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33071> Project : Cradle # 1(START;) :: 1001

◆8nz3IZH4M2

2023-01-20 16:42:24 - 2023-05-14 01:14:15

0 ◆8nz3IZH4M2 (YPiXZsP.Sg)

2023-01-20 (불탄다..!) 16:42:24

모든 이들은 요람에서 태어나, 무덤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자 그럼 말일세.
그대들의 뿌리를 찾기 위한 흔적은 어디서 찾겠는가?

- 세상의 끝에서, 방문자에게 -

>>1 레아 파벨(Leah Paviel)
>>2 블랑느와르(Blanc-Noir)

574 레아 — 블랑 (2OY3BQCKGw)

2023-03-10 (불탄다..!) 19:35:36

사실 기대한 건 에르네스트 산에 남길 표시 정도였다. 인간도 인간의 거주 구역을 일일이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데, 용인들 다른 용이 어디 사는지 훤히 꿰고 있겠는가. 그런데 뜻밖에도 흑룡은 에르네스트 산 일대는 넘기고 크레티스, 아니, 대륙 전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표시가 고쳐지거나 생각지 못했던 지역이 새롭게 표시되는 걸 볼수록 가슴이 설렜다. 앞으로의 용 탐사는 이 지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지도를 본뜨고픈 욕심이 생겼지만, 아쉬운 대로 연구실에 구비된 깃털 펜과 양피지로 지역명이나 메모했다. 그러다 보니 산 리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브몬테 산의 온천 지대에도 'O' 표시가 생긴 게 단연 눈에 띄었다. 저기에도 용이 사는구나. 언제 한번 가 보고 싶다.

이윽고 그는 에르네스트 산의 '△' 표시를 'X'로 고치더니, 펜에 너무 힘을 주다 그만 실수한 것 같은 자그마한 구멍을 냈다. 사실을 감추더라도 탐사자의 안전을 우선시하겠다는 걸까? 그렇다면 그가 'O'로 표시한 지역은 비교적 안전하게 탐사할 수 있는 곳이겠다. 그게 아닐지라도 이 지도의 용도가 용도인 만큼, 에르네스트 산의 표시는 그의 결정에 따르는 게 맞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한 가닥 개운치 않은 마음이 남았다.

[혹시 결계를 약화하거나 해서 저희 연구소의 다른 연구원과 조우해 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다들 연구가 목적이고 또.. 저보다 끈기 있는 이도 많습니다만.]

그가 내 집념을 높이 평가해 줬다는 건 알지만, 연구원 중엔 그 정도 근성이 없는 이가 오히려 드물 거다. 연구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진리를, 그 실마리나마 찾아보자고 기약 없이 헤매는 게 업이니까. 그는 연구를 돕는 데에 적극적이고 지성체와의 교류를 딱히 마다하는 성미도 아니니, 다른 연구원과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속단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 사이 그는 발바리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산맥 한복판에도 'X' 표시를 하고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유심히 보지 않고는 알아채기 어려울) 구멍을 냈다. 표시한 지점은 로드, 즉 지금의 용 대표가 둥지를 튼 곳이란다. 그런데도 'X'로 표시한 건 탐사하기에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일까?

[저기도 인간이 진입하기엔 위험합니까? 혹 지금의 대표라는 분이 인간에게 비우호적인지요?]

