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스레 위키 문서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B%A0%88%EC%9D%B4%EB%A8%BC%EB%93%9C%20%EB%82%98%EC%9D%B4%EB%B2%A8
이름: 레이먼드 나이벨
나이: 29세
성별: 남성
외모: https://picrew.me/share?cd=hk0CM3xGcp, https://picrew.me/image_maker/10948 갈색 곱슬머리에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상당히 평균적인 신장과 체구를 지닌 남성. 다만 손은 거친 일을 많이 겪은 듯 흉터 투성이에, 양 다리와 등에도 화상 흉터가 있다. 거의 웬만해선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며, 흉터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 옷은 좀 두텁게 입는 편. 드러난 손도 항상 붕대 등으로 감아뒀는데, 자주 갈지는 않는지 항상 핏자국이 남아 있다.
성격: 그때그때를 즐기며 살고, 미래를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는 성격. 경솔해보일수도 있고, 결단력 있어 보일수도 있다. 장난기도 있고 종잡을 수 없으나, 가끔씩은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가끔가다 불안정한 모습도 보이나, 이제 기본적으론 목숨을 내던지려는 것 보단 '이왕 받은 삶을 즐기는'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세븐스 능력: 아드레날린 러시. 극한의 상황일수록 더 정도가 강해지는 일시적인 신체 강화 능력. 인지능력과 사고속도를 증폭시키고, 근육과 심폐기능을 증진시켜 평범한 인간의 선을 넘어선 신체능력을 구사함과 동시에 사용 중에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감각도 불러일으킨다. 다만 신체를 억지로 강화시키는 것인지, 사용할때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을 겪는다. 장시간 지속 시 가벼운 현기증부터 시작해 탈진, 내출혈, 발작, 근육 파열, 심장기능 이상 등의 위험한 정도까지 부작용을 겪는다. 특별한 의료적 조치 없이 한계까지 무리하면 사망에 이를수도 있다.
기타: 한때 취미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특기는 목숨 걸고 도박하기인, 마치 빨리 죽고 싶어 환장한 것 처럼 살았던 남자. 일부러 몸에 안좋은 약품 같은것을 찾아서 복용하진 않지만, 그만큼이나 위험한 스릴을 즐기는게 낙이다. 그나마 안정적이고 도움이 되며,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을만한 취미는 파쿠르. 제발 그정도 선에서 멈추라는 소리도 자주 듣었었다. 이 또한 PTSD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행했으나, 재미붙인 건 가끔 요즘도 한다고.
무기는 주로 빠른 연사가 가능하고 가벼운 총기류를 선호한다. 자기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탄환을 뱉어내는게 좋다나. 사실 한손으로 사용이 용이한 총기면 거의 다 쓴다. 물론 정조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후, 사실은 평범한 돌격 소총을 선호하는것으로 밝혀짐. 일부러 자신의 성향과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을 과거와 거리가 있는 이미지 메이킹 삼아 주로 사용한다고 밝힘.
상기한 능력의 부작용과 평소 행실 덕에 의무실에 상당히 자주 실려온다. 하지만 보통 자의로는 찾아오지 않는 편. '주사가 무섭다'는 유치한 이유를 농담삼아 핑계로 대며 피한다. 다만 정말로 무서워한다기보단, 삶에 대한 적은 의지 때문에 그래왔었으며 최근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 에델바이스에 들어오기 전에는 가디언즈의 행동에 대항하는 조직에 소속되어 타격 팀의 팀장으로 활동. U.P.G 정권이 들어서기 전 군인들 특유의 복장이나 장비, 전술 등에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는 에델바이스로서의 혁명이 끝난 이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한동안 느긋하게 살겠다고 다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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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마데우스 타루(amadeus tarrou)
나이: 30세
성별: 여성
외모: https://picrew.me/image_maker/42963
보라색의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실눈의 여인. 머리는 높게 올려 묶었음에도 허리 끝까지 내려온다. 특이하게도 앞머리보다 옆머리의 길이가 짧다. 머리에는 바보털 한 가닥이 있는데 무슨 짓을 해도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눈썹은 팔자로 쳐져있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지만 눈을 뜨면 가늘고 길게 위로 째진 눈매다. 홍채의 색은 흰색. 그래도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은 된다. 본인은 이걸 가지고 마안이라는 드립을 치는 등 콤플렉스는 아닌 모양. 키는 182cm 정도이며 몸은 말라보이지만 꽤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아스팔트 껌딱지. 흉부가 매우 빈약해 남성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다.
