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지도 않는 시도를 한 건 아닐까? 고양이 모양 바디필로우를 껴안은 채, 침대에 누워선 뒤척댄다. 요즘은 잠들기 전에 편지 내용을 계속해서 고민한다. 과연, 뭐가 좋을까.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고민이나 할 시간에, 간단하게나마 한 편씩 편지를 보냈으면 그게 더 나은게 아닐까? 하지만 뭔가 성의없게는 싫었다. 내가 아무리 무언가를 적어봐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런 성의를 보여 준 사람에게 이 따위 인사를 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점점 내 방을 채워나가는 타인의 온정에 과연 언제쯤 답례를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일지,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너는 뭐 좀 아는거 있냐?"
바디필로우를 들어올려 눈을 바라보며 물어봤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하다. 어쩌면 좋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걸까. 누구도 대답해주지 못한다. 답은 내가 내리는 수 밖에.
- 봐봐, 싸움난다 이제. - - 에, 말려야하지 않아? - - 나 누군지 알아. 옆 반 애야. 이치노세 리오. -
싸우려는 거 아닌데. 리오는 그냥 지금이라도 달아날까 싶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이야기가 나오는 곳을 바라본 것 만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일단 돌아가고 다음을 기약하자. 쉬는 시간에 우연을 가장해서 마주치자. 정 안된다면 같은 반일테니 치리쨩에게 부탁하자. 안된다면 하네에게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하자. 그것도 안될 것 같다면 미야에게 가서 매달리자. 방법은 있다. 그런 생각이었다. 자신의 조별 과제 파트너가 일어나기 전까지.
" 아. "
제대로 얼굴을 보았을 땐 왠지 '자기 과의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딘가 퇴폐적인 그 느낌. 리오는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저도 모르게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 키, 키리나즈메, 양이지. 2-A반의. "
여전히 두 눈은 살짝 차가웠고 조금은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동질감을 느껴서, 그리고 이 반 어딘가에 있는 치리쨩을 보아서인지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 표정도 풀리기 시작했다. 조별과제로 이야기하러 왔으니 무슨 일이 있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침을 꿀꺽 삼킨 리오는 대뜸 손을 내밀었다.
주위에서 소곤소곤 들리는 것을예민하게 받아들여서 잠은 다 잤고.. 일어나서 무관심해보이는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다가 용건을 말하면 경청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리오가 하는 말이 음? 하는 것이었는지. 고개를 갸웃합니다.
"응." "키리나즈메는 너무 길어.." 응. 으로 선선히 긍정합니다. 그리고 웅얼거린 목소리는 남이 들으라는 듯 말한 건 아니라는 걸 잘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당신이 정한 성입니다!
"...." 잠깐 빤히 쳐다보다가 (이치노세 양이(생략된 말이다))2-B? 라는 짧은 의문을 말하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는 않네요. 대충 비슷하잖아요.
"받은 건 알아." "정말 귀찮지만..." 조별과제라는 말에 안다는 의사표현을 하고는, 그래서? 라는 물음을 묻네요. 너무 함축적이라서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는 약속을 잡을 거냐. 아니면 여기에서 스피드하게 마칠 거냐. 아니면 초청을 하는 것인가. 같은 것이 섞이면 안된다고요.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하기 힘들다고, 누가 말했더라? 분명 누가 말했는지 알아 뒀는데, 그새 까먹은 모양이다. 옛날엔 스마트폰은 물론, 배터리 충전 같은걸 무선으로 할 생각은 못 했겠지. 그야말로 마법과 같은 일을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셈이다.
마법이라. 관심이 있는 단어다. 실제로 마법이 존재하지는 않겠지. 있으면 배워보고는 싶지만, 세상은 마법 같은게 없다고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마법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고 신비하고, 알 수 없는 일. 그런 걸 우린 마법같은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일어난다면, 기적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기적이라는 걸 믿어보고 싶어하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머리를 비워버린 차에 떠오른 글은 횡설수설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을 담을 순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형언할 수 없는 마니또에게.
