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보니 그건 그렇다 어쩌면 제겐 그런 재능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예의 그 양아치들과 같은 폭력적인 태도를 남에게 보일 용기가 없으니 아무래도 미움받는 건 싫으니까 그래서 물러터진 거겠지 역시 재능 따위 없는 제게 걸맞다고 할까
"...생각해볼게."
미카가 느릿히 답하지만 이는 예의상의 입발린 말에 가까운 대답일 테다 이 후배의 말들이 결코 빈말이 아니래도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매진하기엔 너무 지쳐버렸다 매캐한 연기가 공기 속으로 흐릿하게 퍼져나간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미카는 다 태우고 얼마 남지 않은 꽁초를 뱉어내고 비벼 끈다 숨을 내쉬자 독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신경 써줘서 고맙네."
미카는 제 옷을 탈탈 털며 후배를 흘겨본다 무신경하게 툭 내뱉는 말이지만 그 속내만큼은 진심이었을까
요즘은 편지를 받으면 기대감에 속이 바글거립니다. 탄산을 처음 마셨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으니, 탄산이 빠졌다는 표현은 겸손이 과하셨던 겁니다.
꽃 압화라는 게 꽤 시간이 드는 과정이라 들었습니다. 책 사이에 꽃을 끼워놓고 한 번 닫으면 완전히 마를 때까지 다시 열어볼 수 없다죠. 찰나를 영원 속에 담기 위한 과정이지만 여전히 야속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다행히도 나는 좋은 벗을 두어서, 노력 없이 찰나를 간직하게 되었군요. 기분 아주 좋습니다.
추신. 어제는 봄의 시작을 보내시더니 오늘은 봄의 한창을 보내시는군요. 내일은 봄의 끝을 보내시고 저무는 꽃처럼 사라지실까 두렵습니다. 농담이에요.
단호하고도 즉각적인 반응에 그는 배를 붙잡고 웃었다. 눈 가늘게 뜨며 입꼬리 씨익 끌어올리는 표정이 무척이나 얄밉다. 놀리기라도 하듯 흐르지도 않은 눈물 닦는 시늉 하더니, 자판기에 비스듬히 기대며 팔짱 끼고 말한다.
"당연히 농담이지. 내가 지금까지 이걸 얼마나 때렸는데, 그게 진짜면 오늘밤에 자판기 귀신이 나 죽이려고 찾아올걸? 내일도 내가 살아 있으면 귀신은 없는 걸로 치자."
농담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결국 확실한 부정은 아니지 않은가. 저주라니, 맹랑하기도 하지. 무서워하면서 던질 원망이 실제로 해봤자 얼마나 아프겠냐마는, 그는 초등학생을 상대할 때도 진심으로 나올 정도로 유치한 신인 관계로 이것을 사소한 보복 쯤으로 치기로 했다. 어린 여자아이 장난 정도는 귀엽게 봐줘도 되는 것을 참.
린은 안즈가 제 화려한 사고 경력에 말을 잇지 못하자 한손을 들고 브이자를 만들어 보였다. 자랑할 일 아닌데도 표정이 참 뿌듯하다.
"일부러는 아니야! 그건… 그, 뭐냐. 어쩔 수 없는 필연이고 비극이었지."
장난치다 실수했다는 소리를 참 번지르르하게도 한다.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앞으로도 계속 이 빈도로 사달을 냈다가는 조만간 크게 징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놀랍게도 그는 학교생활에 나름의 책임의식을 가지고는 있었다. 어찌되었든 애 학교생활 도와주려 온 건데, 정작 처벌 같은 것 받느라고 제대로 못 붙어 있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러니만큼 같이 가서 이야기해 주겠다는 안즈의 호의는 참 중요했다.
"선배님은 참 마음씨가 좋네. 그럼 지금 갈까?"
속으로는 웬만한 학생들 모두 한창때 어린애라 생각하는 주제에 선배라고는 잘도 부른다.
"이름이라면 어느 쪽이든 상관 없는데……. 그럼 공평하게 상으로 하자. 나는 안즈 씨가 더 마음에 들거든."
어감으로 시작해서 어감으로 대충 끝나는 호칭 정리,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나 싶지만 둘 모두 신경쓰지 않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조합이다 싶다. 아무튼간에 안 되는 기계 더 붙들고 있어봤자 소득은 없을 테다. 린은 습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먼저 쌩하니 사라지려다, 다시 후다닥 돌아와 조금 떨어진 저편에서 손짓하며 씩씩하게 외쳤다.
평범한 오해와 착각이었다면 심약한 소녀의 호들갑 정도로 그칠 상황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소년은 이매망량이 맞다! 심지어 신성한 귀신이기까지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그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인 셈이다. 비량이라 해도 말하지 않은 생각까지 읽어내는 재주는 없으니 상대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슨 의심을 하는지는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손 붙잡고 신나게 흔들던 동작이 어떻게 했냐는 질문을 듣자마자 뚝 멈추고 만다. 그러나 웃는 얼굴만은 여전한 채, 그는 속으로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이런, 저 여아가 가까이까지 와서 확인하지만 않았다면 안에 숨은 공간이 더 있었느니 하는 식으로 둘러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상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봐 버린 시점에서 골몰해 봤자 이 의심을 논리적으로 파훼할 만한 핑곗거리는 달리 없으리라.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자고로 찔리는 게 있을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는 법이랬다! 그는 여학생의 손을 놓고 제 턱 매만지다 검지를 척 세웠다. 명랑한 음성이 창고 안에 울려퍼졌다.
