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출발은 결국 무엇에서부터 믿음을 증명하는가. 그 부분에서 시작된다. 믿기 시작하는 이유, 믿음을 유지하는 이유. 그 다양한 이유들이 모여 신앙을 만들어내고, 그로부터 믿음을 존재하게 만든다. 우리 역시도 아버지께서 '존재하라'는 말로써 세상을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시작하지 못할 존재였고, 그로 하여금 세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믿음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이 믿음이 날 빚어내었고, 나를 아버지의 품에 존재하게 하였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아버지의 믿음만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믿음을 자신만의 믿음으로써 빚어내기에 스스로 온전하길 바라는 자들, 스스로 깨달아 살고, 죽어감의 순환을 끊고자 하는 이들. 초탈한 존재가 되어 이 세상에서 벗어나려 하는 이들. 이 세상에 수많은 신앙이 존재하고, 그 신앙 모두가 이단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절절히도 알고 있었다. 단지 아버지의 믿음이 우선될 뿐. 그들의 믿음을 펌하하여서는 안 된다.
그래. 그들의 믿음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한다면 말이다.
"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
슬프게도 신앙이라는 존재는 그랬다. 옳은 믿음이 아닌, 옳지 않은 믿음이라도. 믿음은 뻗어나가게 만든다. 그것이 멸망으로 향하더라도 믿음을 벗어나는 것이 더욱 두려워서 그릇된 믿음에 자신의 신념을 담아. 이유를 만들어나갈 뿐. 그 믿음을, 그는 부정할 수 없다.
" 주여... "
그것 역시 그들을 품었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믿음에 빠져드는 것은 강물에 몸을 젹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 속에 있으면 언제 쓸려나갈지, 그 공포가 다가온다만 그 흐름 속에 안정을 얻어나가고. 그 흐름에 따라 더 먼 곳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처럼 거대한 바다에서 섬을 만날지. 상어떼를 만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예배가 끝난 흔적 위를 한 남자가 걷고 있다. 그 걸음은 무거우면서도 엄숙하다. 마치 이 풍경에 안타까워 걸음을 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는 걸음을 걷던 끝에 무너진 제단을 바라봤다. 그 눈길이 천천히 제단을 훝는다. 주위로부터 느껴지는 재의 향기. 기분 나쁘게 살이 타내어간 냄새. 그리고, 어슷히 남은 믿음의 잔재들로 그는 이 곳에서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그는 오른손 손등에 새겨진 역십자가의 문양을 쓰다듬는다. 감히 자신의 믿음의 뜻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게 그러했듯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손을 뻗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투정을 보내는 것이다.
' 분명 이 곳에서 예배가 있었다. '
제단이 존재하며, 믿음이 존재했다. 불과 불길. 마치 불나방처럼 고통에도 날아드는 것들. 이런 흔적을 가진 이들은 단 하나뿐이었다. 녹색의 불꽃. 그들이 이단의 불이라 부르는 존재. 세간에서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조금 달랐다.
열망자.
믿음에 남지 않고, 더 거세게 자신들을 믿음에 내던지는 자들. 그 믿음이 거짓되지 않았길 바라여 신에게 기도를 바치고, 믿음을 바치고, 마지막에는 영혼과 육신마저 내던진 이들. 더이상 영혼을 구하고자 하더라도 구할 잔재조차 남아버리지 못한 이들을 향해.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기도의 대상은 없다. 단지, 자신의 믿음에 기도는 흘러갈 뿐이다. 순진하게도 그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했다. 단지 그들의 믿음이 헛된 것을 향하였다 한들 옳은 길로 돌아올 수 있었으리라는 믿음을 전했다. 그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손을 뻗어주시길 믿었다. 그의 역십자가로부터 백색의 광휘가 터져나왔다. 성 베드로의 기적. 처음 그가 진실로 이 믿음을 전하였을 때. 자신의 아버지는 손을 뻗어주었다. 그가 간절히 바라였던 것. 옳은 길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내밀 손을 내려주는 것.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
제단이 불타오르며 그에게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 속에서 수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비틀린 믿음, 방향을 향해 힘껏 내달리는 이들을 막고자 손을 뻗었던 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에게 나타날 앞날까지도.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분명. 그 풍경은 처절했다. 소리를 지르는 자들, 무언가에 믿음을 보내어 절망으로 향하는 이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어 무기를 겨누는 장면들, 사람과 삶을 잃게 되는 풍경까지도.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풍경을 바꿀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것은 '대비하고 받아들여라'는 의미였고 또한 '두려워 말라'는 의미로써 미리 예지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선 믿음으로 이르는 이야기를 말해주셨을 지언정, 그 과정마저 예언하신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 일은 일어날 것이나. 그 과정에 있어 그들이 받아들이고, 이뤄낼 수 있는 믿음을 주기 위하여.
" 아멘. "
멸망의 숫자를 대비하는 이들. 신성으로써 일어난 세 명의 예지자 중 하나. 성 비텐체르그는 눈으로 보았다.
그 예배를 막은 이들의 미래를. 그리고, 그들의 길에 있어 자신들 역시.. 눈길을 주어야만 함을.
▶ 어긋된 믿음의 종착지. 정화를 위한 녹색 불길. 양류자 사태가 종료되었습니다. 이는 특별반이 정식으로 해결한 사건 중 하나로 편입되나, 정식 진행이 아니므로 그 영향력이 크게 들어나지 않습니다. ▶ 참여한 캐릭터들은 모두 '열망자 교단'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 이탈리아, 바티칸의 최고 무력 기관. 666 죄악심의회의 세 명의 세인트 중 하나인 성 비텐체르그가 특별반의 존재와 이번 사태를 인식합니다. 이는 캐릭터들의 행위와 흐름에 있어 적거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 아직까지 열망자들은 특별반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으나, 조심하십시오. 만약 그들이 특별반을 인식한다면 시나리오가 개변되거나 동시에 실행될 수 있음을 우선 공지합니다.
추리파트에서 강산이 사고흐름... 제가 능력이 안 돼서 자세히 묘사하진 못했는데 대강 이랬습니다.
'인선 자체는 이상하지 않지. 바다에는 아직도 몬스터 나오잖아. 근데 그런 외딴 섬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실종됐다고? 추가 실종자도 뭣도 없이 단신으로?' -> '아 무인도는 아니었구나' (여기서 살짝 머쓱) -> '근데 그럼 애초에 왜 실종신고 되었던 거지?' (임태현씨 조금 의심+섬 주민들도 살짝 의심함) '혹시 모르니 의뢰인 챙겨야지.' -> (통화 후) '역시 뭔가 수상한 게 있나보네.' -> (트럭 지나갈때) '어?' (불길한 예감 스멀스멀...) -> (트럭 뒤쫓으면서 통화 시도함)
열망자의 존재는 강산이 (본편) 특성 중에 넓얕지식 있으니까 대충 그런 위험한 사이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지만... 노트를 열어보지 않은 것 또한 열망자라는 게 그렇게 악명이 높다는데 함정일지 단서일지 모르겠군...나중에 열어보자!라는 것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