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어요. 가족들도, 친구들도, 아저씨도 제가 해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다는 말이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만 보아도 그래요. 친구의 막내 아이라면 대부분 잘 대해주고 싶어할테니까, 그런 겁니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아저씨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 어울리지는 않는 말 같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전 사실 행운아였을 지도 몰라요. 지금도 과한 칭찬을 들어버렸는걸요.
“그럼, 아저씨도요?”
작은 말장난이예요. 아저씨가 먼저 중간 ‘평가’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제 계획을 평가하는 중인데, 그러면서 감히 저를 평가하려는 자식들은...... 따라하지 못할 말을 하라고 했으니까요. 속삭이기는 했는데, 일단 말해버리고 나니까 뒤늦게 너무 짓궂은 장난을 친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는 제 칭찬을 해주고 있는데 저런 말장난을 쳐버리다니면 어떡하나 싶어졌어요. 장난을 쳤단 사실 자체도 부끄러운 것 같고, 멋쩍어져서 눈을 피해버립니다... “...최종 평가까지 힘내겠습니다.” 딱히, 아직 많이 사드리지도 않았으니까요. 돌아가는 길에 당장 먹는게 아니더라도 아저씨의 두손 가득 먹을 걸 사쥐어 보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도와줄 분이 있습니다.”
민망하지만, 아마도, 학생회장 선배님에게 등불을 받으면 초유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필요없다고 해버린 기억이 너무 또렷해서 어느쪽이 더 낫나 싶지만요... 그래도, 키즈나히메 신사 분들이 혹시라도 저를 알아보게 되면 여러 명에게 붙들릴 수도 있지만, 학생회장 선배님에게 등불을 받으면 저만 민망하고 끝이니까 그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저씨한테 기도해도 들려요?”
...부모님이나 언니오빠들에게는 매일 저녁 소원을 빌고 있어요. 그리고 아마 닿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소원을 비는 걸 깜빡하면 연락이 오기도 하니까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원이 닿으니 거리는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저씨는...... 다른 나라의 신이잖아요! 한국의 신에게 소원을 빌어도, 기도를 올려도 들리는 걸까요? 애초에 부를 때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어로 불러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우선은, 궁금중보다 기도 올릴 일이 없는게 우선이지만요. 다행히 아저씨는 옆에 잘 계셔주셨고, 등불도 무사히 받아올 수 있었어요. 학생회장 선배님에게 짧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빠르게 받아왔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감사 인사를 드려야할 것 같아요............
“네, 강가로...”
강가로 가면 바로 띄울 수 있으니, 강가로 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저씨의 눈을 보고서 화들짝 놀라버립니다. 눈에서 불꽃이 인다는 말이, 소설에서나 나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현실로 일어날 것만 같아서였어요. “아저씨, 눈!” 목소리 크기는 잔뜩 낮추었지만 다급해서 손가락을 쥐고 있던 손도 잡아당겼어요. 눈에 별을 심은 것도 아니고, 정말로 반짝거리면 어떡해요!
아니, 갑자기 확 틀어서 바꾼 거니까 태세전환형 농담인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생각이니 진지한 고찰까지는 안 가지만, 하네가 혹여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조져질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길까 고갯짓 빠르게도 하며 해명한다. 그러면서 하네를 쳐다보자 때마침 하네의 눈동자가 딴 데로 휙 향하며 시선이 어긋났다. 그는 그 모습 잠시 빤히 쳐다보다 빙긋 웃었다. 음, 이왕 참기로 한 거 끝까지 가려고 했는데 역시 못 참겠다! 그는 재빨리 손을 위로 휙 올려 하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힘낼 것까지야 없어! 그냥 하던대로만, 마음 편하게 하기만 하면 나는 좋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매번 그랬듯 머리칼 휘적대지 않고 정수리 언저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정도다. 깔끔했을 텐데 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 힘냈다.' 같은 기색으로 뿌듯한 표정 짓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거칠게 안 쓰다듬으려고 딴에는 머리에 힘 많이 줬단다.
"내부자와 내통하기까지 하다니 치밀한데?"
농담인지 진심인지 슬쩍 몸 낮추고 속닥거리는데, 그런 거 아니다! 하지만 하네가 준비를 철저히 한 듯해 놀란 것만은 사실이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사전에 합의를 해 뒀다는 뜻이니까. 그 도와줄 사람이 누구인지 목 쭉 빼고 주변을 살펴봤지만 그렇게 본다고 알 턱은 없다. 결국 금세 포기하고 얌천히 기다리기나 했다.
"으음, 이게 설명하기 애매한데. 날 콕 지목해서 열심히 생각해 주면 그럭저럭 잘 느껴져. 아예 내 쪽에서 널 계속 신경쓰고 있으면 전화 온 것처럼 더 반응하기 쉽고. 다른 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네."
