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 머리를 부딪히는 후배를 지나쳐 미카는 아무 문제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고선 먼저 구석진 자리로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옷깃에서 미약한 담배냄새가 풍긴다 식탁 다리에 발을 걸치고 또 딴짓 하려는지 스마트폰을 꺼낸다 뭐 먹을 거냐고 묻자 미카는 잠시 메뉴판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메뉴를 고른다
"로스카츠로."
그런데 주문이 지나치게 간소하다 기껏 와서는 돈가스 한 그릇만 먹을 셈이다 말을 마치고 금세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는 미카
5.팝콘 -> 리오 선물 :넙적하고 말랑한 회색 고양이 얼굴 쿠션 (표정이 조금 맹해보인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잘 때라던가, 등에 괴고 있거나 끌어안고 있기 좋아 보여서 샀어요. 학교에서 쓰기에 좋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집에서 써도 좋겠지만요. 편하게 쓰시길 :)
6.사이트에서 광고를 허용해 주세요😭 -> 치요 선물:https://postimg.cc/HrC7WvrR 슈크림이 가득찬 크림퍼프 쿠키입니다. 시내의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서 사온 듯, 고급스런 상자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크림은 메이플시럽 맛이라고 합니다. 상자 표면에는 역시 하이쿠가 쓰인 화지가 붙어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선물이 전부 음식이네요. 좀 더 좋은 선물을 고르는 센스가 나한테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센스는 없어도 최대한 맛있는 걸로 고른 것들이니 부디, 맛있게 드세요.
8.윌리 -> 무쿠루마 미야 선물:ROYCE' 생초콜릿 한 상자와 초콜릿 포테이토칩 ROYCE' 생초콜릿 한 상자와 초콜릿 포테이토칩 메세지: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보내 봐. 삿포로 특산품인데 주기적으로 인터넷에서 주문하고 있어. 입맛에 맞을까? 가장 좋아하는 건 감자칩인데, 처음엔 조합이 좀 이상하니까 거부감 들어도 웬만하면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 흠, 근데 이거 냉동 보관이라 좀 불안한데...... 일단 아이스팩도 동봉하지만 빨리 먹는 게 좋겠다. 부드러워서 잘 녹거든.
9.아카사 -> 미후유 선물:펠트 공예 키트 하나. 다 만들어지면 펭귄이 된다
정성껏 만들어서 주려 했는데 일주일만에 완성하려 서둘렀는데 결국 이런 꼴이라서.. (같은 키트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상한 덩어리 두 개의 사진)
10.라무네 -> 오구치 선물:키나코봉, 후가시, 센베이를 비롯한 막과자를 한가득 담은 상자
강녕하신지요, 라무네입니다.
변덕스러운 겨울의 잔바람 잦아들고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들뜬 마음에 구멍을 냅니다. 분명 어제 편지에서는 의연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했지만, 역시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곧 아름다운 화우(花雨)는 운하를 가득히 채울 것이고,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파릇한 여름이 드리워 매미가 울기 시작하겠지요. 그때면 이 허전함을 잊을 수 있을까요. 역시 봄은 따뜻하지만, 지나버린 한 해의 외로움이 채 가시지 않아 어딘가 춥기도 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청춘의 아스라한 추억이 되면, 매미가 울 때 저는 울지 않을 수 있겠지요.
추억을 동봉합니다. 막과자는 제 세대의 추억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 이름값을 하니까요. 귀하께서도 저를 그런 기억 한구석의 자연스러운 추억으로 남겨주실까, 작은 욕심을 냅니다.
따사로운 추억 속에서, 라무네.
11.오마모리 -> 린 선물:투핀 드롭 피어싱 https://ibb.co/xsTPsmF
벌써 토요일이라니 마니또 시작할 적 설레던 마음은 그대로인데 시간도 참 빠르지요. 감개무량해집니다. 남궁씨는 저의 마니또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데 가만보니 남궁씨는 귀도 반짝반짝 화려하지요. 그 사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시내를 둘러보니 귀걸이가 천지입니다. 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밟히더군요. 마침 생각나 오래 지켜보고 그 중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것을 골라봤답니다. 안목이 좋지 않다 항상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결과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별 수 있겠나요. 남궁씨가 만족하시길 빌 수 밖에요.
