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지는 힘은 없었기에 견디지 못해 부러진 게 아니다. 이건... 붉은 안광이 그것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그는 떨어져 이제 그냥 쇠막대기가 되어버린 듯한 철퇴를 쥔 채 뒤로 물러섰다. 머스티어의 공격에 박살난 손, 그의 철퇴에 내려찍힌 손이 금방 수복되는 것을 보며 또 붙잡으려고 하겠거니 했으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지는가 싶더니 쏘아진 광선.
"대체 뭐하는 놈이냐 이건...!"
본능에 따라 몸을 비틀어 궤도에 온전히 올라서는 것은 면하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전부 피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머스티어 쪽을 보려는 듯 붉은 안광이 움직이는 것도 잠시, 광선으로 인해 옆에 있었을 그의 모습이 어떻게 됐을지는.
역시 안먹히는 건가. 빠르게 판단하며 뒤로 물러선다.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하며 자신을 붙잡으려는 손에 계속해서 사격한다. 이반의 철퇴가 자루만 남긴채 바스라지며 부서지는 걸 그 사이에 본 머스티어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저런 힘을 가진 존재를 본 적 있다면 그건 우연일까?
"피해요!"
검은 것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뒤로 피하던 몸을 옆으로 날렸다. 직격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진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긍정적인 방향일리는 없었으니까.
빛이 몸을 삼킨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대지가 생명을 빼앗긴듯 죽어버렸으며. 이반의 갑옷은 물리력이 아닌. 그저 그러한 결과가 당연하단듯이 닿은 부분부터 저항없이 소멸해 동체의 반 이상이 날아가버렸다. 생명이 사라지는 감각, 단순히 부상의 심각함 뿐 아니라 사라진 부위로부터 생명이 쭉쭉 빨려나가는 감각이 역겹게 올라온다. 어서 회복하지 않으면 전신의 생명이 사라질거 같은 감각이었다.
다행인것은 머스티어는 그나마 손 하나로 넘어갔다는것. 물론 머스티어도 생명의 소실을 사라진 손의 환부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머스티어는 회복 능력도 없기에 이대로면 그저 침범당할 위기다.
다행인건 저 괴물같은 녀석이 레이저를 쏘고 잠시 멈춰있다는걸까. - 노아의 공격도, 벤자민의 불도, 세이메이의 벽돌도, 유의미한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늪은 점점 깊어져 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세이메이와 벤자민은 여유롭게 출구쪽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노아는 아직 엘리베이터 앞.
건물은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탈출까지 시간이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대로 탈출한다면 말이다.' 노아의 뒤쪽, 엘리베이터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보이긴한다.
세이메이의 까마귀는 2층으로 들어갔고, 붉은 빛을 따라가자 손바닥 크기의 자그마한 붉은 돌이 떨어져 있는것이 보였을것이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정체였지만, 반짝 반짝 빛나는것이 이쁘기는 하다.
몸의 반 이상이 날아갔다. 어찌어찌 머리는 지켰지만 보통 이렇게 몸 반쪽이 날아가 버리면 즉사하는 게 정상이다. 물론 그는 이런 상황에도 숨이 붙어있었다, 공격이 워낙 눈 깜짝할 새에 있었기도 했지만 그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잘한 부상 정도는 조금씩 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소실된 부위로부터 느껴지는 생명이 어디론가 그대로 빨려나가는 듯한 속도를 늦추고 있던 셈이다. 그래도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아악! 제기랄, 비명도 잘 안 나오는구만, 그쪽은 괜찮은가?"
하나만 남은 폐 때문에 바람이 새는 소리긴 했지만 머스티어에게 간단히 안부를 묻던 그는 최대한 빠르게 몸을 수복하려고 했다. 수복에 성공하고도 여유가 있다면, 무전을 통해 소리쳤을 터다.
"어이, 아가씨! 얼마나 남았나! 여긴 방금 뒈질 뻔했다네!"
그리곤 잠시 멈춰 있는 그것의 머리를 노려 어느새 주워든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겨보려고 했을지도.
