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제 이름을 알려주는 미카 초면에 대뜸 무례한 별명을 부르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잠깐만..."
역시 말릴 틈도 없이 젓가락을 내미는 무쿠루마 미카는 차마 그녀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영 마뜩잖은 표정으로 끝내 바닥에 앉아버린다 자기 친구들이 같이 안 먹어준다고 모르는 학생을 이렇게 붙들다니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아이다 무쿠루마가 내미는 젓가락을 어쩌다 받아들지만 뚜껑 열린 도시락에 적극적으로 젓가락을 내밀진 않는다
정말로, 진짜, 진심으로 와타누키 씨는 바보일 지도 모릅니다! 왜 사과할 일이 아닌데 사과하는 걸까요?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지금 바보라서 미안하다는 사과도요. 괜히 제가 어디 갔다 왔냐며 혼자 다 할 뻔 했다고 말해서, 바보냐고 말해서 그럼 거니까 역시 제 탓입니다. 제가 와타누키 씨를 바보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사과의 뇌물이 사탕 하나가 아니라 한 상자여도 모자를 것 같은데,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두 개는 괜찮을까요...
“칭—칭찬 아니에요. 전 초록색이 좋습니다. 연두색이나요!”
이상할만큼 상냥한 사람입니다! 길거리 다니다가 못된 사람들한테 돈을 빼앗기고, 수상한 사람이 집 가는 길에 쫓아갈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빨간색이 예쁘다는게 왜 칭찬인가요! 사실을 말한게 칭찬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리고 예쁜 걸 예쁘다고 하는 건 칭찬이 아닙니다. 와타누키 씨, 계속 그러면 정말 바보가 됩니다!”
분명 교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내릴 곳을 지나쳐버리고, 옷도 거꾸로 입고, 사장님이 절 부르는 소리도 제대로 못 들었을 거에요.
# 이번에도 답레만 남기고 가... 인사해준 참치들 고마워 🥹 집에 가면 진단과 썰과 픽크루로 몸보신할테야—!!!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혀버린 치아키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조금은 놀라거나 움찔하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태연하게 나라고 하는 것은 그의 계획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무덤덤하게 대답해버리면 뭐라고 답을 해야하지. 마음껏 장난칠 각오로 돌진을 했건만 이 여학생은, 정확히는 리본으로 보아 2학년으로 추정되는 이 여학생은 적어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혹시 피곤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치아키는 정말로 빤히 이 문제의 여학생을 가만히 바라봤다. 당연하지만 아는 이가 아니었다. 긴 숏컷 스타일에 금안 같으면서도 자주빛이 섞였으나 뭔가 메마른 눈빛을 보이는 것이 약간 힘이 없어보여서 치아키는 자연히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니. 아니. 여기 나라고 하면...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이름 모를 우리 후배 양은? 이렇게 봄날도 따스하고 기운 차게 하고 좋은데 말이야. 무슨 일 잇어?"
뭔가 피곤한 것일까. 지치는 일이 있는 것일까. 혹은 최악의 경우엔 이지메? 아. 마지막은 일단 고려를 해두고 나중에 선도부원장이나 선도부원에게 당분간 그런 거 잘 체크하라고 지시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치아키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몸이 아파서 여기서 쉬는 중이야? 아하하. 그러면 거라면 조금 미안하긴 한데. 그러면 보건실에 갔을 것 같고. 아무튼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우리 후배 양은? 알려줄 수 있어?"
가장 어떻게 대해야할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무기력한 이들을 아예 본 적이 없다거나 아예 상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들을 대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어렵다고 치아키는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는 뭘 해도 그냥 쉬고 싶어서 이렇게 있는 것 뿐일테니까. 그 와중에 학교를 오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말에 치아키는 그야말로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지으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회장이 되고 아직 한 계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보이콧 선언 ㅡ물론 그게 아니었지만ㅡ 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탓이었다.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고 약하게 몸을 부들부들 떨던 치아키는 고개를 홱 들고 강렬한 눈빛으로 사야카를 바라봤다.
"하라고 하면 따라준다니! 안돼! 자고로 사람이란 자신의 의지와 주관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법이야. 그건 누군가가 그렇게 살라고 해서 그렇게 사는 것 같잖아. 좋아! 그렇다면 이 학생회장님이 문제를 해결해보겠어! 어떻게 해야 이 학교가 다니고 싶은 좋은 학교가 될 것 같아?"
포인트는 그것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면 학교를 다니고 싶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바꿔줄 수 있는 것도 어느정도 있지 않을까. 아예 싹 다 바꿔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바꾸고 개혁을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힘은 있으니 맡겨주라는 듯이 치아키는 자신의 가슴팍을 손으로 툭툭 쳤다.
"아. 물론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회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 그래. 이럴 때 말을 안하고 넘겨버리면 대 손해지. 하핫!!"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는 결국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불량 군이라 계속 부를 셈인가 보다. 다만 진심으로 꺼려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눈치를 살살 봐가며 와타누키 군이라 정정할 것이었다.
표정은 영 좋지는 않았지만 순순히 앉아주는 태도에 '흠!'하고 기분 좋다는 듯 웃어보인다. 그리곤 도시락을 그와 자신 사이에 놓았다. 어느새 밥과 계란말이를 우물우물 집어먹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고마워, 불량 군~. 덕분에 홀로 외롭게 먹지 않아도 됐지 뭐야. 앗, 왜 안 먹어? 취향이 아니야?"
도시락을 한 번,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추가로 덧붙인다.
