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공책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수행평가에 반영되니까 조심히 잘 옮겨야 합니다. 선생님이 제게 맡겨주신 것이기도 하고, 같은 반 학생들의 점수가 걸려 있어요. 벌써 2학년이니까 교무실이 어딘지는 잘 압니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자만은 금물인데, 자만해버린 죄입니다...
“어?”
공책들을 차곡차곡 잘 쌓아서 옮기고 있었는데, 계단에서 벗어나 모퉁이를 꺾을 때 누군가가 시야에 아주 가깝게 들어왔습니다. 부딪치고 말 거에요! 뒤로 피하려고 했는데, 피하려다 보니까 공책들도 쏟아지려 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빠르고 날쌔게 움직였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텐데, 결국은 둘 다 실패했습니다. 뒤로 가려던 발은 오히려 꼬였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사이 모르는 학생과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공책들은 크게 쏟아졌습니다. 부딪친 분은 다치시진 않으셨을까요? 크게 넘어지셨으면 큰일입니다! 공책들은 찢어지거나 구겨지고, 상한 페이지가 생기면 안 되는데 이것도 큰일이에요!
“그, 저기요, 안 다쳤어요?”
정신이 없습니다! 아야—하는 소리가 나올 뻔한 걸 집어삼켜요. 제가 넘어진 걸 신경쓰기에는 신경써야할 부분이 너무 많아요. 넘어지는 소리에 복도의 다른 학생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민망해집니다. 일단 가까이 있는 공책부터 하나 집어들어 품에 안습니다. 다른 손으로 만지작거려보니 교복 주머니에 반창고가 있습니다. 다치셨다고 하면, 온전히 제 잘못들이라 보건실에 데려다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몸이 두개면 좋겠어요!
남궁 린은 오늘도 수업을 쨌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수업 과목이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엎어져 자거나 잠깐이라도 딴짓을 하는 학생은 절대로 용납 못하는 깐깐한 선생이 들어오는 수업이니 들어 봤자 무슨 꼴을 당할지는 뻔했다. 얌전히 앉아서 잔소리나 듣고 있기는 싫었다. 그가 이전 수업 종이 치자마자 슬그머니 사라져, 종 칠 때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된 사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천년을 넘게 살아도 수학이 재미없는 걸 어쩌겠나! 차라리 문학이나 미술이었다면 대충 때울 수라도 있는데. 사실 그런 구실이 없었더라도 언제든 내킬 때면 제맘대로 빠지곤 하는 그였지만, 그 선생 수업은 이런저런 이유 구구절절 대게 될 만큼이나 싫다는 진저리의 발로였다. 그런 만큼 제멋대로 나돌며 누리는 자유의 맛은 달았다. 하지만 막상 나와서 생각을 해 보니 갈 만한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수업 시간이니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바깥에서 시끄럽게 굴다간 머지 않아 들켜서 불호령이 떨어질 테고. 어디에서 무얼 할지 고민이나 하며 아무렇게나 걸음 놀리던 그는 걷다가 다다르게 된 담장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들어올린 시선 끝에 담벼락을 넘으려는 듯 준비를 하고 있는 누군가가 들어왔던 것이다. 지금은 명백한 수업 시간, 도망가듯 교문이 아닌 담으로 나간다는 뜻은 곧…… 그거지.
동지다!
멋대로 남을 비슷한 동류 쯤으로 해석하는 짓이 참 양심 없다. 린은 실없는 웃음 실실 흘리며 빨간 머리 학생의 앞에 길 막듯 불쑥 튀어나왔다. 뒤에서부터 서둘러 달려왔을 텐데, 눈앞에 보이기까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오, 불량학생. 담 넘어가려고?"
그러는 본인도 썩 단정한 품새는 아닌데 말이다. 순진한 아가씨 길 막고 수작부리는 불량배라도 되듯 담벼락에 팔 세워 머리를 기댄다. 눈앞에 보이는 이는 가녀린 아씨보다는 꽤 성깔 있어 보이는 남고생이지만.
