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없다고 바로 나올 정도면 취미랄 것도 없다는 뜻 아닌가. 그냥 말하기 싫어서 이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도 특별히 진득하게 즐기는 취미는 따로 없으나 기호품 모으는 낙 정도야 있다. 문제는 그 품목이 술이라 당장은 손도 못 대니 취미생활 못 즐기기로는 마찬지인 셈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먼저 올라간 만큼 남학생이 담으로 올랐을 무렵에는 린은 이미 아래에 도착한 상태였다. "받아줄까?" 밑에서 올려다보며 또 귀찮게 수작질이다. 무시하는 쪽이 편하리라.
"그럼- 일단 아무데나 다니다가 갈 만한 데 있는지 보자!"
그도 즉흥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이니 배신감(?)은 느껴도 불만은 없다. 별달리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놀거리도 딱히 없건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그는 혼자서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신나게 쏘다녔다. 땡땡이 동지라며 반겼던 상대도 내버려두고 저 혼자 빨라졌다 느려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왔다갔다 정신도 사납다. 열살짜리 애도 저것보단 얌전할 거다. 쌩하니 앞으로 빠르게 걸어가던 그가 돌연 제동을 걸며 상체를 뒤로 당겼다.
"오, 여기는 어때?"
몸을 바로세우고 린이 가게의 유리문 앞에 서서 소중한 땡땡이 동지에게 손짓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무언가 기웃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복슬복슬한 털의 고양이가 문 너머에서 바깥쪽을, 미카를 빤히 바라보며 문앞을 왔다갔다 느릿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아냐 괜찮아~ 나도 미카 취향 물어본다고 이것저것 뜯어내기도 했고(?) 아... 아니? 합법적으로 미카와 냥카페에 갈 수 있는 구실이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놓쳐─!!!! 그치만 냥카페로 하면 이것저것 서술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빠른 전개를 위해 개인카페인데 키우는 상주냥이가 있는 쪽으로! :3
걱정이라고는,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우니까요! 대답이 늦은 건 그 탓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제가 말을 못 되게 한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서, 있는 그대로 말하질 못 하는 것도 잘 아는데 말도 안 돼요. 독심술의 신 같은 거라도 된다면 모릅니다. 아니면 저를, 너무, 아주 많이 잘 아는 가까운 사이라거나요. 그런데 둘 다 아닐 확률이 더 높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요.”
정말, 정말 말도 안 됩니다. 빨리 공책을 받는 편이 좋—았을텐데 교무실 문이 열렸습니다. 서둘러 뒤쫓아 들어가요. 어떻게 알아낸건지 정확히 제게 심부름을 시키셨던 선생님과 대화까지 나누고 있었어요. 저는 서둘러 선생님에게 인사을 하고, 남은 공책들을 선배님이 먼저 올려둔 공책 위에 쌓아두고, 다시 또 인사를 합니다. 교무실에서 나가버릴거에요! 이 선배님이 더 무슨 말을 하지 못 하게, 이 선배님도 같이입니다! 정말 무례하고 예의없는 행동인 걸 알지만 소매 끝을 잡고서 교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무사히 나가게 되면 교무실 문도 꼭 닫아버릴 거에요!
586 자캐가_노래방에서_노래하고_있는데_누군가_취소버튼을_누른다면_자캐는 부르던 부분까지는 끝까지 부르고 나서 누가 취소했냐고 나무라기! 진지하진 않고 장난스럽게 따지는 거지만~ 실수라면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부르던 거 다시 선택해서 불러. 근데 일부러 계속 취소하는 거라면…… 그날밤 도깨비님의 사소하게 무시무시한 저주가 내릴지도 ◠‿◠
356 자캐의_교복_입는_스타일 블레이저! 귀찮다! 조끼! 귀찮다! 넥타이!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셔츠 단추! 풀었다!
523 자캐는_사랑한다는_말을_듣는_것에_익숙한가 어... 아니요 가족... 원래부터 없음 연인... 없음 친구... 친구는 있지만 친구한테 사랑한다는 말은 보통 안 하죠?
등 뒤로 들려오는 의아한 목소리와 그에 대한 항변을 들으며 케이는 유쾌해졌다. 뭔가 귀여운 후배님을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면, 음... 정답이다.
후배님을 골리기 위해 교무실 안까지 들어가는 것 또한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부끄러움을 타는 듯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노트를 내려놓고 다시 인사를 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교무실 밖으로 나가려는 행동에 기꺼이 동참해준다. 선생님의 의아한 표정에 케이는 후배님에게 끌려가주면서도 가보겠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케이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이 학생은 분명 선생님이 내준 이 심부름을 완벽하게 혼자 해내고 싶었는데, 자신과 같은 방해꾼이 끼어들어서 혼자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선생님에게 보여준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군데군데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으나 그나마 제일 논리적으로 맞는 가설이었기에 그것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교무실 밖으로 나오자 후배님이 문을 닫았다.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 케이는 후배님을 살폈다.
“심부름을 무사히 끝낸 것을 축하해요. 2-A반 타카하시 ...하네 후배님.”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면 보통 노트 겉면에는 반이 적혀져 있기 때문이고, 성은 방금 선생님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으며, 이름은.... 방금 명찰을 보고 알았다. 중간에 잠시 말을 쉬었던 것도 한자를 읽느라. 아마 하네라고 읽는 것이 맞겠지.
다시금 친절하게 쓰여진 편지봉투의 문구, 늘상 있는 일이라는듯 가볍게 쥔 편지칼이 망설임 없이 앝은 종이를 가르며 곧은 선을 내어주었다. 언제나 들어도 기분좋은 사각거리는 소리, 아마 이것 때문에도 굳이 편지칼이라는 물건을 고집하는 거겠지.
