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블라썸 펀치>는 노래에 별다른 감상도, 지식도 없던 자신이 묘하게 빠져든 유일한 인디밴드다. 어쩐지 익숙한 낯의 멤버가 있었던 탓일까? 위험천만한 짓이기는 하나 여기저기 인터넷 서핑하길 좋아하는 무쿠루마가 어김없이 전자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우연찮게 접했던 노래가 제법 흥미를 동하게 해서 블라썸펀치에 관해 찾아보니 웬걸, 이른 시일 내에 공연을 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용돈도 남아있고, 시간도 남아있었던 무쿠루마에게 그 공연을 보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 위기를 목전에 두고 제 친구인 ‘리링(이치노세 리오)’을 마주치게 되리란 건 자신이 미아가 된 사실보다 더 예측이 불가했던 일이다.
“⋯⋯리링?!”
그래서 현재, 무쿠루마는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간 채 얼떨떨하게 제 친구를 마주보았다. 검은 마스크, 수많은 피어싱, 귀여운 얼굴. 자신이 알던 리링이 맞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의문을 둥둥 띄워놓은 채 무심코 고개를 내렸다가 그녀가 멘 기타가 시선에 들어왔다. 비록 성적은 지구 내핵을 뚫고 들어가는 바보라지만, 인간 관계에 관해선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썩 빠른 편인 무쿠루마의 뇌가 잽싸게 활동을 시작했다. 옷 차림새나 멘 기타, 자신을 ‘보러 와줬냐’는 말은 그녀도 이곳에서 공연이 있다는 말 같았다. 체리 블라썸 펀치의 짤막한 영상에서 리링과 비슷한 얼굴을 봤던 것 같기는 한데⋯⋯. 에이, 설마. 그런 우연히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는 가능성에 의거해 무쿠루마는 리링의 상태에 대해 ‘어쨌든 여기에서다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확정 지은 상태였다.
무쿠루마는 마주 잡혀 흔들리는 손의 감각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악수가 끝나고서는 슬그머니 <체리 블라썸 펀치> 티켓을 스커트 주머니 속으로 물 흐르듯 숨겼다. 저렇게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데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블라썸펀치의 공연은 다음에도 볼 수 있을 테니까. 뭣하면 영상으로 봐도 되고. 낯 가리는 구석이 있는 리링의 공연을 볼 수 있을 날이 더 희귀할 것 같기도 하니까.
몇 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생각을 매듭 지은 무쿠루마는 활짝 웃어보인 뒤 다시 리링의 손을 양손으로 마주잡았다. 크게 뜨인 눈은 친우의 색다른 면모를 보는 양 반짝였다.
“그럼, 당연하지! 리링, 오늘 정말 귀엽다. 리링은 얼굴도 귀여우니까 마스크 벗으면 좋을 텐데. 아, 있다가 사진 찍어도 돼?”
분홍과 빨강의 조합으로 쁘띠 고어틱하게 꾸민 케이스를 끼운 핸드폰을 살랑살랑 흔들어보이다가, 이내 한쪽 손으로 겸연쩍게 뒷머리를 매만졌다.
“근데 사실 내가 길을 잃어버렸어. 괜찮다면 공연장까지 안내해주라아-⋯⋯.”
나의 <체리 블라썸 펀치> 안녕⋯⋯. 속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리링을 입꼬리를 올린 채 마주 보았다.
/ 모바일로 하다가 안되겠어서 컴으로 왔더니 잡다한 문장이 많아졌지만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A; (갸악) !
그리고 웃었다. 자연스럽게 웃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친 작위적인 미소가 아니라 제대로 자연스럽게 웃었다. 반응 하나하나가 재밌기도 했고 이렇게 또 친해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미쳐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 리오는 그렇게 미소를 짓고나서는 스스로가 조금 놀랐는지 헉 하고 한 차례 숨을 들이마셨다. 자연스럽게 나온 미소일까 아니면 그렇게 연습을 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미소였을까 하고 잠깐 생각이 일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손님이자 주인님이자 클래스메이트니까.
" 물론이에요 주인님- 자, 여기여기. 어떤 걸 고르셔도 모에레벨☆ 잔-뜩 이라구요 "
시즌 한정으로 나오는 버블티도 인기메뉴지만 일단은 점심을 걸러서 배가 고프다는 말을 들었기에 리오는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디저트나 달콤한 것이 위주로 나가는 곳이지만 식사가 될만한 메뉴도 잔뜩있다. 다만 그래도 뭐가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여전해서 몇 가지를 짚어 보여주었다.
