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 모두에게 선물:가볍게 먹을 수 있는 당고 5개가 들어있는 선물용 박스.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가미즈나에서 제법 인기가 좋은 당고집의 당고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 보라색. 이렇게 5개가 들어있다. 맛은 꽤 쫄깃하면서도 달달하다.
모두들 마니또는 잘 즐기고 있어? 슬쩍 둘러보니 굉장히 이것저것 많이 교환하는 것 같던데. 코드네임 중에 내 이름은 없겠지만 당연히 거기에 없는 다른 코드네임으로 보내는거야. 물론 기존의 코드네임중에 있을지는 별개지만 아무렴 어때?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선물이 뭐냐는거지.
원시 고대 서브웨이 -> 타카나시 하네 선물:동글납작한 찹쌀떡 같은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
원래는 라디오 같은걸 선물할까 했는데, 찾다보니까 비상용품 같은 것 밖에 안보이게 되었어. 어릴 때만 해도 그런게 시골 집에 하나씩은 있었는데. 요즘은 어디든 스마트폰이 되니까. 어떤 노래가 마음에 들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역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최고인거 같더라. 들려주고픈 노래를 같이 들어도, 혼자 분위기 있게 들어도 좋을거야. 특별한 누군가가 다른 특별한 누군가에게 전하기에 좋은 그런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네.
머그잔에 든 밀크티를 천천히 티스푼으로 저으며, 편지와 포장지를 돋보기로 살핀다. 따스한 밀크티는 그야말로 신사의 상징이자, 영국스럽디 영국스러운 것. 나는 마치 셜록 홈즈가 된 기분으로, 마니또를 보낸 이의 정체를 알기 위해 지문이나 흔적을 찾으러 돋보기로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뭔가 나올 리가 없지."
티 타임은 아니지만, 이 한잔의 따스한 온기는 착 가라앉은 밤에 제격이었다. 장난스러운듯 하면서도, 정성 깊게 선물과 편지를 준비해 준 나의 마니또. 그 사람의 온기가 몸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미스터리와 즐거움. 그리고 온정이 함께하는 한밤중의 별 것 아닌 궁상이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게 아닐까. 그런 답지않은 감상에 잠기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하교하며 사온 편지지에 첫 문단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신 빼놓고 있었더니 9시 넘었고 역시나 마니또 올라왔잖아—!!! 으아악 🥲 서브웨이씨의 세번째 선물이............ 노카운트 된거야..........? 🥹 으윽 떼쓰고 싶지만 이성적으로 참는 어른이 되도록 합니다......... 서브웨이씨가 더 아깝겠지........ 그리고 전혀 정체를 모르겠으므로 다이스 때려맞추기로 간다—! 😉
단 한줄만을 적어둔 다음부터 전혀 진전이 없어 끙끙대기만 하던 중에, 또 다른 편지와 선물이 도착했다. 학생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교과서도 있지만, 필기도구가 아마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묘한 조바심을 느꼈다. 아마 이 존재는 내가 편지에 진전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이런 선물을 한 게 아닐까? 그렇담 그 존재는 무엇일까? 어떻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아는걸까? 아니 정말 알고서 한걸까? 어쩌면...
으아!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면 성적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이런 미스테리의 해결은 언제나 날 미치게 만든다. 다채로운 필기도구를 전부 써서 편지를 써 볼까? 그런데 그게 과연 내 맘대로 될까? 고민하고 고뇌하면서도, 나는 제대로 된 몇 마디가 생각날때까지 편지지를 노려보았다.
...당연하지만, 편지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니또의 편지를 바라보며 괜시리 혼자서 말했다.
"이거, 혹시 들킬까봐 도망가는거 아냐?"
그리 말하곤 혼자 킬킬 웃으며 조금 더 고민하다가, 본격적으로 샤프심을 편지지 위에 부딪혔다. 남자답게 한번 부딪혀 보자. 하고싶은 말을 아무튼 다 적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리오는 많이 불안한 상태였다. 조별과제를 하는 것도 좋고, 이동 수업을 하는 것도 좋았다. 아예 여러 명이서 진행한다면 거기에 묻혀서 가는 것도 가능한 것이지만 둘이서 진행하게 되는 것이라면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려운 리오에게는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낙제점을 받을 수는 없었기에 열심히 참여하려고는 했다. 일부러 같은 반의 친한 아이들이 아닌 처음 보는 아이들과 같은 조가 되려고도 했다. 자신의 이런저런 성격을 고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다.
- 누구야? 우리 반에 저런 애 있었나? - - 에, 눈빛 무서워 - - 싸움나려나? -
그래서 지금의 상태. 일단 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에 옆 반에 찾아왔다. 들어오자마자 주목을 받았고 수근대는 소리들이 들리자 눈 앞이 조금 흐려져 기절할 것 같았다. 관심을 받는 것이 좋고 모두가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이 좋았지만 아쉽게도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툰 탓에 막상 관심이 쏠리면 어지러웠다. 자신을 좋아해서 다가오는 관심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관심은 어지러워서 견딜 수 없다.
" ...저기. "
리오는 자신과 조가 된 학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곤 책상 끝을 손으로 살짝 짚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날 리가 없었다. 여전히 수근대는 소리가 조금 들렸다. 그냥 지금이라도 관두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쉬는 시간에 어떻게든 마주치겠지 라던가 쉬는 시간마다 복도로 나와있으면 한 번은 마주치겠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할 일은 해야지. 리오는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어깨를 톡톡 흔들었다.
" 저기...! "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검은 마스크를 쓴 은회색 머리의 여자아이. 약간 무서운 인상에 차가운 눈빛으로 본의아니게 째려보고 있는 리오. 긴장했기 때문이다.
"...." 수업이 끝나면 푹 엎어지거나. 엎어지기는 하지만 안즈의 말을 듣는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번 쉬는 시간은 다른 학생에게 안즈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사야카는 푹 엎어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낯선데... 안 들어본 건 아닌 목소리가 명백히 자신을 부르는 것에 움찔움찔거리네요.
"응" "무슨 일?" 말이 짧다. 외양이 사납다거나 하는 건 사야카라는 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어나서는 조금 더 움찔움찔거리더니 리오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군요. 대충 저번의 이동수업 때 같은 조 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왜 찾아왔는지는 물어야 하잖아요.
"...." 물론 조별과제일 확률이 반 이상이기 때문에 나름 경청할 준비를 한 듯 조별과제의 교과서를 책상 밑 서랍에서 꺼내려 합니다.
너는 빵이다. 그래! 그렇구나! 그토록 찾아 헤메던 해답은 이거였어! 바로 이거야! 나의 형언할 수 없는 마니또는 갓 구워 말랑말랑한 빵이었어! 빵이란 말이야! 빵! 빵...
"...일리가 없잖아!"
주물주물. 달달한 향과 스퀴시의 말랑한 감촉에 저절로 진정이 되는 듯 하다. 가끔씩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할 때, 절로 손이 가서 주물거리고 있다. 마치 버릇이 될 것 같은 기분이야. 쓰다가 말고 구겨버린 편지지가 어느새 무덤을 이루고 있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이 이 글자 무덤의 묘비처럼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생전 처음으로 이런, 친절함과 장난스러움이 함께하는 선물을 받아보는건데 어떻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거 같았다. 머리 속이 그저 밀가루로 가득 찬 것 처럼, 말의 부스러기만을 뱉으려다 말고 있다. 무언가 해답이 될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