"아하, 그건 말이지! ……알면 다쳐."
이딴 게…… 설득? 린은 단 한 치의 주저 없이 당당하게 배를 쨌다. 그래도 목소리는 농담하듯 가벼워 장난스레 들리는 투다. 문제가 있다면 그가 상대 여학생의 성격이 대범함과는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건데. 그리고 일순 그 말에 호응하듯 창고의 조명이 가늘게 떨리며 깜빡거렸다. 그가 손쓴 건 아니다. 오래된 등이 때마침 맛이 가려는 모양인데, 하필이면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입만 빙긋한 얼굴로 푸른 시선이 녹색빛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평소에는 그리도 입 다물지 않고 종알종알 떠들어대곤 하던 주제에 그는 그대로 말이 없었다. 이미 뻔뻔하게 밀어붙이기로 한 거, 상대가 넘어가줄 때까지 더 변명 않고 부담스럽게 쳐다보기로 한 것이다. 뜬금없고도 괴상하며 어색한 정적이 어둑한 공간에 켜켜이 쌓여간다.
이 남자애, 싸늘하게 생겨서는 은근히 친절한 구석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반말 해가며 귀찮게 굴어도 욕 한 마디 안 하고 말이야. 보통은 하다못해 짜증이라도 내기 마련인데. 떨떠름한 얼굴을 마주하자 린은 이를 드러내며 짓궂게 웃어 보였다. 그러던 것도 잠시, 역으로 목적지 정하라며 상대가 결정권을 넘기자 입을 쩍 벌리며 경악을 했다.
"믿었는데…!"
뭘? 담 많이 넘어 본 듯 능숙한 행동거지로부터 '잘은 몰라도 좋은 곳 가겠거니 하는 확신'이 들었단 말이다……!
충격은 짧았다. 어차피 호들갑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니니까.
"글쎄다. 뭐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 먹는 거나, 노는 거나, 게임이나, 뭐 그런 종류."
제 내키는 곳으로 가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겠지만 그래서야 평소 하는 짓이랑 크게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아무튼 결정은 결정이고, 얼른 나가는 것부터 해야겠다. 여기서 계속 얼쩡거리다 들키기는 사절이다. 다시금 린은 적당한 틈을 찾아 붙잡고 훌쩍 뛰어 담 위로 올랐다.
떠올리는 중이던 그녀의 옆에서 "그래, 잘 맞춰봐!" 하는 한마디만 내뱉고는 맞춰보라는 양 실없이 웃기만 했다. 아침? 학교? 아니면 뒤늦게 깨닫고 라인으로 보낼 수도 있겠다. 언제쯤 답을 보내줄지 가늠하는 눈이 재미있다는 듯이 연신 휘어져 있다.
"에, 진짜? 난 리링이 내심 음악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원하는 진로는 없어?"
놀란 듯 살짝 커진 눈이 깜빡깜빡 감았다 뜨였다. 자신의 살아갈 동기를 준 것이니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공연 당시의 리오의 모습까지 떠올랐는데, 그걸 보곤 자신이 리오였다면 이걸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 싶을만한 감상이 들었다.
"단연코 칭찬! 너만의 개성이 있다는 뜻이니까. 앗, 어려웠나? 그치만 나도 바보인걸. 3학년이 되면 훨씬 열심히 해야 하는데 지금도 성적 완전 엉망진창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쿠루마는 아하하 웃는다. 말한 내용치곤 그닥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다.
"와아, 리링이 말해주는 내 첫인상! 기대돼~."
엎드려서 턱을 괸 손을 바꿔 양손바닥에 턱을 댄 꽃받침 자세로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아~ 기억난다."
피어싱이 그렇게 많은 사람은 별로 못 봤으니 신기했었다. 메이드 카페도 잇따라 떠올려진다. 그런 카페는 처음이라 엄청 두리번거렸었지. 모두 귀여운 복장을 입었고, 분홍빛 가득한 게 참 귀여웠다. 음식들도 굉장히 모에한-. 아, 그치만 아저씨들은 귀엽지 않았어. 그 이후로 마음을 열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게 된 게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아하하, 무슨 말인지 아니까 진정해~. 응! 나도 리링은 둘도 없는 친구야."
리오가 자신을 어떤 이미지로 생각하는 지는 대강 안다. 그걸 생각하면 살짝의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다만 지금은 즐거운 파자마 파티고, 곧 밤이니 이런 깊은 이야기는 생각할 필요 없지. 무쿠루마는 꽃받침을 한 손을 내려놓고 엎드려누웠다. 팔에 볼이 짓눌린 채 리오를 바라보았다.
