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에 받은 선물은 째깍대는 소리가 나는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계라고 하면 째깍대는 초침 소리를 연상하기 마련이었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이 작은 탁상시계를 침대 옆에 둔다. 협탁을 과연 언제 쓰나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쓰는군. 알람을 아침 등교 시간 이전으로 잘 맞추어 두고, 침대에 누워 상념에 잠긴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 뭔가... 기묘한 일이 잦아진듯 하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자주 꾸는 악몽은 내게 피로를 더했고, 당연하게도 안그래도 고통스러운 아침이... 훨씬 더 고통스러워지고 말았다. 이전까지는 으악, 아침이다. 짜증난다. 그 정도였지만, 요새는 할머니께서 날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기가 힘들다.
어쩌면, 저 너머의 세계를 너무 들쑤시고 다닌 탓에 노한 유령의 소행인가?
"에이.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탁상시계의 위쪽을 톡톡 두드리고선, 자리에 눕는다. 내일 아침을 잘 부탁한다. 작은 친구.
고급 양갱과 오마모리, 닌자가 나타났다 세트와 담요, 직접 만든 펠트 인형……. 누구인지 모를 익명의 비밀 친구는 꽤나 정성스러운 편지와 선물을 매일같이 보내 주고 있었다. 그저 선물 받고는 와, 선물! …이라는 감상이 전부였던 그는, 최근 주변의 몇몇 학생들이 마니또에게 마주 편지를 쓰며 이야기 주고 받는다는 소식에 뒤늦게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젠장,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하기야 아직 정체가 안 밝혀졌다 해도 편지를 나누면 밀담하는 기분도 들 테니 서로 더 특별한 느낌이겠지. 이런 일에 뒤처질 수는 없었기에 그는 괜히 소매 걷으면서 의욕에 불 좀 지펴보려 했으나…… 오래지 않아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종이를 앞에 두고 생각하자니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하나 더. 아직은 생판 모를 상대에게 받은 만큼 정성스럽고 멋들어진 감사 인사를 돌려주기엔, 그가 썩 감각적이지 못해서 말이다. 결국 펜으로 뒷머리나 긁적거리다 격의 없는 구절로 첫 획을 떼었다.
「선물들은 잘 받았어. 양갱은 벌써 다 먹었는데 맛있더라. 나머지도 잘 쓰고 있고. 고맙고, 매일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 정도밖에 못 쓰겠네.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넌 노력에 요행이 조금도 섞여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몸이 아파서 힘들었던 적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일이 꼬여버린 적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늦게라도 널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줘. 이걸 왜 물어봤는지는…… 아마 나중에, 직접 만날 때에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때까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좀 더 뜻깊고 의미가 분명한 내용이 쓰였더라면 좋겠지만, 영 돼먹지 못한 신이라 어쩔 수 없다. 그는 영문 모를 소리만 길게 쓰인 종이를 가지런히 접어 늘 선물이 놓이던 자리 한켠에 붙여 두었다. 답장 확실히 해 달라는 첨언도 잊지 않고 쭈욱 기지개 켜더니, 금세 우당탕 딴짓이나 하러 어디론가 뛰어나간다. 또 어디선가 선생님의 고함이 들려오며 편지나 마니또 생각은 그새 쓸려가 버렸다…….
역시 봤 구 나... 눈을 질끈 한 번 감고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긴 하지. 객관적으로 얼굴 괜찮고(아니, 사실 잘생겼다고 생각해.) 키 크고 성격 좋으니까. 게다가 약간의 날티까지, 이거 완전히 MSG거든요. 같은 자만은 차마 입으로 내지 않았다.
"뭐, 그렇죠. 방금... 누구였더라, 하여튼 그 애는 전혀 취향이 아니었어여. 전 저를 과감하게 차줄 수 있거나 바람맞히는 타입이 좋거든요. 빨리 끝나잖아여, 평판도 안 상하고 말이져♪"
뒷골목을 빠져나온 유즈루는 한 번 뒤를 쳐다본다. 뒤돌아보면 선배가 졸졸 따라나와 있다. 약간 되는대로 준 과자 더 먹고 싶어서 따라나온, 세상물정 모르는 고양이같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이것도 나름 팩트 기반이지, 저 눈매를 좀 봐, 나랑은 아예 궤가 다르거든요. 나름 수요는 있게 생겼는데...
