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는 존재는 본래 인간의 부르짖음에서 나타났다고 하던가. 아니, 뭐 그런 유래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겠지만. 어찌되었든 보통 인간이 하는 일이 신을 위한 것이고 신이 하는 일이 인간을 위한 것인 것처럼 인간과 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우신이 인간의 애정어린 경외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붉은 머리 소년의 쓰다듬을 받던 케이는 소년의 물음에 귀를 쫑긋했으나 여우는 답을 할 수 없다. 그저 꼬리만 살랑거릴 뿐이다. 소년의 손바닥에 촉촉한 코를 가져다대며 킁킁 냄새를 맡는 모습은 그저 한 마리의 여우......(신) 일 뿐.
하지만 소년이 스마트폰을 꺼내자 분위기는 돌변한다. 여우의 눈빛이 반짝 빛나는 듯 하더니 소년이 사진을 찰칵 찰칵 찍을 때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한 장의 사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태도!
결국 소년의 휴대폰 카메라 속에 남은 것은 망한 고양이 짤...과 같은 망한 여우(로 보이는 검은 무언가) 사진일 뿐이었다.
>>122 신의 힘으로 털이 바로바로 자라날지도 모르는걸요!! (일단 우기고 보기) 크레페와 홍차 자체는 아마 조합이 그렇게 썩 좋거나 그렇진 않을 것 같지만 치아키는 홍차를 좋아하니까요! 다즐링이건 얼그레이건. 그래서 아마 실제로 팔면 안 팔리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 (시선회피)
>>123 도련님은 아니지만요! ...아닌가? 일단 마을에서 가장 큰 신사의 아들이고 신의 피를 이었으니 도련님 맞나? (혼란) 그래도 막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일은 없으니 도련님 아닌 것으로!
신문부원이 되고서 후회하는 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부실도 아늑하고, 학교 신문을 만드는 건 월간지라 부담되지도 않으면서 나름 재미있고, 신문부원으로써 여기저기 돌아다닐 권리가 생기는 건 꽤 짜릿한 경험이다. 또래 애들이 흔히 겪지 못할만한 일들을 자주 겪게 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 있어서는 모험심을 충족시켜주는 좋은 일이니까. 다만, 많지 않은 신문부원이 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는 일 중 하나는...
'마 감 지 옥'
단 네 글자. 심지어 적나라하게 지옥이라고 써붙여진 저 현수막은 매 월말마다 걸리게 된다. 이 때엔 평소 모험심과 여유가 넘치는 신문부원들이 순식간에 좀비가 되어 학업과 마감작업을 병행하며 카페인과 타우린에 의존하여 목숨만 부지하고 있게 된다. 당연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가장 심했다.
처음 신문부에 들어온 후배가 없는 게 아니라서, 올해 들어 선배로써는 처음으로 마감 작업을 하게 되었다. 후배를 가르치는 것과 내 마감을 하는 것은 동시에 하기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여...줘..."
신체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지만 정신적으로 따라잡질 못했다. 갑갑하고 고통스러우며 쫄린다. 지금 여기서 내가 콧김 한번이라도 잘못 뿜으면 모든 것이 박살이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일단 내 작업은 막바지에 다다라서, 조금만 더 있으면 끝장이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다. 끽해봐야 별거 없는 학교나 마을의 괴소문 정도는 적당적당히 쓴다고 해도, 올해에 있을 것들과 작년에 있던 것들을 총망라해서 적어야 할 다른 부원들의 파트는 처절하기 짝이 없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이 마감지옥의 한가운데에서, 무엇인가 명분 하나라도 있으면 바로 집으로 떠나버릴텐데...!
그런데 돌연 정신사납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여우 셔터를 누를 때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완전 난리가 난다
"..."
갤러리를 본 미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녀석 사실 사람 아닐까 귀여운 사진을 망하게 하려는 저 못된 심보...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넣고 나서야 얌전해지는 녀석 거기다 왠지 잘난체하는 거 같다 여우는 역시 영악한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다 그래도 귀엽지만? 미카는 결국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다시 녀석을 만지려고 한다 이번에 공략할 곳은 턱 고양이 다루는 것마냥 살살 긁어줄 거다
"...밥 줄까?"
근데 계속 만지고만 있으니 녀석이 굶주린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미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리내어 말해본다 누가 키우던 여우였으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까
슬슬 물리는 걸⋯⋯. 「사랑 100%」라고 적힌 만화책을 내려놓자 드러난 얼굴이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게, 일주일 내내 로맨스 영화, 순정 만화, 로맨스 웹툰을 로테이션으로 주야장천 시청하니 누텔라 잼을 한통 다 먹은 듯한 느글거림이 뱃속에서부터 올라왔던 탓이다. 만화책을 아무렇게나 책상 안쪽에 집어넣고는 그 위로 엎드렸다. 교차한 팔 아래에선 손가락이 고심을 담고 탁탁, 매끈한 갈색 책상을 두들겼다. 그러다 머리 위로 전구가 켜진 듯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선생님의 타박이 흘러들어온 것은 덤이었다. 무쿠루마는 실없이 웃어넘기곤 몰래 핸드폰 전원을 키고 호러 책자를 펼쳤다. 거기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근처 심령 스폿의 장소와 분신사바를 행하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아하, 그렇단 말이지⋯⋯. 알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폼이 무척 수상했다.
그리고 방과 후. 흥이 올랐는지 작게 허밍 하며 경쾌한 발걸음 소리를 내었다. 그에 따라 곱슬한 끄트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신문부실이었는데 그곳에는 제 '호러 메이트(라고 멋대로 붙인)' 우루하 쿄스케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기 전 아무나 붙잡고 '같이 가자!'를 외쳤는데 갖가지 사유로 모조리 거절당했다. 쪼오끔 상처였지만, 뭐, 보증 수표(우루하 쿄스케)가 있으니 상관 없지!─하고 생각했다.
무쿠루마는 명랑하게 신문부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하세요! 신문 군을 데리러 왔는데요─!"라는 창피를 모르는 외침과 함께. 그리곤 빵긋 웃은 채로 얼음 땡 놀이를 하다가 얼음을 외친 아이처럼 온 몸을 굳혔다. 무쿠루마의 머리가 돌아갔다. 우와아⋯⋯, 엄청 바빠보여. 신문 군을 어떻게 빼내지? 사실대로 말하면 곧장 기각당할 것 같은데⋯⋯. 아, 그래! 그 변명이 좋겠다.
"신문 군과 오늘까지 해야 하는 과제가 있어서요!"
선언 뒤, 우루하 쿄스케를 향해 눈을 찡그리거나 입매를 움찔이는 등 안면근육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의미는⋯⋯ '어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