반짝 반짝. 까마귀란 족속은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한다던가, 여튼 세이메이의 까마귀는 그랬다. 까마귀는 본능적으로 그 붉은 돌을 집어들었다. 그 꼴을 온전히 관전하던 그는 까마귀가 돌을 삼켜 저장하는 것을 확인하면, 다시금 그의 곁으로 불렀다. 출구가 보이면 곧장 발을 딛어 탈출했다. 다만 눈 앞에 보이던 처참한 광경. 머스티어의 손 한 짝은 온데간데 없었고, 몸통 부근의 반 이상이 날아가버린 갑옷남의 갑옷. 그는 무얼 해야할지 약간 주춤거리더니, 그제서야 뒤를 돌아봐 노아의 이동을 눈치챈다.
"엘리베이터 고장난줄 알았는데 말이죠..." "명령질해서 죄송하지만, 불 질러주실수 있을까요?"
벤자민이 들을진 모르겠다만, 그리 물으면서도 그의 뇌내 상황은 바빴다. 자신에게 돌아왔던 까마귀는 그의 변덕에 곧 궤도를 바꿔, 건물 밖으로 날아갔다. 노아가 향하는 층이 어딘지 확인하려는 양 까마귀의 시선이 바쁘다.
이상한 생명체를 향해 공격을 행하던 휴스턴에게 그런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평소에 들리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처음들어보는 시스템의 기계음성. 하지만 왜 갑자기?
[∞ System을 확인. 적대 항목으로 등록. 파괴하겠습니까?] [파괴를 위해 Ω System의 전 기능을 개방해야 합니다. 그 후 Ω System은 소멸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어째선지 이해가 된다. 아마도 저 운석을 파괴할 수 있다는 소리일터.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면 자신의 몸도 성치 않을거라는걸 알 수 있었다. 수술 당시에 뭔가 있었던걸까. 뭐, 이제와서 큰 문제는 아닐터지만.
- "휴스턴!! 그거 무시해!"
그러는 와중, 라프람이 강제로 무전을 다시 연결했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 밖으로 나온 세이메이는 다시 까마귀를 움직였고, 까마귀는 건물 밖에서부터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추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이반은 회복을 끝낸 후 다시 럴러비아에게 무전을 보냈는데.
- "10분 남았어요, 텔레포트는 지정된 시간 전에는 작동 안해서.. 버텨주셔야 해요."
라는 답이 도착했고, 동시에 당긴 산탄총에도 그것은 머리가 날아갔다가 다시 수복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머스티어는 생명이 빨려나가며 저절로 기력이 쇠하는걸 느낄 수 있다. 어서 자르거나 하지 않으면 위험할듯 한데.. 그러나 뜻밖에도, 붉은 스파크가 잘린 부위쪽에 일어나더니 깔끔하게 침범당하고 있던 부위가 고통없이 잘려나가며 지혈까지 됐다. - 노아는 엘리베이터로 기어가듯 헤엄쳐 올라갔고, 곧 엘리베이터는 6층에 도착했다. 6층에 내리자마자 보이는것은 누가봐도 수상해보이는 장치. 대체 무슨 구조길래 내리자마자 이런게 보이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노아에게 남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기계 장치는 이상한 문자들이 주르륵 나열되며 작동하고 있었다. 정지를 위한 키는 따로 보이진 않는데.. 그냥 부수면 되는걸까?
상관도 아닌데 자신의 말을 들을 필요 없고, 애초에 들을 것이라고 크게 생각은 안 했다. 의외의 행동이였는지 하는 말은 조금 놀란듯 들렸으나, 끝에 갈수록 장난기 어린 목소리다. 어차피 까마귀 하나로 노아를 막을수 있으리라 생각도 안 했던 것인지, 까마귀는 곧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텔레포트 쪽으로 이동해요, 제가 엄호하죠."