언제나 검은 정장을 입지만 신발은 워커를 신는 등 격식에 그리 연연하진 않는 듯 하다. 입가의 점에 대해서는 유명 배우와 같은 곳에 점이 있다며 자랑으로 여긴다. 안경을 쓰고 있긴 하지만 멋내기용에 지나지 않는 듯.
성격: 늘 예의바르고 나긋나긋한 말투를 쓴다. 원래 집사였나 싶을 정도로 남을 챙기는 걸 좋아하고 아이들에겐 더욱 더 친절하다. 놀라운 점은 이것이 가식이나 위선이 아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것. 너무 다정해서 사심이 있는 것으로 오해 받는 일도 많다. 남을 돕는 것을 삶의 보람이라 여기며 언젠가 반드시 인류가 한 치의 증오도 남기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약간 4차원 기질이 있는듯. 모두에게 존댓말을 쓰며 왠지 혼잣말을 하는 일이 잦아 모르는 사람들에겐 종종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세븐스 능력: Let It Bleed(피 흘리게 놔둬)
자신의 피로 검과 창같은 냉병기를 만들어내는 능력. 보통 삼국지의 장비가 사용한 장팔사모같은 장창을 구현해내며 가끔 채찍이나 단검도 만들어낸다. 만들어낸 무기는 양도가 가능하지만 사용자 본인의 실력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며 아마데우스의 몸에서 떨어지면 강도도 급격히 떨어져나간다. 한번에 한 개 이상 무기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예를들어 창을 만든 상태에서 단검을 만들고 싶다면 창을 거두고 단검을 새로 만들어야한다. 무기의 크기는 흘리는 피의 양으로 결정되며, 무기를 거둘땐 원상태(혈액)로 되돌려 피를 흘린 곳으로 집어넣는다. 무기가 클 수록 시간도 꽤 잡아먹는다. 강도의 경우 많은 피를 압축해 만들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평소엔 보통의 창과 칼의 강도로 만든다.
기타: 이름인 아마데우스는 남성의 이름으로 쓰이지만 본인은 여성이다. 본인은 이에 대해 부모님이 아들을 바라셔서 그랬나? 라고 넘긴다. 사실 가명일지도 모른다. 문짝만한 키에 재빠른 몸놀림과 뛰어난 근력을 가졌으나 은근히 허우적댄다.
애칭은 아마데. 이름이 길어서 성인 타루로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 그냥 면 종류면 다 좋아하는 듯. 다만 쓴 것에는 약해 다크 초콜릿은 입에도 못 댄다.
왠지 남성으로 오해받는 걸 즐기는 듯. 남성인 척 하다 정체를 밝히는 장난을 매우 좋아한다. 목소리도 중저음이라 오해사기 딱 좋은 인물. 어린아이들은 첫만남부터 그녀를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여담으로 혈액형은 O형. 모두에게 나눠줄 수 있는 피라고 자랑스러워 한다.
록 음악 매니아로, 종종 흥에 겨워 에어드럼이든 에어기타든 신명나게 뭔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작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없으며 그냥 악기를 다루는데 재능이 없다. 이름이 아마데우스임에도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 그래도 트라이앵글 정도는 연주할 수 있다며 합리화하곤 한다.
과거에 대해 말해달라면 아버지가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다는 이야기만 해줬다. 그냥 알려주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모양이었던듯. 과거는 과거일뿐이라며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왠지 가족이 언급되면 주제를 돌리려고 했었다. 지금은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져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되었기에(여전히 부담스러워 하지만) 이야기는 짧게나마 해준다.
