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손을 뚜둑뚜둑 풀면서, 감사를 적당히 받는다. 가끔씩 헌터는 영업직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그게 가장 심할 때가 바로 일감을 수주할 때인데, 적어도 다른 이가 가져온 건수를 처리할 때는 그 느낌을 피할 수 있었으니. 빈센트는 나름의 감사함을 느끼면서 앞을 쓱 본다. 이 벽에 나무들이 잘나 건지, 아니면 나무를 파내서 벽을 지은 건지 모를 정도로 우거져 있었다.
"항상 게이트에 들어오면 하는 말이 있죠. 이런 세상도 다 있구만."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왼손으로 인을 그려 마도를 준비한 채 앞장선다.
"그 때가 됐을 때, 확실하게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딱 하나 안 했다고 실패하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을 테니까요." ///2
강산은 빈센트의 말에 긍정하며 뒤따른다. 울창한 숲 사이의 공터와, 그 공터 한가운데의 돌계단은...언뜻 지구 어딘가에도 있을 법 하면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기묘한 모습이었다.
"어려운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리 준비한 램프를 들고, 빈센트의 뒤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말한다.
"이 던전 최하층에 계신 분에게 준비한 물품을 전달해드려야 하는 것인데요. 직접 손에 들고 간다면 이것저것 신경써야겠지만, 저희에겐 인벤토리가 있으니까요. 배달할 물품은 제 인벤토리에 잘 있으니 일단 오가는 것만 도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금 여유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긴장을 놓은 것도 아니지만. 지하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보면, 그 끝에는 방금의 숲과는 다른, 또 지구의 식물들과도 다른 여러 꽃과 덩굴들이 곳곳에 자라난- 마치 관리가 되다 만 듯한 꽃밭 같은 장소가 펼쳐진다. 그래도 그 한가운데에는 일직선으로 길이 뻥 뚫려 있었고, 그 끝에 또 다른 계단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기에, 최소한 길을 잃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신기한 광경에 강산이 작은 감탄사를 흘리며 주변을 살피며 나아가려다 멈춰선다. 웬 꽃무지같이 생긴 대형견 크기의 몬스터가 갑자기 튀어나와 일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내 몸을 돌려 길을 막고선 강산과 빈센트 쪽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둘에 비해 몸집이 크진 않지만, 옆으로 피해가려고 해도 바로 몸을 움직여 일행의 진로를 막는다.
"음. 던전 최하층에 사는 사람이라. 보통 그런 경우는 정말로 강하거나, 그만큼은 아니어도 엄청난 적의로 보충하거나 둘 중 하나던데 말이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걷는다. 보통 그랬다. 그리고 빈센트는 또 시작이다, 또 시작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알면서도 들어온 자신의 우둔함을 비판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끝은?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빈센트가 사지 멀쩡한 채 살아나오고 적은 잿더미가 된 채 바닥에 흩날리는 결말로 끝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러길 작게 바랄 뿐이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다가, 대형견 크기의 몬스터를 보고는 말한다.
"아무래도 우리랑 사생결단을 내려는 것 같군요."
빈센트는 한 손에 불을 피운 채로 강산에게 말한다. 독이냐, 아니면 불이냐. 빈센트는 둘 중 하나로 저 꽃무지인지 대형견인지 아니면 그냥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다가 진짜 개풀이 되어버린 무언가인지, 하여튼 저것을 조져버릴 생각이었다.
"이 녀석들에게 아주 강력한 제초제 성분을 살포해서 침묵의 봄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줄 수도 있죠. 어느 쪽이 좋을까요?"
빈센트는 그 자체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 계제가 아닌 인간이라서,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이고는 크게 따지지 않았다. 만약 빈센트 옆에 있는 사람이 두 발이 아니라 두 손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 걷는 인간이더라도, 빈센트는 그것이 자신을 포함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정상' 의 범주로 넣는 사람이었고, 적대적이지 않은 기인이라면... 그저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 양상을 따르지 않을 뿐인 정상인이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음... 저라면, 어떤 놈이 제초제를 쓰건 불을 쓰건 싫어할 것 같은데... 뭐, 불을 쓰는 게 낫겠군요."
빈센트는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뻗어 총 모양을 만든 채, 강산이 충격파로 딱정벌레 괴물을 기절시키는 틈을 타서 저 '개풀'에게 파이어볼을 쏜다. 쿵! 파이어볼이 명중하자 개풀은 개풀이 아닌 개불로 변하더니 툭 쓰러졌다. 다행히도, 정원의 식물들은 수분이 잘 공급되어서 그런지 개불과 접촉한 일부만 그슬리고 나머지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하, 제초제보단 불이 낫지 않을까요. 빈센트 형님이 소환하실 건 지구제 제초제이지 이 게이트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게 아닙니까?"
강산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내 움직임이 멎은 두 몬스터를 본다. 풍뎅이 비슷한 몬스터가 불타자 강산도 조금의 불을 일으켜 딱정벌레 몬스터를 태워 끝장낸다.
"요즘 안 그래도 정원 규모가 큰데 안에서 몬스터들까지 멋대로 증식하는 통에 관리는 반쯤 포기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중요한 것에는 배리어를 쳐놓았다고도 하셨으니 배리어 있는 건 무리하게 깨지 마시고요."
토양에 무기질 비료 좀 공급했다고 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한다.
"그래도 이 꽃들이 다 없어진다니 아깝긴 하네요...가시죠."
