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에서 나온 치아키는 쭈욱 두 팔을 뻗었다. 수학여행도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제대로 즐기기 위함이었다. 물론 딱히 계획을 잡은 것은 없었다. 사실 학생회인 이상 계속해서 놀수는 없기도 했고. 그렇다면 바다로 산책이나 잠시 가볼까. 아니야. 이왕 이렇게 된거 발이나 담그면서 놀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다시 올라간 후에 수건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이 정도면 혹시나 몸이 젖더라도 수건으로 몸을 닦을 수 있으니 딱히 위험할 것이 없었다. 돗자리야 가서 하나 구입하면 될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섰다.
막 건물 밖으로 다시 나온 후 앞으로 가려는 찰나 한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은회색빛 머리카락이 꽤나 인상적인 이였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우리 학교 학생이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잠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뭔가 두리번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 그쪽의 여학생 양은 뭘 찾길래 그렇게 두리번거릴까? 길 찾는 중이야?"
그렇게 태연하고 가볍게 말을 걸면서 치아키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그녀의 근처에 섰다. 그리고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손에 쥐고 있는 수건을 제 목에 감아서 건 후에 말을 이어나갔다.
"그럴 땐 학생회 쪽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여기에 사전조사도 나왔고 말이야. 하핫. 아니라면 쏘리! 하지만 뭔가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서."
아니라면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꽤나 가벼운 어투였다. 이어 치아키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일단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사에는 물놀이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젖은 채로 모래사장을 뒹구는 건 역시 모래가 잔뜩 묻어서 싫지.
“확실히 요즘에는 수영장이나 워터파크 같이 깔끔한 물놀이 시설이 많아서 그런가, 해수욕장보다는 그런 곳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 일행의 템포에 맞추다보면 워터파크도 갈 것 같긴 한데.......”
케이가 막 에너지 넘치는 스타일은 아닌데 친구들은 꽤나 하이텐션인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케이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인세의 여러가지를 경험해볼 수 있으니 좋은 것이기도 했고. 하긴 신계에는 워터파크 같은 거 없으니까. 응.
“뭐, 원래 휴양지가 그러니까요.”
가격 바가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이런 곳에서는 비싸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전에 대화 내용이 생각났다는 듯 함께 걸음을 옮기며 케이가 물었다.
“전에 말했던 검은 여우, 주변에 물어봤었어요?”
만약 사에가 주변에 검은 여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면 뒷정원에서 검은 여우가 나타난다더라, 아니다 그건 그냥 검은 고양이를 착각한 것이다, 목격자가 많다더라, 사진 찍힌 건 하나도 없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깊게 조사했다면 검은 여우가 소원을 들어주는 여우신의 심부름꾼이라는 소문이나 후정 으슥한 곳에 있는 장난같은 돌탑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소문은 이전부터 케이가 은근슬쩍 흘린 것들이었지만.
수학여행에 와서 일정대로 조금 움직이고 난 뒤에 한 것은 숙소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일기를 쓰거나, 노래를 듣거나, 자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큰 맘 먹고 먼저 다가와서 같이 놀자고 제안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워낙에 사납게 생긴데다가 사람 대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 리오는 본의 아니게 자기는 피곤해서 쉬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속으로는 같이 나가서 놀자! 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쉬이 입 밖으로 나오지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자기같은거랑 같이 가봐야 재미도 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위안삼고는 잠들었다가 이제 막 선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멍하니 앉아서 아무도 없는 숙소에 앉아있던 리오는 주섬주섬 가방을 풀고 이 날을 위해 준비한 수영복을 꺼내보았다.