" 우선은, 감자튀김은 좋아하시나요-? 튀김을 좋아하신다면 여기 피쉬 앤 칩스가 있어요- 생선튀김은 버거로 교체가능! 그리고.. 여기 얼음공주의 악의와 정성이 담긴 수제 철판 오므라이스' 이건 아리스가 직접 만들어드리고 있는 간판 메뉴랍니다- 당연하게도 아리스는 한 번에 한 명의 주인님만 모시기 때문에 한정메뉴이기도 하구요 "
그리곤 뭔가 눈치를 보듯 주변을 슥슥 둘러보던 리오는 고개를 살짝 숙여 조용히 말했다.
" 이거 말야. 보통은 매도당하는걸 좋아하는.. 그.. 그런 사람들이 시키거든.. 그래서 이름부터가 이런거라서. 사에가 보고싶다면 나 힘내보겠지만 그런 쪽에 취미가 없다면 그냥 보통의 오므라이스로 괜찮아. "
이 쪽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보고 '얼음공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서오세요 주인님-' 보다는 '뭐야, 꺼져' 가 더 반응이 좋다. 두 번 세 번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이 쪽에 취미가 있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까. 리오는 밥으로 해볼만한 메뉴는 이 정도라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 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버터 감자구이라던가.. 볶음라면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있네요 주인님-! 편하게 골라주세요. 아리스는 여기 있을테니까- "
해봤다. 놈이 본심을 드러내거나 정체를 밝힌 적이 없는 까닭은 서로가 진지한 연애는 아니었단 의미다. 하긴 누가 이 시기에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겠나. 놈도 그 사실을 알고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그편이 재밌기도 하고.
"그죠. 아직 청춘이라 진지한 건 싫어졌어요."
사춘기 시절은 이미 겪었으니 어리다는 말에 괜히 자존심 세우지는 않는다. 온 세상과 자웅을 겨루던 짓은 옛날 고리짝 시절에 그만뒀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방의 언행, 태도로 잠시나마 상대의 연배를 추측할 뿐이다. 보통 나이가 많은 신은 곁에 존재하던 자연물이나 원시적 개념을 따라가는데, 인간살이에 관심없는 태도를 보니 대충 맞지 않을까 감히 어림짐작해본다.
"아ㅡ 그러니까 고위신이 되고픈 야망이 없나보군요."
고위신격을 목표로 하지 않고 굳이 이곳에 보냈다는 건,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며, 놈도 조금 오지랖을 부려볼까 싶어졌다. 박수를 두 번 크게 치고는 잔소리하는 톤으로 돌변한다.
"자, 자.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청춘을 즐겨야하지 않겠습니까? 꽃놀이는 해보셨나요? 동성친구와 라인 잡담하느라 밤을 샌 기억은 있고요? 초대형 라멘 다 먹기 20분 챌린지는 해보셨는지요? 이 재밌는 걸 놓치면 안되지요."
히죽 웃는 걸 보니... 이 놈, 단순히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얄밉게 보인다!
'지금 너무 큰 걸 사버리면 들킬지도 모릅니다.' 아직 방을 다 꾸미지도 못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인형이 가득한 어설픈 침대위를 보이기는 싫기도 하니 폭신폭신한 인형을 안고 싶은 욕심과 이성적으로 생각한 현 상황 사이에서 중간책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껴안고 잘 수 있을 인형은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골라보도록 하죠.'
굳이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둘러본 결과 문의를 보낸 작성자의 작품은 게시된 글만 본다면 충분히 귀엽고 가격도 적당했다. 책상위에 쌓인 책을 한 쪽으로 밀어넣고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려보니 잠시 맛집을 둘러보려고 검색창을 누르기가 무섭게 답이 온다. 절로 지어지는 웃음을 꾹 누르면서 메세지 창을 띄운다.
아, 색상을 정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다 너무 귀여운데...
푸쉬식 기대하던 마음이 현실의 벽에 꺼지는 소리가 어딘가서 나는 것 같다. 읏, 아마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럴겁니다. 하지만 과소비는 전혀 어른스럽지도 않으며 지양해야할 습관입니다.
[네가지 색상 모두 너무너무 귀여워서 고르기가 쉽지가 않네요. 혹시 10대 후반 손님분들이 어느 색을 선호했는지 알려주시면 그 색으로 두개 고를게요]
고민하다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고른 색을 고르기로 마음 먹었다. 나머지 색은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살 수도 있을테니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속으로 생각하며 주소란에다가 가미즈미시로 새로이 옮긴, 할머님과 할아버지댁의 주소를 적는다.
그러고 보니 새로 옮긴 집은 꽤나 고등학교와 가깝네요. 이모티콘이나 말투가 인형처럼 귀엽다는 생각과 같이 별 다른 의미 없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진다.