3학년에 들어서니 주변 학생들도 그렇고 진로에 대한 걱정을 스물스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에 불을 지핀 것은 진로 상담이 아니었을까. 케이 또한 교무실에서 진로 상담을 한 뒤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진로라. 대학에 진학해야지 하는 생각을 최근까지 하고 있었기에 꽤나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대학 졸업 후에는 다시 신계로 돌아갈 생각이니 취업이 잘 되는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학과 과목이 꽤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모퉁이를 도는 곳에서 무언가와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아마 부딪힌 것은 학생인 것 같았다. 그리고 공책들이 크게 쏟아져서 바닥에 다 엎어지고 자신 또한 그 학생과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
“아, 네. 괜찮아요.”
앞의 학생의 리본을 보니 후배님인 것 같았다. 학생은 앞으로 넘어졌고 자신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다른 점이랄까. 그래도 크게 아프거나 한 곳은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후배님은 다친 곳은 없나요?”
일단 넘어진 몸을 바로 세우기 전에 한쪽 무릎만 바닥에 댄 상태로 쪼그려 앉아 공책부터 품에 안는 후배님을 바라봤다. 흙바닥이 아니라서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손바닥이나 무릎 같은 부분이 상했을지도 모르니 꼼꼼하게 눈으로 살핀다.
아이자와 치아키: 225 꽃은 좋아하나요? -정말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꽤 좋아한답니다. 제일 좋아하는 꽃은 푸른 장미라고 하네요. 그 신비로운 느낌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고 해요.
216 본인에게 의미있는 숫자가 있다면? -610! 왜 610인지는 치아키만 안다고 하네요. 혹은 오래 친구로 지낸 이들도 알지도 모르고요!
296 화를 삭히는 방법 -오락실에 가서 태고의 달인 게임기에 간 후에 막막 강하게 북을 치고 그런답니다. 그렇게 북을 치면서 나름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에요. 혹은 혼자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서 홍차를 먹으면서 정신을 가다듬거나 말이에요. 참고로 태고의 달인을 막막 내려치다가 어느새 흥이 나서 덩실덩실하는 것은 덤이에요.
>>15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그건... 그건 분리수거 할 만했다... 누가 그런 말 하면 아저씨가 쓰레기봉지 준비하겠대(?)
>>164 푸른 장미를 좋아함.....(메모) 610 하니까 일단 생각나는 건 6월 10일인가??라는 정도...🤔 정확한 의미는 뭘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치아키 처음에는 화났다가 신나서 덩실덩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아악 귀여워서 죽어..~~!!!! 봐 이게 치아키가 귀엽다는 증거라구!!!!
점심시간 종이 친 시간 다들 급식을 먹거나 도시락을 먹으러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미카는 으슥한 교정의 변두리로 향했다 다른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눈이 닿지 않을 만한 곳이다 미카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서 주머니에서 뭔갈 꺼낸다 라이터와 담배갑...인데 이미 개봉해 몇 개비가 없는 중고품이다 설명하자면 운 좋게 구했다고 할 수 있다 평소와 같이 땡땡이 친 건으로 교무실에 불려갔는데 어떤 선생의 자리인지는 몰라도 담배갑을 올려둔 책상이 보인 것이다 글러먹은 미카는 그걸 뽀려온 거고 그러니까 그런 걸 대놓고 올려두면 어떡해? 학생들 정서에 악영향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아무튼 덕분에 이득본 셈이니 나쁠 건 없다
한참동안 주위를 둘러보던 미카는 구름과자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인다 점차 고약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나간다 이건 예전에 피던 것보다 훨씬 독하다 미카는 밭은 기침을 연신 하면서도 입에 문 걸 뱉지 않는다 중독이란 건 쉽사리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참고로 오너는 미성년자의 흡연을 옹호, 권장하지 않습니다 착한 학생들은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다행이에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공책만 주워서 교무실로 가면 될 것 같아요. 바닥에 무릎을 디딘 높이, 거기서 더 높아질 생각 없이 공책을 줍습니다. 학번 순으로 정리했었는데 의미없게 돼 버렸어요. 다행히 눈으로 대충 훑어봤을 때는 상한 공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뭔가, 무언가 이상합니다. 시야에 공책 말고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계속 있습니다. 넘어진 학생이 자리를 떠나지 않은 모양이에요.
“오지랖이에요.”
물끄러미 바라보니 넥타이 색이, 선배님입니다! 후배님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웬 후배 때문에 복도에서 넘어졌는데, 혼내지도 않고 좋으신 선배님인 것 같습니다. 절 걱정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일부러 저 말을 하기 위해서 남아계시는 가봐요. 상처가 나진 않았나 살펴보시는 것 같기도 해서 치마 아랫단을 잡아서 꾹 끌어내렸습니다. 허리에 맞춰져있으니 치마가 더 내려오진 않지만, 이러면 선배님 가실 길을 가시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켜주세요.”
