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는 설명은 자기가 해줬음에도 짐짓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이게 목적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마음 편하게 '뭐야, 꺼져' 할 수 있지만 이 쪽은 이야기가 조금 다른걸. 리오는 으음- 하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이런 쪽엔 취미가 없다고 말한데다가 오히려 온 김에 잔뜩 경험해보고 가는게 좋을 거라고 말한건 리오 본인이었으니까.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 하고 말했다. 이제 리오는 들어가고 다시 아리스가.
" 네 주인님- 그럼 요청하신대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
리오는 그렇게 말하며 에이프런에서 다시 마스크를 꺼내 턱에 걸쳐썼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쓰고 있는 쪽이 더 차가워 보이고 좀 더 눈빛이나 말투에 생기라던가 분위기가 더 잔뜩 들어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리오는 인상을 살짝 구기고 눈빛을 차갑게 바꿔버렸다. 바꿨다고 해봐야 평소 학교에서 보여주는 표정보다 조금 더 심해졌을 뿐이지만.
" 귀찮네. 짜증나게.. 쯧, 기다려 "
리오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아- 진짜 귀찮게하네, 짜증나게-' 하고 말하며 한 차례 더 뒤돌아 가만히 앉아있는 사에를 째려보았다. 그야 얼음공주의 악의라면 이런 것이니까.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옷을 정리하고 작은 팔로 웍에 기름까지 둘러가며 열심히 밥을 볶았고 계란 하나를 까서도 '예쁘게, 예쁘게' 하고 중얼거리며 정성을 담아주었다. 정성은 여기에서 잔뜩 들어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리오는 얼추 완성된 오므라이스를 들고 음식을 준비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방의 일부분이지만 밖에서 보면 훔쳐보기 딱 좋은 각도에 위치한 곳. 이것도 다 계산에 의한 서비스를 위해 이 곳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리오는 눈을 돌려 사에가 이곳을 바라보는지 슬쩍 확인하고는 다시 인상을 잔뜩 구겼다.
" 아- 진짜 귀찮네. 짜증나게. 왜 이딴거 시키는거야?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 큥☆!! "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정성을 담는다는 느낌으로. 사실은 보여주기 위한 장소니까. 맛있어져라- 하고 몇 번이나 주문을 외우곤 케찹을 들고 대충 휘갈겨 쓰는듯 하면서도 정성을 담아서 썼다. 죽어(死ね) 라는 두 글자를. 그리곤 한 손으로 대충 들고 밖으로 나가선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툭 내려놓았다.
" 자. 왔어. 짜증나. 짜증난다고 너. 귀찮게 왜 이거 시킨거야? 아- 진짜 짜증나네. 빨리 먹고 꺼져.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그보다 귀찮으니까 빨리 안 먹을래? 버블티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구 여기, 여기부터 먹어야 맛있어. 모양이 안 뭉개지거든. "
악의 반 정성 반. 리오는 그렇게 말하곤 사에가 스푼을 들고 가져가자마자 정지!! 하고 말하며 다시 싸늘하게 쳐다봤다.
" 뭐해? 아- 진짜. 어디서 이런 기초도 모르는게 찾아온거야? 자, 나 따라해. 손 이렇게 만들고. "
리오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안에서 했던것처럼 똑같이 주문을 외웠다. 인상은 살짝 찡그리고 눈빛은 차갑게 하고.
있으리라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마주해서일까, 살짝 놀란 듯한 얼굴을 금세 갈무리하던 도중 그녀에게 끌어안겨졌다. 어찌 되었든 간에 방금의 낯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행운이었다. 지금껏 보아온 리링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구슬처럼 섬세한 아이였으니까 말은 물론이고 비언어적 표현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럼 깨진 유리 조각으로 자신을 상처 입힐 테니까. 자신은 리링에게 그러한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무쿠루마는 볼 너머로 부벼오는 살덩이를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며, 비슷하게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응, 진짜 미야입니다--!”
경례하듯 한 손을 이마 위에 얹은 미야의 얼굴에 살짝 금이 갈 뻔한 위기가 닥쳤다. 공연 정보의 출처를 묻는 말에 무쿠루마는 자연스럽게 “음~”하고 말을 끌었다. 우연히 들었다던가, 영상을 봤다던가 하는 변명으로 빠져나갈 셈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알아서 납득해주었다.
“아, 그건 말이지⋯⋯, 그치. 게다가 나 SNS 많이 하니까 정보도 빠르거든! 리링이 공연하는 거 같길래 한달음에 달려왔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내뱉을 수 있는 것은 평소에도 사람들 틈 사이로 파고들어 관망하며 자주 관찰한 덕이다. 지금 이거는 주변을 조금 신경 쓰고 있는 거려나⋯⋯. 무쿠루마는 웃는 낯으로 힐긋 리링을 응시했다가 눈치라도 챌까 금세 시선을 떼었다. 이크, 또 버릇이 나왔네. 다만 제 친구의 공연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무쿠루마의 면 위로 떠오른 즐거움은 진실이었다. 그녀가 제 부탁을 승낙해 마스크를 내려주었을 때엔 “꺄악!”하는 긍정적 비명과 함께 팔짱을 끼지 않은 손으로 핸드폰을 번쩍 들었다. 공연 전에 셀카 몇 장 정도는 찍어야지!
“추억으로 남기자! 팬서비스로 사진 부탁해요, 리링 쨩~.”
한 팔은 리링의 팔짱, 한 팔은 핸드폰을 번쩍 든 채 방긋 눈을 접어 웃었다. 사진을 몇 장 연속으로 찍고 나면 사이좋게 팔짱을 낀 채로 리링을 따라 걸었다. 공연 당사자라 그런지 헤매지 않고 곧장 도착했다. 이런 길이었구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묘하게 다운 된 목소리가 들려와 그쪽을 쳐다보자 울상인 제 친구가 있었다. 친구와 떨어지려니 긴장이 심화하기라도 했나? 무쿠루마는 멀뚱히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달싹이는 그때,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하는 말에 무쿠루마는 ‘호오오-!’하고 입을 다이아몬드 꼴로 모은 채 나지막이 감탄하고는, 양손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눈을 빛냈다.
“응-! 진짜 대단해, 완전 어른 같았어, 리링-!”
순수하게 감탄에 온몸이 물든 느낌으로 잔뜩 방방거리다가, ‘앗’하며 크로스백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건넸다. 투명한 쿠키통 겉면에 ‘에쉬레 버터 쿠키’라 쓰여있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고, 그 안에 버터 쿠키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원래는 <체리 블라썸 펀치> 멤버들에게 선물하려고 오픈 런을 해서 비싼 값 주고 사 온 선물이지만, 솔직히 누구에게나 줘도 상관 없었고, 그 대상이 ‘호기심에 온 공연 가수들’과 ‘친구’라면 후자에 주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고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에쉬레 버터 쿠키야. 공연 전에 먹으면 목 마를 지도 모르니까 우유나 물 하고 같이 먹어. 너무 긴장하지 마, 어엄청 크게 응원해줄게!”
마지막 말과 함께 양팔을 원형으로 크게 벌린 뒤, 활짝 웃었다. 그리곤 “화이팅!”하며 주먹을 콩 하니 내밀었다. 마주 쳐달라는 의미로. 어떠한 의식이 끝나고 나면 무쿠루마는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프리패스여서인지 꽤나 앞이었다. 좋아, 이러면 보일 수도 있겠다. 연신 무언가를 주섬주섬 준비하더니 핸드폰으로 <리링 귀여워! 화이팅!(하트)라고 형광 핑크빛으로 쓰인 문구를 들어 올렸다. 무사히 마치자,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