"선배님은요? 여자애들한테 인기 있어요? 그렇게 생기기야 했는데~ 제가 여자라면은, 고백까지는 쫌 무서워서 무리랄까. 역시 인기 없죠? 없지? ㅋㅋㅋㅋㅋㅋ 좀 웃고 살아요, 장밋빛 사랑이 굴러들어와도 못 잡겠슴다, 지금으로선."
아, 밥집은 저기 어때여? 하며 가리킨 곳은, 1층의 야트막한 가게. 천장이 낮고 공간이 협소해 유즈루같은 운동부는 단체회식을 꿈도 못 꾸는 그런 곳. 주된 음식은 경양식으로 보였다.
우습게 머리를 부딪히는 후배를 지나쳐 미카는 아무 문제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고선 먼저 구석진 자리로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옷깃에서 미약한 담배냄새가 풍긴다 식탁 다리에 발을 걸치고 또 딴짓 하려는지 스마트폰을 꺼낸다 뭐 먹을 거냐고 묻자 미카는 잠시 메뉴판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메뉴를 고른다
"로스카츠로."
그런데 주문이 지나치게 간소하다 기껏 와서는 돈가스 한 그릇만 먹을 셈이다 말을 마치고 금세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는 미카
5.팝콘 -> 리오 선물 :넙적하고 말랑한 회색 고양이 얼굴 쿠션 (표정이 조금 맹해보인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잘 때라던가, 등에 괴고 있거나 끌어안고 있기 좋아 보여서 샀어요. 학교에서 쓰기에 좋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집에서 써도 좋겠지만요. 편하게 쓰시길 :)
6.사이트에서 광고를 허용해 주세요😭 -> 치요 선물:https://postimg.cc/HrC7WvrR 슈크림이 가득찬 크림퍼프 쿠키입니다. 시내의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서 사온 듯, 고급스런 상자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크림은 메이플시럽 맛이라고 합니다. 상자 표면에는 역시 하이쿠가 쓰인 화지가 붙어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선물이 전부 음식이네요. 좀 더 좋은 선물을 고르는 센스가 나한테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센스는 없어도 최대한 맛있는 걸로 고른 것들이니 부디, 맛있게 드세요.
8.윌리 -> 무쿠루마 미야 선물:ROYCE' 생초콜릿 한 상자와 초콜릿 포테이토칩 ROYCE' 생초콜릿 한 상자와 초콜릿 포테이토칩 메세지: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보내 봐. 삿포로 특산품인데 주기적으로 인터넷에서 주문하고 있어. 입맛에 맞을까? 가장 좋아하는 건 감자칩인데, 처음엔 조합이 좀 이상하니까 거부감 들어도 웬만하면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 흠, 근데 이거 냉동 보관이라 좀 불안한데...... 일단 아이스팩도 동봉하지만 빨리 먹는 게 좋겠다. 부드러워서 잘 녹거든.
9.아카사 -> 미후유 선물:펠트 공예 키트 하나. 다 만들어지면 펭귄이 된다
정성껏 만들어서 주려 했는데 일주일만에 완성하려 서둘렀는데 결국 이런 꼴이라서.. (같은 키트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상한 덩어리 두 개의 사진)
10.라무네 -> 오구치 선물:키나코봉, 후가시, 센베이를 비롯한 막과자를 한가득 담은 상자
강녕하신지요, 라무네입니다.
변덕스러운 겨울의 잔바람 잦아들고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들뜬 마음에 구멍을 냅니다. 분명 어제 편지에서는 의연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했지만, 역시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곧 아름다운 화우(花雨)는 운하를 가득히 채울 것이고,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파릇한 여름이 드리워 매미가 울기 시작하겠지요. 그때면 이 허전함을 잊을 수 있을까요. 역시 봄은 따뜻하지만, 지나버린 한 해의 외로움이 채 가시지 않아 어딘가 춥기도 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청춘의 아스라한 추억이 되면, 매미가 울 때 저는 울지 않을 수 있겠지요.