아마데우스는 모든 일이 끝난 뒤, 잠시 아지트 근처의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었다. 그리고 돈이 좀 모였다 싶었을때 고향인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어릴 적 꿈 중에 하나인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 를 무려 16년 동안 이뤘으니 이제 슬슬 고향에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그녀는 본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른 동네에 자리 잡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본가에서도 아마데우스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으니 쌤쌤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어느 한 마을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는 그런 일상이 좋았다. 자신의 손에 무기가 들려있지 않고, 피가 묻지 않는 일상이 이어져서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이따금씩 함께 혁명에 임했던 동료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누구는 짝을 지어 나갔고, 다른 누구는 홀로 길을 떠났다. 아마데우스는 아지트가 있던 마을을 떠나며 종종 연락 하고 지내자며 손을 흔들었지만 아직 연락을 시도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은 의외로 좁고 좁으니 인연이 이어져있다면 반드시 재회하게 되리란 법칙은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뜬금없이 만나게 될 것은 상상도 못했다. 아마데우스는 일이 없는 날 시장에서 장을 봐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종이봉투의 밑이 뜯어져 물건들이 이리저리 굴러가버리는 바람에 줍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그녀는 어느샌가 굴다리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굴다리에 굴러간 것이 그날 요리에 꼭 필요한 양파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데우스도 그냥 등을 돌렸을테지만, 굴다리에서 잠든 노숙인의 존재는 그녀를 굴다리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노숙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괜찮냐며 손을 뻗은 그녀는 얼마 안 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꼴 한번 보라지. 이가 다 나간 면도기로 수염을 깎으며 매일 아침을 파상풍과 싸우면서도 똑바로 면도도 못 하고 있지 않나. 수천 달러가 넘는 비싼 장비들을 다루다가도, 지금은 내 몸뚱아리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무기들밖에 없고 걸친 것도 방탄 장비는 커녕 바람도 못 막아주는 거적때기들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대충 예상은 했던 말로다. 혁명에 참여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이가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해, 객지에서 이렇게 아사하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처음엔 혁명이 성공한다면, 혁명 이후에 군사 조직들을 이끌거나, 훈련을 시키는 그런 자리를 예상해본적이 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끝난 이후에는 더이상 나와 같은 군인들이 필요없는 세상이 되길 바랬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이미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어느 도시로 가 숨어살길 택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피난하지 못한 이들, 폐허를 뒤지며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무기를 들고 다른 이들이 가진 걸 빼앗으려는 이들. 그 셋이 한데 뒤섞여 아비규환을 이루는 곳이었다. 나는 결국 다시 총을 들어야만 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심플하다. 의뢰도 받고, 돈도 모으고. 모은 돈은 사람들 피난하는데 지원하고, 마침내 나 자신의 피신에도 사용하고. 이후 그 지옥같은 도사를 탈출해, 여기 저기 나라를 건너가서...
마침내, 대륙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스페인으로 와서, 어딘지도 모를 마을로 흘러들어와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을 굴다리 밑에 숨어 살고 있다.
그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채. 혁명 이후 떠난 뒤로, 나는 단 한명도 당시 동료였던 이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 그 이후로는 지금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오랜만인데, 내 꼴이 지금 말이 아니군."
아마데우스 타루. 나와 같은 목적으로 행동했던 전 동료. 그, 아니 그녀라고 강조해야 할지. 어찌되었든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데우스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정 참인지 헛것인지 분간이 안 돼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그녀의 가늘고 쭉 찢어진 눈이 어리벙벙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모습이 꽤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녀는 이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하나, 어째서 이 사람이. 둘, 어째서 스페인에. 셋, 어째서 이런 몰골로? 아마데우스는 들고 있던 종이봉투가 바닥에 떨궈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레이먼드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거예요?"
그녀는 레이먼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잡는다면 일으켜서 식당이건 목욕탕이건 자기 집이건 하여튼 이 곳보다는 나은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아마데우스는 14살 때 집을 나간 뒤의 상황이 떠올라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쪽에서 오히려 묻고싶은 일이다. 스페인. 고향이 스페인이었던가? 그러한 것은 완전히 잊고서 그냥 '그 도시에서 최대한 멀리'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탄 기차 행선지가 스페인이었던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최근 뭐 먹은것도 없는지라, 뻗은 손을 잡을 기력조차 모자랐다. 그저 이 상황에서도 기어코 팔지 않고 남겨둔, 이젠 군데군데 기스가 나 제대로 작동은 하는건지도 의심될 소총을 지팡이 삼아 짚고 일어섰다. 에델바이스 때 사용하던 그 총이지만, 그 때에 비해서 훨씬 때가 타고 낡은 느낌이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 총으로 한번에 보여주는 듯 했다.