+) 혹시 알레르기가 있으실까 은처리가 된 것을 골랐습니다. 걱정마시고 착용하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외국에 나가 본 적 있어? 해외여행의 숨은 묘미는 기내에서 보는 하늘의 풍경이라고 하지. 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더라도 없더라도, 그 낭만을 재현할 수 있는 물건이야.
13.샌드백 -> 하이디네 선물:모래시계 세트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제 슬슬 마니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도 오겠네요. 다들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 맞추려는데에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뭐, 늦건 이르건 곧 밝혀지겠지만요? 이번 선물은 제 코드네임에 딱인 모래시계 세트랍니다. 요즘 와선 그저 장식에 불과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맞아요. 일부러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죠. 그래도 뒤집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서 충분히 실사용도 가능하니 걱정 마시길,
Ps.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지만, 혹시 궁금하신가요? 어째서 제 코드네임이 샌드백일지, 만약 이런 아기자기한 선물을 보냈으면서 실상은 싸움하기 좋아하는 남고생은 아닐지 같은 걱정이 딱히 없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아마 조만간 직접 뵈어서 그 이유를 알려드릴수 있겠네요. 그럼 부디 제가 누군지 맞춰주시길 바라며, ('언제나 스마일 :)'이라는 짧은 글귀와 함께 여러 상황에 쓸수 있는 크고 작은 모래시계들이 동봉되어있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유즈루로서는 두가지 측면으로 용납하지 못하는 행동이 있었으니까. 식사자리에서 폰을 보다니, 기껏을 밥을 사주는데 소통의 의지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 잘 교육된 외향인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본인으로서는 자각하기 어려웠지만, 코오리야마의 가풍으로서도.
엄격한 교육은 유즈루로 하여금 늘 평판과 이미지를 신경쓰게 만들었고, 이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안이나 바깥이나 하지 못하도록 했다. 본인이 갑갑해하더라도 그 교육의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즈루의 3점슛 폼처럼 말이다.
"뭐하심까? 식사자리에서 이런 거 보고있고 말예여~ 아아, 싫다. 밥 얻어먹으면서 염치없기까지 한 사람~"
큼직한 손이 미카의 폰 화면 앞을 두어번 흔들거리다 돌아간다. 유즈루의 표정은 늘 실실 웃고 있기야 했지만, 이번은 애교있게 말해 뾰로통하고, 적당히 말해 정색이었다. 본인은 전자를 선호하겠지만.
유즈루는 잠시 침묵하다가, 포기했다는 듯이 다시 그 손을 내저었다. 미카로서 어떻게 느낄지는, 글쎄, 그의 비행에 손을 내젓고 질색하던 어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선물은 몰라도 편지는 다소 간추려지는게 대부분인데 아무래도 이 마니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나보다.
"이쯤 되면 잠깐의 휴식기조차도 정성으로 느껴지네요..."
정말 이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 꾸준하게 보낼 생각인 건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이 행사에 진심인건진 쉽게 알수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지갑상황이라던가 이런걸 구하려고 겪었을 고충이 떠올랐기에 걱정되는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지만 나중에 만나러 간다면 제대로된 감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누군질 모르겠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알수 있도록 당분간은 향수를 은은하게 뿌려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나 제 섬기는 이에게 빌면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도 그게 가능한 신이었으면 굳이 번창의 신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신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격상 안될테니...
언제나 그랬듯 편지칼을 쥔 손은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날이 서진 않아도 여전히 찔릴 수는 있었으니까,
"[그녀를 꽃으로 말하자면 장미같은 여자 넘치게 아름답고 그래서 늘 사람들로 가득 둘러싸여 있지만 진짜 사랑을 찾느라 아직은, 조금 외로운 사람]
...인건가요...?"
조금은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든 이야기들이었지만 외롭다는 것과 진짜 사랑을 찾는 중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나바의 무녀라는 탄탄대로가 있다지만, 이곳에 연이 있다면 그 운명을 따르는 것도 썩 나쁘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반려를 찾는다 해서 신직을 박탈당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금도 실시간으로 겪는 신의 시련이 제 반려로 하여금 조금은 분담 될지도 모르니... 물론 그런 식의 분담은 자신 스스로가 용납 못하겠지만 말이다.
차마 자신의 짐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진 않았다. 스스로 전부 이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통칭 '오렌지 테러'님께,
이번 선물도 소중히 잘 받았답니다. 늘 생각했던 것이지만 선택들에 꽤나 신중을 기하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걱정이 들더군요. 미안한 마음, 같은 말은 선물을 준 이의 정성에 예의가 아니라기에 하지 않겠습니다.