추억을 동봉합니다. 막과자는 제 세대의 추억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 이름값을 하니까요. 귀하께서도 저를 그런 기억 한구석의 자연스러운 추억으로 남겨주실까, 작은 욕심을 냅니다.
따사로운 추억 속에서, 라무네.
11.오마모리 -> 린 선물:투핀 드롭 피어싱 https://ibb.co/xsTPsmF
벌써 토요일이라니 마니또 시작할 적 설레던 마음은 그대로인데 시간도 참 빠르지요. 감개무량해집니다. 남궁씨는 저의 마니또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데 가만보니 남궁씨는 귀도 반짝반짝 화려하지요. 그 사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시내를 둘러보니 귀걸이가 천지입니다. 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밟히더군요. 마침 생각나 오래 지켜보고 그 중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것을 골라봤답니다. 안목이 좋지 않다 항상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결과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별 수 있겠나요. 남궁씨가 만족하시길 빌 수 밖에요.
+) 혹시 알레르기가 있으실까 은처리가 된 것을 골랐습니다. 걱정마시고 착용하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외국에 나가 본 적 있어? 해외여행의 숨은 묘미는 기내에서 보는 하늘의 풍경이라고 하지. 비행기를 탄 경험이 있더라도 없더라도, 그 낭만을 재현할 수 있는 물건이야.
13.샌드백 -> 하이디네 선물:모래시계 세트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제 슬슬 마니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도 오겠네요. 다들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 맞추려는데에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뭐, 늦건 이르건 곧 밝혀지겠지만요? 이번 선물은 제 코드네임에 딱인 모래시계 세트랍니다. 요즘 와선 그저 장식에 불과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맞아요. 일부러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죠. 그래도 뒤집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서 충분히 실사용도 가능하니 걱정 마시길,
Ps.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지만, 혹시 궁금하신가요? 어째서 제 코드네임이 샌드백일지, 만약 이런 아기자기한 선물을 보냈으면서 실상은 싸움하기 좋아하는 남고생은 아닐지 같은 걱정이 딱히 없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아마 조만간 직접 뵈어서 그 이유를 알려드릴수 있겠네요. 그럼 부디 제가 누군지 맞춰주시길 바라며, ('언제나 스마일 :)'이라는 짧은 글귀와 함께 여러 상황에 쓸수 있는 크고 작은 모래시계들이 동봉되어있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유즈루로서는 두가지 측면으로 용납하지 못하는 행동이 있었으니까. 식사자리에서 폰을 보다니, 기껏을 밥을 사주는데 소통의 의지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 잘 교육된 외향인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본인으로서는 자각하기 어려웠지만, 코오리야마의 가풍으로서도.
엄격한 교육은 유즈루로 하여금 늘 평판과 이미지를 신경쓰게 만들었고, 이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안이나 바깥이나 하지 못하도록 했다. 본인이 갑갑해하더라도 그 교육의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즈루의 3점슛 폼처럼 말이다.
"뭐하심까? 식사자리에서 이런 거 보고있고 말예여~ 아아, 싫다. 밥 얻어먹으면서 염치없기까지 한 사람~"
큼직한 손이 미카의 폰 화면 앞을 두어번 흔들거리다 돌아간다. 유즈루의 표정은 늘 실실 웃고 있기야 했지만, 이번은 애교있게 말해 뾰로통하고, 적당히 말해 정색이었다. 본인은 전자를 선호하겠지만.
유즈루는 잠시 침묵하다가, 포기했다는 듯이 다시 그 손을 내저었다. 미카로서 어떻게 느낄지는, 글쎄, 그의 비행에 손을 내젓고 질색하던 어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선물은 몰라도 편지는 다소 간추려지는게 대부분인데 아무래도 이 마니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나보다.
"이쯤 되면 잠깐의 휴식기조차도 정성으로 느껴지네요..."