"아직... 걸을 순 있어."
가지 않겠다고는 말 못하겠다. 이런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거절하는 것도 그렇고... 지금 내 상태가 말이 아니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아마데우스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그가 자신의 손을 잡는 대신 이리저리 흠집이 난 소총을 짚고 일어서자, 곧 그 소총이 낯익은 물건임을 깨달았다. 그가 에델바이스에 속해 있을때 사용한 것이지만 아마데우스의 기억 속에 그 총은 지금보단 덜 닳고 낡아있었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이 지경이 될 정도면 분명 큰 일들을 겪은 것이 분명했다.
"힘에 부치면 업혀도 돼요."
아마데우스는 떨어진 물건들을 집고 자신의 어깨에 기대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그녀는 지금 레이먼드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먼저 몸부터 씻도록 해야할지, 아니면 뭐라도 먹여야할지. 고민 끝에 무언가를 결심한 아마데우스는 레이먼드에게 물었다.
"식사랑 목욕 중에 지금 가장 하고 싶은게 뭐예요?"
그 대답에 따라 그녀의 행선지가 결정될 듯 싶었다. 식사를 택한다면 그녀의 집으로, 목욕을 택한다면 속옷 가게와 옷 가게로 가려는 듯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마데우스는 먼저 목욕부터 하시겠다고요? 라며 재차 확인하고는 레이먼드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옷 가게에 들어갔다. 레이먼드가 자신이 옷을 고르는 동안 문 밖에서 어색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옷과 속옷을 고르는 손길이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니 속옷은 이 정도면 되겠고, 티셔츠랑 바지는... 그렇게 적당한 옷을 고른 아마데우스는 계산을 마치고 레이먼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어서오세요. 레이디의 하우스에."
농담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집에 들어가자 현관 앞에 머리의 물기를 털때 쓴 수건과 옷가지가 널부러져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발로 대충 밀어내고 레이먼드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방금 전의 허물(...)을 제외하면 설거지도 밀린게 없었고 소파와 탁상 등 가구들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의 집은 다른 동거인 없는 1인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큰방과 작은방으로 이루어진 투룸 형태였는데, 정황상 친구에게 뭔가를 대접하길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상 작은방은 손님용 방 같았다.
아마데우스는 욕실을 가리키고 안에 있던 물건들을 가리키며 수건은 여기에, 그리고 양치가 하고 싶다면 이걸 쓰라며 새 칫솔과 방금 전 구매한 옷가지들을 그에게 주었다.
생전 처음으로 겪어보는 수치심이었다. 그간 내 인격을 모독하거나 하는 종류의 수치심은 수도 없이 겪어보았기에, 이젠 내게 그 어떠한 흠집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것은 확연히... 달랐다. 무력감이라고 해야하나. 여하튼 뭐라 말하기 복잡한 새로운 종류의 수치심이었다. 훈련 중에,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샤워장을 같이 쓸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새삼,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게 이렇게나 싼 물건이었다는 것을 재차 느꼈다.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선 방탄장비나 군복이 아닌 입을만한 옷 하나 사려면 거진 총 한자루 값은 써야 했으니까.
"이 와중에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레이디의 하우스에 이렇게 막 데려와도 되는거야?"
라고 하는 것 치고는 이미 손님 맞이가 준비가 된듯한 집이었다. 아마 아마데우스는 친구들을 자주 초대하곤 하는거겠지. 성격상 그럴거라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다. 조용히, 정색하고 있으면 썩 고고해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만인에게 친밀한 사람이었으니까. 아직도 그러한 성격이 변하지 않았음에 조금 놀랐다. 사람은 상당히 자주 변하는 생물이니까.
"일단... 이 때 묻은 짐부터 현관에 좀 둬야겠어."
