 어제 치료한 환자에게 받은 핫팩을 꺼내 손을 데웠다. 몸에 내장된 체온 조절기의 출력을 좀 더 높일까 생각해봤지만, 어쩌다보니 받아버린 300kg 분량의 핫팩을 다 처분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그리고 겨우겨우 생체 축전지에 저장한 에너지는, 겨우 손을 데우는 것이 아닌 더 중요한 일에 써야 했다ㅡ 그녀가 이번에 새로 주문한 오토클레이브를 가지고 가는 것.
"초고압, 초고온..."
에레는 즐겁게 자신의 앞에 도착할 물건을 상상하면서, 한 손으로는 핫팩을, 한 손으로는 PDA를 잡은 채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살려달라고 줄을 선 이들의 호소를 분류하고,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구분하고, 그리고... 에레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물건의 탁송 기사로 지정된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ㅎㅇㅎㅇ] [어디야?] [물건 빨리 보여줘ㅓㅓ]
대충 그렇게 치고는, 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날이 워낙 추워서 그런지, 에레는 핫팩 몇 개를 더 까서 호주머니에도 넣었다.
언젠가 시안에게도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 때 자주 불러주었던 노래, 정말 괴랄하기 짝이 없지만 그 구성진 음색을 품은 노랫가락은 까르르하고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우리들은 살아있다~ 살아있기에 먹는거야~"
물론 지금은 아이들에게 노랫소리를 들려줄 수도 없고, 애당초 그런 구성진 목소리도 내보일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노래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마치 놀이공원의 우스꽝스런 광대를 보듯 하는 실소로,
/꼬끼오!/
바이저 안쪽으로 비치는 로드뷰에 허접한 그림으로 꽃길을 심으며 잠깐 사색에 빠지던 시안은 수령인으로부터 온 메일을 알리는 소리에 눈을 돌려 메일을 확인해보았다.
[오~ 그러잖아도 거의 다 와간다고 알림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하~ 이거이거, 레이디를 너무 기다리시게 한거 아닌가 죄송스럽네요!] [더군나나 이 엄동설한의 도시에서 말이지요!] [허나 걱정 마십쇼! 거의 다 왔습니다!] [배송목적지까지 앞으로 5] [4] [3] [2] [1]
카운트가 3을 향할때 급제동, 시원하게 눈길을 가르며 질주하던 시안은 빠른 감속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여성에게 사뿐히 도착해 바이저 바깥쪽으로 [배송완료] 라는 문구를 새긴 다음 바로 [^^] 표시를 띄웠다.
"주문하신 물품! 마참내 도착! ...인데 많이 추우신거 같군요! 맘같아선 엔진에 손 좀 녹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아 참, 설치서비스는 필요 없으십니까? 선생님 일터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아니라면 무료니까 사양않고 말씀해 주십쇼!"
꽤나 춥다. 에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핫팩을 하나 더 뜯었다. 그리고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그런 것처럼, 따뜻해지는 핫팩을 손에 잡고 이 엄동설한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 오토클레이브 기기로 할 일을 상상한다. 뭘 할까? 간단하다. 기구의 완벽한 소독이다. 그전까지는 수술 기구를 자외선 램프와 포비돈으로만 소독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병원체는 박멸되긴 하지만, 쓰면서도 도저히 불길한 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오토클레이브가 들어온다면, 이 아까운 수술 도구들을 이제 맘놓고 재활용할 수 있으리라.
"헤헤... 아주 좋아. 좋다구!"
에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메시지 송신음이 들리자 확인한다. 거의 다 와간다는 이야기를 보고 흡족해하던 에레는, 갑자기 5, 4, 3, 2, 1, 이 뜨자 옆을 바라본다. 그리고... 에레의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휭휭 쓸렸다. 1이 나오자마자 왼쪽을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앞을 보니, 바이저에 '배송완료'와 함께 '^^'이 뜨는 것을 보고 벙찐 채로 바라보았다. 대체 뭐지? 이거.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잠깐, 웃자, 웃어!
"와오! 대단해! 내가 봤던 것 중에 세 번째로 빨라! 참고로 두 번째는 나한테 수술받다 도망친 단거리뛰기 선수였는데!"
에레는 깔깔 웃으면서, 에레가 배송한 물건을 기계팔을 꺼내 들려고 했다. 하지만...
"엣."
쿵, 기계팔은 추위에 전력을 금방 잃었는지 축 늘어졌다. 에레는 핫팩을 축전지 쪽에 둘러둘 걸 그랬다고 생각하면서, 멋쩍은 얼굴로 말한다.
