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또의 편지에 약한 당황이 있는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당혹할 만한 말을 써보냈다는 자각이 있었던 건지.
마니또의 말을 듣고는 자기가 너무 심하게 말했다(따지고 보면 선물 어떻게 하지. 같은 말이었잖아)는 자각은 있어서 오늘은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둔 분재의 사진을 찍어서 인화한 것을 쪽지 옆에 둡니다.
[어제와는 다른 점이 보이지 않지만] [매일 같은 구도로 찍은 거] [처음이랑 마지막 늘어놓고 보면] [확실히 다를 것] [손수건도 예쁨...] 티켓을 끼울까말까 고민하지만. 이런 건 나중에 만난다면 주는 게 옳아보이니. 귀찮긴 하지만 벚꽃잎이 그림자에 떨어진 것으로 만든 레진 장식 키링을 둡니다.
안녕하세요,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이번에도 마니또 선물을 받았어요. 색이 파랗게 예쁜 깡통을 열어보니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사탕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색깔이 들어 있어서, 제일 좋아하는 색이 눈에 띄기에 연두색 사탕을 입에 넣었습니다. 사탕이 입 안에서 굴러다닙니다. 한쪽에 몰아넣으면 볼이 볼록해져요. 메시지를 읽어내려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즐거움을 느껴도 되도록’ 이라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언니랑 오빠들은 제가 과자를 숨기는 걸 보아서 과자를 달라고 말하진 않았을 거고, 거기다 제가 방문 밖으로 쫓아버리기도 했고 그랬으니 역시 조금 신경쓰입니다. 다음 번에 오면 같이 사탕을 나눠먹어야겠어요.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펜을 듭니다. 답장을 쓸 차례에요.
‘원시 고대 서브웨이 씨에게.
안녕하세요, 마니또 선물을 받은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벌써 두번째에요.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양치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않아요. 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한동안 깡통을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사탕을 나눠주려고 들고 다니기로 마음 먹은 거지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요. 엄마와 언니에게는 보라색 사탕이고, 오빠들에게는 분홍색 사탕입니다. 아빠는 노랑색 사탕, 아저씨에게는 파랑색 사탕을 주고 싶어요. 잇쨩에게는 흰색 사탕입니다. 주고 싶은 색깔을 상상하는 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탕을 나눠줄 수 있을만큼 사이좋은 친구가 생긴다면 학교에서도 나눠줄 수 있을텐데... 힘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시 고대 서브웨이 씨를 마주치게 되면 사탕을 나눠주고 싶어요. 무슨 색이랑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주고 싶은 색은 연두색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라서, 연두색 사탕을 주면서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같은 색이라면 공통점이 있는 우연을 반가워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색이라면 다른 색 사탕을 다음 번에 마주쳤을 때 줄 수 있을 거에요. 그때까지 천천히, 느긋하게 즐기고 있겠습니다.’
편지도 두 번 적으니 조금 말솜씨가 느는 것 같습니다. 사탕은 아직 입에서 굴러다니고 있고, 편지는 이번에도 작은 봉투에 넣고서 클로버 스티커로 봉했어요. 전할 용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변명으로 치기에도 너무 빈약한 소리지 않나. 하지만 뭐 어때. 웃음 많은 거 사실이기도 하고 어차피 이런 말도 다 장난인데 말이다. 그래도 눈치 보는 시늉은 하려는지 슬쩍 상체 조금 기울고서는 "마음 상했어?"라고 묻는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다면 보란듯이 씨익 웃고 말 것이다. 놀라 봤자 처음처럼 빽 소리 지르는 정도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까 했는데, 안즈가 갑자기 기운을 잃고 시들시들해지니 린도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곧바로 제 행동에서 좋은 의미를 찾아서 조잘거리는 모습에 전심전력으로 유치하게 굴던 그는 어쩐지 할 말이 없어졌다. 나 원,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사람은 그와 같은 족속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면이 있다. 조심 좀 하란 장난스런 타박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몇 번 해 봤다고 경험이 생긴 것 같단 말이지. 봐, 저것도 아직 멀쩡하잖아."
'아직'이라는 말은 즉 안즈가 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뜻 아닌가? 이쪽도 단 한 치도 찔리는 구석 없다는 듯 팔짱 끼고 선 그 풍모 의기양양하고 당당하다. 끼리끼리 잘 맞아서 다행이랄지…….
"난 뭐든지 먼저 가야 기분이 좋더라. 분발하시죠, 안즈 선배님!"
방금까지는 대신 해달라고까지 했던 자진신고 하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정말 저 혼자 가버리면 의미가 없으니 결국 속도를 맞춰 걸어가게 되었지만서도. 머지 않아 도착한 교무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다. 아,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있다. 어제 문고리 부숴먹었다는 말이 사실인지 문고리가 덜렁 떨어져서 제대로 닫지 못한 문이 손가락 반 뼘 정도로 열려 있었다. 아직 수리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린은 그 문을 천천히 열며 틈새로 머리만 빼꼼 내밀어 안쪽 눈치를 살폈다. 조용히 탐색만 하려고 했건만 해먹은 게 문고리 부분만이 아니었는지 문을 건드리자 삐걱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버렸다. 쳇, 글렀군. 곧바로 벌컥 떠들썩하게 열고 들어간 린이 씩씩하게 외쳤다.
"자진 납세 하러 왔습니다~"
반응속도가 빠른 선생 몇 명이 그 얼굴 확인하자마자 이마를 짚으며 난감한 표정이 된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리라.
