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쿠루마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다가 베개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미래 같은 건 그닥 생각하는 편이 아닌데 말이야⋯⋯ 성적도 안 좋고, 나. 관심 없는 거지만. 그렇지만 오늘 그녀의 공연을 보며 살짝의 소망이 피어났다. 공연 스태프라던가⋯⋯ 힘들겠지만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는 거 즐겁지 않을까⋯⋯. 하고. 리링은 아직 결정을 못한 듯 하니 같은 일터에서 일할 수 있을 지 불확실한 게 아쉽지만.
좋다는 말에는 그저 싱긋 웃었다. 2년 쯤 되었고, 이 정도의 교류를 했으면 말이 없어도 아는 게 있다. 나도, 라는 의미라던가.
무쿠루마는 시야 가장자리로 구급상자를 훔쳐봤다. 혼자 자기 힘든 날에는 늘 저런 걸 사용할 만한 일이 생기는 걸까? 어떻게하면 은밀하게 알아내어 줄일 수 있게 할 수 있을 지 고민하다가 순간적으로 눈꺼풀이 감겼다가 뜨였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졸았던 것 같다. 무쿠루마는 바르게 자야 한다는 말에 자세를 고쳐 눕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탁, 하고 새카맣게 변했다.
고요하다⋯⋯. 고요한 방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리오의 말에 편안한 감각이 느껴졌다. 리오의 새로운 면을 보고, 열정에 취하고, 밝은 것만을 좋다 느껴왔는데 이러한 어둠 또한 나쁘지 않았다. 눈꺼풀이 왔다갔다 하다가 이내 완전히 감겼다. 무쿠루마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냐⋯⋯, 내 어리광도 받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응, 잘자. 내일 아침에 봐⋯⋯."
띄엄띄엄 말을 하며 점차 잠에 빠져들었다. 한쪽 팔의 온기를 느끼며. 오늘 밤은 따뜻했다.
"⋯⋯무쿠루마, 너 오늘 무슨 일 있냐?" "네에에? 왜요, 무슨 일 있어 보이나요? 마치 예쁜 귀걸이를 선물 받은 것처럼?" "그래서 그렇게 묶은 거였냐."
모두의 시선이 무쿠루마에게로 향했다. 실은 그 전부터 계속해서 그래왔다. 적당히 중간에서 조금 높게 묶은 양갈래를 오늘은 아주 높게 묶어버린 것이다.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
이후로 쭈욱, 무쿠루마는 항상 붉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귀에는 붉은 하트 모양 귀걸이를 착용하고 다닌다.
<배쓰 밤>
무쿠루마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분홍빛 구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것도 욕실에서, 욕조 앞에서 쭈그린 채. 다리가 점점 새파래지는 데도 그런다. 점점 저리는 감각이 느껴질 때 쯤 풍덩, 하고 배쓰 밤을 욕조 안에 풀어넣었다. 물빛과 핑크빛이 뒤섞인 광경이 통통 튀는 맛이 있었다.
무쿠루마가 물을 휘저으며 이리저리 손 장난을 치자 그에 따라 색들이 변하고 잔뜩 일그러졌다. 그걸 보며 히, 하고 웃음이 났다.
"진짜 예쁘네~⋯⋯."
엉덩이에서 힘을 빼 몸을 더욱 물 속에 잠기게 하자 물이 코 위로 찰랑이며 올라왔다. 거품이 부글거리며 일어났다. 윌리 씨 덕분에 끝내주는 휴식을 하네⋯⋯. 무쿠루마는 나른히 생각하며 한참을 욕조 안에서 그렇게 있었다.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진은 받으려는 것, 일부러 친한 척하는 김에 사진 받아놓고 쓸 데가 있어서다. 안 보내줄 것처럼 말하면서 다각도로 많이도 도착한 사진들을 보고 그가 또 능청스레─달리 말하면 미카에게는 귀찮은 일의 전조다─ 씨익 웃는다.
"음, 이정도면 합격. 안 보내줬다면 마음이 상해서- 나도 모르게 2학년의 와타누키 씨가 고양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비밀을 동네방네 외치고 다닐 뻔했지 뭐야!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렇지만 농담이라는 티는 확실하게 나는 어조다. 고양이는 이제 편하게 자리 잡아 일어나지 말라는 듯 열심히 골골거리고, 창문가로 드는 햇살은 아직 기울기엔 멀어 따스하다. 느른한 오후의 정경 속에서 목구멍에 커피 들이붓는 린만이 낭만 없이 가열찬데, 그래도 이제는 먹느라 입 나불거리지 않으니 시끄럽지는 않다.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가 눈을 끔뻑거리다 어느덧 새근새근 잠들어 버렸으니 남은 시간은 더 느긋하게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 오케이~ 그럼 이걸로 막레!!! 히히 미카한테 질척거리고 고양이도 같이 봤다 야호! 일상 즐거웠어~!!!
보았을까요? 못 보았을까요? 진실은 디자이너 지망생 씨만 알고 있습니다. 이상한 짓만 잔뜩 해버려서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남았을텐데, 그 SNS의 피팅모델이 저라는 걸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할 거에요. 혹은 논란이 날 지도 모릅니다. 어른인 척 했으니까요! 사실은 고등학생이고, 학교에서는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닌다던지, 무례하다던지 하는 말이 퍼지면 사장님에게까지 큰 폐를 끼쳐버리고 말아요. 비밀로 지켜온 것도 전부 들통날테니까 얼굴을 들고 다닐지도 못 하게 됩니다! 제 지갑이 꼭 시한폭탄같습니다.