정성이 들어간 선물들 진심으로 고마워.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하나하나의 선물들이 큰 의미가 되는 것 같아. 어느샌가 네가 준 선물이 내 방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있으니 문득 생각이 나더라고. 사람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방법은 막대한 자본이나 알 수 없는 마법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진심을 담은 온정이야말로 진짜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기적을 일으켜준 사람에게, 트릭도 무엇도 아닌 정공법으로 말해주고 싶어. 정말 고맙다. 진심을 담아서.'
"부디, 이 진심이 전해지는 마법이 일어나기를."
수수한 봉투에 편지지를 넣었다. 그냥 모양 좀 이상한 봉투처럼 보이지만, 종이를 당기면 봉투가 열리며 콘페티가 튀어나오는 트릭이 있다. 기분 좋은 놀라움이 되길 바랬다.
이노리는 바빴습니다. 가장 아끼는 삿갓에 소중한 선물을 덧대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조그마한 손으로 조물조물, 삿갓을 만지다 보면 옥빛 구슬 장식도, 나비 장식이 달린 녹색 풍령도, 정성껏 꼬아낸 새끼줄도, 종이 장식도 하늘하늘 매달려 춤을 춥니다. 이제 신의 모습으로 유희를 떠날 때면 가장 소중한 것만 매달린 이 삿갓이 함께하겠지요. 거기다 반짝반짝에 딸랑딸랑까지! 역작입니다. 이노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쳤습니다.
"휴우!" "또 삿갓을 고치고 계신 건가요?" "응! 이거 봐요?"
이노리는 손가락으로 척! 한 부분을 가리킵니다. 반짝반짝한 녹색 풍령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신관 이로하는 동생을 보듯 살갑게 웃었습니다. 신관이 가질 태도로 알맞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노리가 인세에 내려와 살면서 이로하의 동생처럼 지낸 탓도 크겠지요.
"풍령이네요." "응! 체리 씨가 준 선물도 이제 이노리 추억이에요? 소중한 거! 평생 함께야!"
이로하는 운조악요대조주, 흔히 말해 토리누시는 인세를 돌아다닐 적 화려하다 못해 치렁치렁하게 돌아다녔기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는 설화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아마 인간의 재물욕을 상징화하고, 흥망성쇠를 쥐여주는 대가로 가장 소중한 것을 받아 갔다는 전설이었나? 저 삿갓을 보니 정녕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저번엔 센스랑 칸자시도 받지 않았던가요?"
"응! 센스는 이제 매미가 맴맴 울면 팔랑팔랑- 하고 다닐 거예요? 칸자시는 내일 학교 갈 때 할래! 머리에 꽂아줘!" "혼자 하실 때도 되셨으면서." "으응, 해줘- 이노리 해줘! 간식 줄게요? 코로로 젤리 줄게-!" "그것도 마니또로 받은 거잖아요." "맛난 건 정당한 노동력의 대가로 나눠 받아도 되는 거랬어요?"
이로하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렇겠지요……."
이노리의 활기에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이노리는 활짝 웃었습니다.
"신난다!"
역시 체리 씨는 이노리의 요정님이야! 이노리는 번쩍! 하고 삿갓을 들어 올립니다. 종이 장식이 우수수 쏟아지고, 새끼줄이 펄렁거리고, 풍령에서 후리링, 후리링,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머리에 쓸 적엔 조막만 한 얼굴이 폭 가려졌습니다.
"밤 산책을 가시게요?" "응!" "또 늦잠을 자실 텐데.." "네가 깨워줄 거라 믿어요? 다녀올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어차피 인간들은 날 못 봐요?"
달이 안 떴잖아! 이노리는 해사하게 웃었습니다.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니 당장 돌아다녀야겠지요. 주머니에서 꺼낸 카라무쵸 핫 칠리를 입에 하나하나 물며며 신사 계단을 향해 걸어갑니다. 신은 신이라는 걸까요, 이노리는 계단 첫걸음과 함께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일직선으로 공중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후리링, 후리링.
즐거운 일조야행一鳥夜行 시간입니다. 아니, 일귀야행一鬼夜行일까요. 어느 쪽이든 좋아요! 이노리는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