정말 이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 꾸준하게 보낼 생각인 건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이 행사에 진심인건진 쉽게 알수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지갑상황이라던가 이런걸 구하려고 겪었을 고충이 떠올랐기에 걱정되는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지만 나중에 만나러 간다면 제대로된 감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누군질 모르겠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알수 있도록 당분간은 향수를 은은하게 뿌려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나 제 섬기는 이에게 빌면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도 그게 가능한 신이었으면 굳이 번창의 신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신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격상 안될테니...
언제나 그랬듯 편지칼을 쥔 손은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날이 서진 않아도 여전히 찔릴 수는 있었으니까,
"[그녀를 꽃으로 말하자면 장미같은 여자 넘치게 아름답고 그래서 늘 사람들로 가득 둘러싸여 있지만 진짜 사랑을 찾느라 아직은, 조금 외로운 사람]
...인건가요...?"
조금은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든 이야기들이었지만 외롭다는 것과 진짜 사랑을 찾는 중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나바의 무녀라는 탄탄대로가 있다지만, 이곳에 연이 있다면 그 운명을 따르는 것도 썩 나쁘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반려를 찾는다 해서 신직을 박탈당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금도 실시간으로 겪는 신의 시련이 제 반려로 하여금 조금은 분담 될지도 모르니... 물론 그런 식의 분담은 자신 스스로가 용납 못하겠지만 말이다.
차마 자신의 짐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진 않았다. 스스로 전부 이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통칭 '오렌지 테러'님께,
이번 선물도 소중히 잘 받았답니다. 늘 생각했던 것이지만 선택들에 꽤나 신중을 기하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걱정이 들더군요. 미안한 마음, 같은 말은 선물을 준 이의 정성에 예의가 아니라기에 하지 않겠습니다.
선물을 자주 받지 못했다라던가, 그런걸로 고민하지 않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길. 오히려 빈번할 수록 감사함이 더 늘어나는 법이지요. 게다가 잠시 쉬어가는 휴식기에는 어떤 편지가 올지 궁금해하거나 먼젓번의 것들을 반복하여 보고 있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편지교환은 꽤나 좋아하니까요.
그건 그렇고, 기간 한정 향수라니 놀랍군요. 정성도 그렇지만 우연인지 무엇인지 은은한 꽃향기로 고르신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답니다. 사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라면 걱정 마시길, 아무리 이 몸이 신을 섬겨야 한대도 그정도는 괜찮답니다. 물론 멀리서도 알아챌 정도로 강하게 뿌릴 수는 없지만요. 가격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신다면 사양않고 적재적소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쓰라고 준 것을 아깝다고 쓰지 않는 것 또한 어찌보면 예의가 아니니까요.
이런 것을 받고 저도 가만있을 수 없지요. 고향에서 자주 재배된다는 도토리입니다. 어느 방법으로든 조리하는 재미가 있다더더군요. 부탁하셨던 말씀 기억해서 다음번 만날적에 향수의 향으로 서로를 알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낭만이겠지요.
화면 앞을 휘젓는 손짓과, 다소 날카로운 발언 미카는 눈동자를 굴려 상대의 눈치를 살핀다 실없는 웃음이 그 얼굴에 걸려있지만 그 분위기는 결코 장난스럽거나 가벼운 게 아니었다 눈치 빠른 미카는 그걸 읽을 수 있었다 부모의 한심스러운 시선과 교사들의 날선 훈계 후배가 나직이 내뱉은 말은 그것들과 비슷했다 사람 앞에 두고 딴청 피우는 거냐며 그럴 때는 괜히 반발심이 들어 일부러 더 한눈을 팔았었다 하지만...
"...미안."
미카는 고분고분하게, 불만도 없이 곧바로 사과한다 식탁 위에 눕혀진 스마트폰 화면이 맥없이 꺼진다 하지만 또래들 앞에서는 달랐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고 짜증나는 존재지만 아이들에게만은 미움받기 싫었다 입 꾹 다물고 잠자코 시선을 내리자 새까만 화면에 제 얼굴이 비친다 어울리지 않게 잔뜩 경직된 표정이다 역시 또 글러먹은 짓을 해버렸구나 상념의 끝은 결국 자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