그는 머스티어 쪽으로 다가가더니, 머스티어에게 등을 돌려 그 괴상한 검은색 사람?을 주시한다. 방어적인 태세가 돋보이는 자세.
벤자민은 무너져가는 빌딩에 불을 질렀다. 그러면서 본것은, 주변의 땅이나 건물들도 전부 풍화되고 있다는것. 그 원인으로 보이는것은 아마 저 운석에서 나온 코드들일것이다. 마치 주변의 생명을 빼앗는것처럼...
한편 세이메이가 엄호를 하며 움직이려는 찰나, 멈춰있던 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시 팔을 늘려서 세이메이를 붙잡으려 했다. 팔이 늘어나는 속도는 빠르지만 눈으로 놓칠 정도는 아니다.
- "아니 이게, 저건 예상하지 못한거라서요.. 그냥 뛰어서 지역을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로.."
럴러비아는 이반의 생각을 눈치챈듯 웅얼거리며 변명하고 있었다. 뭐 그건 그거고 그대로 휴스턴에게 공격을 가한 이반이었으나. 총알 한두발로는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보였다. 애초에 상태가 이상해보이고 말이다. 그것은 머스티어의 나이프도 마찬가지였고, 어째서인지 그 행동들이 괴물같은것의 심기를 자극했는지 반대편 손을 둘에게 뻗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세이메이에게 한것과 다르게 손바닥에서 검은 송곳 같은게 연달아 발사되어 날아온다, 당연히 맞아서 좋을건 없어보인다. ㅡ - "이미 정상적으로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어, 일단 부수면 적어도 충돌은 막을 수 있을거야."
노아의 무전에 조금은 떨리고있는 목소리의 라프람이 답해온다. 아마도 시간이 충분했다면 원격으로든 뭘 해서든 운석 자체를 없앨수도 있었던거 같다. 그러나 이미 운석은 코앞까지 와버렸다, 그나마 충돌을 막을 수 있다면 인명피해까진 막을 수 있을것이다.
노아는 주변의 철골 같은것을 찾을 수 있었다. 불길이 올라오는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 6층까지는 아니다. ㅡ - "멈춰, 휴스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린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로딩율이 올라가는 시스템의 알람음도 들린다. 휴스턴의 말대로 'Ω System'은 모든 기능을 개방하기 위한 단계에 돌입했다.
- "지금이라면 아직 취소할 수 있어, 그거 쓰면 죽는다고!" - "운석의 충돌이라면 멈출 수 있으니까, 굳이 거기서 죽을 필요따위 없어!!"
개방율이 50%에 도달했다.
- "네 몸도,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 "혼자 끙끙대지 말고, ㅡ 술이라도 사줄테니까 멍청아!" - "멈춰, 제발."
시스템의 개발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로딩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멈추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당신이 정한대로일터다.
"아가씨, 뛰어서 저게 떨어졌을 때 멀쩡한 만한 거리로 도망칠 수 있겠나? 뭐 상관은 없겠지... 10분 뒤에 보세!"
어차피 도망치게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고, 일단 운석을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니만큼 그걸 방해하려는 휴스턴을 어떻게든 방해해야 했다. 문제라면 산탄총 정도로는 움직임을 막아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또 그걸 자극했는지 공격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악 제기랄! 그만 좀 해라 이놈아!"
검은 송곳 같은 형상의 공격을 전부 피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맞았을 때 어떤 후폭풍이 올지 정도는 알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피하기에는 그가 다소 굼뜬 편인 것을. 산탄총을 쥔 팔로 본능적으로 얼굴을 노리는 송곳을 막아내려고 하면서 그는 휴스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들어 그를 후려치려고 했다. 정확히는 베려고 한 거지만.
짧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 분명 눈으로는 좇았으나 몸의 반응은 시야보다 느렸다. 가까스로 자신을 잡으려던 손을 피하면 그는 까마귀의 배에 손을 집어넣는다. 고깃덩어리를 해집는 소리가 나지만 피는 일체 보이지 않는다. 요전에 주웠던 붉은 돌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그 괴물에게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