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즈는 선생님들과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도 당신 쪽을 흘긋 바라본다. 음, 분실물 수거함에 찾던 지갑이 있었나 보다. 다행이네! 당신이 잘 나가는 모습까지 본 안즈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갑작스럽다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원체도 잘 웃고 떠드는 밝은 아이니까.
"아이, 진짜! 이렇게까지 많이 주실 필요는 없는데~!"
당신을 돕는 임무(?)를 완수하긴 했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나갈 수는 없었다. 이야기도 끝마치지 않고 나가버리면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 안즈는 조금 더 떠들고,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긴 채 교무실을 나섰다.
"헤헤,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여유있게 손까지 살랑살랑 흔들며 문을 닫았다. 휴, 이걸로 끝이다! 없는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돌리던 안즈는 그제야 당신을 눈치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걸 보아하니 당신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어,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어?"
뭐라 더 말하려던 안즈는 말을 내뱉는 대신 제 품에 안긴 간식 더미를 뒤졌다. 그러더니 사탕 두어 개와 작은 과자 한 봉지를 당신에게 건네려 했다.
"음...?" 친절한 이유를 묻는 말에 조금 눈을 크게 뜹니다. 왜? 친절한가? 누구라도 상관없으니까 누구에게나 친절한.. 그런 거 아닌가? 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정말로 누구에게나 친절하려 노력한 것과 친절을 받아들이는 건 다르긴 한가..?
"그.. 일단 나 와타군이 볼품없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망설이는 것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립니다. 이건 볼품없다를 반박하기 위해서 생각하는 걸지도?
"친절한 건... 사실 잘 모르겠음.." 다 똑같이 대한다고 했는데 와타누키 군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굴었을 수도 있음.. 이라는 말을 조금 빠르게 말하려 합니다. 그리고는 바닥으로 시선을 향한 미카를 보면서 손을 뺨에 가져다대려 하다가 만일 닿는다면 바로 떼려 할 것 같다.. 너무 푹 숙이고 있다는 건 좀.. 애매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침잠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어서 무심코 손이 간 걸지도 모름.
"기준이 다른 거라면 다른 거라고 볼 수 있나..?" "그. 볼품없지 않은 걸 볼품없지 않다고 보는 것임." 왜라고 묻는 미카에게 어.. 음.. 하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그야 당연한 것인 만큼 이유는 없고..? 뭔가 진지한 이야기들이 어울리는 사야카이긴 하지만... 역시 다정한 위로같은 거나 너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야! 같은 걸 말해주는 건 사야카에게는 무리였다. 그건 열정적 키리나즈메같이 모순적 어휘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임." 조금 감정기복이 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음. 친절하다고 느꼈군. 내가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친절한 편이었나? 라고 생각해보지만.. 아닌데... 나 객관적으로 좀..많이 게으르고 그런데?
"앞으로..?" "와타누키 군이 내게 원하는 친절이 함의하는 관계성이 어떤 형식이냐에 따라서 달라질수도 있지 않겠음?" "물론 일반적 친절은 당연히 해줄 수 있음." 미카의 표정을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입니다.
무시해도 될 일입니다. 제가 그 피팅모델이란 것도 모르니까, 전 단순히 얼굴은 알고 있는 같은 학교 학생입니다. 게다가 전 디자이너 지망생씨를 일부러 피해다녔고, 이상한 거짓말쟁이로만 보일텐데 굳이 도와줘야할 이유는 없어요! 심지어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 시비가 걸린 건 유쾌하지 않지만,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니니까요. 돈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긴 해도 돈은 안 뺏겼습니다. 어디 다친 곳도 하나 없고요. 그러니까, 일부러 고개까지 저어가며 오지 말란 표시를 했는데 하나도 통하질 않았습니다.
“...제정신이에요?”
가까이 다가가기는 왜 가까이 다가가요! 처음 시비를 걸렸던 저보다 거리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러다가 싸움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소근소근 말을 걸어보지만 이런 거리에서는 디자이너 지망생 씨한테만 들릴려나 헷갈립니다. 너무 작게 말하면 아예 안 들릴 것 같고, 애매하게 작게 말하면 모두에게 들릴 거예요. 눈을 도르륵 굴립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에 띄는 일도, 평범하지 않은 일은 충분하단 말예요... 이미 한 명 더 휘말린 이상 조용히는 더 이상 무리인 것도 같지만요. 불량배들이 뭔데 끼어드냐는 식으로 떠드는 것도 같지만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을 탈출하는게 우선이니까 뭐라고 해도 하나도 안 들려요! 뛰어서 도망치는 것 말고는 생각나는 방법이 없어서 더욱 그래요. 디자이너 지망생 씨가 입고있는 옷 끝자락을 두번 정도잡아당겨요. 까치발을 들면 어떻게 귓속말은 겨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달리기 잘 해요?”
빠르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서 도망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저는 그래도, 못 달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체육을 못하지는 않으니까 열심히 뛰면 따돌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상가가 있는 큰길 쪽으로 가버리면, 사람들도 많은데 뭘 더 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 어제 말도 없이 잠들어서 미안해. 🥲 # 다들 좋은 저녁이고, 답레로 갱신하지만 바로 가볼게. 금요일 잘들 보내길 바라고 저녁은 잘 챙기자. 🤗
언젠가 미야나기는 매주마다 가부키를 봐야 했던 때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은 없다. 차라리 치명적인 음향 사고—돈 낸 관객과 돈 낼 극장주에게는 송구한 상상이지만—가 나서 조기 폐막이나 하길 바랐을 만큼, 도저히 참아주기 힘들어 항상 끔찍했던 경험이다! 춤에 흥미 없는 사람의 감상 또한 비슷할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긍정할 수 있었다. “그럼요. 지루할 거예요.” 뮤지컬처럼 대중적인 무대마저 장벽이 있는 마당에 전막 발레를 권하는 건 조심스럽다. 그나마 허들 낮은 호두까기 인형은 하필 연말 전문이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발레 마임은 간단한 편이라 어렵지는 않아요. 춤, 사랑, 죽음. 세 가지만 알면 돼요.”
단어를 끊어 뱉을 때마다 해당 마임을 짧게 보여주며 말했다. 한 마디로 내용이 전부 그게 그거라는 소리다. 춤추고—사랑하다—죽는다. 스토리 한 번 참 단순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대다수의 레퍼토리가 최소 백 년은 묵은 구닥다리 전형이라 일반인은 퀘퀘해서라도 못 견딘다. 미야나기는 고전 무용의 그런 점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너무 죄송한데.” ······극단적으로 척박했던 시절과 비교 당할 만큼 진짜 맛없었나 보다. 역시 높은 단백질 함량에는 높은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다시는 주문하지 않기로 남몰래 다짐했다.
“어쩌죠. 무용실에 오셔도 딱히 할 건 없을 텐데······. 플로어라도 좀 시켜 드려요?”
그러면서 제가 앉은 매트를 툭툭 가리켰다. 바가노바 메소드도 없는 주제에 야매로 지도하겠다는 몰렴한 권유다. 그러나 손님 앉혀놓고 하던 작품이나 마저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손님을 뜬금없이 트레이닝해주겠다는 발상도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