질문을 던지던 중 몸이 뻣뻣이 굳어졌다. 일전에 그가 알려 준, 용족의 전 대표가 떠오른 탓이다. 새삼 치가 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그 용의 처신은 자기 마음에 드는 인간을 위해 다른 인간을 숱하게 해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인류를 농락하니 재밌더냐고 욕하고픈 마음도 여전하다. 하지만, 내가 욕할 자격이 있을까? 나부터가 가족, 친지의 안전과 생판 남의 안전 중 택일하라면 전자를 고르리라는 건 제쳐 둔다 쳐도, 발바리아가 건국되지 않았다면 인류가 덜 죽거나 덜 다쳤을지는 미지수이다. 관련자이기라도 하면 내가 피해를 입었는데 누가 덜 다치고 말고가 알 바냐고 달려들겠다만, 난 발바리아 문화의 수혜나 입고 있는 후대인이다.(당장 내가 쓰는 공용어부터가 발바리아 말이니) 그런 주제에 반발한들 무슨 소용일까? 그러나 분하긴 분하다. 지금의 삶을 누리는 게 그 용 덕이라고 감지덕지하기도 싫다. 젠장! 이렇게 답 없는 상념이 뱅뱅 돌면 음습하고 질척한 기운에 잠식되는 기분이다. 분풀이처럼 양피지를 구겼다가, 누구 목이라도 조르듯 출입증을 쥐었다.

[....전 대표였다는 용은 어디 있습니까? 아직.. 살아 있습니까?]

쓴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부질없는 질문일까? 분을 삭이고자 구겼던 양피지를 도로 펴는데, 흑룡이 전음을 보내 왔다. 연구실의 벽에 붙어 있는 상상도, 그중에서도 거의 수직으로 세운 목이 두드러지는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 같은 그림과 사슴 뿔 비슷한 것을 단 뱀 같은 그림에 주목한 모양이었다. 용의 생김새가 개체마다 천차만별이면 어쩌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반적으로는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 같은 외형인가 보다. 거기까지는 다행인데, 뱀을 닮은 용도 있기는 있단다. 신성(神性)을 지녔다는 건 주님 같은 신이라는 의미일까? 그런데도 주님과는 달리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낼 수는 있었고?

[저 용은 아까 말씀하신 신과 달리 육체가 있는 신이라는 겁니까? 그 대륙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먼 대륙이기에 어디든 갈 수 있다던 그가 멀고 멀다고 한다? 그래도 궁금했다. 신이기도 하고 용이기도 하다니, 어떤 존재일까? 궁금증이 커지자 이전엔 무심코 넘겼던 특징들이 새롭게 눈에 띄었다. 머리와 꼬리에는 말갈기처럼 기다란 털이 텁수룩하고, 멧돼지 코를 연상시키는 코 언저리엔 더듬이 같기도 하고 수염 같기도 한 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몸통에 비해 짤막한 다리는 도마뱀의 다리와 비슷한 듯했으나, 억센 발톱이 달린 발은 맹수의 발과 닮았다. 흑룡이 동족이라고 밝힌 용과는 아예 달라 보이는 종인데. 저들도 흑룡이나 그 동족처럼 전음으로 의사소통을 할까? 그렇다는 보장만 있다면, 하루 한 번은 전음을 해 보겠는데.

그러다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에 주의가 쏠렸다. 돌아보니 허공에 커피가 떠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가 이어지는 전음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투명 마법을 쓰는 중인 걸 알아도 이렇게 놀란다.

[감사합니다.]

무심코 받아들었다가 조금 뜨거워 앞의 책상에 놓았다.(여느 지성체였다면 딱 좋은 온도라고 음미했겠다만) 그런데 커피 콩 분쇄기가 어디 있었을까? 며칠 전만 해도 없었는데. 찬찬히 주위를 살피니 책장 맨 구석에 보란 듯이 손잡이를 내민(?)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갖다 놨나 보네. 연구실에서도 커피를 챙겨먹을 이면, 한스 선배려나?(레아보다 1년 먼저 302호 연구실에 들어온 연구원이다.) 그 선배 피는 절반이 커피일지도. 싱거운 상상을 하다 레아는 머리칼을 배배 꼬았다. 본인이 주로 쓰는 책상이 아니라 책장에 둔 걸로 보아 나눠 먹으려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허락 없이 마시는 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복귀할 때 괜찮은 원두를 좀 사다 드려야겠다. 어디 원두가 좋지? 커피 애호가한텐 원두가 제각기 맛과 향은 물론 여운도 다르다는데. 커피를 잠 깨려고 먹는 약 정도로 취급하는 레아로서는 영 어려운 사안이었다. 그는 커피를 곧잘 마시는 모양인데 혹시 알려나?