맙소사, 3등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시안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둔탁한 쇳소리가 작게 울릴 뿐이다. 스피드를 요하는 이런 직업에서 누군가보다 주행력이 떨어진단건 곧 고객의 손해로 이어지는게 아니던가!
"앗차~ 3등이라니! 그래도 메달권인건 다행이군요! 단거리뛰기 선수분께서 도망치시는건 절대 쉽게 붙잡진 못하지요!"
시안도 그저 슈트의 힘과 자신의 테크닉을 믿을 뿐이지 슈퍼카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운동선수만큼의 실력을 뽐낼수는 없을 것이다. 환자가 수술 받다 도망친 것엔 태클을 걸지 않냐고? 그것은 의사의 잘못이 아니잖은가? 설마 등에서 무수한 기계팔이 나와 수술을 집도한다고 바짝 쫄아버릴 양반이 이 도시에 존재하긴 할런지?
"오우."
짧은 탄성과 함께 축 늘어진 기계팔을 보니 시안 역시 숙연해진 기분이 들었다. 수고 많았다. '누군가의 의수 ☆☆번', 넌 네 할일을 잘 해냈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놈의 도시는 사람들이 인색한 건지, 집에 숨겨둔 꿀먹는 곰돌이라도 있는지, 도통 안으로 안내해주는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조금만 눈밖에 나도 사선을 넘을까 말까한 곳인데 자기 아지트를 남에게 보란듯이 공개하는 것도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안하겠다만.
시안은 짧게 몸을 숙인 뒤 안내를 받아 따라가기로 했다.
"야속하게도 기계란건 추위에 약하단 말이지요... 사람만큼이나 추위를 느끼니 말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죠."
그럼 기계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본적이 있냐고? 적어도 시안에게는 있었다. 그대는 추운날 빠르게 줄어들던 휴대폰 배터리의 비극을 아는가...
"아, 그래도 걱정할 건 절대 없어! 순간 속도 기준이니까. 딱 10초 동안 그렇게 뛰다가 방전되어버려서는... 1분만에 나한테 다시 붙잡혀서 수술대로 올라갔지! 그러니까 정정해서... 지구력 기준으로는 지금 우리 배달 기사님이 최고란 말씀!"
배를 쓱, 대장을 싹! 에레는 자신의 손으로 수술 과정을 묘사하더니, 엄지를 척 쥐어준다. 그 달리기 선수의 예후는 아주 좋았지만(그 이후 신기록을 세웠다) 그 후 정신에 문제가 생겼는지 뭐였는지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뭐, 에레는 자신의 잘못은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웃어보인다. 그리고 추위에 약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음음, 한다.
"확실히 그게 문제야. 배터리가 추위에 너무 약해. 그리고 너무 뜨거워지면? 바로 터지지... 배터리도 생물체처럼 더우면 땀을 흘려서 온도를 낮추고, 추우면 몸을 오므리거나 벌벌 떨어서 온도를 높여서 정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라고 말하던 에레는, 자신을 도와주는 배달기사에게 말한다.
"그러고보니, 이 기계 배달기사 선생의 몸은 어떻게 유지되는 거지? 이 강추위 속에서도 정상적인 구동을 보증하는 이런 기계는 들어본 적이 없어!"
그리고 참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제 딴에는 칭찬이지만...
"만약 생명체였다면, 그리고 우리 병원에 실려온다면 의학의 발전을 위해 한번 해부해봤을 정도로 완벽한 몸이야."
윈터 어드벤처, 이름답게 설상지, 시종일관 눈이 쌓일것 같으면서도 지면에 겹쳐진 두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항상성을 유지하는 공간... 살이 아리고 뼈에 사무칠 정도로 추운 곳...
"의지, 일까요?"
전혀 쌩뚱맞은 난수의 단어를 꺼냈다. 어디든 붙여먹을수 있는 마법의 단어, 비록 마법 따위는 존재할리 없는 세상일지라도 마법같은 일은 언제나 있어왔다.
"크하하하하하핫하~ 이런 구닥다리를 의학 발전을 위해 쓰려 하시다니, 통도 참 크십니다! 뭐, 언젠간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요?"
바이저에서 윙크를 하는 간단한 도트 애니메이션이 흘러갔다.
해부라... 생각해본적은 있는 일일까, 자신은 분명 노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물건을 이고 가는 이를 노략하는건 예로부터 있던 관습, 또한 시안의 직업은 밀수업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고,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기겠지만, 누군가는 치를 떨며 싫어할 존재니까. 생명이 노려지는 위협은 자주 겪어왔기에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