“선생님한테 맡기는 편이 낫습니다.”
디자이너 지망생 씨만 아니면, 아니에요. 같은 반 학생들도 안 되고, 다른 반 학생들도 잇쨩과 키리나즈메 씨가 있으니까 안 되고, 후배님들도 아저씨가 있으니까 안 되고, 저번에 마주친 선배님 때문에 선배님들도 안 되고, 다 안 돼요! 누가 누구랑 친한 지도 모르는데, 선생님들만 됩니다. 선생님들은 아마도, 지갑 잘 간수하라는 말과 함께 돌려주실테니까요. 디자이너 지망생 씨는 되묻습니다. 본인 지갑이 맞느냐고요. 저였어도 되물어봤을 거에요. 전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안에, 봤어요?”
고맙습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전 열심히 디자이너 지망생 씨를 피해다니기만 했는데, 영문도 모를 지망생 씨는 제 지갑을 찾아주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감사인사는 해야하는데, 다른 말만 나왔습니다. 아마 못 봤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요...
"훔쳐보면 범죄입니다."
돌려받은 지갑을 꼭 쥐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명함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습니다... 가족에게 안 들키려고 두고 다니지 않고 제가 늘 들고 다녔던 건데, 어디에 둘지 고민해봐야겠어요.
>>585 하기로 말했으니 참치일언중천금....... 말한 것은 지킨다 😊 이쪽이야말로 >>483,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귀엽잖아—! 늑대인건가 귀 끝이 물든 허스키인가 고민했지만 뭐든 귀여우니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ㅜㅜ 아저씨 만족의 기준 낮아서 제가... 제가 죄송합니다 🥲 응, 언제가 아기 때처럼 방글방글 잘 웃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
>>586 미유키주 안녕, 좋은 밤이야. 귀여워해줘서 고마워—! 하네가 들으면 기절할 기세로 부정하겠지만........ 나도 하네가 엔딩 나기 전에 웃는게 보고 싶으니까 힘내겠다고—! 😉 어라. 그러는 미유키주도 지금 깨어있잖아—!!!
>>588 아아 이 참치 너무 멋있다....😲 무슨 동물귀...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갯과동물일 거라고 생각해~ 대충 모양이 예뻐서 붙인 거지만 의도한 건 늑대귀니까 틀린 건 아니야! 조큼 까칠하게 굴어도 진심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아니까 뭘 해도 만족~ 괜찮아~ 귀여운 막내~인 거지!😉 십대 때는 원래 몸도 마음도 하룻밤 사이에 훌쩍 자라 있곤 하니까,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확실히 노아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또 비범한 물건이 선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역시나 필멸자가 함부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니, 필멸자가 쉽사리 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사용한 물건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확히는 영혼이 내세로 떠나면서 벗어두고 간 잔재사념을 이용한 물건일 테니, 요컨대 말하자면 안 입는 옷을 리폼해 만든 가방 같은 물건일 테고 신의 법도에 저촉되는 물건도 아닐 터이나 이런 것을 사사로이 이용한다는 게 신으로서 자신이 믿어온 어떤 덕목을 어기는 것 같아 찝찝했던 것이다. 백호신이라는 것은 다른 신들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고지식한 면모가 하나씩 있는 신이고, 그것은 규성의 호랑이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이 고지식한 것인 줄도 모르고, 자네도 참 취미가 독특하구려... 하고 노아는 자신의 앞에 있을 리 없는 마니또를 보며 입 속에 탄식 한 마디를 뇌었다. 이 초는 잘 두었다가, 길한 행사가 있거든 그 날 불을 밝혀 공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코코로오카시마츠리나 코오리마츠리 즈음이 좋을까.
안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린을 노려봤다. 하지만 전혀 무서워 보이진 않는다. 입을 한 번 삐죽거리더니 눈에 힘을 푼다. 그래도 린의 반응이 영 마뜩잖기는 한지, 눈을 데굴 굴려 다른 곳을 본다. 흥, 하고 콧방귀 뀌는 소리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농담이어도 별로야..."
드물게도 기운 없는 목소리다. 질질 늘어지는 말에서는 늘 배어있던 장난기나 웃음기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안즈는 평소와 같이 환히 웃는다. 상냥도 해라. 날 안심시켜주려 하는 말이지? 그렇게 조잘거리는 모습에서 아까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고의는 아니지만 실수는 맞다는 이야기?"
하하, 앞으로는 조심 좀 해! 말의 내용은 언뜻 타박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목소리는 린을 놀리듯 가볍기만 하다.
"오~, 칭찬은 고맙게 받을게?"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겉으로라도 겸손하게 굴지 않나? 아니라고 부정 좀 하거나 쑥스럽게 웃기라도 하거나. 하지만 안즈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모습으로 생글 웃는다. 그런 모습이 놀랍도록 어울리기는 하다만... 하여간에 안즈는 린의 말에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좋~아."
느긋한 대답이다. 얼렁뚱땅 넘어간 것 같은 호칭 정리지만, 쌍방 모두 만족했으니 아무래도 괜찮을 성싶다.
"아앗! 같이 가, 린 상~!!"
안즈는 린을 따라잡으려 빠르게 달음박질했다. 지금까지 같이 가자고 그렇게 말하더니, 그렇게 쌩 가버리면 어떡해! 몸을 빙글 돌려 당신을 마주 보더니 투덜거린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착실히 제 갈 길을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교무실 문이 시야에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