선물을 자주 받지 못했다라던가, 그런걸로 고민하지 않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길. 오히려 빈번할 수록 감사함이 더 늘어나는 법이지요. 게다가 잠시 쉬어가는 휴식기에는 어떤 편지가 올지 궁금해하거나 먼젓번의 것들을 반복하여 보고 있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편지교환은 꽤나 좋아하니까요.
그건 그렇고, 기간 한정 향수라니 놀랍군요. 정성도 그렇지만 우연인지 무엇인지 은은한 꽃향기로 고르신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답니다. 사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라면 걱정 마시길, 아무리 이 몸이 신을 섬겨야 한대도 그정도는 괜찮답니다. 물론 멀리서도 알아챌 정도로 강하게 뿌릴 수는 없지만요. 가격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신다면 사양않고 적재적소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쓰라고 준 것을 아깝다고 쓰지 않는 것 또한 어찌보면 예의가 아니니까요.
이런 것을 받고 저도 가만있을 수 없지요. 고향에서 자주 재배된다는 도토리입니다. 어느 방법으로든 조리하는 재미가 있다더더군요. 부탁하셨던 말씀 기억해서 다음번 만날적에 향수의 향으로 서로를 알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낭만이겠지요.
화면 앞을 휘젓는 손짓과, 다소 날카로운 발언 미카는 눈동자를 굴려 상대의 눈치를 살핀다 실없는 웃음이 그 얼굴에 걸려있지만 그 분위기는 결코 장난스럽거나 가벼운 게 아니었다 눈치 빠른 미카는 그걸 읽을 수 있었다 부모의 한심스러운 시선과 교사들의 날선 훈계 후배가 나직이 내뱉은 말은 그것들과 비슷했다 사람 앞에 두고 딴청 피우는 거냐며 그럴 때는 괜히 반발심이 들어 일부러 더 한눈을 팔았었다 하지만...
"...미안."
미카는 고분고분하게, 불만도 없이 곧바로 사과한다 식탁 위에 눕혀진 스마트폰 화면이 맥없이 꺼진다 하지만 또래들 앞에서는 달랐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고 짜증나는 존재지만 아이들에게만은 미움받기 싫었다 입 꾹 다물고 잠자코 시선을 내리자 새까만 화면에 제 얼굴이 비친다 어울리지 않게 잔뜩 경직된 표정이다 역시 또 글러먹은 짓을 해버렸구나 상념의 끝은 결국 자학이다
경악! 인싸의 엄청난 친화력! 아무래도 오늘은 여러모로 사치 베르단디의 한계를 시험하는 날이 된 것만 같다. 무어라 할 틈도 없이 훅 가까워진 거리에 딱딱하게 굳어서는 앗, 아, 하고 가오나시 목각인형처럼 서 있는 것이다. 뒤늦게 이성이 되돌아왔을 때에는 또 다시 얼굴도 함께 홧홧해져서, 목도리에 얼굴을 푹 눌러 가릴 수밖에 없었다. 훅 몰아쉰 숨이 안경을 덮는다. 오히려 표정을 가리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 오, 오오, 오늘 뿐이니까요..."
저, 애초에 그렇게 부자같이 생긴 것도... 아니고, 이, 이런 일도 사실은 이번이 처음이고, ...평소에는 이럴 사람도 없고, 걱정을 덜고 싶은 마음에 이러쿵저러쿵 중얼거려 봐도, 음성 일부가 목도리에 묻혀 소년에게 잘 전해졌을지는 의문이다. 진짜로 두세 개 정도는 먹어도 상관 없는데. 쾌활한 말투로 재잘거리는 소년의 발뒷꿈치를 바라보며 슬며시 손에 쥔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어지는 음성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네.
"...얼마든지요."
금방 튀겨놓은 게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편의점 문 앞에 섰다. 띵동. 역시 한 개로는 마음에 차지 않으니 억지로라도 쥐어 주고 집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면서. 조금 웃은 것 같기도 하다.
한없이 장난스럽고 쾌활한 얼굴의 소년과는 다르게, 사치의 안색은 점점 더 파리해져만 가고. 오히려 저런 태도로 나오니 1.5배 정도는 더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왜, 있지 않은가. 영화나 드라마같은 곳에서 웃는 얼굴로 일관하다 수틀리면 푹찍, 하고 상대를 끝내 버리는 캐릭터같은 것이! 아, 어쩐지 요즘 하루에 5넘어짐 정도로만 무난하게 넘어가더라니! 다시 한 번 자신의 불운을 저주하며 마음 속으로 절규했다. 으아아아ㅡ!!!!