"나도. 오늘 혼자 잘 수도 있었는데 리링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아, 초대해줘서 고마워."
그러면서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슬슬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 속이 안 좋아서 답레 길이가 이 모양이네요 죄송한 마음 뿐⋯⋯ 8 8 답레만 올리고 다시 가보겠습니다!😢☺
도둑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들었는데도 선배님은 화난 기색 하나 없어보입니다. 저였다면 억울한 마음에라도 공책들을 다시 돌려주고 도와주지 않았을 거에요. 제가 괘씸하기 짝이 없을텐데 오히려 절 보고 웃어주셨습니다. 선배라는 것은 저렇게 아량이 넓고 이해심이 풍부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좋은 선배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혼자 할 수 있다고 했었어요.”
도움을 받을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고 모두 제 부주의로부터 벌어진 일입니다! 이제 제가 앞을 막고 섰으니까 더 이상 선의를 베풀 수 없을 거에요. 상냥한 선배님의 선의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쪽이 맞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선배님에게 공책을 달라고 손을 뻗으려는데, 머리 위에 뭔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선배님의 말에 따르면 제 머리 위의 이건 분명 공책이에요! 고개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굳어버렸어요! 심지어 공책을 떨어뜨리지 않고 뒷걸음질로 다섯 걸음을 가야한다고 합니다.
“...유치해요.”
하지만, 딱 다섯 걸음만 걸으면 된다면... 해볼만 한 것 같습니다! 이래봬도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까, 자세를 고정시킨 채 움직이지 않는 것 쯤이야 자주 해봤습니다. 고개만 움직이지 않고 조심해서 걷는 것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거에요. 조심조심 뒤로 발을 디뎌봅니다!
"팔찌. 길이조절 조금 힘들었는데." 투덜거리듯 말하지만 잘 끼워져있는 것을 보면 빈말인 걸 알 수 있습니다. 팔찌와 손목 사이에 드리운 그림자가 느릿하게 흔들리고. 마니또가 두고 간 차와 다과를 보고는 조금 고민합니다. 먹을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봄을 담은 선물은 예쁘고.. 그냥..
"삼켜버리기엔 아까운데." 라고 했을 것이고, 아마. 사야카는 집에서 그림자를 뒤진 끝에 전기포트를 겨우 찾았고 그걸 설거지를 한 뒤 차를 끓여서 다도 시간을 가졌을 겁니다.
[...꽃차의 향과 수색만 보려다가 같이 먹어버렸어.] [팔찌도 예쁘네.] 쪽지만 놓으려다가 멈칫하고는 고민하듯이 책갈피 하나를 놓습니다. 네잎 클로버를 코팅해 만든 책갈피네요. 작은 선물이었을까요?
따라오라는 말에 미카는 두어 발자국 떨어져선 잠자코 후배를 따라나간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이쪽을 흘겨보며 기침해도 별 신경쓰지 않으며
뒤이어 후배가 교실로 들어간다 미카는 복도 벽에 몸을 기댄다 고약한 냄새 풀풀 풍기며 1학년 복도에 서있는 2학년이라... 상당히 웃긴 그림이다 몇 명인가 이쪽을 째려보고 지나가기도 하고 불쾌하다는 듯 부채질하며 빠르게 걸어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미카는 눈썹 하나 꿈틀이지 않고 그 모든 경멸의 시선을 받아낸다
교실로 들어간 후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복도로 나왔다 벽에 기댄 몸을 바로하지도 않으며 미카는 저를 찾는 후배에게 눈짓한다
무슨 말을 하면 꼬박꼬박 대답하는 것이 꽤나 귀엽다. 그 내용이 딱딱하고 툴툴거리는 내용이라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3학년이 되어 최고 선배가 되니 깍듯한 후배들만 많아져 이런 후배님이 오히려 흥미롭다. 아, 그러고보니 이전의 붉은 머리 소년도 꽤나 재미있었지.
“네. 들었었죠.”
작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혼자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공책을 함께 옮겨주려고 한 것은 케이의 독단이었다. 학창시절의 작은 이벤트 조차 소중하게 여기는 것 + 이 후배님의 반응이 재미있었던 것이었으니까.
유치하다고 하면서도 정수리 위에 균형잡아 올려놓은 공책을 유지한 채 뒷걸음질치는 후배님의 모습에 케이는 웃음을 참았다. 웃음을 참지 않고 뱉어버리면 분명히 이 딱딱한 후배님이 한 소리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후배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케이는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며 같은 거리를 유지했다.
생각보다 꽤 균형감각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뒷걸음질 치면서 균형을 잡는 것은, 그것도 얇은 공책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것을 케이도 알고 있었기에 장난을 친 것이지만 말이다. 결국 공책은 후배의 정수리 위에서 툭 떨어졌고, 케이는 그 공책이 후배의 어깨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잡아챘다.
“실패네요.”
케이는 얄밉게 웃었다. 잡아 챈 공책을 다시 제 품의 다른 공책 위에 올려다 놓으며 케이는 교무실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