흔히 '생각'은 문자로 정렬된 문장이나 명확한 상像, 뚜렷한 음성으로 된 독백으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뇌에서 거쳐지는 사고는 반드시 언어나 어떠한 형상으로 옮겨질 필요가 없으며, '기원'의 핵심은 간절하고 열렬한 마음인 법. 그 부분까지 짚으며 꽤나 진지하게 설명하다가,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어 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사생활은 중요하니까 그동안 딱히 네 생각 신경쓰지는 않았어!" 급해서 표현이 막 나간다. 이건 이것대로 이상하고 매정하게 들리는 소리잖나……. 하지만 더러운 아저씨가 될 수는 없으니 확실히 해 둬야 했다! 정작 하네는 아직 뭐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펄쩍 뛰면서 난리다. 하네랑 손 잡고 등불까지 든 상황이라 곧장 얌전해지긴 했는데, 그렇게 넘어가나 싶었더니 이번엔 또 눈이 문제다! 그는 우와악 난리 치려다 붙잡힌 손 덕분에 겨우 목소리 크게 소란 피우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대신에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굳었는데, 이러고 서 있으니까 진짜 푼수 같다……. 눈을 길게 깜빡거리다 보니 어느 순간 빛이 뚝 멎었다.
"되었어?"
에잇, 몰라! 안 되었어도 어쨌건 여길 떠서 강가까지 가야 하는 건 똑같다. 축제니까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보여도 다들 그러려니 하겠지! 대경을 한 게 언제였냐는 듯 그는 답 돌아오기도 전에 가자며 또 재촉을 했다. 그렇게 물가에 다다른다면 야경이나 등불은 우선 뒤로 제쳐두고, 얼른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에 물 적시더니 하네에게 몇 방울 툭 튀기며 키득거렸을 테다.
장난이 장난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농담이 농담같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미루보아 아까 쳤던 말장난은 역시 괜히 한게 맞았어요. 아저씨가 허둥거리면서 반응한다는 건,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걸테니까요. 아저씨가 계속 그러지 않게 해명을 하는데, 해명을 하자니 장난을 쳤다는 걸 인정하는게 되니까, 그 이상한 장난이 민망해서 낯부끄러워집니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건 기분탓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낯 부끄럽진 않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아마도요. “그럼 힘 안 내게 힘 내겠습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래야해요. 오늘 하루종일 힘내야한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그 생각하지 않게 힘내야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다행일지도 몰라요. 힘낸다고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고, 아저씨한테는 이미 비밀들을 꽤나 들켜서 마음의 짐이 덜합니다. 것보다, 웬일로 아저씨가 머리카락을 헤집어놓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려요.
“내통 아닙니다. 우연이었어요.”
심지어 등불을 건네달라고 제안하지도 않았어요. 먼저 학생회장 선배님이 신경써주셨습니다. 치밀하다는 칭찬은 학생회장 선배님이 들어야할텐데, 모르는 사이인 것 같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신 전달하기로 해요. ...그래도 ‘치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는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요.
“소원 비는 사람 많으면 어지러울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전화기가 울린다고 느낌이 되는 거잖아요. 신이라고 편하게 놀러다니면서 쉬기만 하는 건 아닌 가봐요. 그런 신님들이 주변에 여섯 정도 되어서 신들은 다 그런 줄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맞잖아요. 앞으로도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급히 말을 덧붙이셔서 중요한 말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해가 단박에 되지 않아서 갸우뚱 고개가 기울어버립니다. 사생활이 중요하단 말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신경쓰실 이유는 없어요. 부모님의 부탁이 신경쓰여서 그런 것이라면 더더욱이요. 저보다는 아저씨 스스로한테 신경쓰시면 좋겠는걸요.
“네, 되었어요.”
...신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신경쓰는 게 제일 우선일 것 같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저씨의 눈이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으면 표정이 풀리고 말아요.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지 않아서 망정입니다. 둥글게 눈웃음 지어버리고 나서야 웃었다는 걸 눈치챘으니까요! 다행입니다, 아저씨가 재촉을 해주어서 어색하게 변명할 일도 없고, 부끄러울 새도 없어요. 저 혼자 별 일 아니라고, 되뇌면서 강가로 도착하면 그럭저럭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요. 아저씨는 바로 자세를 낮춰 쭈그립니다. 바로 등불을 띄우려나 싶어서 옆에 나란히 쭈그려 앉으면...... 일기예보 시간이었어요. 이슬비도 아니고 물방울이 톡톡 튀었습니다.
“유치하게.”
그리고 유치한 건 저도 할 줄 압니다! 저도 소매를 걷고 손을 물에 적셔 물방울을 튕겨요.
>>949 너무 잘 그려서 먹어도 되는 건가 싶어질 것 같은데, 그래도 산수화라면 여백이 꽤 있으니...... 케첩 없는 부분 파먹기? 🤔 상냥하다는 말을 직접 들으면 본인이 좋아해서 그린 거라고 거짓말 하겠지만. ☺️ 초록색 느낌 이야기를 하니 푸른 토마토로 만든 녹색 케첩을 본 것 같기도 하고. 🧐
린주 잘 자고 좋은 밤 보내. 푹 쉬어. 나도 또 졸아버려서 이만 들어가볼게. 아마 셔터 닫는 것 같은데, 다른 참치들도 다들 잘 자. 푹 쉬고 좋은 밤 보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