"저, 저, 모, 모른 척 할 테니까..."
깜빡이는 전등,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며 꿰뚫는 것 같은 시린 색의 눈동자, 이, 이, 이, 이거, 혹시 사망플래그같은 거라도 되나요? 마음같아서는 도망이라도 치고 싶지만 등을 보일 용기는 없고, 저 남학생보다 더 빠르게 달아날 자신도 없고. 그저 슬슬슬 뒷걸음질만 칠 수밖에.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아서 커다란 선반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툭, 등에 전해지는 딱딱한 감촉이 이리도 절망스러울 줄은.
"핫, 하하, 하,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이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미 목소리의 떨림은 주체할 수 없어진 지 오래고. 무슨 말을 더 해야 여기서 살아서(??)나갈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그 때! 선반에 가볍게 부딪힌 충격 탓이었는지. 선반 위에 허술하게 놓여 있던 책 한권이 툭, 하고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사치가 떨어진 책을 멋있는 동작으로 회피! ....하는 일 따위는 없이, 그대로 책등이 정수리를 강타하고. 앏,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책등에 맞은 정수리를 감싸쥐며 몸을 웅크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책 모서리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다! 눈물이 찔끔 난 것 같기도 하다.
대놓고 뻔뻔하게 나가기 위해서 대충 던진 헛소리라는 건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엥?"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맹한 소리를 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만큼 신비를 신봉하지 않으니 이 정도 장난질이면 잘못 본 거겠거니 생각할 거라 여겼는데.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재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 꽤 그리운 심상을 자극한다. 아예 정말로 무서운 짓 해볼까 하는 생각이 짧게 스쳤으나, 상대가 입은 복장을 보고 생각 고쳐 먹는다. 그래, 우리 아가씨 때문에 학교에 온 건데 또래 애들을 겁박해선 안 되지.
"응? 알면 다친다고 했잖아. 그럼 모르고 있으면 괜찮다는 뜻이지. 모르고 있어 줄 거지?"
제법 정답고 친근하게 그려낸 웃음 사이로 예의 싸늘한 빛 눈이 번뜩이는 듯하다. 무서운 짓 안 한다 하지 않았느냐고? 에이, 이만하면 농지거리 아니냐. 그는 대답을 종용하듯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불안감 고조시키기라도 하듯 괜히 평소보다 느릿하게 걸어서 막 어깨에 손 올려 붙잡으려던 때, 갑작스레 떨어진 물건이 여학생의 정수리에 직격했다. ……장난질하던 것도 멈추고 시선이 상대방의 이곳저곳을 빤히 살폈다. 신이라도 어안이 벙벙해질만큼 황당한 상황이라는 뜻인가? 아니, 정확히는 그 쪽이 아닌 다른 의미로 놀란 거다. 린은 자신도 덩달아 몸 낮추어, 맞아서 웅크린 여학생의 양 팔을 붙잡고 얼굴을 마주보려 들었다. 눈이 마주친다면 어쩐지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 보일 것이다. 유열이나 희락 따위의 형용이 몹시도 어울릴 만한 그런 얼굴.
"너 운 나쁘구나!"
비량은 길흉화복의 당신堂神이기도 하다. 운수를 총괄하기로 명망 높은 신보다는 못하더라도, 비교적 작은 범위의 운명과 운에는 종종 관여하는 신. 자세히 보지 않아 몰랐는데, 뒤늦게서야 이 여자아이의 운수를 알아본 것이다. 이제 보니 아주 기가 막힌 운수가 아닌가! 집요하게 불운하지만 살기에 팍팍할 만큼은 못 미치는, 하지만 사는 질 떨어뜨릴 정도는 되면서도 근본적인 위협은 못 될 괴상하고 애매한 악운. 음, 이 기막히게 찝찝하고 절묘한 흉화란! 특이해서 마음에 들었다. 지켜보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모습이라, 그는 제멋대로 생각 끝마치고 멋대로 결론 내렸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우리 친구 할까?"
바로 갑작스러운 친구 신청 공격으로! 말하고 나서는 또 그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서둘러 대답하지 않으면 승낙으로 치고 바로 어깨동무 해 뛰어나갈 기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