다만 이번에 같이 온 것은... 제법 크기가 되어보이는 선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어리와 필기구, 만년필에 비하면 무드등은 그 성격이나 쓰임새 역시 다르니까.
아니, 어찌보면 비슷한 걸까? 자신 역시 편지를 쓸 때에는 너무 밝은 곳이 아닌 은은한 불빛이 있는 장소를 더 선호하기에 얼추 들어맞을지도 몰랐다. 무드등의 특성상 너무 밝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얘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이것 역시 보통 물건은 아닌지 예전엔 본적 없던 디자인의 것이었다 더욱이 적당히 골라서 주었대도 감지덕지이거늘 점원과 오랜 상의까지 해가며 고른 것이라니, 아무래도 이 마니또는 선물 하나하나가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이는 것을 넘어 그 의미들까지 고려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인가보다. 아마 그랬기에 첫 선물부터가 큰 의미를 가졌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무드등을 장식하는데에 쓰인 꽃들 역시 가장 싱그러울 때 보존된 상태로 잘 꾸며져 있었다.
[통칭 '오렌지 테러'님께,
그렇네요. 이번으로 세번째랍니다. 이번 선물 역시 본격적일 거라곤 생각했지만 항상 예상 외의 무언가를 보여주시니 매번 새롭게 느껴지네요. 더욱이 선물을 고를때에 쏟은 마음까지 함께 포장이 되어있는지 여느 꽃들에게서 맡을 수 없던 '정성'이라는 이름의 향까지 느껴지는듯 하답니다. 채우지 못하겼던 그 아쉬움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질 정도로 말이죠.
제 이야기라면 그저 여느 여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고 생각한답니다. 생각보다 재미없을지도 모르는 걸요. 근처 디저트 가게가 신경 쓰이고, 여느때와 같이 나른했던 하루에, 봄을 알리는 청명한 하늘이 가볍게 코를 간질이는 바람을 이끌어주었던 하루 같네요. 당신의 하루 역시 그러했을까요? 그렇다면 그 날은 행복했나요? 기분이 좋았나요? 어딘가 들뜬것 같았나요? 아니면 무언가에 안긴듯 편안했나요?
오늘도 좋은 매듭을 지었던 하루였길, 만약 미처 매듭지어지지 못한게 있었다면 그 다음날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지을수 있길 바랄게요.
교무실을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황급히 선배님의 옷에서 손을 떼요. 교복은 다림질을 자주 하는 옷인데 괜히 주름이 잡히면 안 됩니다. 이 짧은 쉬는 시간 사이에 잘도 무례와 실례를 많이 저질렀으니까요, 더 이상은 안 될 일이에요. 이제 선배님에게도 인사를 하고 교실로 사라져야겠습니다. 뛰어가는 것보다 빠르게, 정말 사라지고 싶어요...
“...유치원생 아니라니까요.”
반과 이름은 어떻게 알아낸 건가 싶은데, 공책 탓일 것 같아요. 학반과 번호, 이름을 적어두었으니까 떨어트리고 쏟아지던 그 사이에 이름을 보았다고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명찰도 있고, 선생님이 절 부르기도 하셨으니까 들켜버린 거에요. 이미 알아버렸으니 뭐라고 하지도 못합니다. 저도 선배님이 하시모토 씨라는 걸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축하받을 일도 아닙니다.”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장난기도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일부러 콕 집어서 축하한다고 하시는데, 전 이미 심부름을 많이 망쳤습니다. 무사히 배달을 완료했지만 그 사이에 선배님도 넘어뜨리고 도움까지 받았으니까요. 상냥하지만 짓궂은 분이실지도 몰라요.
“...안녕히 계세요.”
더 어물쩍거리다가는 또 무슨 장난을 치실지도 몰라요. 쉬는 시간도 끝나버릴테고, 인사를 합니다. 도망이 아니라 교실로 돌아가는 거에요!
하얀 바탕의 몸에 이마와 등을 타고 노란 털이 보송보송 돋아난 날씬한 토종 고양이였다. 고양이에 홀려 여기로 온 것은 아니었어서, 뒤늦게 고양이가 나타나자 그도 잠시 동그란 눈을 해 보인다. 제 쪽은 동물 있어도 상관 없는데 저 이름도 모를 동행인은 어떨지 모르겠다, 하고 고개 돌려 뒤를 확인한 그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슬쩍이 스쳤다. 표정은 딱딱한 듯해도 어쩐지 시선이 고양이에 꽂혀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좋은 의미로 말이다. 몇 세기 묵은 노인네 눈치 어디 가는 것 아니다. "그래, 그래."하면서 씩 웃어 보이는 표정 참 능글맞아서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 앞에서 버티고 있던 고양이는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타다닥 달려갔다. 일단은 피한 다음 멀리서 지켜보려는 듯한 눈치다. 사람을 반기기는 하지만, 알아가는 시간도 없이 남의 무릎에 덥썩 안길 정도로 경계심 없는 개냥이는 아닌 모양이지. 동물은 예뻐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편이라 대충 일별하고서는 메뉴판부터 확인한다.
"뭐 시킬래? 나랑 놀아주는 중이니까 내가 사도 좋고."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주문 시작한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2잔에 디저트 품목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5이란다. 이 정도면 여기서 밥 시켜먹는 격에다 혼자서 다 먹기나 가능한지 의심이 들지만, 아무튼 황당무계한 주문 끝마치고서는 미카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