꽃에 약간 아쉬운 눈길을 건네며 밑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지하 2층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은...이번에는 덩굴장미와 늑대가 섞인 형상의 몬스터 두 무리가 서로 물어뜯고 울부짖으며 싸우느라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들 중 한 쪽은 털 대신 흰 장미꽃잎을 달고 다른 한 쪽은 붉은 장미꽃잎을 달고 있었는데, 명백히 서로 적대관계인 듯 했다.
강산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덩굴장미 늑대 무리들을 노려본다.
//7번째. 그래서 등장시켜 드렸습니다...꽃댕댕이...! 별 4개짜리 같지만 전부 싸우지 않고 비키게 하는 방법이 있슴다.
"음. 어쩌면 그들에게는... 우리가 외계에서 흘러나오는 유독물질을 보고 하는 생각이랑 비슷한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관리를 반쯤 포기했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럴 때는, 빈센트는 아주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제초제를 뿌리건, 아니면 통째로 갈아엎건, 기름을 붓고 불을 당기건, 전부 다 없애버린 다음에 새로 시작하는 거였다. 극단적인 방법이었지만, 극단적인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거기에 더해, 아예 흙도 훈증제를 뿌려서 유해곤충, 세균, 씨앗을 전부 무력화하는 방법도 있었다. 거기까지 가면 그건 제염의 영역이었지만 말이다.
"불, 방사능, 제초제 등등... 그냥 새로 시작하는 방법들은 많을 텐데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내려간다. 이제는 진짜 개풀이 보였다. 빈센트는 그것을 보더니,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장에 덩굴을 만들어서 그걸 타고 가시죠. 우리 의뢰는 배달이지 다 죽이는 게 아니니까요." //8
"혹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가 저 게이트가 적대적으로 돌변하면 그건 긁어 부스럼이지 않습니까. 이 던전 주인도 마도사라고 하시니 저희가 다녀가고 나면 아마 다 쓸어버리든 말든 알아서 하시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지나갈 방법을 생각하던 강산은...빈센트가 제안한 의견을 듣고 던전의 천장 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제가 힘 좀 써보죠."
엘 데모르를 쓸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엘 데모르는 단순히 주변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드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마도이니, 망념 소모도 클 뿐더러 저 몬스터들의 주의를 불필요하게 끌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강산은 안전하게 가기로 한다. 정원의 덩굴식물 몇 개가 자라나서 마치 구름 사다리처럼 엮인다.
"이크."
넝쿨이 자라나고 엮이면서 흔들리는 기척에 장미 늑대 몇 마리가 싸우는 걸 잠시 멈추고 으르렁거리지만, 두 무리가 서로 싸우느라 이 쪽에 크게 신경쓰지는 못하는 듯 했다.
"그래도 이 정도 거리면 혹시 저희 쪽으로 와도 마도로 적당히 견제하면서 건널 수 있겠는데요? 자 갑시다."
"뭐. 하는 말입니다. 결국 정원을 개판으로 내버려두건 잘 관리하건 그 사람 마음이니까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휘휘 내젓는다. 빈센트도 말만 그럴 뿐. 재산 피해를 고려해야 하는 데다가 면책권까지 없으니 귀찮은 데 밀려들어가면 답도 없었다. 그저 말만 그렇게 할 뿐.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좋은 생각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의 빈센트와 비교해보면... 빈센트는 자기 자신이 기특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빈센트! 어딜 가나 죽일 놈 부술 것 없나 찾던 놈이, 이런 '지극히' 평화주의적인 방식을 찾을 줄이야."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넝쿨 사다리에 올라타서 걷는다. 몇 마리가 점프하려고 했지만, 빈센트는 넝쿨들 사이에서 아주 날카롭고 굵은 가시를 만들고, 달려들던 두 개풀이 거기에 꿰이더니 힘을 잃은 채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딱히 공격할 생각이 없는 천장의 두 마도사는 잊은 채로 계속 싸우기 시작했다.
"하하, 그래도 갑작스럽게 안 쓰시던 방식 쓰시려니 갑갑하셨을 텐데 적응하느라 고생하십니다. 많이 유해지셨슴다. 마도 실력도 많이 느셨고요."
빈센트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는 말에 강산도 맞장구를 치며 따라간다.
"훠이, 저리 가."
일행 쪽으로 덤벼들려는 장미 늑대 두세 마리를 빈센트가 해치운 후, 장미 늑대들이 일행에게서 관심을 끈 데에는 아마 강산이 늑대들을 약간의 불로 위협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녀석들은 불덩이를 쏠 필요도 없이 보여주기만 해도 알아서 물러났다. 이 정원이 지하에 있고 1층에서 보였듯 관수가 잘 되어 조금 습하긴 했지만, 저 늑대들은 식물형 몬스터인 자신들에게 불이 위협적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아는 듯 했다.
"하하,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네요. 학교 운동장에 비슷한 구조물이 하나 있었거든요. 구름사다리라고요. 어릴 땐 거기서 많이 놀곤 했죠."
강산은 웃으며 구름사다리를 내려와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한다.
"아무튼 여기가 마지막 층입니다."
이 던전은 지하로 갈수록 더욱 무성해지는 것인지...계단을 다 내려오기도 전부터 거대한 식물들이 보인다. 물소리도 난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강처럼 뚫려있는 큰 수로와, 그 위에 있는 거대한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듯한 나룻배도 눈에 띈다.
"수로 쪽으로 가죠. 뱃사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들었는데...잠깐 자리를 비운 걸까요?"
강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11번째. 원래는 배 타고 가면서 나오는 장애물이나 몬스터들을 강산이랑 빈센트가 치우는 식으로 가려고 했는데 분량이 길어져서 한 번 끊습니당! 답레는 편하실 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