체육관 문 방향을 보면, 수수한 여자아이가 서있다. 아, 어디서 본 듯도 한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누구지. 찾아올 정도로 친한 사람이었나? 긴가민가 하면서도 일단 통통 튀는 걸음으로 가본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작다. 여자애들이란 신기하지.
"으음~ 미안. 나 농구부 활동중이라~ 복잡한 용건이면 같이 하교하면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 간단한 거면 여기서 얘기해도 되구." "아, 그, 그러면...! 기다릴게요."
아~ 또 일을 저질러버리셨군요 코리야마 유즈루씨. 이 죄 많은 남자...☆ 오늘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나... 좀..ㅋㅋ ✨멋있다?✨
ㅇㅈㄹ로 즐겁게 훈련을 마친 유즈루는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며 체육관을 나섰다. 다행이도 오늘은 청소 당번도 아녔고 말야. 이었더래도 튀었을 테지만. 어느새 시각은 오후 6시, 봄철의 짧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저...! 라며 성급히 구는 소녀의 말을 끊는다. 우리 좀 걸을까? 따위의 짧은 말로.
저벅, 저벅, 어느새 교문을 나서고,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고, 상점가까지 말없이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그리고 유즈루가 먼저 입을 뗀다. "그래, 사귀자."
네!? 당황하는 소녀에게, "아까 웅얼거렸잖아? 좋아한다고." 라며 태연하게 말하면 정말요? 하는 말이 나온다. "당연히 거짓말이지~ 유이쨩 보기보다...ㅋㅋㅋㅋㅋ 순진하구나? 왜 그래,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치~?"
...네. 풀죽은 대답. 그리고 이별은 짧았다. 사실 성가셔서 싫어하거든, 이런 거. 악명이 쌓이지 않게 하되 거절은 확실해야 하고... 피어싱 빠진 자리를 긁적거리던 유즈루는, 골목길 자판기로 다가가 주머니의 동전을 마구잡이로 꺼낸다.
팔로우를 수락하며 훑은 리오의 피드는 그저 제 또래다운 사진들로 꾸며져있다. 어느 날의 ootd, 간직하고 싶은 기억과 일상적인 장면들······. 그런 무던함이 상황과 대조되어 현재를 비현실로 만든다. 미야나기는 마주쳐오는 흐린 눈동자를 저도 모르게 휙 피해버렸다.
“왜 리오는 친구가 생기자마자 멀어질 것부터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어.”
리오는 농담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듯 세 번씩이나 거듭했다. 물론 그녀 또한 불안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떤 형식의 인연이든 이별은 언제나 두렵다. 차마 끈을 놓기 버거워 외면해버린 적도 수없다. 이 상황이 극단적이지만 않았다면 백 번이고 공감했을 테지만, 여기서 ‘그건 그래’라고 대답해버리면 멘헤라가 두 명이 되어버린다! 멘헤라 과포화 상태에 이르러버려. 나, 그냥 리오랑 평범하게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왜 먼 훗날의 헤어짐까지 대비해야 하는 거지. 젠장! 아, 타지에서 친구 한 명 사귀기 정말 힘들다~. 조상님 책임져! 이럴 줄 알았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독일로 도망갈걸······. 물론 지금의 대화는 충분히 부담스럽고 좀 놀랐지만, 그래도 불쾌한 건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 해야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을지 고민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리오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지도 못 해. 들어도 관심 없고. 확실한 건 적어도 지금은 리오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거리 두려고 하지 않았어.“
식은땀으로 젖어 제 손이 차갑게 식어있었기 때문일까, 맞잡아온 손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뜨겁다. 미야나기는 조금 고민하다가, 이내 리오의 손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듯 엄지로 훑는다.
“리오가 말했듯이 친구가 죽는 거 싫어. 당연하지. 친구잖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리오가 죽는 게 싫고, 리오랑 멀어지려고 하지도 않아······.“
//헐 진짜 너무 늦어서 미안해 리오주!!! ༼;´༎ຶ ༎ຶ༽ 연휴 이후로 밀린 일들 은근슬쩍 회피하다가 한 번에 업보빔 맞고 수습하다 왔어 😱 캡틴한테만 말해놓고 생각해보니까 리오주한테 말 안 한 거 있지 ⸝⸝o̴̶̷᷄ o̴̶̷̥᷅⸝⸝ 다시 한 번 진짜 미안하고!!! 흐름 끊겨서 내키지 않으면 여기서 끊어도 됩니닷…!!! 참 아인슈패너 님도 선물 짱 고마워요 전부 확인 완료입니다 감동 받아버렸어 ㅠ0ㅠ~~~~
저녁 때가 되도록 학교 뒷마당에서 낮잠을 자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고 미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누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도 이렇게 의미없는 하루를 보내버렸다 집에 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미카는 천천히 교문을 나선다 왠일로 군말 없이 귀가길을 가나 싶다가도 상점가가 나오자 잠깐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주변 눈치 보며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역시 불량하게 쪼그려앉은 미카의 주머니에서 담배갑이 튀어나온다 저번에 교무실에서 슬쩍해온 게 아직 남아있어서리
치익, 라이터에 불을 켜는데 골목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제 또래의 남녀가 얘기하는 모양인데 남자 쪽은 어쩐지 들어본 목소리다 누구였더라? 어쩌다 보니 엿듣게 된 대화의 내용은 상당히 터무니없었다 사귀자고 대답해놓고 거짓말이라니...
곧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제서야 미카는 떠올릴 수 있었다 저번에 페브리즈 뿌려진 후배 그렇지만 부러 아는 척은 하지 않는다 그저 불 붙인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뱉을 뿐 담배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