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생은 얼마나 길었을까. 앞으로는 또 얼마나 아득할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다림이란 시간을 잡아 늘리는 힘이 있어서, 남들과 같은 하루를 훨씬 더 길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말할 수 밖에 없다. 무리하지 말라고. 좀 더 가벼운 마음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
"내 이야기는 재미가 없을 거야. 꽤 어린 요괴거든."
이야기라. 이야기라. 아는 것이 없진 않다. 우산이 타는 바람에는 늘 말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풍문이란 것을 상상 이상이니 듣고자 하면 들을 수 있다.
"그래도 뭔가, 듣고싶다면, 그렇네.. 새는 좋아하니?"
그렇게 운을 뗀- 날씨 부리는 우산은 이야기했다.
산기슭에 떨어진 새를 주운 소녀의 이야기. 자신이 직접 본 이야기라 하는 그것은 소녀가 날지 못하는 새를 돌보는 내용이었다. 높은 자리가 약속되어 있어 오히려 자유를 억압받는 소녀는 작은 새의 다친 날개를 치료하고, 건강을 돌보며 그 새가 언젠가 하늘을 날아가길 기다렸다.
"그 새 역시 자신이 하늘을 비행할 날을 손꼽에 기다렸겠지."
기다림은 때로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공통된 기다림은 간혹, 두근거림과 즐거움을 낳는다. 다만, 그렇다고 별로 대단한 의미를 더한 건 아니다. 그냥, 나는 네 기다림을 기대하겠다고. 나 역시 옅게 기다리겠다고, 그냥, 그렇다고.
"후후훗. 좋은 길을 나두고 다른 길을 고르고 돌아가는 것은 그때의 이유가 있을 법이나 그런 거겠죠?"
아리스는 여나의 대답에 또 한번 작게 웃고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최여나 씨, 당신의 이름을 이 아리스는 그대를, 그러한 단어로서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에 와서 파고들어 무언가가 모르는 사이, 변화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아리스는 들어 기억하였던 여나의 이름을 분명히 하고자 성까지 포함에서 부드럽게 차분한 태도로서 스스로의 가슴에 한 손을 얻고는 부르는 동시에 은근히 그녀 자신의 이름 또한 넣어서 말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떠한가가 중요할 것으로 짜여져 있을 것입니다. 아리스 역시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누구든 진정으로 '친우'로서 맺어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늘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환영받고 서로 이어주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을 때를 바라고는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정식으로 다시 소개를 한번 거쳐야 하겠지만, 이러한 것은 별개로 일종의 약식적인 사전 소개라고 할 수도 있겠죠
>>259 청의 질문에 텐키는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허나 다른 말 없이, 어찌 받아들여도 좋다는 듯 연히 웃었다. 그것은,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볕과 비슷하기도 하고.
"응."
텐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이였다 뿐일까. 무척 가깝다고 해도 좋았다. 우산과 인간이라고 해도, 인연이 깊었던 것은 사실이니. 기실, 여기서 더 말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이제는 의미 없는 과거의 흔적마저도, 그 소녀를 기억하면 함께 떠오른다. 부드러이 미소를 지은 그는 눈에 이채가 감도는 청과 눈을 마주했다.
"그 아이는, 새에게 미련을 태워 보냈다고 하더구나."
분명 대답은 이것이면 괜찮겠지. 이후의 그 삶은, 차마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당찼으니. 그 목소리가 선명하다. 그러니 자신은 괜찮다 하던 여린 목소리가.
팔짱을 끼고, 자세히 살펴보듯이 고개를 마구 기울여버리고. 너무 기울여버린 나머지 공중에서 거꾸로 뒤집혀져버린 제우가 서준을 보며 화알짝 웃었습니다.
"좋아! '일단 인간'인 네가 가서 구해오면 나는 구경하는 걸로 하지 뭐어."
>>256 새노라 흔히 재물의 상징으로 알려진 금부터 시작하여, 비취와 같은 동양적인 보석, 곡옥, 라피스 라줄리, 더 나아가 미스릴까지 차곡차곡 든든하게도 들어있군요! 좀 더 뒤져보면 진주로 된 장신구도 있으며, 좀 더 뒤져보면 큼직한 보석함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시피 한 손바닥 반절만한 낭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
>>260 아리스 "......"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서로를 그러한 개체로서 인정하겠다는 것. 자신의 세계에 그러한 존재를 포함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 이름이 가진 효력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결코 폄하되는 일이라고는 없었지요. 그것은 환상이 아직껏 이어져오는 이 땅에도 여전하겠습니다. 하여 당신이 난생 처음 마주한 정체불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입에 올렸으니.
"......"
여나는 몹시나 큰 불만을 가진 듯이 불꽃을 험악하게도, 아주 험악하게도 일렁거리던 것이었습니다.
"그 굽히지 않는 모습이 무엇보다도 기분 나빠."