행여 먼지가 묻을 지 모르니까. 조금 있다가 밖에 나가서 털어 버리든 할 생각이었다. 먼지, 흙, 심지어는 말라붙은 핏자국도 약간 있는 배낭을 현관에 내려놓는다. 조금 걸을만해진 시점부터 총기는 분해해버려서 배낭에 넣어뒀다. 이제 한동안은 이 안에 든 물건들을 쓸 일이 없길 바랬다. 아마 분명 그렇게 되겠지만. 금이 간 싸구려 방탄판이 든 방탄복도 그 위에 얹어두고서, 본격적으로 '비무장'이라고 할만한 상태가 되고 나선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레이먼드가 욕실로 들어가자 현관에 둔 짐의 먼지라도 털고자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먼지와 흙은 물론 핏자국까지 있는 짐을 보자, 많은 사연이 느껴지는 외관에 심상찮음을 느껴 그가 허락할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사실 선의라도 함부로 손 대는 것은 실례이기도 했고.(아마데우스는 핏자국을 보고 나서야 이 사실을 상기한 듯 했다)
내가 스페인으로 돌아온 뒤로 그는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걸까. 아마데우스는 그가 벗어놓은 방탄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에델바이스 시절 입고 쓰던 물건들을 처분하지 못할만큼 거칠고 치열한 시간을 보낸걸까. 그녀는 언젠가 책에서 본 전쟁과 싸움에 중독되어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는 군인을 떠올리곤 그가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때 내놓을 식사를 요리하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가 식사를 며칠, 혹은 몇끼를 걸렀을지는 모르겠지만 빈 속에 기름진 것을 넣으면 배탈이 날게 뻔하니 계란죽처럼 가벼운 음식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샤워기에서 쏟아져내리는 따스한 물을 맞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꿈은 아닐까? 여러모로 현실이라기엔 믿기지 않았다. 객지에서 친구와 만나고, 그 친구 덕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어 최근 얼마간은 상상도 못했던 문명화된 요소를 모자람 없이 취하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이건 내가 머리에 총이라도 맞고, 죽기 전에 꾸는 마지막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러기엔 이 온기는 아무리 되새겨봐도 혈액의 온기는 아닌 거 같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식으로 꿈만 꾸며 마치는게 낫지 않을까.
욕실에서 나와 몸을 닦는다. 흉터 투성이의 몸을 편안한 복장으로 가리고, 마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욕실을 나선다. 이 일련의 행동을 마치는 과정에 가까워질수록, 정말 오랜만에 취해보는 진짜배기 '식사'의 향기가 나 미칠것만 같았다.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무슨 요리이든 간에, 깡통에 들어있거나 진공 팩에 들어있거나 하지 않은 요리가 너무나 절실했다. 이제 타이어 냄새가 나는 소고기 통조림 따윈 두번 다시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걸까. 그런 생각에 괜시리 흥분되었다. 인간은, 이런 사소한 것만으로도 쉽게 뇌가 돌아버린다.
"세상에. 반나절도 아닌 사이에 갑자기 거지에서 왕이라도 된 기분인데."
한동안 겪었던 일에 비하면 이런 취급은 임금님이나 받을만한 대접이라 생각했다. 편안한 공간, 따뜻한 물, 깨끗한 옷, 따스한 식사, 그리고 안전함. 이 모든 것들이 결여된 환경에서 보낸 시간에 비하면야, 지금은 말도 안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왕은 아니니까, 밥값은 해야지. 식기 정도는 내가 가져다 놔야겠어. 어디 있지?"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마데우스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죽을 담기 위해 그릇을 꺼냈다. 계란의 고소함이 담긴 따끈한 죽. 빈 속에 첫끼는 이게 제격이다. 아마데우스는 레이먼드의 물음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를 부엌으로 불러 접시와 식기가 들어있는 통을 가리켰다.
"자, 뜨거워요. 조심해서..."
레이먼드가 식기를 식탁에 다 놓았을때즈음 아마데우스는 죽이 담긴 냄비를 가지고 나와 그에게 국자를 내밀었다. 레이먼드 혼자 묵묵히 먹는걸 지켜보면 그가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아마데우스도 자신의 그릇을 가져왔다. 죽은 두 사람이 먹을만큼 충분히 있었다.
