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노아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또 비범한 물건이 선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역시나 필멸자가 함부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니, 필멸자가 쉽사리 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사용한 물건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확히는 영혼이 내세로 떠나면서 벗어두고 간 잔재사념을 이용한 물건일 테니, 요컨대 말하자면 안 입는 옷을 리폼해 만든 가방 같은 물건일 테고 신의 법도에 저촉되는 물건도 아닐 터이나 이런 것을 사사로이 이용한다는 게 신으로서 자신이 믿어온 어떤 덕목을 어기는 것 같아 찝찝했던 것이다. 백호신이라는 것은 다른 신들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고지식한 면모가 하나씩 있는 신이고, 그것은 규성의 호랑이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이 고지식한 것인 줄도 모르고, 자네도 참 취미가 독특하구려... 하고 노아는 자신의 앞에 있을 리 없는 마니또를 보며 입 속에 탄식 한 마디를 뇌었다. 이 초는 잘 두었다가, 길한 행사가 있거든 그 날 불을 밝혀 공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코코로오카시마츠리나 코오리마츠리 즈음이 좋을까.
안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린을 노려봤다. 하지만 전혀 무서워 보이진 않는다. 입을 한 번 삐죽거리더니 눈에 힘을 푼다. 그래도 린의 반응이 영 마뜩잖기는 한지, 눈을 데굴 굴려 다른 곳을 본다. 흥, 하고 콧방귀 뀌는 소리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농담이어도 별로야..."
드물게도 기운 없는 목소리다. 질질 늘어지는 말에서는 늘 배어있던 장난기나 웃음기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안즈는 평소와 같이 환히 웃는다. 상냥도 해라. 날 안심시켜주려 하는 말이지? 그렇게 조잘거리는 모습에서 아까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고의는 아니지만 실수는 맞다는 이야기?"
하하, 앞으로는 조심 좀 해! 말의 내용은 언뜻 타박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목소리는 린을 놀리듯 가볍기만 하다.
"오~, 칭찬은 고맙게 받을게?"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겉으로라도 겸손하게 굴지 않나? 아니라고 부정 좀 하거나 쑥스럽게 웃기라도 하거나. 하지만 안즈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모습으로 생글 웃는다. 그런 모습이 놀랍도록 어울리기는 하다만... 하여간에 안즈는 린의 말에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좋~아."
느긋한 대답이다. 얼렁뚱땅 넘어간 것 같은 호칭 정리지만, 쌍방 모두 만족했으니 아무래도 괜찮을 성싶다.
"아앗! 같이 가, 린 상~!!"
안즈는 린을 따라잡으려 빠르게 달음박질했다. 지금까지 같이 가자고 그렇게 말하더니, 그렇게 쌩 가버리면 어떡해! 몸을 빙글 돌려 당신을 마주 보더니 투덜거린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착실히 제 갈 길을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교무실 문이 시야에 잡힌다.
마니또의 편지에 약한 당황이 있는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당혹할 만한 말을 써보냈다는 자각이 있었던 건지.
마니또의 말을 듣고는 자기가 너무 심하게 말했다(따지고 보면 선물 어떻게 하지. 같은 말이었잖아)는 자각은 있어서 오늘은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둔 분재의 사진을 찍어서 인화한 것을 쪽지 옆에 둡니다.
[어제와는 다른 점이 보이지 않지만] [매일 같은 구도로 찍은 거] [처음이랑 마지막 늘어놓고 보면] [확실히 다를 것] [손수건도 예쁨...] 티켓을 끼울까말까 고민하지만. 이런 건 나중에 만난다면 주는 게 옳아보이니. 귀찮긴 하지만 벚꽃잎이 그림자에 떨어진 것으로 만든 레진 장식 키링을 둡니다.
안녕하세요,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이번에도 마니또 선물을 받았어요. 색이 파랗게 예쁜 깡통을 열어보니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사탕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색깔이 들어 있어서, 제일 좋아하는 색이 눈에 띄기에 연두색 사탕을 입에 넣었습니다. 사탕이 입 안에서 굴러다닙니다. 한쪽에 몰아넣으면 볼이 볼록해져요. 메시지를 읽어내려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즐거움을 느껴도 되도록’ 이라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언니랑 오빠들은 제가 과자를 숨기는 걸 보아서 과자를 달라고 말하진 않았을 거고, 거기다 제가 방문 밖으로 쫓아버리기도 했고 그랬으니 역시 조금 신경쓰입니다. 다음 번에 오면 같이 사탕을 나눠먹어야겠어요.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펜을 듭니다. 답장을 쓸 차례에요.
‘원시 고대 서브웨이 씨에게.
안녕하세요, 마니또 선물을 받은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벌써 두번째에요.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양치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않아요. 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한동안 깡통을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사탕을 나눠주려고 들고 다니기로 마음 먹은 거지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요. 엄마와 언니에게는 보라색 사탕이고, 오빠들에게는 분홍색 사탕입니다. 아빠는 노랑색 사탕, 아저씨에게는 파랑색 사탕을 주고 싶어요. 잇쨩에게는 흰색 사탕입니다. 주고 싶은 색깔을 상상하는 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탕을 나눠줄 수 있을만큼 사이좋은 친구가 생긴다면 학교에서도 나눠줄 수 있을텐데... 힘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시 고대 서브웨이 씨를 마주치게 되면 사탕을 나눠주고 싶어요. 무슨 색이랑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주고 싶은 색은 연두색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라서, 연두색 사탕을 주면서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같은 색이라면 공통점이 있는 우연을 반가워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색이라면 다른 색 사탕을 다음 번에 마주쳤을 때 줄 수 있을 거에요. 그때까지 천천히, 느긋하게 즐기고 있겠습니다.’
편지도 두 번 적으니 조금 말솜씨가 느는 것 같습니다. 사탕은 아직 입에서 굴러다니고 있고, 편지는 이번에도 작은 봉투에 넣고서 클로버 스티커로 봉했어요. 전할 용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