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아니, 뜨거운 기운일까요?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닌지. 기이한 느낌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대화하고 싶지 않아라. 썩 꺼져버려, 기분 나쁜 인간. 굽지도 않고 굽혀지지도 않는 척. 그리도 굽혀지지 않는 것 같으면 나중에라도 날 찾겠다고 미친 듯이 뛰놀기라도 하지 그래..? 그 당당한 발로 늪지를 걷듯이 하고 나를 찾는다고 비명이라도 질러보라고. 그러면 더욱 기분 나빠질 것 같으니까. 으응, 진짜 싫네......"
더 이상 할 말도 안 생겨. 진짜 싫으니까 당장 꺼져. 그렇게 말하며 여나가 낮은 앓는 소리를 냅니다.
아리스는 손쉽게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나 나름의 받아주는 모습인 겁니다. 그러나 가련한 정체불명에게는 아직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서, 아리스가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다면 시간이 지난 나중이 되어 여나를 '직접' 찾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정말로 여나의 으름장대로 물러나야할 시간인 것이죠.
"오호호~ 황금은 황금대로~ 보석은 보석대로~. 어머나, 바다 건너온 진은도 있사와요~!"
무거운 것은 절그럭절그럭, 가벼운 것은 잘그랑잘그랑. 야명주가 곳곳에 박혔어도 눈이 적응하기 전까진 조금 어두침침한 비고입니다. 새노라는 보석함 안의 물건들을 종류별로 나누어 제각기 위치에 나누어 둡니다. 새노라가 열심히 일한 흔적들이 사방에서 반짝거립니다. 돈이 최고야. 돈으로 유명해지고 돈으로 몸도 고치고.. 아무튼 돈이면 안되는 게 무에 있겠습니까.
"진주는 갈아서 얼굴분이나 만들까봐요... 엥?"
텅 빈 보석함도 나중에 쓸 일이 있으니 한 곳에 모아둡니다. 옷을 담은 자개함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보석함을 그곳에 두고 뚜껑을 닫으려는데, 반짝이는 것들 사이에 홀로 수수하여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웬 낭탁이람? 새노라님께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한 사죄문?
>>261 생원 물의 향을 쫓아가자, 좀 걸어간 끝에 생원은 지나치게 거대한 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강이 맞기나 한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이 강은 어딘지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가령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쉬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도 그렇고, 형용할 수는 없지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상당히 꺼림칙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도 그렇고......
"어라, 이 시간에 살아있는 손님은 조금 예상 밖인뎅."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돌아보면 큼직한 대낫을 어깨에 걸친 검은 복장의 소녀였습니다. 그녀가 달갑지 않은 얼굴로 -그래요, 몹시 귀찮은 얼굴로- 생원을 슬금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였죠.
"벌써 저세상 가려고 하는 건 의외넹. 뭐, 좋아.. 저승행 타이타닉은 무료야. 참고로 무는 옥돌할 때 무珷야. 적어도 옥돌만큼의 가치는 내야한다는 거지이."
??? 갑작스러운 말에 진지하긴 한 건가 싶은 말을 하지만 소녀는 진지해보였습니다. 아니면 진지한 체하는 것일지도...
텐키는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청은 혹시, 자신이 그 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게 비유한 것이라고. 확신은 없었으나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텐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녀에게 묶여있던 줄 중 하나였지.
아련한 과거에서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소녀의 목소리였고, 또다른 여인의 목소리였으며, 때로는 소년의, 때로는 노인, 청년, 아이의 것이었다. 그들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부탁할게."
느리게 눈을 뜬 텐키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러며 손을 느리게 뻗어 청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나도 그 아이와 함께 서서 새가 날아가는 걸 봤었지. 새삼 생각하니까, 아마 제비였던 것 같네."
텐키는 혹시나 하여 장난스럽게 말했다. 자신이 그 새가 아니라는 걸 담아서 한 말이었지만, 동시에 옛 이야기에 덧붙이는 것과도 같아서 텐키의 착각이었다면 평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다.
시나키를 앞장세운 채 직진하라느니 왼편으로 꺾으라느니 오른편으로 꺾으라느니 충직하게 뒷좌석 훈수를 두던 동물귀는, 문득 걸음을 멈춰세우더니 2인1조로 있는 누군가들에게 말을 걸더랍니다. 놀랍게도... 그 2인1조도 흰머리에 개과 동물귀를 달고 있었던 것은 일단 차치해두고요. 동물귀가 나지막이 무어라 말하니까 2인1조가 서로 마주보다가 거의 일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분명 저쪽에 계실 것이다'는 요지의 말을 전했지요. 시나키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었습니다.