리오는 몇 번인가 더 손을 흔들고 종국에는 두 팔을 벌려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이 마을에서 자신을 리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그래서 더욱 현실이구나아- 하고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을 보면 곧잘 '날 좋아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릴거야' 하고 말하는 리오가 그 말을 가장 잘 꺼내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 만큼 자신을 잘 바라봐주고 좋아해주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리오에게는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 에, 잠깐. 그보다 공연하는건 어떻게 알았어? 나 딱히 얘기한 적 없는데..? "
살짝 고개를 갸웃한 리오는 뒤이어서 그 조금 공허한 눈동자에 생기가 잔뜩 돌면서 마스크 뒤로 미소를 띄웠다.
" 말하지 않아도 아는구나!!! 응.응. 그렇네. 미야는 나한테 관심이 많으니까. 리오를 좋아해주니까 아는구나!! 여기저기서 정보를 들은거지? 그렇지? 응응. 그러네. 미야는 리오의 소중한 친구니까 잘 알고 있는거구나-! "
그렇게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곤 몇 번이나 고맙다던가 좋아한다던가 하고 말하며 또 다시 얼굴을 부볐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아니 어쩌면 오히려 신경을 더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면식도 하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마저도 '이 아이는 내 가장 친한 친구니까 절대 다가오지마' 하고 말하듯 그런 분위기를 풍기면서 과장하고 자만하고 의식하는 것이다.
" 칭찬해도 뭐 안나오는데에- 아, 그래도 미야가 그렇게 말한다면 해볼까나.. "
리오는 마스크를 긁적이다가 우선은 이 정도만 이라고 말하며 마스크를 내려 턱에 걸고 사진이라던가 잔뜩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친구이자 팬을 위한 서비스로 이 정도 출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팔짱을 끼고 꼭 달라붙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띄곤 살짝 홍조까지 띄운채로 '좋아-' 라고 말하며 길을 잃었다는 말에 자기만 믿으라고 일렀다.
" 시간까지 딱 맞춰왔네. 앞으로 30분이면 시작이니까 딱 좋게 왔어. 응. 그래두 나는 준비 때문에 먼저 들어가봐야 하는데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조금 울적해졌는지 살짝 울상을 지은 리오는 그래도 지금이 좋다며 또 팔짱을 더 꽉 끼곤 들러붙기 시작했다. 5분 정도 빙 돌아서 『입장은 이 쪽』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 서서는 '잠깐만' 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총총 걸어가 가드와 무어라고 말을 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 응. 내가 이야기했어. 이래보여도 나 오늘 공연이니까- 친구 한 명 정도는 프리패스로 보내줄 수 있어. 잘했지? 나 대단했지? 응? 그렇다고 말해줘- 아니면 상처받을지도 몰라 "
>>863 요리와 집안일아 노아주를 놔줘!!!! (퍼퍼퍽) >>871 (이 신님 너무 귀엽잖아 어이). >>874 사에주의 천사같은 입꼬리 터지면 안됏!!!!! (주섬주섬) 호러에 강한 여고생들 완전 최강⋯⋯!!!! 웃으면서 방탈출하는 그녀들.일까. 갑자기 든 궁금증 사에는 호러 좋아한다고 했는데 귀신같은 거 무서워하는 편인가요🙃? >>879 나 리오 라이브 보는 일상한다!!!!!!!!!(쩌렁쩌렁) 블라썸펀치 리링 사이쿄-! (현수막) >>886 이노리 신님 아기같은 얼굴을 하고 아주 어른같은 신님⋯⋯ 상냥함에 녹아내려요 🫠🫠🫠 요시요시 머리 쓰다듬 받고 싶어져. 그보다 시바루 조우나 군이라니 이노리 신님 앞에서 욕 다물어-!!! 그렇지만 친구와 싸우면 다시 아기가 되어버리는 아기 신님(소중하다). >>892 (뇌정지)
노아는 우인장 대신하여, 미카가 알려준 성씨를 한번 되새겨 읊어본다. 뉘엿뉘엿 조금씩 붉어 흐려지는 햇살 아래로 와타누키라는 무거운 이름이 가벼운 시구처럼 흩어져간다. 쉬이 뒤 이름까지 캐묻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에. 노아는 고개를 들어 해가 기울어지는 것을 보더니 운을 떼었다.
"그래, 슬슬 때가 되었지. 지금 일어서면 늦지도 이르지도 않겠구나."
신사는 신의 것, 그런 신을 모시는 무녀라고 한다면 신의 종 되는 입장에서 자신이 종사하는 신사를 쉽사리 대단찮은 곳이라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되새겨보면 수상할 이야기지만, 되새겨보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으니. 이 무녀도 마침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노아는 손을 들어 대청마루 왼편으로 돌아서 가지런한 잔디 위로 차곡차곡 깔려 있는 하얀 돌판을 가리킨다.