그래서 돌아보니 나머지 커피는 어느새 창 쪽에 떠 있다. 그가 창가로 옮겨 간 모양이었다. 창밖의 무엇에 마음이 끌린 걸까. 다가가 봐도 그저 제등(提燈)이 켜진 밤길이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에 무슨 영감이라도 받았을까? 가끔 연구소에 들를지를 고려하는 전음이 울렸다.

[그 용처럼 용학도 유희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상상하니 미묘해져 웃음이 머금어졌다. 용에 대해 조사하는 용학을 진짜 용이 배운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아이러니도 그런 아이러니가 없겠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점점 가까워 왔다. 엉겁결에 떠 있는 커피를 가리듯 서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양털처럼 곱슬곱슬한 빨간 머리,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완화해 주는 동그란 안경, 길쭉하지만 마른 몸집, 한스 선배다. 이 시간에 올 줄이야.

-"어, 레아 씨? 출장 아니었어?"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둘러댄다? "....잠깐 들렀어요. 저.. 커피 좀 마셨..는데요. 죄송합니다."

얼버무리자고 말 돌린 거긴 해도, 사과할 일이긴 하다.(그리 생각하니 선배가 온 게 차라리 다행 같기도 같다.) 워낙 인심 좋은 선배라 너그러이 받아 주지 싶고. 역시나 선배는 사람 좋게 웃어넘긴다.

-"마시라고 둔 건데? 잘했어 잘했어." 그러더니 선배는 양피지가 수북한 책상에 가 앉았다. -"에고, 채점 마저 해야지."

"채점요?"

-"어. 왜, 댄버스 쌤 용학 입문. <용학개론> 암기 아직 시킨다?"

입이 딱 벌어졌다. 여전하시구나. 첫 학기에 용학 입문 수강하고 매주 시험 보면서 진짜 이를 갈았는데. '용은 선각자이자 수호자이자 관조자이다. 용학은 이를 보편타당한 방법으로 입증해 온 과정과 결과를 아우르는 학문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내용이 다시금 골을 울리는 듯했다. (지금이야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려면 암기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때는 정말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질색들하겠네요."

-"그렇지, 뭐. 그래도 봐 봐."

선배가 양피지 하나를 펴 보였다. 빈칸을 모두 정확한 구절로 채운 시험지였다.

-"우리 이리스 양은 아주 척척이라니까."

감탄하다 갸웃했다. 이리스? 그러다 선배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생도로 유희 중인 용에게 부쩍 관심을 보였던 게 떠올랐다. 그 용이 쓰는 이름인가 보네. 진짜 용이 용학 입문을 듣고 <용학개론> 암기 시험을 보다니, 이 무슨 괴상한 상황이람? 한편으로는 용의 지적 능력이 인간보다 월등하다는 게 실감 나기도 했다. 책 한 권쯤 외우는 건 일도 아닌가 보네.

-"내가 서너 살만 어렸어도 데이트 신청 하는 건데."

"네?"

-"여섯 살 위면 아재잖아. 접근하면 범죄야!!"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빈말이라기엔 너무 원칙적이고, 진담이라기엔 너무 엉뚱하다.(그 용에게 주목한 연구원은 대개 저 정도 입장인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선배는 시험지를 꼬박꼬박 채점했다. 책 구절과 일치하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되는 덕이겠지. 이 광경을 흑룡은 어떻게 생각할까? 좀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레아는 전음을 보냈다.

[뭐, 이런 곳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 우등생 알라투 누님에 대한 TMI를 비롯해 이거저거 넣어 봤습니다🙃

>>573

레아 if는 캐조종 없이도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겠다 싶은 소재가 생기면 한번 해 보겠습니다😅a

현 대빵님이 레어를 깊게 파 놓은 건 수면기에 숙면을 취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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