"식사 마치고 나면 숨 좀 돌리는 건 어때요? 잠시 눈 좀 붙인다던가."
지금까지 있던 일은 천천히 듣도록 하고요. 말씀하기 부담스러우시면 얘기 해주지 않아도 돼요. 죽을 숟가락으로 저으며 식히던 아마데우스는 레이먼드에게 물었다.
아직 뜨끈뜨끈한 저 계란죽을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 입 떠넣고 싶다는 욕심이 소화기관의 중심부에서부터 느껴졌으나, 그것은 곧 뒤에 이어질 파멸적인 고통을 불러올 것이라는 걸 이미 알기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버티고 있었다. 사실 버티는 건 아니었다. 죽을 숟가락으로 한술 떠서, 천천히 입김을 불어가며 식히고 있었으니까.
"그래... 괜찮다면 좀 앉아서 쉬고, 그간의 무용담도 풀어볼까. 맨날 흙바닥이나 아스팔트 위에만 앉느라 엉덩이가 파업을 할 지경이거든."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는 걸 간접적으로,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좀 이야기하려 했다. 괜히 다시 잠드는 것은 두려워졌다. 어쩌면 이 꿈을 깨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그간의 일 때문에, 가장 최근에 가진 잠자리인 굴다리 밑에서 탈진하여 잠든 시간이 오래라 그랬던 것일까? 왜인지 잠이 오진 않았다.
천천히 식힌 죽 한 숟갈을 입에 넣는다. 따끈하고 부드러우며, 고소한 죽이 들어오자 온몸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아, 진짜배기 요리를 먹어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죽은 처음 먹어봐. 고마워."
이후 그릇에 있는 죽도 천천히 먹기좋게 식기 시작하자, 숟가락을 놀리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그가 간접적으로 말하는 그간의 행적에 아마데우스는 이미 레이먼드가 거친 나날을 보내왔음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새롭게 놀라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스페인으로 돌아와 직업활동을 하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같은 동지였던 누군가는 여전히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구나. 느릿느릿 숟가락으로 죽을 휘젓는 손길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정말요? 영광이에요. 아직까진 직장에서 이런 칭찬 들어본 적 없거든요."
그녀의 요리 실력을 말하자면 누구나 한 입 먹어보고 맛있네. 라고 할 수준이었으나 '살면서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마데우스는 지금껏 살기 위해 스스로 요리했지 남을 위해 요리한 것은 최곤의 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레이먼드의 칭찬에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천천히 조금씩 먹다보니 아마데우스의 그릇은 점점 바닥을 보였다. 이제 레이먼드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다시 밖을 떠돌아다니게 될까? 아니면 이 동네 어딘가에 일자리를 얻어 정착하게 될까? 그녀는 레이먼드에게 제안하듯 물었다.
직장이라. 아마도 식당에서 일하는거겠지? 먹는 것 가지고 이야기 한거니까. 사실 나도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게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게 문제였지. 나는 사실상 일평생 총만 잡은 거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았다. 이제와서 다른 걸 해 봤자, 내 목숨을 연명할 정도로 벌이가 되는 직업을 가지긴 힘들 것이다. 내 몸도 예전같지가 않고.
"...딱히 선택지가 있는 거 같지는 않네."
몸을 뉘일만한 곳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바람 막아주고, 비 피할 수 있고, 따뜻하고, 총 맞을 일만 없으면 그 어디든 간에 낙원인 법. 물론... 여기에 아주 뿌리를 박고 살 순 없고, 어느정도 돈이 모이면 또 어딘가로 떠나야지.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으니, 정처 없이 떠돌 수 밖에...
"그럼 당분간 신세를 좀 져야겠어. 몸 상태가 괜찮아지면, 이 근처에서 뭐라도 좀 해보고. 공사판 정도는 있겠지, 그래도."
뭘 하든 막일이라면 그냥 힘을 쓰면 될테니까. 가진 게 몸뚱아리 뿐이니 할만한 게 이런 것 뿐이군. 그렇다고... 내 총을 팔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젠 그게 없으면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 더는 날 위협할 만한 것도 없는데도.