그야 동물귀가 시나키를 조금 멀찍이 숨기듯이 세워둔 채 2인1조에게 말을 걸었거든요. 그래서인지 2인1조도 시나키를 보지 못한 눈치입니다만, 정확히 어떤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아리스는 방금 전의 그 말과 함께, 여나의 침묵을 바라보며 살며시 눈웃음을 한번 지어 보이고는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는, 그 침묵이라는 이름의 겨울에서도 타오르며 다름을 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봄이 오면, 겨울도 결국은 지나가게 됩니다
"그렇지요? 행함에 있어, 무언가를 원하거든 그리고 그렇게 하고자 의지를 다졌거든, 더 이상은 헤매지 말라. 라고 하던가요"
아리스는 여나의 말에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 번 눈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궆히지 안되, 궆힘이란 필요할 것이니 세상은 정체하지 않고 곧 변하는 것이니 멈춰있는 것이라 보는 것은 덧없으라. 인간이라 하는 것이 그래 왔듯이 그 무르고 축축한 곳이라 하여도 길로서 매우고, 거센 소리조차 담으니 길에 당도한다. 이것이 혼령에게 닿을 소녀의 발자취가 된다"
아리스는 여나의 그러한 말들에 마치 시(詩)를 읊조리는 듯 한 태도로서 두 팔을, 올려 그 양손을 가슴에 두고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이제 정말로ㅡ, 시간이, 순간이, 때가 되었네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겠지요. 그것은 곧 시작으로 이어질 테니 그때까지는 부디 안녕히. "
아리스는 그것으로부터 이어지는 여나의 지금, 하나의 마지막이 될 말에서 따라서 아리스는 이제는 극의 장면을 마무리해야만 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리스가 되겠지요. 아리스는 여나의 그 앞에서 스스로의 의상에 치마자락의 양 쪽 끝을 잡아서는 살며시 낮게 올리고는 그 상태로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숙이며 정중한 태도로서 작별 인사를 보냈습니다. 잠시수 다시금 자세를 가듬고 되돌려 그 발을 띄도록 하고자 합니다
드문드문 들은 적이 있단 말이지. 사진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 부러 인적 없는 산중턱이나 폐허까지 와가지고 코스프레 하는 레이어들이 있다는 말을 말이야! 숨겨둔 곳에서 빼꼼히 또 다른 동물귀 녀석들을 살피며 생각했다. 한 둘도 아닌데다가 질서라느니 운운하는 거 보면, 아무래도 룰이 엄격한 서클인가 보구먼.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272 텐키 청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텐키의 이야기를. 텐키의 훌륭한 두뇌로 생각하건대, 청이 말하는 투는 분명 텐키와 새를 일차원적으로 동일시 한 것은 아닐 텝니다. 조금 더 아리송한 빗댐이라면 모를까요. 뭐 어느 쪽이든, 청은 텐키의 쓰다듬에 기뻐하는 기색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명하사의 높은 곳으로 안내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이쪽으로, 하며 텐키를 들뜬 듯이 안내했지요. 제비라. 눈을 깜박이던 청이 문득 던지듯이 말했더랍니다.
"제비라면 언젠가 돌아오겠네요. 박씨라도 물어서.."
눈을 밟으며 청의 발걸음이 절의 보다 깊숙한 곳으로 옮겨집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아 이곳도 예뻐요, 언젠가 찬찬히 구경해보세요" 라고 말하면서 청이 종종 옮겨갔습니다. 청의 발걸음은 점점, 높은 누각으로 향합니다.
>>282 흐음. 텐키는 의아했으나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만 안 그래도 오랜 기다림 속에 있는 자에게 더 무게를 안겨주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쓰다듬에 기뻐하는 청을 향해 부드럽게 웃고서, 텐키는 가만히 그를 따라갔다. 그들은 점차 높은 곳으로 향했다.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이 명하사에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
"아, 그 이야기는 나도 알아."
박씨를 물고 온다는 이야기에 텐키가 옅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좋은 게 자랐으면 좋겠는데."
제비가 물고온 박씨에서 금이 날지, 지옥이 날지는 모른다. 텐키는 자신이 선량하게 살아왔다고 자신하지 않았다. 그는 요괴이며,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서 뭔가를 가져가는 존재다. 역시 제비가 박씨를 물고온다고 해도 자신은 박을 가르지 말아야겠다고, 텐키는 장난스레 생각했다.
희고 검은 돌멩이였습니다. 보석은 아니고, 원석도 아닌 듯 싶고. 영기를 가진 돌일까 냄새를 맡고 조명에 비추어 보아도.... 뭐 없어보이는데요? 거기다가..
"각별해'보여서' 동봉한다는 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와요?"
자기에게 각별한 물건을 동봉하는 건 납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 대째 내려오는 가보 따위의 것이라면 값을 치르기에 마땅한 물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별해 보인다는 말은 또 뭡니까? 새노라는 돌멩이를 도로 보석함에 던져버렸습니다. 쿵 닫아버리고 양 손으로 뚜껑을 꾹 놀렀습니다. 돌멩이들을 빼고도 값은 충분히 치렀으니 불만 사항을 투서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하?"
또각또각, 계단을 올라가던 새노라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섭니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돌멩이가 든 보석함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소녀는 무엇을 근거로 각별해 보인다는 어휘를 사용한 것이지요? 돌멩이의 숨은 뜻을 알고 있나요? 새노라에게 각별해 보였나요? 돌멩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새노라의 사정을 알고 있나요? 머릿속에서 번개가 칩니다.
당신이. 어떻게. 새노라님도 모르는 새노라님의 사정을 알지요?
정신이 들면 새노라는 어느새 또 다시 눈발을 헤치고 있었습니다. 돌멩이 한 쌍을 품 속에 넣고 비단 위에 올라서, 소녀가 있던 도취의 화원으로 날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