"저 돌판을 따라가면 배전으로 통하는데, 배전에만 도착하면 참도가 알기 쉽게 죽 뻗어있으니 그대로 참도를 따라가 도리이로 나가거라. 도리이 밖이 조금 후미져 보이겠지만 바로 눈앞에 나오는 골목 하나만 지나면 번화가로 통하느니라. 사람을 만나 어디서 왔냐고 묻거든 시라사키의 초대를 받았다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게다."
미카가 방석에서 일어서서 신발로 다시 대청마루 아래의 타일을 디뎠을 때, 노아의 목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또 보자꾸나."
작별을 고하는 인사였다.
...하얀 돌판을 따라 정원을 가로지르다, 하얀 가리기누를 버젓이 차려입은 초로의 남자를 만나 어디서 오신 분이냐는 질문을 받았기에 노아가 일러준 대로 시라사키의 초대를 받아왔다고 하자 노아님의 손님이시군요, 하고 반색하더니 귀찮게도 배전과 참도를 따라 도리이까지 마중을 해준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지만.
[아아. ㅠㅁㅠ 이게 제가 늘 갖다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가 만든 것을 그때그때 올려서 파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상품도 딱히 주기적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만들어서 올려놓은 거예요. 그래서 데이터가 없어요. ㅠㅠㅠㅠㅠ]
치아키가 보낸 메시지는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저 토끼는 이번에 새로 한번 만들어본 것이었고 당연히 이전에 판 적이 없으니 이번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품이었다. 아무튼 색상을 고르기가 힘들다고 하니 자신이 추천해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는 가만히 인형들을 바라봤다. 역시 여기선 가장 무난한 것이 낫겠지. 그렇게 판단을 짓고 그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빨간 옷과 파란 옷은 어떠세요? 서로 대비되는 느낌이 있어서 한 쌍을 만들기에는 딱 좋을 것 같거든요! 강력 추천!]
물론 선택을 할지는 상대방의 자유였다. 상대방이 다른 색으로 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건 이제 상대방의 선택에 맡기기로 한 찰나 막 떠오른 주소란을 확인하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미즈나 마을. 바로 여기가 아닌가. 오. 이건 또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굳이 택배로 보내기보단 어차피 같은 마을에 살고 있다면 직접 만나서 주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주소가 가미즈나 마을이네요. :D 저도 가미즈나 마을에 살고 있거든요. 괜찮다면 택배가 아니라 직접 만나서 전달해도 괜찮을까요? 그러면 더 빨리 받아볼 수 있고 상품도 바로 확인할 수 있을텐데!]
물론 상대가 거절한다면 어쩌겠는가. 그냥 자기가 직접 배달한 후에 초인종을 누르고 가던가 해야지. 직거래를 싫어하는 이도 꽤 많을테니 일단 그 부분은 상대에게 맡기기로 하며 그는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으음, 확실히. 구태여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좀 더 마음을 열고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 오픈 마인드! 약간은 내려놓고 나도 주, 주주주주인님이 된 양 굴어보는 거야. 이건 연극, 여기는 무대 위. 나는 긴 여행을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온 귀족이야. 그리고 옆에는 내 담당 하,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안 돼! 역시 친구를 하녀라고 부르는 건 납득할 수 없어! 미야나기는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차라리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즐기는 척이라도 해볼 텐데. 같은 반 여자아이를 아랫 사람 부리듯 대하는 건 무리다! 미야나기는 속으로 까무러치다 말고, 문득 조금은 풀어진 듯 자연스러운 미소가 리오의 흰 얼굴에 린 것을 보고서 약간 놀랐다. 아. 이건 ‘아리스’ 양이 아니라 리오구나. 리오의 부드러운 웃음은 어쩐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미야나기는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리오를 따라 미소지었다. ·····도 잠시, 이거 어째 메뉴가 이름이 좀 이상하다?! 얼음 공··· 악의가··· 뭐, 뭐? 이건 도대체 무슨 메뉴지? 복잡한 심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리오가 잽싸게 메뉴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못 들은 걸로 하는 게 나을 뻔했다. 매도 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니 대체 이 카페에는 어떤 사람들이 오는 거야?! 주변을 둘러싼 아저씨들을 향한 미야나기의 시선이 조금 미묘해진다. 무례한 걸 알기에 얼른 거두었지만.
“······그, 아리스 양. 얼음이 그······ 악의가, 그거. 그거 있잖아. 주문하면 아리스 양한테 인센티브 가는 거지? 정말 오해 안 했으면 좋겠고, 나 절대로 절대로 그런 취향인 거 아니지만. 그 어쨌든······ 주, 주문하고 싶어! 얼음 공주의 악의와 정성이 담긴 수제 철판 오므라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