새 옷. 얼마나 훌륭한 울림인가. 진짜로 공장에서 나온 채 그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옷을 접하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던가. 슬슬 물건을 하나 또 팔아치울 때가 온 것 같다. 배낭 안이 텅텅 비어있는 것도 아니므로, 뒤져보면 뭐라도 팔만한 게 있겠지. 여지껏 그래왔다. 그 난리법석에서 주워온 물건을 팔아서 먹고 사는 장물아비 같은 삶. 뭐, 힘들긴 했지만 취향에는 맞았다.
"작은방이면... 윗층이지? 이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거야? 나는 해봤자 어디 헛간 같은델 빌려주려나 싶었지."
가축들 먹일 짚단을 침대 삼아서 자거나, 그러다 가끔씩 자다가 갈퀴에 한번씩 부딪히거나... 비만 피할 수 있으면 별 상관 없었다. 물론, 아마데우스가 그렇게 사람을 대할 성격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사람이 사정이라는게 있으니까.
"코코아. 좀 뭔가... 설탕이 필요해. 그리고 카페인은 당분간 피하고 싶어서."
언제나 자극적이고 열량 높은 것을 먹으며 하루 한끼로만 버텨오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높은 당분을 취하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며, 카페인은... 음. 자다가 총 맞는 건 싫고, 피할만한 구석은 없어서 카페인 알약을 씹어대며 총질을 했다면 자연히 피하고 싶을 것이다.
레이먼드의 말에 아마데우스가 푸흐흐,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농담임을 알기에 그녀도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애초에 여긴 아파트인데 헛간이 어디 있겠는가. 진짜 헛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식주 중 주(宙)로 차별 당하고 살아온 아마데우스였기에 야박하게 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계단 아래에 방을 그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제대로 된 침구는 마련해줬을 것이다.
"알았어요. 코코아... 잠시만 기다려요."
아마데우스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냄비의 우유가 보글보글 끓어오는 소리, 그녀가 냄비에 코코아 가루를 넣고 휘젓는 소리, 컵에 따르는 소리 등등 잡다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레이먼드의 앞으로 살짝 녹아서 흐물흐물해진(아마 토치로 지진 듯 했다) 커다란 마시멜로가 3개 정도 들어있는 코코아 컵이 놓여졌다.
코코아는 흔히 생각하는 모양새가 아닌, 숟가락으로 퍼서 먹어야 할 정도로 걸쭉했다.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였지만 맛은 있어보였다. 아마데우스는 커피를 내린 듯 커피잔과 함께 작은 스푼을 들고 오더니 스푼을 레이먼드 앞에 놓았다.
"스페인식 코코아예요. 여기선 걸쭉하게 먹는걸 좋아하거든요. 여기에 추로스 찍어먹으면 맛있는데, 안타깝게도 추로스가 없어서... 다음에 추로스도 같이 먹어요."
'면도'라기보단 길어진 부분만 적당히 칼날로 끊어낸듯한 부스스한 수염을 가리켰다. 이 꼴을 유지하고 있으면 위생상으로도, 외견상으로도 그렇게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수염을 '기른'것은 사실 어느정도는 힘을 쓰는 직업에선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수염은 보통 마초스러운 느낌을 풍기니까, 힘도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하지만 수염이 더러운 것은 완전히 인상이 바뀐다. 그냥 부랑자 그 자체로 보일테니...
"흠, 워낙에 여기에 갖춰진 게 많아서 막상 뭘 구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뭐 특별히 쓰는 브랜드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레이먼드가 가리키는 수염을 본 아마데우스는 욕실에 면도기가 없었음을 상기하곤 빠르게 메모장에 글을 써내려갔다. 면도를 하려면 쉐이빙 크림도 필요하겠네. 그외에 필요한 것을 적고 다 되었다는듯 펜을 내려놓은 아마데우스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더니 레이먼드에게 밖에 나갈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되었다고 한다면 장바구니와 지갑을 들고 그대로 밖에 나갔을 것이다.
아마데우스가 거주하는 동네는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상가가 있었고, 농가도 있었고, 그렇다고 시골이라기엔 꽤 개발이 진행된, 말하자면 중소도시였다. 차를 타고 좀 나가면 대형 쇼핑몰도 있고, 동네에 영화관도 있고, 없는 브랜드도 있지만 있을건 다 있는 그런 동네였다. 사람들은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지라 그중에선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를 지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곳곳에 올리브 나무가 심어진 광장 주변엔 시장도 있었다.