"2학년 복도에 금붕어 두 마리 있는 거 알아? 내가 걔들을 돌봐주고 있는데 그 애들 먹이 주는 사이 친구들이 몽땅 밥을 다 먹어버린 거야, 나를 빼놓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물론 내가 일관된 친구들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 금붕어 이름도 지어줬어, 사이 좋으라는 의미로 나카, 요시야. 어때?"
자신이 돌봐주고 있는 어여쁜 금붕어들을 생각하니 점차 텐션이 올라 점점 말이 길어졌다. 아차, 이 애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할 수 있다면 한 이백년은 방에서 안나올수도 있을거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사야카지만, 진짜로 이백년이냐고 물어본다면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햇수긴 하지만 과장. 이라고 덧붙이려 합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살아와서 여기 있는 거라서." 그냥 있었다면 아직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공평하고 사람과 말이 안 통하는 것이긴 그렇죠? 그치만 누군가 그렇게 있기를 원해서 그런 것인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애매한데... 근데... 아 그런 거 생각해서 뭐해.. 귀찮아... 하지만 사야카는 치아키가 바꿔보겠다는 말을 하자 눈을 조금 더 뜹니다. 아마 학생회장이라는 말에 조금 놀란 것인가?
"으음.... 뭔가를 바꾸려고 해도 나하고는 상관없을 것 같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려 합니다. 다만 뭔가를 바꾼다라고 하기엔 그럴 것을 찾지 못했어 학생회장님. 이라는 말로 은근히 정중하게 답하려 하네요.
"우울할 때 뭘 해?" 와타누기 미후유: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기분을 가라앉힙니다. 기분에 따른 충동적인 선택은 후회를 불러일으키니까요.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잠시 티타임을 가지면서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볼 것 같아요. 좋은 답변이 되었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실 디저트도 조금 먹는답니다, 아앗 이건 다른 분들껜 비밀에요!
"누군가가 겁에 질린 채로 "이상한 사람이 저를 쫓아와요!"라며 도움을 요청한다면?" 와타누기 미후유: "으음, 조금 당황스러운 질문이네요. 아마도 경찰에 전화부터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진정된 다음 얘기를 천천히 듣지 않을까 싶네요."
"전부 네가 망쳤잖아! 어떻게 할 거야!" 와타누기 미후유: "가정일 뿐이지만 슬픈 말이네요. 그 말이 타당하다면 최대한 혼자 수습할 방법을 찾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200년전에 사람은 죽어! 죽거든?! 죽는다고!"
대체 얼마나 방이 좋은 거야? 이게 그 유명한 히키코모리 ㅡ물론 절대로 아니었다.ㅡ 같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순간적으로 혼란을 느꼈다. 물론 이후에 들려오는 과장이라는 말에 치아키는 괜히 난처한 웃음소리를 냈다. 뭔가 이 후배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는 천적이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니. 물론 사람은 사회적 생물이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랑 부대기면서 살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주관이나 그런 것은 필요한거야! 그렇게 생각해!"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강렬하게 피력하면서 치아키는 씨익 웃었다. 아마 하얀 이가 살짝 내보이지 않았을까? 한편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그 말에 치아키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졌다. 그럴 것을 찾지 못했다라는 것은 뭔가 하고 싶은 것이나 그런 것이 딱히 없다는 것일까. 알지. 알지. 원래 저 나이때는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러는 거야. ㅡ물론 착각이었다.ㅡ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귀찮다는 그 말에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냐. 아냐. 아냐. 귀찮다고 생각하면 정말 뭐든지 다 귀찮아진다니까. 그러니까 이럴 때는 아주 작은 목표를 정한 후에 그걸 이루면서 조금씩 귀차니즘을 이겨내보자! 평생을 귀찮게 살다가 죽을 순 없잖아. 언젠가는 학교도 졸업해야 하고 그러는데. 물론 넌 2학년이고, 난 3학년이니까 내년의 일은 모르겠지만 올해는 이것저것 도와줄 수는 있거든. 상담이라던가. 상담이라던가. 상담이라던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면서 총 세 번을 말하니 정확하게 손가락이 세 개 접혔다. 이내 치아키는 손가락을 짝 펼쳤고 짝 소리를 내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작게나마 뭘 하다보면 하고 싶은 것도 생기고 그러지 않겠어? 아. 참고로 나는 이곳의 관광업 쪽에서 일하고 싶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기에 오는 사람들 많으니 말이야. 하하!"
불량 군에 이어서 이젠 너구리 그보다 왜 자꾸 불량 군이라 부르는 거야... 미카는 튀어나오려던 불평을 쏙 집어삼키고 (대신 "먹을게..."라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떼서 밥을 한 젓갈 푼다 그리고 반찬 없는 맨밥을 씹어 삼킨다 아까 양아치들에게 맞았던 턱이 욱신거린다 이윽고 무쿠루마는 물어보지도 않은 얘기를 술술 꺼낸다 금붕어라면 지나가다 몇 번 본 적 있다 관심있게 들여다볼 때도 있는데 이름이 나카요시였구나
"음... 그래. 멋진 이름이네."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 성의없는 빈말 정말이지 말 많은 아이다, 맹랑하기도 하고 급한 일이 생겼다 하고 뛰어나갈까? 미카는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177 디저트를 조금 먹는 것은 비밀인건가요? ㅋㅋㅋㅋㅋ 귀여운 비밀이에요!! 아무튼 여러모로 차분하게 해결하는 편이네요! 다른 질문 두 개도 뭔가 어른스러운 그런 느낌이 상당히 강한 것 같아요. 차분해. 힐링돼. 저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절로 들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