공책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넘어졌는지 선배님 근처에도 떨어져 있습니다. 줍기 위해서는 선배님이 비켜주셔야 해요. 아까운 쉬는 시간을 여기서 쓰시지 말고 할 일을 하시러 가셔야할텐데요...
>>164 푸른장미가 분명 원래 없는 색인데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거였지—! 그래서 꽃말도 기적이었던가.... 신비하단 말이랑 잘 맞는 것 같아. ☺️ 610..... 6월 10일? 이제부터 제 생일은 6월 10일입니다. 😉 태고와 홍차구나! 벌써 스스로 화 다스릴 줄도 알고 언제 이렇게 다 커서는.... 훌쩍 🥹
>>167 생활공간 분리가 확실한 똑부러진 하야토........ 장 인테리어는 어떨까 흥미로워지는 부분입니다 🤗
>>170 귀엽고 애교많은 타입, 접수. 앗 유즈루쨩~! 😊 (그만하겟습니다) 아, 이런. 여기도 날짜인가....... 어쩔수없지. 제 음력 생일은 12월 4일입니다...... 😊 수염..... 수염..... 커서 기른다거나 🤔 n년 전 학창 시절 기억에 따르자면 남학생들 수염기르면 학생부 쌤이 쫓아왔던 것 같기도 하고.......?
>>171 이 말 보니까 왠지 돗가비신님 하네 SNS에 나타나는 악플러들 분리수거하는 거 생각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ㅜㅜ 아, 그 도깨비. 그 도깨비는 늘 쓰레기봉투를 갖다줬어.......... (??)
식권이 다 털렸다. 뭔가 나른~한 기분이라 터덜터덜 식당으로 갔더니 이런 일이 될 줄은. 빈 속으로 오후 훈련까지 해야하는 건가~ 이거 위험하지 않아? 쓰게 웃으며 시들시들한 야키소바빵을 사들고 구석진 교사로 간다. 딱히 옥상이라던가, 운동장 벤치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말했다시피 나른한 기분이니까, 말 걸어오는 것이 싫어서.
노이즈캔슬링을 켜고 헤드셋을 쓴 채로 걷다보면 어느새 어둡고 좀 매캐한, 그런 곳. 원래 이런 냄새는 나지 않던 거로 아는데~ 뭔가 담배같지 이거. 하며 코를 막고 주변을 둘러보면 기침하고 있는 녀석이 보인다. 아, 선배로군.
헤드셋을 벗자 그제야 기침소리가 들렸다. 기침하면서도 왜 담배를 피는 걸까. 참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얼굴로는 슬쩍 웃으면서 말을 붙였다. 말 걸어오는 게 싫었던 주제에, 남이 있으니 본능적으로 붙이고 마는 것이다.
"안녕하심까 선배님~ 요란한 거 피우시네여, 오늘 좀 그런 기분이심까? 원래는 여기서 뭣 좀 먹으려 했는데, 음~ 별로시면은 제가 다시 가볼게여."
사실 쫄리기야 하지. 나는 코오리야마에서 오냐오냐 어머니 치마폭 안에서 자란 건아라고. 솔직히 기침을 참는 것도 고역이다. 하지만 어쩐지 자기보다 조금 작은 키나, 사나워보이는 얼굴을 한 주제에 기침을 하고 있어서, 쾌활하게 말을 붙일 수가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문제는 치맛닷을 잡아 내리는 것을 보니 제 시선을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을 뿐이었다. 2년간의 학창 생활을 하는 동안 꽤나 이미지 관리를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면 아쉬울 것 같긴 하다.
케이는 비켜달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떨어져 있는 공책들을 주워 몸을 일으켰다.
“이 공책들은 교무실로 가져가는 건가요? 아, 혹시 빠뜨린 건 없는지 한 번 세어보는 것이 좋겠네요. 넘어지는 바람에 공책이 한 권이라도 사라진다면 낭패일 테니까요.”
혹시 주변에 더 떨어진 공책은 없는지 확인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선업이나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케이였다. 혹시 아는가. 열심히 선업을 쌓고 도를 닦다보면 자신도 고위신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