" 입어나 볼까.. "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 털어서 산 것이니 입어는 봐야겠다 싶었는지 리오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는 이리저리 혼자 포즈를 잡아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조금 밖에 나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는 사에도, 미야도 없다. 혼자서 해야한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어린아이마냥 리오는 큰 맘을 먹고 입은 수영복 위에 폼이 큰 스웻셔츠와 돌핀팬츠를 챙겨입었다. 조금 더울지도 모르지만 바다니까 괜찮겠지. 겉으로 봐선 수영복을 입은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 ... 출정이다! "
작게 말하고 밖으로 나와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다는 어디에 있는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설명할 때 제대로 들을걸 그랬지. 이동할때 자지 말 걸 그랬지. 친구들이 나갈 때 혹시 바다는 어디 쪽에 있냐고 물어볼 걸 그랬지. 리오는 타박타박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짝반짝을 찾고싶은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길을 찾는 중이냐는 물음에 리오는 언제나처럼 피어싱과 검은 마스크 그리고 조금 째려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 .....반짝반짝을 찾고있어. "
아, 이게 아닌데. 리오는 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말해버렸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손을 파닥파닥 젓고는 그런게 아니라-! 하고 조금 과하게 정정했다.
좀 더 가깝게 다가오니 피어싱과 검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뭐지? 감기인가? 피어싱은 그렇다고 쳐도 마스크라니. 여름 감기에 걸렸나? 몸 아픈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자신을 째려보는 눈빛에 순간 치아키는 움찔했다. 말을 건 것이 실수였나? 순간 그렇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말을 건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치아키는 이내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반짝반짝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반짝..반짝?"
반짝 반짝 작은 별? 트윙클 스타?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다가 손을 파닥파닷 저으면서 바다를 찾고 있다는 말에 그는 아. 소리를 내면서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바다는 반짝반짝하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크게 다시 위아래로 끄덕였다.
"오. 알고 있나보네. 맞아. 학생회장이야. 가미즈나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이 바로 나!"
두 엄지를 세워서 자신을 콕 가리킨 후에 일부러 키득키득 웃는 모습이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상당히 가벼웠다. 이어서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저 앞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바다로 가려면 저쪽으로 쭉 가다가 보이는 세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쭉 가다보면 내려가는 길목이 있는데 그 길목을 쭉 내려가면 있어. 아마 내가 알기로는 지금이라면 여름의 집도 있을걸? 참고로 나도 바다에 발이나 담글까 싶어서 가려고 생각 중인데 어때? 안내해줄까? 그건 그렇고 반짝반짝이라. 꽤나 예쁜 표현이네. 하핫. 멋진 표현이야. 정말로."
살짝 감탄했다는 듯이 그는 오른손 엄지를 위로 올렸다. 이어 그는 어쩔꺼냐는 듯이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온 것일까? 안즈는 말한 이후에서야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곧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취향 차이라는 마법의 말이 그를 납득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야카의 말에 안즈는 어색하게 웃었다.
"...가끔은? 내 주관적인 평이긴 하지만."
저번에 윤리 선생님이 풀어주셨던 아내 분과의 일화라든지? 잠깐 생각해보더니 말을 덧붙인다.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
왜인지 모르게 의기소침해진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유다. 물론 필기를 잘해주는 것이 시간 절약도 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힘들다! 그리고 마음처럼 잘 안된다! 적어도 안즈, 본인은 그렇다. 그러니 필기를 성실히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는 말을 들어버리면... 여러모로 찔리고 마는 것이다!
"헐, 진심이야? 진짜로?"
안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야카가 한 말의 진의가 의심되어 되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노력한 건데 그렇게 막, 막 보여줘도 돼? 어디 가서도 이러다가 약아빠진 녀석들이 잡아먹을지도 모른다구, 키리나즈메 양!"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인 셈이다. 속에서 내적 친밀감은 어느 정도 형성이 되었다지만 실제로 대면하여 말하는 것은 아직 영 어렵다. 리오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갈팡질팡 못하거나 손을 꼼지락대거나 하면서 계속 정신사납게 굴다가 여기까지 나왔을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홀로서기. 그 홀로서기의 첫 걸음인 것이다. 메이드카페에서 알바할 때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제법 살갑게 굴 수 있는데 왜 밖으로 나와버리면, 아리스가 아닌 리오가 되어버리면 이렇게 힘든걸까.