"총을 챙기거나, 기척을 숨기지 않고 외출을 할 수 있다니. 내가 이게 당연하다는걸 너무 오래 잊고 있었어."
어쩌면 그것을 배우지 못했던 것일 지도 모르고 말이다. 머리가 조금이나마 돌아가기 시작했던 때 부터 세상은 위험 투성이었다. 철이 들어갈수록 그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언제나 남들의 눈을 피하거나, 혹은 해코지를 하려는 이를 단호하게 쓰러트려야만 했던 때도 많았다. 늘 그렇게 살다보니, 간신히 찾은 평화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했던걸지도 모르겠다.
평화로운 삶이라는 걸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고. 기껏 배운게 투쟁이라니. 참 기구한 삶이군.
썩 괜찮은 동네다. 특히 있을 건 다 있으면서 너무 붐비지 않은게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사람으로 가득 들어찬 도시에서 살아가기엔 버거울지도 모르니.
"이런 곳엔 정말 오랜만이라서 뭐부터 사야 할지 모르겠네. 길이나 안 잃으면 다행이겠어."
아마데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총을 챙기지 않고 기척을 숨기지 않아도 외출을 할 수 있음에 낯설음을 느끼는 레이먼드의 모습에 씁쓸함과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피로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일상, 칼을 늘 지참하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일상. 그녀 역시 투쟁의 역사였던 청소년기~청년기를 보냈기에 가끔 자신이 누리는 일상이 꿈만 같아 불안할때가 있었다.
아마데우스는 길이나 안 잃으면 다행이라는 말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만 믿어요! 그리고 길 잃어버리면 방송 꼭 틀어줄테니까 걱정마시구요?"
29세 건장한 성인 남성이 마트에서 길을 잃어버려 보호자(30세)가 부랴부랴 미아보호소에 달려가 방송으로 그를 찾는 모습이라... 확실히 낯간지러운 모습이었다. 아마데우스는 목록을 살피며 카트를 끌었다. 곽티슈, 물티슈, 샴푸, 쉐이빙 크림과 면도기 등을 카트에 담은 아마데우스는 얼추 다 샀다는 듯이 이번엔 식재료를 구할 시간이라며 식자재 코너로 향했다.
"집에 가서 맛있는거 해드릴게요. 빚이 있기도 하니까요..."
아아. 아무래도 그때 레이먼드의 턱에 큰 데미지를 준 그 사건을 말하는 듯 했다. 턱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데미지를 줬었지...
"뭐 드시고 싶은거 있으세요?"
// 몸살이라니 지금은 좀 괜찮으신가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언제가 되든 상관없으니 컨디션이 괜찮아지셨을때 이어주세요! 빨리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솔직히 미아 찾기 방송으로 아홉수 어른을 찾는다고 하면 좀... 쪽팔릴 거 같다. 아니면 내가 어딘가 하자 있는 녀석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겠는가. 뭐 아주 하자가 없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데, 그래도 나름 멀쩡한 편이다. 물론, 탈출로 못 찾아서 위험 지대에서 며칠씩 자고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같진 않을테니까!
빚. 뭐, 그 일을 아직까지도 빚이라 생각하고 있었군. 뭐 그래도 이미 지난 일이니까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 턱주가리 얻어맞은 걸로 영구적인 부상이나 후유증이 남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오해 때문이라곤 해도, 그때는 갑작스러웠기에 당황했지만 곱씹어보면 나름 좋은 구ㄱ 야니 아무튼.
"냉동건조된 물건만 아니면 솔직히 뭐든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맞아, 이왕 스페인에 온 거 현지 요리는 어떨까?"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해외여행 와서 현지인 친구네 집에서 잠시 지낸다고 생각하는게 좋겠다. 일종의 워킹 홀리데이 같기도 한, 그런 자세로 임하는 것이 이쪽이나 저쪽이나 좀 더 편할거다. 아니 좀더 편하면 좋겠다. 뭘 하든, 어디로 떠나든, 베이스 캠프는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