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으로 위압감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 단순히 돌아온 게 아니다, 압도적인 공포, 맹수 앞에 맨몸으로 던져진 인간이 느끼는 공포가 이런 게 아닐까?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는 감정이었기에 더욱, 미지의 공포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의해 두려움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더욱 큰 공포가 될 수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랬다.
"실례했슴다!"
아마 그것은 살로메도 동일하게 느낀 모양이었는지 팔을 잡아끄는 게 느껴지자마자 제루샤는 다소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바로 이끄는 대로 달렸다, 처음은 살로메가 잡아당겼으니 조금 뒤였겠지만 다리며 아킬레스건이며, 충분한 추진력을 내기에 충분한 상태였으므로 너는 살로메가 뒤쳐지지 않도록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리 외친 머스티어는 문의 반대편을 향해 돌진했다. 아이고, 이 아가씨 상태가 정상이 아니구만. 본인도 멀쩡하진 않건만, 기절한 샐비아를 안아들고는 노아가 쏴대는 총알을 피하며 문으로 향했다.
"별..."
작게 미친놈 다 보겠네. 라고 중얼거린 머스티어는 문 밖으로 나가기 전 한 손으로 샐비아를 받쳐든채 나이프를 꺼내 들고 휴스턴이 아닌 노아에게 쏘아내듯 던졌다. 그리고 살기 가득 담긴 눈으로 벙커측을 노려보다, 두 팔로 제 품에 있는 부상자를 고쳐 안은 뒤 몸을 돌려 문 밖으로 나갔다. 당장이라도 시체 되기 일보직전이던 자를 쫓아가 숨통을 끊고 싶었지만 리더의 상태도 신경쓰이고 뭣보다 이쪽의 피해도 상당했으니 명령에 따라 후퇴해야했다.
말투는 빈정거리는 꼴임에도, 그 볼륨은 낮아 속삭이는 것 마냥 들린다. 총에 상완근이 관통되어 한쪽 팔은 굽히지도 못 한 채 가만 떨궈 피만 흘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유토의 망설임이 들려오면 그 팔이 움찔거렸다. 리더가 저렇게 당황한다고? 리더가 무력으로 해결 못할 일인가? 아니면 호스트에 관한 일? 생각은 나중에 처소로 돌아가서 해도 늦진 않는다. 샐비아를 밀쳐 (기절시켰던) 도베르만은 다시 연기의 상태로 흩어져 그녀의 모습을 감춘다. 그는 문 쪽으로 돌아서는 듯 했다가, 발을 축 삼아 빙 돌더니 소매에서 구깃한 부적 한 장과 옷 안에서 작은 네일건을 꺼냈다.
"아말 씨에게 다음 비키니 화보집은 언제 내실 거냐고 물어봐 주시겠어요?"
이건 뭔 해괴망측한 도발인가, 부적을 공중에 던지고선 그것이 흔들리며 땅으로 나플거리면 네일건의 방아쇠를 당겨 노아의 이마를 향해 쐈다. 발사 후엔 회전력으로 다시금 원 자세로 돌아가, 다시 문 쪽으로 달려나간다.
자신도 모르는 벙커의 괴물이 또 있었나 한 바탕 납탄을 퍼붓고 땅으로 내려 온 시구레는 그를 노려봤다 한 편으로, 시간을 다루는 기술은 유용하고 또 강력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시구레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꼬락서니를 바라봤다
'...'
공격에 집중하면, 다른 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여러 시간대의 자기 자신을 펼치면 그만큼 피격 면적도 늘어나게 된다 그 증거를 내비추듯 몸에 난 또 다른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와 옷을 적시고 있었다 다음주에도 당장 입고 가야 할 교복을 이 상처의 원인이 상대가 마지막에 발포한 탄환인지, 아니면 저 장치에서 쇄도하는 스파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쪽은 거의 사활을 건 공격이었는데 받은 건 피해밖에 없다니 와중에는 한참이나 먹통이었던 무전을 통해 유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퇴하죠."
그야말로 툭치면 죽을 몸이 되었다만, 그렇다고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다 자신말고도 팀에도 부상자가 즐비해 있었다 시구레는 아발란치의 안정적인 퇴각을 위해 기어코 떨리는 손으로 총을 쥐고서 퇴각하는 것, 그리고 벙커가 떠나는 것을 마지막까지 경계하고서는 발걸음을 질질 끌며 마지막 순으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
휴스턴과 그것을 부축하는 이츠와는 한발 먼저 문으로 나갔고. 그 상황에서도 공격을 계속하는 노아가 있었다. 그러나 노아의 공격도, 그걸 견제하는 세이메이나 머스티어도 큰 소득을 얻지는 못한다. 스파크가 미친듯이 날뛰며 서로의 공격이 채 닫지도 못한것이다. 이미 이 방에 있는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선글라스를 꼈던 남성은, 공격하고 있는 노아를 들쳐매 문으로 향했다.
"도발도 좋은데, 일단 살고 봐야지."
이어 샐비아를 챙긴 머스티어와 세이메이도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것이다. 시구레는 그것을 모두 확인하며, 마지막에서야 문을 나섰다.
--------------- .......... 침묵이 이어진다.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말하는 살로메를 향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수는 없었다. 도망쳐야한다.
그것은 제루샤와 살로메, 둘에게 거의 동시에 든 생각이었으며, 그보다도 먼저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덥썩- 제루샤의 팔 ㅡ 의수부분 ㅡ 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제루샤는 어쩌면 주마등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기이하게도, 의수부분은 순식간에 색이 바라더니 회색빛의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붙잡힌게 의수라서 다행이었다. 의수가 사라지며 간신히 벗어나 문으로 탈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문으로 나가면서 아까의 감각이 되새겨진다. 의수는 살아있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방금 그것은, 마치 의수의 '생명'이 흡수되는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 . .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이들은 각각 조직들끼리 한곳에서 만난다. 그 이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을 뿐이다. 특이하게도 유토는 이번 일에 대해 딱히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벙커는 그저, 이만한 정보라도 충분히 대단하다는 말은 있었고, 회복하라는 말 정도가 들려올 뿐이었다.
유일하게 큰 상처가 없었던 살로메만이, 모두가 쓰러졌을때. 지금까지중 제일 피해가 커보이는 아말이 서둘러 뛰어온것과. 라프람이 그들이 목숨걸고 가져온 정보를 소중히 모으는 동안에, 항상 표정 변화없던 아말이, 기분탓일지 몰라도 매우 어두워 보였다는걸 볼 수 있었다.
아발란치들은 하나같이 큰 부상이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저 병실로 옮겨졌구나- 하는 추측만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정신을 잃고 있었을때. 누군가의 사과소리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던거 같기도 하지만. 아발란치에 그런 인물이 있을리도 없고 기분탓이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