" 반짝반짝.. 놀리면 죽어버릴거야. "
죽여버리겠다- 가 아니고 죽어버리겠다. 이런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고 고쳐야 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만 몸과 마음에 박혀버린 악의는 쉽게 죽지 않는다. 리오는 또 살짝 째려보듯 하다가 안내해줄 수 있다는 말에 눈가에 살짝 생기를 띄우며 바라보았다.
" 그래? 반짝반짝이 어딨는지 알아? "
바다, 반짝반짝을 찾고싶다. 생기를 잔뜩 품고 생명이 일어나는 곳을 찾고싶다. 그 자리에 한 무리인 것 처럼 어울리지는 못하더라도, 거기에 겉도는 이방인일 뿐이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보고 싶다. 다들 노는 것을 구경만해도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리오는 눈을 빛내며 마스크를 잡고 턱 아래로 내렸다. 마스크를 내리자 금세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한 리오는 뚝딱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거야 모르지. 3학년 복도를 다니면서 본 기억은 없어서 말이야. 물론 내가 모든 3학년을 아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타학년도 다 아는 것은 아니라서. 영화나 드라마나 애니를 보면 말이야. 학생회장이 전교생 이름과 얼굴을 다 외우고 다니는데 역시 그건 가상이었어! 나도 시도해봤는데 반의 반도 못 외웠다구!"
큭! 소리를 내면서 치아키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털썩 주저앉는 것처럼 모션을 취했으나 이내 장난이라는 듯 키득키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실제로 시도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야 뭔가 그러면 멋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도저히 이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포기했지만. 그때의 삽질을 떠올리면서 ㅡ정확히는 입학식이 있고 바로 다음날이었다.ㅡ 치아키는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싱긋 웃었다.
"놀릴 생각은 없어. 진짜 예쁜 표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네가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어버리면... 앞으로 느낄 수도 있는 즐거움을 더 즐길 수 없는 거잖아. 그게 무엇이 되었건 말이야. 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죽었으면 해. 안 놀릴테니까. 앞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나 추억을 저버리는 거 너무 아깝잖아."
정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죽어버린다라는 말에 그는 장난스럽게, 가볍게, 하지만 약간은 무게를 섞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가치관이었다. 자신은 즐겁게 살아가고 앞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가치관이었으니까.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이더라도 딱히 치아키는 더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내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을 살짝 더듬는 것도 그렇고 똑딱거리는 것도 그렇고 꽤나 귀여운 면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살며시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악수했다. 아마도 이런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럼 이치노세 양이라고 부를게. 참고로 나는 아이자와 치아키. 여름의 마츠리인 '토모시비 마츠리'를 담당하고 있는 키즈나히메님의 신사 집안의 바로 그 아이자와야. 여름 마츠리인 토모시비 마츠리에도 참가해주면 베리베리 땡큐."
가볍게 자신의 집에서 할 마츠리도 살며시 홍보를 하며 치아키는 따라오라고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바로 옆을 걷기보다는 안내를 하듯이 조금 더 앞을 걸어가면서 그는 한번씩 뒤를 바라보며 리오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치노세 양은 물놀이 좋아해? 여기. 일단은 물로 유명한 곳이니 말이야. 워터파크도 근처에 있고 바다도 있고.. 혹은 온천으로도 유명하고. 스파로도 유명하고."
같이 노는 건 즐겁지요, 언제라도 즐거운 일이지요! 이 친구도 같이 놀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또 혼자만의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더니만, 이노리는 수락하는 모습에 활짝 미소를 짓습니다.
"정말-? 와아, 신나!"
드디어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거절했더라면 아쉽지만 혼자서라도 해봤겠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구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기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거절을 뒤로 정하는 사람은 대체품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나 뭐라나?
"으응, 괜찮아요? 뭐라고 하는 게 나쁜 거예요?"
종종걸음으로 에어하키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더니만, 맞은편에 서선 동전 투입구에 100엔 동전을 딸그랑 넣습니다. 판에 공기가 주입되고, 퍽이 떠오릅니다. 원래 그런 법이라지요? 어린 아이들은 잘 하는 것보다 그 자체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어른들의 말. 지금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해가며 배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